주간동아 889

2013.05.27

혼탕엔 ‘음탕’ 시선 없었네

유럽과 일본에선 남녀가 자연스럽게 피로를 푸는 곳

  • 허용선 여행 칼럼니스트 yshur77@hanmail.net

    입력2013-05-27 11: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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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탕엔 ‘음탕’ 시선 없었네

    1 일본 핫코다산의 혼탕.

    사우나에서 혼욕은 독일, 오스트리아, 네덜란드, 스위스 등 유럽 여러 나라에서 성행한다. 물론 사우나 전체가 다 그런 것은 아니고, 일부 사우나에서 혼탕을 한다. 아예 수영복을 입지 않는 야외 수영장도 적지 않다. 수영장 주변 잔디밭 위에서 젊은 아가씨부터 노인까지 알몸으로 일광욕을 즐기는 모습은 사진작가 처지에서 보면 한 폭의 멋진 작품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에 갔을 때 호기심이 발동해 남녀혼탕 사우나를 찾은 적이 있다. 남녀가 입장료를 내고 따로 들어가는 것은 한국과 차이가 없었지만, 열탕에 들어가니 알몸의 남녀들이 한데 앉아 있었다. 외국 성문화에 관심이 많았지만 모두 나를 주시하는 것 같아 민망했다. 조용히 앉아 사람들을 관찰해보니 놀랍게도 고등학생 정도로 보이는 남녀도 있었다. 학교 체육시간이 끝난 후 이곳에 와서 피로를 푸는 것 같았는데, 한국 같으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대학생들도 마찬가지였는데, 교민에 의하면 그들은 남녀혼탕 사우나를 전혀 이상하게 느끼지 않는다고 한다. 가치관이 혼란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남녀혼탕 사우나에서 유의해야 할 점은 같은 남자라도 아랫도리를 유심히 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호모라고 생각해 상당히 불쾌한 표정을 짓는다. 사우나에는 으레 아담한 크기의 수영장이 있는데, 그곳에서도 남녀가 마치 에덴에 온 듯 알몸으로 수영을 즐겼다.

    아랫도리 유심히 보는 것 금물

    국제올림픽위원회가 1988년 올림픽 개최지로 서울을 발표한 지역인 독일 바덴바덴은 이름난 휴양도시다. 이곳에 있는 사우나 역시 시설이 훌륭했다. 주로 풍족하게 사는 유럽인이 찾아와 고급 호텔에서 묵으며 카지노와 향토음식 레스토랑, 그리고 사우나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사우나 두 곳에 직접 가봤는데, 한 곳은 혼욕을 허락하는 날짜를 따로 정해놓아 다른 날에는 남녀가 따로따로 사우나와 수영장을 이용해야 했다. 가까이 위치한 다른 사우나에는 안쪽에 혼탕이 허락된 장소를 만들어놓았다. 노인들만 찾아온다는 소문과 달리 젊은 남녀도 많았다. 흰 가운을 들고 다니며 몸을 가리다 사우나 욕탕 안에서 벗고 땀을 뺀 뒤 스파라고 부르는 곳에 몸을 담갔다.



    발을 씻고 사우나에 들어가려는데 누가 나를 보더니 인사를 했다. 아는 사람이 없는 터라 의아한 마음으로 쳐다보니 피부가 까무잡잡한 헝가리계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그녀는 동양인을 보고 당황해 무심결에 인사말을 한 듯했다. 나는 사람 없는 사우나 욕탕에 들어가 느긋하게 앉아 있었는데, 잠시 후 그녀가 건너편 사우나 욕탕에 나타나더니 가운을 벗고 발을 씻은 뒤 알몸으로 사우나를 즐겼다.

    슈투트가르트는 독일에서 여섯 번째로 큰 도시이자 이름난 산업도시로 메르세데스 벤츠 본사와 자동차박물관이 이곳에 있다. 축구 열기가 뜨거운 곳이기도 하다. 시내에서 전철을 타고 20분 정도 가면 아늑한 스파 겸 사우나가 나온다. 들어가 보니 넓은 수영장이 있고, 야외에서 일광욕도 즐길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컸다. 사우나 욕탕도 10개가 넘었다.

    혼탕엔 ‘음탕’ 시선 없었네

    2 유럽 사우나는 남녀가 같이 오는 경우가 많다. 3 유럽 스파에는 사우나 외에도 수영장, 야외 일광욕을 즐길 수 있는 장소가 있다.

    알몸으로 장난치는 남과 여

    혼탕엔 ‘음탕’ 시선 없었네

    네덜란드 남녀혼탕 사우나 옆의 수영장.

    일본 온천 하면 남녀혼욕을 연상하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실제로 가보면 노천탕은 지역에 따라 남녀혼욕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남녀탕이 구분돼 있다. 혼욕하는 곳도 젊은 여성은 없고 할머니나 할아버지뿐이라, 사실 남녀 구분도 잘 안 된다. 멋모르고 들어간 젊은 사람은 대부분 외국인이다. 그것도 한국인들이다. 짜릿한 남녀혼욕을 즐기려면 독일이나 오스트리아 사우나를 추천한다.

    일본 온천의 특이한 점 가운데 하나는 아주머니가 남탕에서 일한다는 사실. 발가벗고 있는 남자 사이로 여자가 지나다니는 것이 외국인 처지에선 민망하다.

    일본 혼탕에 내심 실망해 마음을 비우고 일본을 여러 번 여행 다니는 동안, 나이 구분 없이 남녀가 함께하는 그럴듯한 혼탕을 발견했다. 북부 아오모리현 핫코다산에 있는 일부 온천이 바로 그곳. 일본 여러 지역 혼탕을 다녀봤지만 이곳처럼 ‘완전한 의미’에서의 혼탕은 본 적이 없다. 핫코다산에 있는 유서 깊은 온천에 도착한 뒤 취재차 왔으니 내부를 사진 촬영할 수 있게 허락해달라고 부탁했다. 당연히 주인장은 기겁하며 거절했다. 사진 촬영은 안 되지만 견학은 가능하다는 대답을 들었다.

    작은 탈의실을 지나 온천 내부를 보니 매우 큰 탕이 있었다. 큰 욕탕이 1개, 작은 욕탕이 3개였으며 70명 정도가 목욕 중이었다. 외부에서 취재팀이 왔으니 수건으로 중요한 부분을 가리라는 방송이 두 차례 나갔지만 그래도 민망한 부위를 노출한 사람이 많았다. 두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연령층은 어린 소녀부터 할머니까지 다양했다. 남자의 연령층도 넓었다. 온천 한쪽으로는 우리 일행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장난치는 여자와 남자도 보였다. 물론 알몸이었는데,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 이곳에서 미팅을 하는 듯했다.

    사진 촬영을 못 해 아쉬워하는 취재팀이 안쓰러웠는지 주인장이 손에 봉투 하나를 쥐어줬다. 차 안에서 열어보니 젊은 남녀 수십 명이 알몸으로 있는 욕탕 사진이었다. 화끈했다. 그리고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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