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85

2013.04.29

쉽고 다양한 형태라 절반이 허위인가

건물에 대한 유치권

  • 류경환 법무법인 청맥 변호사

    입력2013-04-29 10: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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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쉽고 다양한 형태라 절반이 허위인가
    ‘타인의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점유한 자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에 관하여 생긴 채권이 변제기에 있는 경우에 그 채권을 변제받을 때까지 그 물건이나 유가증권을 유치할 수 있는 권리.’ 백과사전에 나오는 ‘유치권’에 대한 정의다. 예전에는 유치권이 주로 가전제품 등을 수리점에 맡기는 경우에 발생했다. 쉽게 말해, 수리비를 받을 때까지 가전제품을 돌려주지 않을 수 있었던 게 바로 이 권리 때문이다. 요즘에는 주로 카센터에서 이런 일이 생긴다. 수리비를 담보하려는 수단이므로 거래가 끝나면 유치권은 대부분 별문제 없이 사라진다.

    그러나 부동산을 둘러싼 유치권은 얘기가 좀 다르다. 건설 불황이 이어지면서 부동산과 관련한 유치권 분쟁이 많아졌다. 건설회사가 공사대금을 받지 못했을 때 건물을 반환하지 않고 계속 점유하면서 유치권을 주장하는 것이다. 시공사에는 당연히 유치권이 인정되며, 건물주가 건물을 넘겨받으려면 공사업체에 공사대금을 지급해야 한다. 주인이 바뀌었다면 새로 건물주가 된 사람이 유치권자에게 공사대금을 지급해야 건물을 사용할 수 있다.

    유치권은 소유권이나 저당권처럼 별도로 등기하는 권리가 아니라, 점유함으로써 유지되는 권리다. 이 때문에 건설사에서는 현장에 건설도구나 직원을 일부 남겨두고 현수막 등을 걸어 유치권이 있음을 외부에 표시한다. 유치권은 이렇게 쉽고 다양한 형태로 발생한다.

    유치권은 공사업체가 공사대금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보장법이다. 반대로 부동산을 매입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현장에 가서 유치권자의 존재 여부를 확인해야 한다. 일반적인 매매는 물론 경매로 매입하는 경우에도 대체로 유치권은 소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심한 경우 건물가의 30%에 상당하는 유치권도 있어 큰 손해를 볼 수 있다.

    유치권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일이 비교적 쉽다 보니 이를 악용하는 사례도 매우 많다. 실제로 공사를 하지 않았으면서도 유치권을 주장하거나 공사대금을 부풀려 주장하는 경우, 이미 지급받은 공사대금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경우 등이다. 실제로는 유치권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높은 가격에 낙찰돼야 할 건물이 이런 허위 유치권 주장 때문에 헐값에 매각되기도 한다. 유치권과 관련해 분쟁이 생기면 실제로는 유치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결론 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런 가짜 유치권은 부동산시장에서 왜곡을 일으키기도 한다.



    기본적으로 유치권은 유치물에 대한 점유를 잃으면 소멸한다. 점유하지 않으면 유치권도 없다. 반면 계속 유치하더라도 채권 자체를 청구하지 않아 채권이 시효로 소멸하면 유치권도 부정된다. 상법에 규정한 유치권(‘상사유치권’이라 한다)은 유치권 성립 이전에 성립됐던 근저당권 등에 의해 경매가 진행되는 경우 함께 소멸된다.

    흔히 대형 건물을 낙찰 받은 사람이 유치권자가 남겨놓은 물건을 몰래 마음대로 치워버리고 임의로 사용하기 시작하는 경우도 있다. 반환을 청구하는 재판을 신청할 수 있겠지만, 유치권자는 유리한 지위를 잃은 셈이 된다. 앞서 말했듯, 유치권은 실질 점유에 근거한 권리이므로 건물에 유치권이 성립하면 그 주변이 시끄러워진다. 건물에 대한 유치권은 채권이 고액인 경우가 많아 더욱 그렇다. 점유를 얻거나 지키려고 당사자들이 물리력을 행사하는 일도 생긴다.

    건물을 둘러싼 유치권 분쟁이 보기 좋진 않지만, 권리를 행사하려는 모습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다만 그중 절반 정도는 허위 유치권이라고 하니 씁쓸한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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