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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영문법 동의보감’으로 영어 잘하는 깡패 꿈 이뤄”

호주 ‘영어 전도사’ 이용배

  •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영문법 동의보감’으로 영어 잘하는 깡패 꿈 이뤄”

2008년 3월 유명 탤런트 이모 씨 동생이 호주 시드니에서 중국 조직폭력배(이하 조폭)가 휘두른 칼에 맞아 사망했다. 다음 날 시드니 한인식당 ‘오발탄’에 온몸에 문신을 한 중국 조폭 40여 명이 모여들었다. 그들을 불러 모은 건 한국인 이용배(52) 씨였다. 이씨가 나타나자 중국 조폭들이 일제히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이씨는 그들이 ‘엉클’이라고 부르는 한인 폭력조직 보스였다. 이씨는 그 자리에서 이렇게 선언했다.

“내가 돌아왔다. 앞으로 2년간 한인타운과 차이나타운을 가르는 조지가(街)를 넘어오지 마라.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생기면 너희는 나와 적이 된다.”

그날 이후 중국 조폭은 한인타운(스트래스필드)에 발을 들이지 않았다. ‘오발탄’ 주인 박모 씨는 “살인사건이 벌어진 다음 날이라 다들 긴장했다. 그런데 중국 조폭들이 이씨를 보더니 다들 깍듯하게 인사하더라. 이씨가 그 사람들을 한참 혼냈다. 숨도 쉬기 힘든 상황이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이씨는 현재 호주 시드니에서 한인청소년권익보호공동체(KYRA) 총괄 부회장을 맡고 있다. KYRA는 호주로 유학 온 한국 학생과 워킹홀리데이 비자로 들어온 한국 사람이 겪는 불편이나 분쟁을 해결해준다. 호주에서 오랫동안 건달생활을 한 이씨는 스스로를 ‘시드니 독립군’이라고 부른다.

# 조폭이 된 태권도 전도사



어렸을 적부터 그는 기질이 남달랐다. 태권도와 핸드볼로 몸을 다졌고, 북파공작원(HID) 교관이던 삼촌에게 무술을 배웠다. 그는 가는 곳마다 싸움을 했는데, 주로 때려서 문제가 됐다. 공부도 곧잘 했지만 마음을 두진 못했다. 중학생 때부터 책 대신 표창, 칼, 염산 같은 걸 가방에 넣고 다녔던 그는 고등학생 때는 툭하면 가출하고 싸움이나 하는 그야말로 골칫덩이였다. 전설적인 한국계 마피아 ‘제이슨 리’를 알게 된 이후 그의 인생 목표가 바뀌었다.

‘영어 잘하는 세계적인 깡패가 되자.’

호주는 그가 대학(경희대 국민윤리학과) 시절 어학연수차 1년간 머물던 곳이다. 어학연수 당시 그는 시드니에 있는 베트남촌 캐브라마타에서 생활했다. 캐브라마타는 호주사람도 무서워서 잘 가지 않는 우범지대로 유명했다. 그는 당시 캐브라마타에 있던 유일한 한인 태권도장에서 사범으로 일하며 학비를 벌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호주에서 활동하는 베트남, 중국 출신 조폭들과 인연을 맺었다. 도장에 출근한 첫날에도 베트남 조폭 4명과 난투극을 벌였다.

어학연수가 끝나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그는 복학하지 않았다.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았다. 결국 그는 방황 끝에 대학을 때려치웠다.

“‘영문법 동의보감’으로 영어 잘하는 깡패 꿈 이뤄”

2000년 호주체육대학(학장 이용배)이 주최한 태권도 대회, 1986년 호주 시드니 베트남촌 캐브라마타의 한인 태권도장에서 운동하는 이용배 사범, 1986년 베트남 레바논 출신 호주 조폭들과 식당에서 만난 이용배(왼쪽에서 두 번째).(왼쪽부터)

대학 중퇴가 학력의 전부였지만, 영어를 잘했던 그는 어렵지 않게 의료기 영업 회사에 들어갈 수 있었다. 과장을 건너뛰고 최연소 차장에 오를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병무청 차장을 지낸 부친이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 낙선한 이후 집안 형편이 급격히 기울면서 그는 모든 걸 잃었다. 회사도 다닐 수 없었다. 그는 32세 되던 해인 1992년 “한국이 아닌 새로운 곳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겠다”며 아예 호주로 이민을 갔다.

그러나 다시 찾은 호주는 7년 전 그가 살던 그 호주가 아니었다. 한인타운에서 중국 조폭이 버젓이 한국인 유학생을 상대로 폭행과 갈취를 일삼았다. 민심도 흉흉했다. 결국 그는 자의 반 타의 반 다시 건달세계로 들어갔다. 베트남 조폭을 동원해 중국 조폭과 맞서며 한인타운을 지키는 일에 앞뒤 가리지 않았다. 그가 나타나고 얼마 안 돼 한인타운에 평화가 찾아왔다.

단돈 500달러를 가지고 시작한 이민생활이었지만, 그는 금방 돈을 모았다. 쇼핑센터 청소용역을 맡으며 돈을 긁어모았다. 호주로 이민 간 지 6년 만인 1999년에는 시드니에 태권도를 가르치는 2년제 체육대학(호주체육대학)을 설립해 학장에 올랐다. 비슷한 시기 시드니 시내에 나이트클럽도 오픈했다. 한동안 밤과 낮이 다른 생활이 계속됐다. ‘깡패 이용배’의 명성이 호주 전역에 자자했다.

“호주는 대학 설립이 비교적 자유롭습니다. 호주 태권도협회 측이 반대하긴 했지만, 호주 정부로부터 허가받아 체육대학을 설립해 학생들을 가르쳤죠. 밤에는 나이트클럽 사장으로 일했고요. 한때는 한 채에 10억 원 정도 하는 펜트하우스 7채를 가질 만큼 돈을 벌었습니다.”

그가 호주에서 태권도를 가르치는 체육대학을 세웠다는 소식은 당시 국내에도 소개된 바 있다.

“호주에 태권도 전문대학이 처음으로 설립된다. 시드니 중심가 센트럴스테이션에서 도보로 5분 거리에 (1999년) 5월 30일 개교할 호주체육대학. 스포츠 종목과 관련 분야의 전문가 및 직업인 양성을 목적으로 하는 2년제 특수목적대학으로 지난 2월 태권도학과 교과 과정에 대해 호주 문교성으로부터 정식 승인을 받았다. 이용배(38) 씨가 설립자 겸 학장.”(1999년 5월 7일자 스포츠서울)

# 영어 전도사로 인생 이모작

“‘영문법 동의보감’으로 영어 잘하는 깡패 꿈 이뤄”
2004년 호주 정부는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던 오토바이갱과 마약사범에 대한 소탕령을 내렸다. 그는 졸지에 조직 두목으로 몰려 도망다니는 신세가 됐다. 나이트클럽을 운영하면서 마약을 거래한다는 오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고민 끝에 그는 가족을 호주에 둔 채 홀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한국 생활도 만만치 않았다. 한번은 술집에서 패싸움에 휘말려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목포 출신 조폭들과 가깝다는 이유로 경찰이 그를 두목으로 한 ‘신강남 목포파’ 사건을 만들려 했던 것이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한인 조폭의 정보를 수집하던 정보기관원의 추적을 받기도 했다.

2007년 그는 다시 호주로 돌아갔다. 그가 다시 호주에 왔다는 소문이 퍼지자 제일 먼저 호주 경찰이 찾아왔다. 호주 경찰 관계자는 “당신이 없는 동안 아시아계 조폭들이 사고를 많이 친다. 아시아계 조폭들을 정리해달라. 그 대가로 성매매업소 허가권을 주겠다”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는 대가는 거부한 채 다시 조폭세계 정리에 들어갔다. 베트남계, 중국계 조폭들이 격렬히 저항했지만, 얼마 가지 못했다. 그가 나타나고 얼마 안 돼 아시아계 조폭들이 일으키는 사건사고가 거의 사라졌다. 그는 2011년 공식적으로 어둠의 세계에서 은퇴했다.

“조폭생활을 오래했지만 누구를 괴롭히거나 문제를 일으키진 않았습니다. 제 힘이 닿는 한 한인 교포와 유학생을 보호하려고 노력했죠. KYRA를 만든 것도 그런 이유에서입니다.”

조폭이던 그가 영어교육에 빠진 건 2010년경이다. 수십 년을 호주에서 살아온 한인교포들이 여전히 영어 때문에 고생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접하고 난 뒤의 일이다. 그는 그때부터 한인유학생과 나이 많은 교포를 위한 교재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만든 교재 제목은 ‘영문법 동의보감’이다.

“집사람이 왜 아직도 영어를 못할까를 고민하다 오랫동안 우리가 배웠던 영문법에 계통이 없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저는 영어를 아주 잘하거든요(웃음). 그래서 제 영어비법을 아주 쉽게 풀어보기로 마음먹었죠. 어느 날 문득 잠을 자다 일어나 머릿속에 생각나는 비법을 종이에 적기 시작했는데, 그게 책 얼개가 됐습니다.”

어릴 때부터 영어에 남다른 관심과 재능이 있던 그는 군대생활(카투사)을 하면서 영어 실력이 많이 향상됐다고 말했다.

“미군들과 얘기하면서 항상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아, 내가 미군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을 모두 한국어로 적었죠. 그리고 그걸 완벽한 형태의 영어로 만들었습니다. 그러고 나서는 다음 날부터 그것을 외워서 써먹었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영어 패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영어가 조각조각 들리기 시작한 거죠. 쓰고 읽고 말하고 들을 수 있게 된 겁니다.”

# 시드니 시 지원받는 ‘영문법 동의보감’

“‘영문법 동의보감’으로 영어 잘하는 깡패 꿈 이뤄”

호주 교민을 대상으로 무료강의를 하는 이용배 호주 한인청소년권익보호공동체(KYRA) 총괄 부회장.

그가 만든 영어교육법은 기존 교육법과 많이 다르다. 먼저 그는 한국어와 영어가 95% 이상 구조가 같다는 전제하에 영어 문장을 분석한다. 뼈대가 되는 문장(날문장) 50개 정도를 만들어놓고 그 문장을 실생활에 응용하는 식으로 영어를 가르친다. 영어를 주어, 목적어, 동사 등으로 완전히 쪼갠 뒤 다시 조립하는 식으로 문장을 만들고 읽고 쓰는 방법이다. 그가 만든 명사족보, 형용사족보는 어떤 문장이나 회화에도 적용된다. 마치 기계를 조립하고 분해하듯 영어를 분석해서 가르치는 방법이다. 그는 “영어는 아는 만큼 들린다”고 강조했다. 그의 교육법은 현재 경기 고양시 일산의 주엽고등학교에서 시행되고 있다. 주엽고등학교 안수진 교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연히 이용배 씨가 만든 교재를 봤어요. 특별반을 만들어 학생들에게 지도했는데 효과가 아주 좋았죠. 특히 기초를 만들어야 하는 고교 1학년에게 반응이 좋았어요. 이용배 씨의 교육법은 흔히 말하는 영어 5형식을 조각조각 분리해 이해하도록 돕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조립하듯 영어 문장을 만들고 독해를 하게 하죠. 영어 문장을 쪼갠 뒤 표로 정리하는 식이어서 빨리 이해되는 게 특징입니다.”

이 교육법으로 공부한 주엽고교 학생들이 이용배 씨 홈페이지(www.e4kyra.com)에 올린 학습후기엔 이런 글도 있다.

“영문법이 딱딱한 용어가 아니라 ‘기둥’같은 쉬운 말과 표로 이루어져 있어서 머릿속에 쉽게 잘 들어가는 것 같다.”

그는 자신의 책에 대해 “다른 책과 달리 설명이 많고 그림(표)식으로 돼 있어 머릿속에 남기 쉬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가 만든 교재는 시드니 시청의 지원을 받아 출간했다. 2010년경부터 그는 시드니 시로부터 5000만 원 정도 지원금을 받았다. 현재 그는 호주에 사는 한인 등 외국인에게 무료로 영어를 가르친다. 이씨는 “나는 서른두 살에 이민 왔지만, 호주를 찾는 우리나라 고위 공무원의 통역을 맡을 만큼 영어를 잘한다. ‘영어 잘하는 깡패가 되자’는 결심이 진짜 현실이 됐다”며 웃었다.



주간동아 862호 (p46~48)

한상진 기자 greenfis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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