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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쫄딱 망한 사람들 외딴섬 가는 이유

패자부활전 돕는 ‘에코힐링 캠프’거쳐 사업 재기

  • 글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쫄딱 망한 사람들 외딴섬 가는 이유

쫄딱 망한 사람들 외딴섬 가는 이유
붉게 물든 단풍이 절정을 이루던 지난해 10월 7일, 최봉석(55) 씨는 가족을 뒤로한 채 남해 작은 섬으로 향하는 여객선에 몸을 실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 사이에 어색하게 끼어 있던 그는 불현듯 후배 말이 떠올라 카메라를 꺼냈다.

“섬에서 한 달 동안 합숙한다니 이상한 곳 같다. 잘못하다 새우잡이 배에 팔려갈지도 모르니까 배에 타면 꼭 사진을 찍어서 증거를 남겨둬라.”

그렇게 비장한 마음으로 배를 탄 지 10개월여가 지난 지금, 최씨는 중소기업 전무로 일하면서 착실히 사업 재기를 준비하고 있다. 기계설계 전문가로 대기업에서 15년간 일했던 최씨는 자본금 1억 원으로 기계설비 개발 및 제조업체를 차려 연매출 30억~40억 원을 올리는 중소기업 사장으로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협력 건설업체가 부도를 내면서 그의 사업도 직격탄을 맞아 창업 5년 만에 13억 원의 부도를 맞고 쓰러졌다.

회사가 망하자 아들은 군대에 가고 고교 2학년이던 딸은 자퇴했다. 평생 집안일밖에 모르던 아내는 공장에 취직해 납땜 일로 월 80만 원을 벌었다. 최씨는 “사업할 때는 애국자 소리 듣다가 망하니까 돈 떼먹은 도둑놈이 되더라. 신용불량자까지 되니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 때문에 실망감과 좌절감이 더 컸다. 어려운 때일수록 마음이 강해져야 하는데 제일 먼저 마음이 무너지더라. 한동안 골방에 처박혀 살았다”고 회고했다.

먹고살려고 조그만 회사에 취직했지만 미래가 불투명하던 시절, 최씨는 실패한 중소기업 사장들의 재기를 돕는 교육 프로그램을 소개한 기사를 봤다.



“기사를 보자마자 참가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거기서 뭘 얻어올지, 무슨 공부를 하고 올지, 어떤 도움이 될지 따지지 말고 그냥 한 달간 시키는 대로만 하자고 결심한 뒤 직장도 그만두고 배를 탔다.”

통영 죽도에서 4주간 합숙

최씨가 말한 재기교육 프로그램은 재단법인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이 사업에 실패한 전직 사장을 대상으로 1년에 서너 차례 마련하는 ‘에코힐링(eco-healing) 캠프’다. 캠프를 여는 곳은 경남 통영에서 배로 한 시간 이상 걸리는 죽도에 자리한 연수원이다. 죽도는 주민이 50명에 불과하고 육지를 오가는 배가 하루 두 차례만 운항할 정도로 외부와의 접촉이 드문 곳이다. 최씨를 비롯해 지금까지 이곳을 다녀간 연수생은 1기부터 3기까지 총 49명이다.

4주간 합숙을 통해 진행하는 재기교육은 철저한 자기반성과 자아성찰을 통한 내적 치유, 자연을 통한 에코힐링, 한계 극복을 통한 자신감 회복, 바람직한 기업가 정신 회복, 재창업 성공을 위한 사례 학습과 전문가 상담 등으로 구성됐다.

한상하 재기중소기업개발원 원장은 “실패한 사장들의 공통된 심리 가운데 하나가 자기 잘못은 없고 다 남 탓, 주변과 사회 환경 탓을 한다는 점이다. 그런 마인드로는 재기가 어렵다. 모든 잘못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거기서 긍정적 에너지를 얻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교육은 이론 주입식이 아니라 명상과 혼자만의 시간 갖기, 문화예술 감상 등의 방식으로 자기반성을 통한 마음 바꾸기, 심리적 안정 도모, 자신감 회복, 사업에 대한 도전정신과 열정 회복, 재기 기회 부여에 중점을 둔다”고 말했다.

연수생들은 캠프에 발을 들이는 순간 술과 담배를 끊어야 하고, 휴대전화는 캠프에 맡겨야 한다. 식사는 유기농 재료로 마련한 건강식으로 하루 두 끼만 제공되며, 잠은 입소 2주 때부터 숙소 대신 1인용 텐트에서 자야 한다. 한 원장은 “연수생들은 사업에 실패한 뒤 술과 담배에 절어서 산 경우가 많다. 심지어 알코올중독에 시달리거나 불면증, 우울증, 당뇨 등 각종 질병을 안고 오는 분도 많아서 그 부분에 대한 치유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그는 “배부르면 잡생각이 들고 일상적인 습관은 하루아침에 바꾸기 힘들다. 4주 동안 외부와 단절한 채 명상, 절제를 통해 망가진 몸과 마음을 추스를 수 있도록 돕는다”고 덧붙였다.

최근 건설장비 업체를 창업해 재기에 성공한 50대 중반의 조정래 사장은 3월 2기생으로 에코힐링 캠프에 다녀왔다. 과거 10여 년간 확장세를 거듭하던 그의 사업이 내리막길을 걷게 된 건 협력업체들이 고의 부도를 내고 사라지면서부터다. 그 때문에 수금이 안 되고 직원들의 횡령까지 겹치자 부도를 맞았던 것.

사업 실패 후 조 사장은 자신의 믿음을 저버린 사람들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 때문에 마음을 잡지 못하고 1년간 노숙자로 떠돌았다. 그는 “재기교육을 통해 얻은 가장 큰 수확은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나 자신에게 용서를 구한 것이다. 사업 실패가 내 탓이라는 것을 깨닫자 마음속 분노가 사라지고 가족 얼굴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그 순간 죽더라도 다시 일어서야겠다는 마음이 들었다”고 말했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 홈페이지에는 에코힐링 캠프를 다녀간 연수생들의 소회가 담긴 글이 수십 건 올라 있다.

“사업 실패 후 주체할 수 없는 분노 때문에 일상생활이 어려운 지경에 이르렀고, 큰 기대 없이 연수원에 입소했다. 4주차가 되자 내 입에서 저절로 흥얼거리는 노랫소리가 나왔다. 정말 경이롭고 놀라운 변화였다.”

“보석같이 소중한 가치를 발견한 이곳 죽도에 마음의 탯줄을 묻고 갑니다. 반드시 재기해 성숙한 기업인으로 다시 만날 때까지 연수원 식구들 행복하시길….”

“경이롭고 놀라운 변화의 시간”

쫄딱 망한 사람들 외딴섬 가는 이유

‘에코힐링 캠프’에서는 4주간의 합숙을 통해 재기교육을 실시한다.

우리나라 전체 사업체 가운데 중소기업 비중은 99%에 달하고, 일자리 창출도 88%가 중소기업 몫이다. 그러나 경기불황의 직격탄을 맞은 중소기업은 수입 급감에 자금난까지 겹쳐 현재 줄도산 위기에 처했다. 해마다 수많은 중소기업이 문을 닫고, 한 번의 사업 실패로 ‘인생 낙오자’라는 낙인이 찍힌 채 거리로 내몰리는 사장도 상당수다. 그러나 이들을 정신적으로 재무장시켜 재기할 힘을 얻도록 도와주는 곳은 전무하다시피 했다.

그런 와중에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은 사업 실패 후 어렵게 재기에 성공한 현직 중소기업 사장이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사비를 털어 설립, 운영하는 곳이다. 에코힐링 캠프 참가자는 전액 무료로 교육받는데, 재기교육은 지식 기부를 통한 사회공헌 활동에 관심이 많은 심리치료사, 법률 전문가, 리더십 전문가, 세법 전문가, 명상 및 요가 전문가 70여 명이 무보수로 참여해 맡고 있다.

초심을 잃지 않으려고 매번 새로운 연수생이 배를 탈 때마다 통영으로 달려간다는 최봉석 씨는 “재기교육을 통해 명상을 하면서 내가 누군지 깨닫자 마음 깊은 곳에서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은 풀빵장사를 해도, 거지라고 손가락질당해도 상관없을 정도로 세상을 살아갈 긍정적인 힘을 얻었다. 고교를 자퇴했던 딸이 올해 대학을 졸업했는데 모든 게 무척 고맙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대한민국에 이런 재기교육 프로그램이 있다는 게 감사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한 원장은 “수십억 원에서 수천억 원대 부도를 맞은 사장들이 우리 캠프를 찾는다. 이들을 영원한 실패자로 방치하는 건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묻는 것으로 사회적, 국가적으로도 손실이다. 따라서 우리나라 기간산업인 제조업 중심의 전직 사장들을 우선적으로 교육해 대한민국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우리가 가진 목적”이라고 말했다.

재기중소기업개발원은 사업 부도 및 폐업 후 재기를 준비 중인 사람 가운데 고의 부도를 내거나 회사자금을 횡령하지 않은 사람, 경영위기에 처해 탈출구를 찾는 중소기업 사장 등을 대상으로 현재 에코힐링 캠프 4기 연수생을 모집하고 있다.



주간동아 856호 (p86~88)

글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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