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823

2012.02.06

닥치고 전화투표…눈 뜨고 코 베인 제주도

어느 지방지 기자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추적기… 장사꾼에 속아 돈 날리고 ‘명예’는 땅에 떨어져

  • 한종수 제주도민일보 기자 han@jejudomin.co.kr

    입력2012-02-06 10: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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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과정을 둘러싼 논란, 의혹이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자고 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의혹이 이어진다. ‘애향심 없는 기자’라는 중상(中傷)까지 들으면서 묵묵히 진실을 파헤쳐온 ‘제주도민일보’ 한종수 기자의 취재기를 소개한다.

    닥치고 전화투표…눈 뜨고 코 베인 제주도

    뉴세븐원더스는 스위스 취리히 하이디 웨버 시립박물관에 본부가 있다고 밝혔지만, 직접 방문해본 결과 시립박물관 건물은 사무실이 들어설 공간이 아닌 데다 올여름까지 문을 닫는다는 공고가 붙었다(왼쪽 원).

    4조 원대 수익을 챙기고 떠난 론스타를 두고 시쳇말로 ‘먹튀’라고 한다. 금융계 일각에선 비정한 자본주의 시장에서 실력 없는 한국이 해외 선진 금융에 비싼 수업료를 낸 꼴이라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세계 7대 자연경관’ 주관사인 뉴세븐원더스(N7W) 재단이 론스타와 오버랩되는 이유는 왜일까.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사업은 일종의 ‘비즈니스’다. 후진국의 문화 열등감을 이용하거나 타이틀에 목마른 세계 각 지방정부의 단체장을 상대로 한 ‘장사’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만 벌면 된다는 장사꾼의 그럴듯한 술수에 현혹돼, 흔치 않은 것처럼 보이는 물건을 손에 넣으려고 애착을 넘어 집착을 보이는 어리석은 사람들.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과정에서 보여준 제주의 자화상이 아닌가 싶다.

    2002년 ‘생물권보전지역’ 지정, 2007년 ‘세계자연유산’ 등재, 2010년 ‘세계지질공원’ 지정. 제주는 유네스코가 인증한 ‘환경 타이틀’을 연거푸 거머쥐며 경사를 맞았다. ‘선보전 후개발’ 기조로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당선한 우근민 제주지사는 자연과 환경에 남다른 애정을 보였다. 때마침 우 지사의 눈에 들어온 것이 세계 7대 자연경관이었다. 그가 보기엔 세계적 관광지로 도약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고, 유네스코 트리플크라운에 이은 또 다른 ‘간판 따기’를 위한 도전이었다.

    전화투표 30통에 봉사활동 2시간 인정



    2011년 세계 7대 자연경관 예산 20억 원 배정, 제주-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범국민추진위원회(이하 범국민추진위) 발족, 국회 세계 7대 자연경관 지지 결의안 통과, 문화관광부 국가 어젠다 발표, 16개 언론사 협조 약속…. 제주도는 정치적 견해를 떠나 범국민적 지지를 등에 업었다. 연일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에 따른 경제 효과를 장밋빛 전망으로 제시하면서 전화투표 참여의 당위성을 부각시켰다. 세계 7대 자연경관 홍보 관련 보도자료가 7∼8건 이상 쏟아진 날이 허다했다. 국내외 유력 기관 및 단체와 선정 기원 홍보협약을 체결했다거나 연예인 홍보대사를 위촉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세계 7대 자연경관에 ‘다걸기’한 제주도정(都政)의 모습은 점점 요란스러워졌다. 유네스코 트리플크라운 달성에 따른 보전 및 활용 대책은 감감소식이면서, 세계 7대 자연경관 간판 따기에 비이성적으로 매달리는 행태를 보였다. 공무원에게 세계 7대 자연경관 전화투표를 한 후 인증서와 함께 부서, 직급, 성명을 밝힌 본인의 아이디, 비밀번호는 물론 가족 것까지 작성해 제출하라고 요구하는가 하면, 1인당 하루 500통의 전화투표 할당량을 지정해주기도 했다. 읍면동사무소에 배치한 대학생 민원도우미 아르바이트생도 전화투표에 동원했고, 일선 학교에선 전화투표 30통에 봉사활동 2시간을 인정한다는 가정통신문을 배부했다. 심지어 손을 대지 않아도 24시간 자동으로 전화연결이 되는 전화기를 제주시청 각 부서에 배치했다.

    제주도정 제1시책이 돼버린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사업은 시간이 흐를수록 대범해지고 이성을 잃어가는 듯했다. 자생 단체와 도민으로부터 전화투표 기탁금 명목으로 60여억 원을 거둬들여 준조세라는 비난을 받은 것이나, 300억∼400억 원으로 추정되는 전화통화료를 봐도 그렇다.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해 수십억 원을 재투입하는 일에도 도정을 견제하고 비판해야 할 도의회는 지켜보기만 했다. 대한민국의 국격을 높이는 불멸의 기록이라는 등의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닥치고 투표하라’라는 난리법석에도 침묵한 것이다.

    세계 7대 자연경관이 대체 얼마나 대단한 위상을 가져다주는가. 대한민국 국격을 높이고 1조 원의 경제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검증된 얘기일까. 이 어마어마한 판이 벌어지도록 한 N7W 재단은 어떤 단체일까. 누구든 아무 때나 1000표, 1만 표를 중복투표해도 상관없는 투표 방식, 확인할 길 없는 국가별 투표 집계 결과 등 비민주적이고 비과학적이며 비상식적인 일은 잇속을 챙기려는 장사꾼의 상술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N7W 재단이 선진 유럽의 비영리재단이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국제축구연맹(FIFA), 기네스북과 맞먹는 공신력을 가졌다고 한 제주도당국의 주장은 설득력이 부족해 보였다.

    비판 기사에 소송·광고로 압력

    닥치고 전화투표…눈 뜨고 코 베인 제주도

    스위스 뉴세븐원더스 재단이 선정한 세계 7대 자연경관.

    본격적인 취재를 시작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았다. 스위스에 둥지를 튼 N7W 재단을 취재하기엔 여러 어려움이 뒤따랐다. 지리적, 경제적 이유로 스위스 현지 취재는 엄두도 못 내고, 인터넷이나 미디어 매체를 통해 재단 정보를 찾는 것 역시 쉽지 않았다. 그러나 곤궁이통(困窮而通)이라 했던가. 때마침 나타난 구원투수가 있었다. N7W 재단의 장사꾼 행태를 일찌감치 문제 삼았던 ‘트위터리언 3인방’이다. 이들과 정보를 교류하면서 베일에 싸인 재단 실체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N7W 재단이 이전에 주관했던 대회가 ‘세계에서 가장 화끈한 여성 7인’ ‘동남아 얼짱 7인’ 등 한눈에 봐도 사기업 이벤트 수준이라는 점이다. N7W 재단은 해마다 주기적으로 이 같은 이벤트를 벌여 광고비와 전화투표 수수료를 챙겼다.

    ‘N7W 재단은 유엔 파트너 아냐’ ‘저작권 침해하는 N7W 재단, 유튜브·BBC 사진 및 영상 무단 도용’ ‘돈돈돈 계약서가 기가 막혀…몰디브 계약서 단독 입수’ ‘7대 경관 전화회선 추적하니 조세 피난처’ 등 N7W 재단의 불분명한 실체와 상술을 고발하는 기사를 썼다. 그때마다 제주도당국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일은 점입가경으로 흘러갔다. N7W 재단은 국내 법무대리인을 통해 정정보도 내지 사과를 요구하고, 불기피할 경우 소송을 걸겠다는 공문을 ‘제주도민일보’에 보내왔다. 실제 재단 측에서 보내온 압력이라기보다 보도를 막으려는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런 압박을 계기로 재단 실체와 제주도정 및 범국민추진위의 비이성적 행태를 고발하겠다는 의지를 확고히 다졌다.

    취재가 더해질수록 ‘N7W 재단의 상술에 제주가 농락당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제주도당국이 N7W 재단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채 맹목적으로 간판 따기에 열을 올린 행태도 문제였다. 재단의 상술과 단체장의 치적 쌓기가 빚은 합작품이라는 확신이 들면서 비판 강도를 높였다. ‘제주도민일보’의 부정적 보도가 계속되자 제주도당국이 제대로 뿔이 났다. 2011년 6월 ‘제주도민일보’ 창간기념호 때 제주도당국은 당초 약속했던 창간 축하 광고와 도지사 축하인사 글을 거부했다. 이로 인해 ‘제주도민일보’는 예정된 지면을 백지로 내보냈다.

    ‘기자협회보’ 등이 이 사태를 비중 있게 보도했다. 유신정권 시절 ‘동아일보’의 백지광고를 연상케 하는 일이라며 언론 자유를 탄압하고, 도민의 알 권리를 침해하는 행태라고 비난했다. 반면 다른 도내 언론사들은 제주도와 세계 7대 자연경관 홍보캠페인 업무협약을 체결하면서 무조건 선정돼야 한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힘든 취재 과정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부정적 기사가 나갈 때마다 제주도청 세계 7대 자연경관 업무 관련자들의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앞으로 그런 기사 쓰면 ‘제주도민일보’는 광고를 못 받는다”는 말을 들어야 하는 씁쓸한 상황이 벌어지기도 했다.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사업에 대해 문의할 때마다 도 관계자들이 ‘모르쇠’로 일관해 맥 빠질 때도 한두 번 아니었다. 때론 “애향심 없는 기자”라는 댓글도 올라왔다.

    도지사·국회·정부·언론 모두 책임

    서서히 지쳐갔다. 2011년 11월 12일 ‘잠정 발표’가 있기 전 한두 달은 기사를 쓰지 않았다. ‘제주도민일보’와 함께 부정적 기사를 쏟아냈던 한 인터넷 언론에서도 어느 날 갑자기 비판 기사가 종적을 감췄다. 담당 기자에게 물으니 “지쳤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잠정 발표가 있은 후에도 의문점은 여전했다. 수백억 원의 전화통화료를 내지 않으면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이 취소될 수 있다는 내용 등으로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때마침 일부 중앙 언론과 제주도의회 의원도 각종 의혹을 제기하면서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과정이 다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최근 ‘신동아’와 KBS ‘추적60분’이 유럽 현지 취재를 통해 N7W 재단의 실체를 파헤쳐 논란의 ‘핵’으로 부상할 수 있었다.

    투표 과정에서 공무원 1명이 하루 최고 2381통의 전화투표를 하는 등 무제한 중복 전화투표의 비상식적인 측면을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이 모든 과정이 제발 장삿속이 아니기를 바랐다. 제주도와 범국민추진위가 장담한 대로 세계 7대 자연경관에 선정될 경우 관광객이 80% 이상 늘고 연간 6300억∼1조3000억 원에 이르는 경제 파급효과가 발생해 도민 삶이 풍요로워진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런데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이 고작 사기업의 돈벌이에 불과했으니, 제주 지방정부와 대한민국 정부의 수준이 고작 이 정도인가 싶어 허탈했다. 사실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사업 자체의 타당성이나 재단의 공신력을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그들의 사업 행태를 죄로 볼 수는 없다. 그들로선 전적으로 비즈니스, 즉 장사였을 뿐이다. 그러니 N7W 재단의 대변자임을 자처한 제주도당국과 범국민추진위에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우 지사는 그동안 “세계 7대 자연경관 선정 과정에 문제가 생길 경우 전적으로 책임지겠다”고 호언해왔다. 그렇다면 400여억 원으로 추산되는 전화통화료를 집행하기 전에 우 지사의 책임 문제를 꼭 짚고 넘어가야 한다. 제주도 내 8개 시민사회단체가 검토키로 한 감사원 감사 청구나, 이용경 의원이 주장한 국회 차원의 국정조사를 통해 조사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전화통화료, KT와 N7W 재단의 수익 배분 문제를 소상히 밝혀야 한다. 국회의 지지결의안과 정부의 국가 어젠다 선언을 자진 철회해야 하며, 대국민 사과도 이뤄져야 한다. 쉴 새 없이 전화통을 붙잡은 제주 공무원들도 반성해야 한다.

    제주는 스스로 밝히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남국의 섬이다. 섬 한가운데 솟은 한라산과 중산간을 수놓는 오름, 검은색 돌담과 쪽빛 해안에 이르기까지 독특한 매력을 뿜어내는 곳이 제주다. 여기에 무슨 타이틀이 더 필요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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