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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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이란, 견원지간 ‘100년의 증오’

석유개발권 놓고 갈등 촉발 … 최근 시위정국에 ‘BBC페르시아’ 폭발적 영향

  • 코벤트리=성기영 통신원 sung.kiyoung@gmail.com

    입력2009-07-08 11: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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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중동 외교사에서 6월19일은 특별한 날로 기록될 것이다. 이날 이란의 수도 테헤란에서 열린 금요기도회에서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하메네이가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영국을 ‘가장 사악한 나라’로 선포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선거 이후 선거부정 시비로 유혈시위가 벌어지는 와중에 전국에 생방송으로 중계된 이날 기도회는 하메네이가 최근 사태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지를 놓고 세계 여론의 관심이 집중돼 있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란 정부는 최고 지도자의 입을 통해 영국을 최근 이란 사태를 사실상 배후에서 조종한 ‘사악한’ 나라로 낙인찍은 것이다. 이란 정부는 친(親)서방 언론들이 반정부 시위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그 주범으로 영국의 BBC를 지목해 테헤란 특파원을 추방하기도 했다.

    이란 정부가 사실상 외교적 선전포고에 나서자 영국 여론도 들끓기 시작했다. 영국의 텔레비전과 신문은 이란 시위 사태를 연일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이란 정부의 강경 진압을 비난했고, 정부에 맞대응을 주문했다.

    하메네이에 의해 촉발된 외교전쟁은 불과 며칠 지나지 않아 양국 간 외교관 맞추방 사태로 이어졌다. 그리고 이란 정부가 테헤란 주재 영국 대사관 정무 분야에 고용된 현지인들을 시위 배후 조종 혐의로 체포하면서 외교전쟁은 절정으로 치달았다. 이에 영국을 필두로 유럽연합(EU) 27개 전 회원국이 이란 주재 대사를 철수시킬 수도 있다며 이란 정부를 위협하고 나섰다. 영국-이란 간 외교 분쟁이 지속될 경우 이란의 최대 무역 파트너인 EU가 직접 나서서 제재 조치를 발동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외교관 맞추방에 대사관 직원 체포



    그렇다면 왜 이란은 생중계를 통해 영국을 ‘악의 축’으로 몰아세우는 모험을 감행한 것일까. 이란 정부의 이번 의도에는 외부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국내 정치의 안정을 꾀하려는 노림수가 있다. 특히 최근 페르시아어 방송을 내보내기 시작하면서 권위주의적 이란 정부의 정책을 비판해온 BBC가 껄끄러운 존재로 떠올랐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최근의 외교전쟁을 설명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양국의 외교사를 들춰보라고 충고한다.

    영국과 이란의 외교분쟁 역사는 100년을 뛰어넘는다. 거슬러 올라가자면 19세기 초반 이란과 러시아, 그리고 이란과 인도의 영토분쟁 당시부터 영국은 이란과 맞선 국가들의 편을 들었다. 이때부터 이란 내에 일종의 반영(反英) 감정이 싹텄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외교 마찰이 본격적으로 예고된 것은 다름 아닌 석유 때문이다. 1908년 중동에서 석유 채굴 작업을 벌이던 영국 자본가들이 마침내 노다지를 발견한 곳이 이란의 술레이만 지역이다. 중동 석유의 역사가 드디어 시작되는 순간이었다.

    당시 중동 석유개발을 위해 설립된 앵글로-페르시안 석유회사는 이란의 파이프라인과 정유공장 건설을 독점하다시피 했고, 이란의 석유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영국의 승리를 이끈 원동력이 됐다. 앵글로-페르시안 석유회사는 오늘날 영국 석유회사(BP)의 전신이다.

    한때 영국 석유회사가 이란산(産) 석유 시추의 중심지였던 아바단에서만 8만명에 가까운 이란 노동자를 고용했을 만큼 석유는 양국 모두에게 경제적 이득을 안겨줬다. 그러나 이익배분 문제 등으로 불만이 누적되면서 급기야 이란 의회는 앵글로-페르시안 석유회사를 국유화하겠다고 선포한다.

    이 같은 급진적 조치에 당황한 영국과 미국은 정보기관과 자금력을 동원, 이 조치를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모하메드 모사데크 정부를 전복하는 쿠데타를 모의한다. 이 쿠데타의 결과로 세워진 정권이 바로 친미(親美) 팔레비 왕정이다. 합법적 선거로 세워진 모사데크 정부가 영국의 정치공작에 의해 촉발된 쿠데타로 밀려나는 것을 바라본 이슬람 혁명주의자들은 이제 영국을 미국과 함께, 또는 미국 이상의 ‘사탄’으로 인식하게 됐다. 잘 알려졌다시피 팔레비 왕정은 1978년 호메이니가 이끄는 이슬람 혁명으로 사라졌다.

    이쯤 되면 영국과 이란 간 외교분쟁이 요즘 들어 불거진 것이 아니란 사실을 알 수 있다. 갈등의 뿌리가 깊은 만큼, 문제해결 방식 또한 단순하지 않다. 게다가 1980년대 들어서는 사담 후세인이 일으킨 이란-이라크 전쟁에서 영국과 미국이 후세인을 지지한 것 역시 이란의 분노를 자극했다. 최근 들어서도 양국 사이에는 잊힐 만하면 한 번씩 외교분쟁이 불거졌다.

    2007년에는 공해에서 훈련 중인 영국 해군병사 15명을 이란 당국이 영해 침범을 이유로 납치했다가 12일 만에 풀어준 사건이 있었다. 아흐마디네자드 대통령은 당시 TV 생방송을 통해 이들의 석방 사실을 공표하면서 ‘영국에 주는 부활절 선물’이라며 호기를 부렸다.

    BBC페르시아에 이란인들 제보 쇄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 외에도 최근 양국 사이에는 몇 가지 비정치적 이슈가 민감한 현안으로 떠올랐다. 런던시티대학의 중동 전문가 로즈마리 홀리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BBC가 올해 초 시작한 페르시아어 방송이 하나의 원인을 제공했을 것이란 분석을 내놓았다. BBC는 1월부터 이란 아프가니스탄 타지키스탄 등의 페르시아어 사용 시청자들을 상대로 뉴스를 내보냈다. 런던에 본부를 둔 ‘BBC페르시아’는 주로 이란 출신을 기자로 채용해 다양한 현지 소식을 송출하고 있다.

    이란 국영언론에 길들여진 이란 젊은이에게 BBC가 전하는 중동 정세 분석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고, 이번 대통령선거와 맞물려 파장이 증폭됐다.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BBC페르시아에는 하루에 1만 건이 넘는 e메일이 쇄도했으며, 일반 시민이 현지에서 보내오는 시위 관련 동영상도 물밀듯이 밀려들었다. BBC는 당초 2011년까지 800만명 정도의 시청자를 확보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었으나, 이번 사태로 BBC페르시아어 방송은 폭발적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분위기를 반전시키기 위해 이란 정부는 BBC와 영국 정부를 싸잡아 국내 시위를 배후 조종하는 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정치적 위기를 헤쳐나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런가 하면 이란 정권이 집권 초 화해 제스처를 보내온 오바마 정부와의 대화 기회를 열어놓기 위해 미국보다는 영국에 비난을 퍼붓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이란 정부의 숨겨진 의도가 무엇이든 양국 간 외교관계는 이미 사상 최악의 국면으로 치닫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100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갈등 원인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또 다른 100년이 필요할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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