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5

2008.12.16

판매 … ‘뚝’ 독일 자동차도 감산 공포

GM 불똥 튄 오펠, 연방정부에 신용보증 요청 … BMW·벤츠 등도 “우리도 어렵다, 도와달라”

  • 슈투트가르트=안윤기 통신원 friedensstifter@gmail.com

    입력2008-12-10 09: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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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매 … ‘뚝’  독일 자동차도 감산 공포

    독일 브레멘에 자리한 벤츠 공장. 뚜렷한 대주주가 없는 벤츠는 최근의 글로벌 경기침체를 맞아 적대적 인수합병에 노출되는 등 어려움에 처했다.

    11월17일, 아직 출시되지 않은 멋진 중형 세단 한 대가 베를린 총리관저 안으로 미끄러지듯 들어왔다. 오펠의 인시그니아(Insignia). 이미 언론에 ‘2009년 최고의 히트상품’으로 소개된 차로, 독일 자동차회사 오펠의 기대가 듬뿍 담긴 최신작이다.

    인시그니아에서 내린 사람은 오펠 사장인 한스 데만트와 이 회사 노사운영위원회 클라우스 프란츠 위원장, GM의 유럽본부장인 카를 페터 포스터로 요컨대 오펠의 최고위층 인사들이었다. 이들이 다급히 메르켈 총리를 찾은 것은 위기에 처한 회사를 구하고자 금융권 신용대출 보증을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1929년부터 오펠은 미국 GM의 자회사였다. 그러나 그동안 오펠은 이렇다 하게 ‘부모’ 덕을 본 게 없다. 게다가 이제는 최악의 위기에 처한 GM 사태에 휩쓸리게 생겼다. GM의 위기상황은 이미 알려진 대로다. 2007~2008년 두 해 동안 본 손실만 해도 무려 600억 달러(약 87조원)에 이른다. 경제전문가들은 미국 정부의 적극적인 개입이 없는 한, GM이 겨우 연말까지만 버틸 것으로 본다. GM이 도산할 경우 하청업체 및 유관 산업의 연쇄적 붕괴와 대량실업 사태도 불 보듯 뻔하다. 미국 미시간자동차연구센터는 이로 인해 미국에서만 25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란 분석을 내놨다.

    GM의 붕괴는 저 멀리 독일 오펠에도 대재앙을 의미한다. GM은 자회사인 오펠에 약 20억 유로(3조6600억원)의 빚을 지고 있다. 예컨대 오펠이 모회사를 위해 수행한 최신 모델 개발 프로젝트의 경비 약속어음은 GM이 지불 불능을 선포할 경우 허공에 날아갈 공산이 크다.

    설령 GM이 당면한 도산 위기를 잘 넘긴다 해도 문제다. GM이 신청한 500억 달러의 구제금융이 의회를 통과한다면,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GM은 미국 내 직원들의 일자리를 현상 유지할 것을 요구받을 것이다. 이는 곧 해외 지부나 공장의 일감이 줄어든다는 것을 뜻한다.지금까지 독일 뤼셀스하임의 연구개발센터에서 하던 일이 미국 워런과 폰티액으로 옮겨질지도 모른다.



    18억 유로 자금 필요 … 각료들 찬반 팽팽

    이런 미국발(發) 악재를 맞이해 GM 유럽본부와 오펠은 적극적인 대책 마련에 나섰다. 독일 내 오펠 공장이 소재한 헤센, 튀링겐, 라인란트팔츠,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 등 4개 주지사들을 아군으로 삼아 메르켈 총리와 경제부, 재무부 설득 작전에 돌입했다. 목표는 미국 GM이 도산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진다 해도 오펠만은 살아남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18억 유로의 긴급자금이 필요한데, 이를 금융권으로부터 신용대출 받기 위해 연방정부와 4개 주정부를 보증인으로 세우겠다는 계획이다.

    그러나 연방정부 입장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각료들 사이의 견해 차이가 정리되지 않은 탓이다. 메르켈 총리와 페어 슈타인브뤽 재무부 장관은 경기 부양을 위해 국가가 나서는 개입 정책에 거부감을 가지고 있다. 슈타인브뤽 장관은 국가가 여러 가지 경제개발을 추진했지만 국가 부채만 증가했을 뿐 경기 불황은 막을 수 없었던 70, 80년대를 자주 이야기한다. 게다가 특정 산업, 특정 회사를 살리기 위해 국가가 발벗고 나선 선례를 남기면 훗날 화학, 철강 등 여타 산업이 비슷한 경우에 손을 벌려 정부가 난처한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반면 경제부 미카엘 글로스 장관은 적극적인 경기활성화 정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한다. 특히 오펠은 현 위기상황이 외부에서 기인한 경우이기 때문에 정부가 반드시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는 또 장기적으로는 오펠이 미국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독자 생존해나가야 한다고 여긴다. 이런 개혁 방안 없는 국가의 신용보증은 미봉책에 그치기 때문이다.

    사실 미국과의 관계 단절은 오펠 수뇌부도 이미 고려한 바다. 그러나 실제로 오펠이 미국 GM과 연을 끊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우선 미국 GM이 유럽 자회사를 그냥 놔줄 리 만무하다. 현재 GM의 에너지 절약형 중형급 자동차는 오직 독일 공장에서만 제작되고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 GM의 주문 없이 오펠이 독자 생존해 충분한 일감을 확보할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독일 내 여론은 반반으로 갈린 상태다. 11월24일자 시사주간지 슈피겔의 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44%는 국가의 신용보증을 찬성한 반면, 49%는 국가 개입을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유럽 자동차시장의 과다 팽창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독일만 해도 오펠 이외에 벤츠, BMW, 폴크스바겐, 포르셰 등 대형 자동차회사들이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자동차 수요와 구매는 갈수록 줄어드는 바람에 모두가 힘겨운 상태. 이러한 형편이니 굳이 장래가 불투명한 오펠을 국가가 나서서 살릴 필요가 있겠느냐는 의문이 나올 법하다. 오히려 리먼 브러더스 붕괴 이후 패닉 상태에 빠진 독일 금융계가 정부의 도움이 더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오펠만큼 심각하진 않지만 BMW, 벤츠, 폴크스바겐 등의 사정도 편치 않기는 매한가지다. 현재 이들의 공통된 고민은 급감한 자동차 판매량. 세계적 경제위기의 불안에 사로잡힌 소비자들이 쉽게 주머니를 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들 회사는 국제적 판매망을 갖추고 있어 유럽 판매가 부진하면 미주나 아시아에서 손실을 만회하는 식으로 지금까지 큰 덩치를 유지하며 성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 경제위기는 전 세계가 동시다발적으로 겪는 고통이기에 뾰족한 해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기대했던 인도와 브라질에서도 판매량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2008 베이징올림픽 무렵까지 욱일승천하던 중국 시장도 눈에 띄게 약해진 상태다.

    판매 … ‘뚝’  독일 자동차도 감산 공포

    미국 GM의 독일 자회사 오펠은 ‘부모’와의 관계 단절을 시도하고 있으나 성공할지는 불투명한 상태다.

    자동차 산업에서 정체란 곧 퇴보를 의미한다. 기술생산성은 매년 5~10%씩 향상하는데 판매량이 그만큼 늘지 못하면 손해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럴 때 회사는 보통 적자 경영을 피하기 위해 공장 가동 시간을 줄여 감산하고 근로자의 야근 및 특근 수당을 없앤다. 그리고 종국에는 잉여 노동자를 해고하고 잉여 공장을 폐쇄하는 길을 걷는다.

    실제로 폴크스바겐은 과잉생산 예방을 위해 1만6000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볼프스부르크 공장의 가동을 12월18일부터 3주간 중단할 것이라고 밝혔다. 성탄절과 연말연시가 끼여 있는 이 기간은 원래 직원들이 휴가를 가는 기간이라 매년 임시직 노동자를 고액을 주고 고용하거나 특근수당을 지불하며 공장을 돌렸는데, 이젠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폴크스바겐의 자회사인 아우디 역시 12월 중순부터 한 달간 헝가리 공장을 폐쇄하기로 했으며, 포르셰도 추펜하우젠 공장의 가동을 임시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한 벤츠의 최고경영자(CEO)인 디터 체체는 내년도 자동차 생산량을 올해보다 15만대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아울러 근로자의 노동시간을 주당 30시간으로 줄이고, 임금도 그에 상응해 줄이겠다고 했다. BMW는 직원 8000명 감축을 발표한 데 이어, 라이프치히 공장의 임시직 직원 수백 명에 대한 해고가 예정돼 있다.

    또한 오펠에 이어 폴크스바겐, 벤츠, BMW도 독일 연방정부의 도움을 요청할 예정이다. 자동차금융 부문에 대한 대출 보증, 10년 이상 된 차량을 새것으로 교환 구입하는 이에게 고철 보조금 지급, 유럽연합이 계획한 이산화탄소 배기량 벌칙 적용의 유예 등이 그 내용이다.

    그러나 오펠 사태를 비롯한 독일 자동차 업계의 위기상황이 비단 미국발 경제위기라는 외부 요인 하나에만 기인한 것일까? 슈피겔은 독일 자동차 회사들이 그간 ‘성장 제일’이라는 이데올로기에 지나치게 사로잡혔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대표적인 예가 BMW다. 이 회사는 그동안 운명의 라이벌 벤츠를 따라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덕분에 판매량에서 벤츠를 추월하는 데 성공했다. BMW의 판매량은 10년 전의 두 배로 증가했고, 2007년부터 세계 최대 자동차 판매회사의 영예를 누려왔다.

    그러나 BMW의 폭발적인 성장 배경에는 BMW1 시리즈와 미니(Mini) 같은 소형 모델의 대량 판매가 있다. 이들 소형 모델은 회사의 양적 성장에 크게 기여했지만, 수익성 면에서는 오히려 악재에 가깝다. 또 BMW는 저렴한 리스와 할부 판매를 앞세운 공격적 마케팅을 펼쳤으나, 최근의 경제위기 상황으로 리스 차량의 가격이 크게 떨어지고 할부금 연체도 급증하는 등 위험이 커지고 있다.

    BMW의 상황은 벤츠에 비하면 낫다. 무엇보다도 50%에 가까운 회사 지분을 보유한 최대 주주 크반트 가족의 후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츠에는 뚜렷한 대주주가 없다. 그래서 언제라도 적대적 인수합병(M·A)의 먹이가 될 위험에 처해 있다. 벤츠의 주주들은 회사의 장기 발전보다는 주식 배당금이 얼마인지에 더 관심이 많다. 벤츠는 M·A를 피하려면 매년 배당을 늘려 자사 주가를 부양해야 하고, 이를 위해 어떤 식으로든 단기적 이익을 확대해야만 한다. 요컨대 먼 훗날을 위한 신기술이나 디자인을 독자적으로 개발, 연구하는 데 쓸 돈이 없는 것이다. 마치 미국 GM과 흡사한 모습이라 하겠다. 이런 상황에서 벤츠가 앞으로도 세계 고급차 시장을 선도하며 명성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적극 개입해라 vs 임시 처방 불과”

    미국만큼이나 독일에서도 자동차 산업은 중요한 경제 기반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독일제 명차(名車)는 독일의 국가적 자존심이다. 또 무려 130만명의 독일 국민이 자국 내 자동차 제조회사와 부품 하청업체, 판매 및 서비스업체 등에 종사하고 있다. 자동차 산업 하나의 부침(浮沈)에 국가 전체가 들썩거릴 만한 수준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자동차 산업의 위기에 정부가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야 한다는 주장에 더 힘이 실린다. 그러나 전 세계가 경쟁하는 자유시장체제에서 국가가 특정 산업과 업체를 보호한다는 것은 분명 극약처방이라 하겠다. 더욱이 현 위기를 벗어난다 해도 이후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버티지 못할 것이라면 파국을 잠시 뒤로 미루는 것밖에 안 된다. 글로스 장관의 말대로 대규모 불황을 맞닥뜨린 국가가 할 본질적 과제는 “경제에 대한 국민의 신뢰를 강화하는 일”이다. 이는 미국이나 독일만의 과제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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