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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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국인 90% … 외국인학교 맞아?

좋은 교육여건, 해외 대학 진학 유리 … “제2 특목고로 변질” 우려 목소리

  • 손영일 기자 scud2007@donga.com

    입력2008-11-03 10:3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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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국인 90% … 외국인학교 맞아?

    외국인학교가 인기를 끌면서 내국인 비율이 90%에 달하는 외국인학교도 적지 않은 실정이다. 내국인 비율이 93%에 달하는 서울아카데미국제학교.

    붕어빵에는 붕어가 없고, 외국인학교에는 외국인이 없다?

    외국인학교는 한국에서 외교, 경제 활동을 하는 외국인의 자녀들을 위해 설립됐다. 하지만 많은 외국인학교에서 내국인이 다수를 점하고 있는 실정이다. 서울외국인학교처럼 내국인 비율이 0%인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교가 40% 이상의 높은 내국인 비율을 나타낸다. 서울아카데미국제학교처럼 내국인 비율이 90%에 이르는 학교도 적지 않다(표 참조).

    과거에는 해외 주재 외교관 및 기업주재원 자녀들이 한국으로 되돌아왔을 때 국내 중·고등학교에 적응하지 못할 것을 우려해 외국인학교에 진학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외국인학교의 좋은 교육여건과 해외 대학 진학의 이점이 알려지면서 외국인학교 진학을 염두에 두는 학부모들이 늘어남에 따라 내국인 비율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특히 국내의 영어교육 열풍이 이를 부추기는 모양새다.

    한양대 안미리 교수(교육공학)는 “외국인학교에서는 지속적으로 영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영어실력이 자연스럽게 늘 뿐 아니라 교과과정 자체가 해외 대학 진학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단체와 정부가 2006년 공동으로 설립한 서울용산국제학교는 2008년 졸업생 56명이 모두 미국 UCLA, 코넬대 등 유수의 해외 명문대학에 진학했다. 외국어고등학교(이하 외고) 같은 특수목적고등학교(이하 특목고)에서는 해외 대학 진학을 위해 별도로 유학반을 두는 반면, 외국인학교에서는 외국생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을 중심으로 자연스럽게 해외 대학 진학 준비가 이뤄지고 있는 상황이다.

    외국인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키려는 한 학부모는 “한국에서 대학입시를 준비하는 아이들을 보면 안타깝다. 비록 외교관이나 해외 주재원은 아니지만 기회가 된다면 아이를 외국에 보내고 싶은 것이 부모 마음”이라며 “글로벌화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외국인학교에 보내고 싶어 일단 거주 요건을 채우기 위해 딸아이만 조기유학을 보냈다”고 털어놨다.



    외국인학교가 인기를 끌다 보니 최근에는 조기유학 외에도 에콰도르, 말리 등 영주권 취득 절차가 간소한 나라에서 영주권을 받아 편법으로 외국인학교 입학자격을 갖추는 경우도 늘고 있다. 서울 강남권을 중심으로 특정 국가의 영주권 취득을 도와주는 유학원도 성황리에 운영되고 있다. 해당 홈페이지에서는 영주권 취득과정을 동영상으로 알기 싶게 소개하기도 한다. 한 유학원 관계자는 “중개수수료, 체류비 등을 포함한 영주권 취득비용이 4만 달러 내외로 비교적 싼 에콰도르가 요즘 인기”라며 “그 밖에 남태평양 섬 국가들도 주요 영주권 구입처”라고 귀띔했다.

    더욱이 외국인학교의 국내 학력이 인정되면서 외국인학교는 날개를 달았다는 평가다. 원칙적으로 외국인학교 출신자는 국내 학력을 인정받지 못해 별도의 검정고시를 거쳐야 국내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4월 말 기획재정부가 ‘서비스산업 선진화 방안 1단계’를 발표하고, 그 후속조치로 10월27일 교육과학기술부가 ‘외국인학교 등의 설립·운영에 관한 규정’ 제정안을 입법예고함으로써 국내 대학 진학이 쉬워졌다. 제정안에 따르면 일정 기준(국어, 국사 수업을 각각 연간 102시간 이수)을 충족한 학생은 국내 학력을 인정받을 수 있다.

    국내 학력 인정 국내 대학 입학 쉬워져

    내국인 90% … 외국인학교 맞아?

    서울 강남권 유학원을 중심으로 편법 영주권 취득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런 조치에 대해 외국인학교의 반응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내국인 학생이 없는 서울외국인학교 관계자는 “국내 학력을 인정받기 위해 국어, 국사 등 별도 과목을 공부해야 하는데 그럼 다른 과목에 소홀해지는 게 아니냐”면서 “더욱이 내국인 비율을 30%까지 올리면 한국에 있는 외국인들의 선택폭이 그만큼 좁아지게 된다”며 부정적인 입장이다. 반면 내국인 비율이 높은 외국인학교 관계자는 “국내 학력 인정을 환영한다”면서 “다만 내국인 비율을 30% 이내로 제한한 것은 아쉽다”고 평했다.

    제2의 외고로 변질될 수 있다는 우려는 여기서 제기된다. 강남의 한 입시학원 관계자는 “외국인학교는 어려운 외고 입시전형을 피하고 좋은 여건에서 외고 못지않게 외국어를 능숙하게 익힐 수 있는 곳”이라면서 “국내 대학 진학까지 가능해지니 벌써부터 외국인학교 입학에 대해 문의하는 학부모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사교육 걱정 없는 세상’의 윤지희 대표 역시 “외국인학교의 본래 취지는 국내에서 일하는 외국인 자녀들을 위한 교육시설”이라며 “해외에 3년 이상 거주한 내국인이 입학할 수 있고 국내 학력까지 인정해준다는 것은 조기유학을 부추길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학들은 국내 학력 인정을 받은 외국인학교 학생들을 위해 별도의 전형을 만들지는 않을 계획이다. 고려대 입학처장 서태열 교수(지리교육학)는 “기존의 일반·특수 전형 정원 내에서 흡수할 계획”이라며 “다른 대학에서도 국내 학력 인정을 받은 외국인학교 학생들이 국내 학생들과 동일한 기준에서 경쟁하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편으로는 우수한 내국인 학생들이 국내 대학에 진학하는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는 주장도 있다. 안 교수는 “그동안 국내 학력이 인정되지 않다 보니 외국인학교 출신의 우수 학생들을 해외 대학에 빼앗겼다”면서 “이번 제정안을 통해 외국인학교 우수 학생들의 국내 대학 진학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외국인학교는 설립 취지에 맞게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 자녀들을 위해 운영돼야 하며, 해외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을 위해서는 국제중, 국제고 같은 국제학교를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심지어 해외에 장기간 거주한 뒤 귀국한 학생들을 위해서는 별도의 국내 적응용 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공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외국인학교가 제2의 특목고로 변질될지, 아니면 순수한 의미의 외국인학교로 남을지에 관심이 쏠린다.

    영미계 외국인학교 현황(2008년 6월 현재)
    연번
    지역
    학교명 내국인 비율
    1
    서울
    서울아카데미국제학교 93%
    2
    서울
    서울 한국켄트외국인학교 50%
    3
    서울
    서울 한국외국인학교 71%
    4
    서울
    서울 한국기독교100주년 외국인학교 90%
    5
    경기
    한국외국인학교 83%
    6
    경기
    경기 경기수원외국인학교 85%
    7
    경기
    경기 국제크리스천학교 59%
    8
    경기
    경기 인디언헤드외국인학교 91%
    9
    광주
    광주외국인학교 87%
    10
    전북
    전북외국인학교 82%


    (시·도 교육청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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