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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풍 앵커 정동영 “잘 나갑니다”

꽉 막힌 남북 관계 풀면서 ‘인기 상한가’ … 북핵 해결 실질적 진전 ‘남은 과제’

  •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북풍 앵커 정동영 “잘 나갑니다”

북풍 앵커 정동영 “잘 나갑니다”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정동영 장관이 북 측의 권호웅 대표와 손을 잡고 걷고 있다.

대권주자’인 정동영 통일부 장관 겸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은 ‘북풍’을 타고 화려하게 비상할 것인가.

6월21~24일 열린 제15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12개항에 이르는 공동보도문을 이끌어내며 북핵 문제 등으로 인해 지지부진하던 남북 관계를 외형적으로는 거의 완전히 복원해낸 정 장관은 순풍에 돛을 단 것처럼 보인다.

날짜가 확정된 앞으로의 회담이나 행사만 해도 제10차 남북경제협력추진위원회(7월9~12일·서울), 제11차 이산가족 상봉(8월26일·금강산), 제16차 남북장관급 회담(9월13~16일·백두산), 8·15 광복 60주년 남북공동행사(8월15일·서울), 금강산면회소 착공(8월26일) 등 6건.

남북장성급 군사회담과 제1차 남북농업협력위원회 만남, 제6차 적십자회담 등은 7~8월 중 열기로 합의했으니, 남북은 이종석 NSC 사무차장의 표현대로 ‘뜨거운 여름’을 보낼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공동보도문 발표 직후 배포한 제15차 남북장관급 회담 해설 자료에서 ‘제2의 6·15 시대’라는 말로 이번 회담의 성과를 자찬했다.

남북장관급 회담 생중계 화려한 행보



치열한 설전, 밤샘 협상, 막판 줄다리기 등 남북회담을 특징지었던 현상이 상당 부분 개선되었다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정 장관은 첫날 직사각형 탁자를 걷어내고 원탁에서 전체회의를 열더니, 23일에는 수백명의 기자와 카메라가 빽빽이 들어찬 프레스센터로 북측 권호웅(내각책임참사) 대표단장을 끌어내 공동보도문을 발표했다.

이 장면은 방송의 황금시간대인 오후 9시 전국에 생중계됐다. 남북장관급 회담의 데뷔 무대로는 이보다 화려할 수 없다는 평가가 나오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러한 ‘성공’은 6월17일 특사 자격으로 방북한 정 장관이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면담하면서 어느 정도 예견되었다. 당시 정 장관과 김 위원장은 제15차 남북장관급 회담에서 문서화한 내용에 대해 대부분 구두로 합의했다. 김 위원장은 1년째 공전되고 있는 6자회담에 대해서도 ‘미국의 북한 인정 및 존중 의사가 확고하다면’ 7월 중에라도 복귀하겠다고 말했다.

한 당국자는 정 장관의 김 위원장 면담을 “야구로 치면 9회말 역전 만루홈런이요, 축구로 치면 박주영이 후반 인저리타임 때 역전 결승골을 터뜨린 격”이라고 말했다. 6월17일 저녁 한때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에서 정 장관은 인기 검색순위 2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7월 그가 장관으로 취임한 지 8일 만에 터진 김일성 주석 사망 10주기 조문 불허, 그달 27일의 탈북자 468명 동시 입국, 악화일로를 겪는 북핵 문제 등으로 남북 당국 간 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다.

북풍 앵커 정동영 “잘 나갑니다”

6월17일 회담을 끝내고 함께한 정 장관과 김정일 위원장.

취임 후 개성공단 시제품 생산 기념식을 위해 지난해 12월 개성을 방문한 것 이외엔 북한을 다녀온 적이 없던 정 장관은 6월14~17일 열린 6·15 공동선언 5주년 기념 남북해외 공동행사를 축하하는 당국대표단 자격으로 처음 평양 나들이를 했다. 비료 20만t 지원에 합의해주고 겨우 민간이 합의해놓은 행사에 숟가락 하나 얹은 것 아니냐는 비아냥이 있었지만 김 위원장과의 전격 면담이 실현되며 분위기가 반전되었다.

그러나 정 장관은 방북 직전인 6월12일 기자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민간행사를 축하해주고 정부의 6·15 공동선언 이행 의지를 확인시키러 가는 것일 뿐”이라며 철저히 자신의 임무와 소임을 숨겼다. 정부 고위당국자에 따르면, 정부는 5월 하순경부터 정 장관의 특사 파견을 치밀하게 준비해 북 측에 통보했으며, 정 장관도 면담 성사에 대비해 여러 차례 모의 면담을 하는 등 ‘특훈’을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정 장관이 방북의 구체적 의도를 숨긴 것은, 2003년 1월 임동원 전 통일부 장관이 특사임을 밝히고 평양에 갔으나 김 위원장과의 면담이 불발된 선례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는 의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정치인 출신 정 장관이 목숨처럼 소중히 여기는 이미지를 구기지 않으려는 목적도 내포됐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아무튼 정 장관은 6월14일부터 24일까지 열흘 이상 주요 일간지의 1면과 방송 뉴스의 첫머리를 장식하며 언론의 집중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물론 정 장관이 ‘꺼리가 되는’ 뉴스를 제공하는 탓이지만, 방송의 주요 시간대에 뉴스를 내놓는 정 장관의 노력은 상상을 초월한다.

북한 설득 동물적 감각 이어갈까

알려지지 않은 비화 하나. 김 위원장과의 특사 면담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던 정 장관은 평양에서 현지 취재를 한 공동취재단 및 서울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 프레스센터에서 취재를 벌이던 기자들과 한 가지 ‘신사협정’을 맺었다. 내용인즉슨 ‘인천공항에서는 절대로 기자회견을 하지 않겠다. 도착 즉시 청와대로 가 노무현 대통령에게 보고한 뒤 남북회담사무국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겠다’는 것.

하지만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정 장관의 손에는 메모지가 쥐어져 있었고, 김 위원장과의 면담에서 나온 주요 내용 6가지는 오후 8시20분경 방송 특보를 통해 생중계됐다. 평양에서부터 동행해온 한 인사는 공항 도착 직전 정 장관이 화장을 하고 있는 것을 보았노라고 털어놓았다.

결국 노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삼청동 남북회담사무국에 도착하면 방송사 메인 뉴스인 9시 뉴스에 본인의 성과가 전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의식한 행동이라는 조소 섞인 분석이 기자들 사이에서 터져나왔다. 물론 통일부는 “국민들이 궁금해하기 때문에 내용의 일부를 공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우연인지 모르지만 6월23일의 남북장관급 회담 공동보도문 발표 역시 오후 9시에 맞춰 이뤄졌다. 북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정 장관의 발걸음이 가벼워진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앞으로 정 장관의 행보가 반드시 탄탄대로만은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북풍 앵커 정동영 “잘 나갑니다”

장관급회담에 앞서 열린 차관급회담 합의로 북한에 제공된 비료를 실으러 5월23일 울산항에 들어온 북한 상선. 남 측은 북 측에 이 배의 용선료도 지불했다.

북한은 과거에도 수많은 합의로 국민들의 기대치를 한껏 높여놓았다가 성실히 이행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실제로 2000년 6월 정상회담 이후 김 위원장이 남 측 인사들과의 만남에서 쏟아낸 수많은 약속 중 서울 답방, 6·25전쟁 때 행방불명된 군인의 생사 확인, 이산가족 매달 상봉, 서울-평양 육로 상공을 통하는 직항로 허용 등은 아직까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북핵 문제의 경우도 미국의 행정부 고위관리들을 향해 “북한을 자극하지 말아달라”고 입조심 시켜가며 제15차 남북장관급 회담 내내 북한을 설득했지만, 북 측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많은 사람들은 정 장관을 일컬어 ‘행운아’라고 한다. MBC 앵커를 끝으로 1996년 정치에 입문한 뒤 그해 총선과 2000년 총선에서 연거푸 전국 최다득표를 기록했다. 96년 국민회의 대변인을 거쳐 김대중 국민회의 총재특보와 최고위원 등도 지냈다. 김대중 정권이 탄생한 후로는 권노갑 고문으로 대표 되는 동교동계와의 ‘투쟁’을 승리로 이끌며 열린우리당 탄생의 산파역을 했다. 그리하여 노무현 정권 탄생의 공신으로 책봉돼 여권의 최고 실세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정 장관의 한 측근은 “정 장관의 장점은 중요한 선택의 시점에서 보여주는 동물적인 감각”이라며 “정 장관은 항상 이기는 선택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러나 북핵 문제는 만만한 주제가 아니다. 한국과 미국은 한미정상회담을 통해 선(先)북핵 포기, 후(後)북한 지원을 말해왔다. 정 장관은 이러한 원칙 위에서 북핵 해결에 올인해야 하는데, 북한이 정 장관의 설득에 쉽게 따라줄지는 미지수.

과연 앞으로 북핵 문제가 불거져 나와도 정 장관이 이기는 선택을 할 수 있을지는 머지않아 밝혀질 것이다.



주간동아 2005.07.05 492호 (p34~35)

하태원/ 동아일보 정치부 기자 taewon_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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