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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날리고 TV·냉장고까지 차압 ‘박찬종의 불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집 날리고 TV·냉장고까지 차압 ‘박찬종의 불운’

집 날리고 TV·냉장고까지 차압 ‘박찬종의 불운’

바바리코트 입고 대선에 출마할 당시 모습(92년 12월 전후).

1992년 단기필마로 대선에 출마, 150만표 신화를 일궜던 박찬종(67) 전 의원이 자택 경매에 이어 가재도구까지 차압당하는 최악의 상황에 몰렸다. 이에 앞서 그는 올해 모친상을 당했고, 5월에는 5년간 피선거권을 박탈당하는 확정판결도 받았다. ‘무균질 정치인’으로 세인의 관심을 모았던 박 전 의원의 불운은 권력의 무상함을 일깨우기에 부족함이 없다.

서울 서초동 박 전 의원의 자택에 차압 딱지(압류물표목)를 든 집달관들이 들이닥친 것은 6월21일. 이들은 TV, 비디오, 김치냉장고, 탁자 등 가재도구에 차례차례 딱지를 붙였다. 박 전 의원은 94년 이미 서초동에 있던 자신의 집을 차압당해 날린 바 있다. 현재 살고 있는 서초동 자택은 대림산업 이준용 회장이 미분양된 가구를 임시 거처로 빌려준 것이다.

포스트 3김의 유력한 주자로 거론되던 박 전 의원의 발목에 족쇄가 채워진 것은 92년 총선 때. 당시 신정당 대표로 총선을 준비하고 있던 그는 당내 인사로부터 수십억원의 정치자금을 지원받았다. 문제는 이 돈을 준 사람과 받은 사람이 돈의 성격을 놓고 서로 다른 해석을 하고 나선 것이 발단이었다. 박 전 의원 측은 이 돈을 공천헌금이라고 생각하고 대부분을 신정당 후보들의 선거 지원비로 썼다. 당시의 정치 관행은 공천헌금 등 정치자금을 용인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에 박 전 의원은 이 관행에 따라 처리한 것.

그러나 돈을 준 측은 박 전 의원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았다. 결국 총선에서 신정당이 대패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돈을 건넨 인사 측이 차용증을 요구했고, 박 전 의원이 이를 받아들인 것.

결국 이때 쓴 차용증이 박 전 의원의 발목을 잡는 족쇄로 작용했다. 박 전 의원은 94년경 살고 있던 서초동 빌라를 남의 손에 넘겼다. 소송에서 이긴 채권자가 경매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현재 박 전 의원이 갚아야 할 금액은 8억여 원.



박 전 의원의 한 측근은 “채권자 측이 채권 채무의 시효를 연장하기 위해 이번 조치를 취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박 전 의원은 사법시험, 행정고등고시, 공인회계사 등 3과에 합격한 수재였다. 한때 “대통령을 시험으로 뽑는다면 자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 그러나 주변에서는 그의 이런 수재로서의 자부심이 정치적 성장을 막았다고 평가한다. 그의 정치 행보는 유아독존형이었고, 체질적으로 조직과 어울리지 못했다. 3김이 정치판을 삼분하던 80년대와 90년대까지 그는 3김을 거부하며 맞장을 뜨려 했다. 이런 당돌함에 국민들은 한때 진한 애정을 표현했다. 92년 대선 때 바바리코트를 입고 혈혈단신으로 출마한 그에게 150만표를 몰아준 것. 95년 서울시장 선거에서도 국민들은 그에게 큰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96년 3김의 벽에 굴복, 김영삼(YS) 전 대통령이 지휘하던 신한국당에 입당했다. 97년 대선 레이스에서 단기필마로는 희망이 없다고 판단, 조직과 YS의 힘을 빌리려 했던 것. 그러나 조직 속의 복병들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깜짝 놀랄 젊은 후보’로 세간의 주목을 받던 이인제 당시 경기도지사가 그를 압박했고, 비슷한 시기 입당한 이회창 전 총리가 그의 존재를 앞질렀다. 이 전 총리 영입 직후 박 전 의원은 “YS에게 속았다”며 반발했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그는 97년 대선 당시 수많은 잠룡 중의 하나로 움직이다 권력의 핵에서 밀려났다. 이후 몇 차례 재기를 노렸으나 번번이 실패, 결국 가재도구에 차압 딱지가 붙는 최악의 상황으로 몰렸다.

그럼에도 박 전 의원은 역사 바로 세우기 등 시민운동에 매진할 계획을 갖고 있다. 한때 그의 경쟁자였던 이인제 의원은 이회창 전 한나라당 대선후보 측으로부터 2억5000만원을 받았다는 혐의가 풀려 정치적 재기를 노리고 있다. 이 둘의 묘한 대비는 정치와 권력의 본질을 생각하게 한다. 권력은 무상일까, 영광이자 명예일까.



주간동아 2005.07.05 492호 (p10~10)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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