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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환자들이 원하니까…” 사용 금지 장세척제 범람

심각한 부작용 위험에도 7년간 19만 건 처방…‘의사의 판단’ 앞에 법도 무용지물

  •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환자들이 원하니까…” 사용 금지 장세척제 범람

“환자들이 원하니까…” 사용 금지 장세척제 범람

서울 한 병원에서 대장내시경 검사를 시행하고 있다. 검사 전 복용하는 장세척제 중 일부는 2009년 장세척 용도로 사용이 금지됐 지만 여전히 처방되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계없음.[동아DB]

10월 7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인재근 의원은 충격적인 자료를 내놓았다. 국내 각 의료기관이 이미 7년 전 부작용 위험으로 사용 금지 처분을 받은 장세척제를 계속 처방해왔다는 내용이었다. 문제가 된 약물은 ‘경구용 인산나트륨’ 액상 제제를 함유한 11개 제품으로, 2009년 당시 식품의약품안전청(식약청)은 대장내시경 전 장을 비우기 위해 복용하는 이들 약물을 사용 금지시켰다. 하지만 인 의원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약물들의 ‘장세척 목적’ 처방 건수는 2009년 12월부터 올해 8월까지 19만7466건에 달했다.

사용 금지된 경구용 인산나트륨 제제 함유 약물은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2008년 “급성 신장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며 장세척을 목적으로 한 사용을 금지했고, 2009년 캐나다도 같은 이유로 사용 중단을 권고했다. 2008년 12월 우리 식약청도 “경구용 인산나트륨 제제를 함유한 약물을 (장세척 용도로) 투여받은 환자에게서 드물지만 중증의 급성 신장병이 보고됐다. 일부 환자에게선 영구적인 신장 기능 장애가 발생하거나 장기 투석이 요구됐다”고 발표한 후 이들 약물의 장세척 용도 사용을 불허했다. 식약청의 장세척 용도 사용 금지 조치에도 각 제약사가 이들 약품을 시중에 유통할 수 있었던 이유는 변비 치료 목적으로는 사용이 허용됐기 때문이다.



장세척제 복용 후 밤새 설사, 구토

심각한 부작용 발생 위험에도 각 의료기관이 해당 약물을 계속 처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른 약물에 비해 복용이 간편해서 어쩔 수 없다”는 게 의사들의 한결같은 해명이다. 경구용 인산나트륨 제제를 함유한 약물은 다른 장세척제에 비해 훨씬 적은 용량으로도 장세척 효과가 높다는 것. 대한위장내시경학회 측 해명은 이렇다.

“경구용 인산나트륨 제제는 다른 액상 제제에 비해 복용해야 할 양이 적으면서도 장 정결 효과가 우수하다. 특히 가장 안전한 장세척 성분으로 알려진 PEG(폴리에틸렌글리콜) 제제와 비교하면 4분의 1 섭취량으로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복약지도가 간편하고 환자도 선호해 자주 처방되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 한 외과 전문의도 “안전하다고 알려진 장세정제는 맛이 고약하고 먹어야 하는 양도 너무 많아 복용을 힘들어하는 환자가 상당수다. 그래서 아예 대장내시경 검사를 기피하는 환자도 있다. 사용 금지된 약물의 부작용 발생 가능성에 비하면 대장내시경 검사를 거부함으로써 생기는 불이익이 훨씬 크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환자들도 “사용 허가된 약물은 복용하기가 고역스럽다”고 토로한다. 대장내시경 검사 전날부터 물과 약을 반복해서 먹어야 하는 고충이 너무 크다는 것이다. 과연 얼마나 힘들기에 대장내시경 검사를 피하는 환자까지 있을까. 장세척 용도로 허가된 모 제약사 P약품의 복용방법은 다음과 같다.

‘검사 전날 오후 5시, A제제 1병에 B제제 1포를 타서 마신 후 물 1ℓ 이상을 2시간 동안 마심. 검사 전날 오후 8시에도 동일하게 마심. 검사 당일 오전 5시 A제제 1병을 마신 후 물 1ℓ 이상을 2시간 동안 마심.’

늦은 밤과 새벽에 약물을 복용하면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화장실을 들락날락하는 일이 부지기수다. 2년마다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는 김모(42·여) 씨는 “장세척제의 맛이 역한 데다 억지로 물까지 마셔야 해 고통스럽다. 새벽 내내 설사하고 약물을 먹자마자 토해 대장내시경 검사를 미룬 적도 있다. 2009년 이전에는 현재 복용하는 약물보다 복용량과 횟수가 적은 C약품을 먹었는데 현재는 처방이 금지돼 아쉽다”고 말했다.

심지어 환자가 의사에게 “사용 금지된 약물이라도 처방해달라”고 조르는 경우도 있다. 2009년부터 장세척제로 사용이 불허된 C약품을 검사 때마다 복용해온 이모(60·여) 씨는 “검사 전 의사에게 일부러 ‘C약품을 처방해달라’고 요구한다. 사용이 허가된 약을 먹어봤더니 구토증이 너무 심해 병원에 검사받으러 갈 기운도 없더라. 특히 체력이 약한 여성은 복용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의사 판단’이면 법적 구속력 없어

이렇듯 사용 금지된 약물이 버젓이 처방되고 있지만 단속 주체인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는 “법 위반은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식약처 관계자의 해명이다.

“2009년 장세척용으로 사용을 금지한 경구용 인산나트륨 제제 함유 약품 11개는 변비 치료제로만 허가된 상태다. 하지만 의사가 의학적 근거로 ‘장세척용으로 써야겠다’고 판단해 사용했다면 의료법상 불법이 아니다. 식약처에선 부작용 발생 위험을 경고하며 사용 규제를 안내하는 ‘안정성 서한’을 의료인들에게 보내고 있지만 의사가 굳이 ‘의학적 판단에 따라 처방했다’고 주장하면 ‘왜 그 약물을 썼나, 사용한 근거를 대라’고 강제할 수는 없다.”

즉 의사는 자신의 판단이나 환자의 요구에 따라 사용 금지 약물을 계속 처방하고, 의료기관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약제 급여비를 청구해 받아온 것이다. 의료기관의 약제 처방 목록을 집계하는 심평원의 감시도 미약하다. 심평원 관계자는 “심평원은 의사로부터 ‘어느 약제를 누구에게 처방했다. 따라서 급여비를 달라’는 식의 사후 통보를 받는다. 따라서 처방 전 제재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병·의원, 약국이 의약품 처방 및 조제 기록을 공유하는 DUR(의약품안전사용서비스)에 부작용 위험을 경고하는 팝업창을 띄우는 게 전부다. 사용 금지된 약물을 과도하게 처방한 경우 심사를 거쳐 급여비를 삭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용 금지된 장세척제를 처방한 데 대한 정부 당국의 처벌은 한 건도 없었다. 2013년 보건복지부는 한 의료기관에 “장세척용으로 사용 금지한 약물을 처방했다”며 행정처분을 경고했고, 같은 해 한국소비자원 측에서도 “부작용이 우려되는 사용 금지 의약품을 처방할 경우 의료법 시행령에 따라 의사자격 정지 1개월 등의 처분을 받을 수 있다”고 밝힌 바 있지만 모두 구두 경고로 끝났다. 2009년 이후 경구용 인산나트륨 제제를 함유한 약물의 처방과 관련해 행정처분이 내려진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전문가들은 “사용 금지된 장세척제에 대한 식약처의 규제 사항은 실질적 효력이 떨어진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박지용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의료법)는 “식약처 조치는 강제력이 없는 행정지도나 권고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이며, 그렇다면 애초부터 법적 구속력이 없다. 심평원의 급여비 환수처분은 ‘사후 조치’라는 한계점을 갖고 있다. 따라서 식약처는 임상 처방 실태와 부작용 사례를 계속 점검하고 강제력이 있는 별도의 조치를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간동아 2016.10.19 1059호 (p40~41)

김지현 객원기자 bomb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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