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76

2005.03.15

호주 직장인들 ‘왕따 주의보’

신참·비정규직 대상 폭언·폭행 빈발 … 피해자 신고로 구속되는 경우도

  • 애들레이드= 최용진 통신원 jin0070428@yahoo.co.kr

    입력2005-03-10 14: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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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주 직장인들 ‘왕따 주의보’

    호주 뉴사우스웨일스 주 노동위원회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5%가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대답했다.

    모든 이에게 유독 ‘평등과 공정’을 강조하는 호주에서 최근 ‘왕따 문화’가 서서히 번져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2004년 한 해 동안 호주인들은 일선 교육현장에서 연이어 보고된 왕따 문제로 크게 상처를 받았다. 그런데 요즘 언론을 통해 직장 내의 심각한 왕따 사례들이 쏟아져나와 호주인들에게 또 한 번 충격을 주고 있다.

    한 예로 지난해에는 직장 동료에게 폭력을 행사하며 따돌린 동료 근로자들이 경찰에 구속되는 일이 있었다. 또한 이를 적절히 규제하지 못했다며 이 회사 대표는 2만4000호주달러(약 1900만원)의 벌금형에 처해진 일도 벌어졌다.

    심화되는 동료들 간의 경쟁이 가장 큰 원인

    호주노동위원회 최근 보고에 따르면, 빅토리아주(州)에서는 고참 동료들이 신참 동료를 교육한다는 명목으로 신참 동료를 회사 모임에서 정기적으로 제외시키는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이들은 신참 동료가 화장실에 있는 사이 인화성 물질을 화장실 바닥에 뿌리고 불을 지르기도 했다. 호주 뉴사우스웨일스(NSW)주에서는 해마다 신입사원을 길들인다는 이유로 수시로 신입사원을 폭행하는 사례도 보고됐다. 이는 모두 왕따 문화가 호주 사회에 시나브로 퍼져갔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처럼 호주 직장에서 벌어지는 ‘왕따’가 단순히 피해자를 경계하는 수준을 넘어 폭력 행사로까지 번지자, 호주 정부는 마침내 최근 직장 내 왕따 수준을 구체적으로 파악하기 시작했다. 호주 NSW주 노동위원회가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직장에서 따돌림을 당한 경험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75%가 ‘그렇다’고 대답했다.



    호주 직장인들 사이에서 따돌림 문화가 확산되는 가장 주된 원인은 무엇일까.

    많은 전문가들은 가장 큰 원인으로 ‘날로 강화되는 직장 동료들 사이의 경쟁’을 꼽았다. 최근 많은 호주 기업들이 비용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가급적 정규직 근로자보다 비정규직 근로자를 채용하고 있다. 따라서 직장 내에서 상대적으로 안정적 위치에 있는 정규직 근로자들이 상대적으로 불안정한 위치에 있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에게 ‘밥그릇’에 대한 위협을 느껴 비정규직 근로자들을 따돌리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최근 호주의 한 방송국은 19세 청년 드웨인 돌리의 사례를 통해 이런 문제를 고발했다. 돌리는 3년 전 시드니에 있는 한 공장에서 시간제 수습공으로 일했는데, 다른 동료들보다 나이 어린 그가 처음 일을 시작할 때부터 직장 선배들이 심한 욕설을 퍼부으며 그를 따돌렸다고 한다. 따돌림은 시간이 지날수록 심해져 크리스마스 파티에서 동료들이 그의 입에 톱밥과 아교를 강제로 집어넣고 테이프로 입을 막은 뒤 폭행했다. 그는 지금까지 심각한 대인공포증을 앓고 있다.

    한편 최근에는 규모가 작은 도시에 위치한 기업들에서 왕따 사례가 증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그 원인으로 호주 주요 회사들의 본사와 지방 지점 간의 원활한 의사소통 부재를 지적한다. 본사가 보통 대도시인 시드니나 멜버른에 있기 때문에 작은 도시에 있는 지점에서 벌어지는 직장 왕따 실태를 본사가 적절하게 파악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안티 직장 왕따 캠페인을 벌이는 컬리 에간은 “작은 도시의 지점에서 왕따 사건이 발생해도 그 지점 책임자의 권한으로 사건이 대충 무마되고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결점을 먼저 탓하며 없던 일로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규모가 작은 직장에서는 ‘따돌림 예방에 대한 전문 교육’도 충분하지 않아 대도시 외곽지역에서 벌어지는 따돌림 사례는 해마다 증가하는 형편이다. 빅토리아주 노동조합에 보고된 바에 따르면, 빅토리아주의 외곽도시 무룽푸나에 위치한 ‘SPC Ardmona’라는 통조림 제조회사에서 공장 책임자인 브라운 할페니와 공장 수석비서인 레이 캠벨이 백인 직원들과 함께 호주 원주민 직원들을 따돌려 큰 사회문제가 됐다. 할페니는 원주민 직원들에게 수시로 인종차별적 발언을 하며 다른 직원들이 그들과 함께 어울리지 못하도록 선동했다. 피지 출신의 한 미혼모 근로자에게 일부러 풀타임 업무를 맡기지 않고 시간제 업무만 준 사례도 노동위원회에 고발됐다.

    전문가들, 왕따 예방 CD 만들어 배포

    전문가들은 이 같은 따돌림 사례와 예방에 관한 내용을 CD로 제작해 호주 회사들에 배포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특히 왕따 예방을 위해 조금이라도 따돌림을 당했다면 자신의 경험을 적극적으로 주변에 알리기를 당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직장 상사나 동료들에 의한 따돌림의 경우 “먼저 상대방에게 자신을 따돌리는 이유를 정확하게 물어보고, 자신에게 무엇이 부족한지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대부분 직장 따돌림에서 가해자들은 자신이 하는 행동이 따돌림에 해당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또한 피해자에게 특별한 문제가 있다기보다는 조금이라도 높은 위치에 있는 직원이 명령을 따라야 하는 후배에게 세를 과시하기 위해 따돌리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피해자가 직접적으로 잘못된 행위를 지적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해결된다”고 전문가들은 충고한다.

    지난해 7월 빅토리아주에 위치한 3BA 발라라트 라디오 방송국에서는 라디오 아나운서로 일하는 34세의 데이비드 모와트가 지난 3년 동안 동료 직원들에게 폭언과 함께 신체적 위협을 가한 사실이 드러났다. 그는 피해 직원들의 고소로 결국 경찰에 구속됐다. 당시 피해 직원들은 모와트의 폭언과 위협 등을 자세히 기록해 경찰에 자료를 제출했는데, 전문가들은 이를 “가장 적절하게 직장 따돌림에 대응한 사례”라고 말한다. 모와트는 동료 직원들에게 폭언한 혐의로 법원으로부터 1만 호주달러(약 8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한편 회사가 직장 왕따 문제에서 최종적으로 책임을 갖는다는 인식이 호주 사회에서 확산되고 있다. 호주 통상위원회 리처드 마리스 부위원장은 “회사가 직장 내에서 벌어지고 있는 따돌림 실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피해자도 능동적으로 가해자 처벌이 가능한 법적 근거를 찾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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