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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더치페이’가 바꾸는 세상

2016 가을 더치페이 세상 왔네

식당에 늘어선 계산 줄, 저녁 약속 안 잡기 확산…한국 사회 안착할 방법 찾아야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2016 가을 더치페이 세상 왔네

2016 가을 더치페이 세상 왔네

[일러스트·오동진]

“점심시간에 여럿이 같이 밥을 먹은 뒤 한 명씩 따로 계산하는 경우가 점점 많아지고 있어요. 요즘엔 직장 상사가 직원들을 데려와서도 ‘탕수육은 내가 쏠게’ 하죠. 개인이 주문한 짜장면, 짬뽕 값은 각자 계산하라는 겁니다. 이러니 점심시간이면 카운터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서 숨 돌릴 틈이 없어요.”

서울 서대문구 오피스빌딩가에서 영업 중인 한 중국음식점 사장의 말이다. 그는 1만 원 이하도 신용카드로 결제하는 문화가 확산하면서 음식 값 각자 내기, 이른바 ‘더치페이’가 크게 늘었다고 전했다.

반면 근처에서 이탤리언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사장의 말은 좀 달랐다. 그는 “조만간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의 세칭)이 시행되면 3만 원 넘는 코스 메뉴를 팔기 어려울 거라고 들었다. 그런데 아직은 달라진 점이 없다. 보통 두세 명씩 함께 와서 코스를 주문하든, 단품을 시키든 전처럼 한 명이 대표로 식대를 지불한다”고 밝혔다. 두 식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한정식전문점의 사장 역시 “더치페이하는 손님은 아예 없다”고 했다. 



‘한국식 계산법’은 가라

신훈 한국외식업중앙회 정책경영국장에 따르면 이처럼 식당에 따라 음식 값 내는 패턴이 다른 이유는 한국인이 각 식당에서 밥 먹는 방식이 다르기 때문이다. ‘중국집’에서는 보통 공통으로 놓인 요리를 제외하면 각자 자기가 시킨 음식을 먹는다. 반면 ‘이탤리언 레스토랑’에서는 여러 종류의 파스타, 피자 등을 시켜놓고 다 같이 나눠 먹는 게 일반적이다. 한정식집에서도 마찬가지다. ‘내 몫, 네 몫’을 구별하기 힘든 음식 문화가 ‘몰아 내기’라는 한국식 계산법의 한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이에 따라 한국인은 그동안 연장자 또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이가 함께 밥상에 앉으면 그가 계산을 도맡고, 또래끼리 밥을 먹을 때는 자연스럽게 돌아가며 식대를 내는 방식으로 밥값을 지불해왔다. 이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 등 동아시아권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한국만의 독특한 계산 방식이다(26, 28쪽 기사 참조). 그러나 최근 중국집, 분식집처럼 개별 주문과 식사가 가능한 업종을 중심으로 조금씩 더치페이가 늘면서, 한국 문화에도 변화가 생기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젊은이 밀집지역으로 시야를 돌리면 더치페이 확산세는 좀 더 뚜렷이 나타난다. 서울 대학가에서 ‘식권자판기’를 두고 영업 중인 한 일본라면집의 사장은 “영업장이 좁아 카운터를 따로 두는 대신 자판기를 설치했다. 손님이 자판기에서 메뉴를 정하고 결제하면 주문 정보가 바로 주방에 전달되는 시스템이다. 자기 음식을 스스로 고르는 방식이라 그런지 손님 열 명 중 여덟아홉 명은 자기 몫을 각자 지불한다”고 밝혔다.

최근 신한 트렌드연구소가 자사 고객의 신용카드 이용 현황을 분석, 발표한 자료에서도 이런 경향이 읽힌다. 신한카드는 한 음식점에서 1만 원 미만을 신용카드로 결제한 건수를 뽑아 ‘혼자 밥 먹기’, 이른바 ‘혼밥’으로 간주했다. 이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혼밥족(族)’ 비중은 7.3%로 2011년(3.3%)에 비해 2배 이상 늘었다. 연령별로 보면 남성은 20대(31.9%), 여성은 30대(26.0%) ‘혼밥족’이 가장 많았다. 최근 트렌드에 비춰보면 이들 중 상당수는 ‘더치페이족’이라고도 할 수 있다. 신촌 대학가에서 대학생을 대상으로 1만 원대 안팎의 스테이크 메뉴를 판매하는 한 레스토랑의 사장도 “동성 친구끼리 오면 대부분 각자 자기 밥값을 계산한다고 보면 된다. 예전에는 한 명이 카드로 결제하고 다른 친구들에게 현금을 받는 경우도 있었는데, 요즘엔 거의 모든 학생이 자기 신용카드를 꺼낸다”고 전했다.

이에 대해 프랑스 파리7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했고, 지금은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한국학 연구자 마르틴 프로스트 교수는 “경기불황의 영향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과거 유럽은 같이 밥을 먹으면 음식 값을 인원수대로 나눠 냈다. 그런데 경제가 어려워지자 자기가 주문한 만큼 각자 내는 방식으로 변하더라. 한국도 젊은이들이 상대방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을 지우지 않으려고 자기 몫을 각자 지불하는 것 같다”는 설명이다.    

자기가 먹은 음식 값을 각자 내는 분위기는 조만간 중·장년층까지 확산할 전망이다. 9월 28일 시행되는 이른바 ‘김영란법’의 영향이다. 이 법은 공무원, 사립학교 교직원, 언론사 임직원 등에게 3만 원 이상 식사를 대접하지 못하도록 규정한다.



이제 중·장년도 ‘내 몫은 내가’

2016 가을 더치페이 세상 왔네

9월 19일 오후 서울 강동구 한 횟집 앞에 ‘김영란법 세트’ 출시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뉴스1]

성영훈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 위원장은 9월 21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조찬강연에서 이 법에 대해 설명하며 “(김영란법의) 핵심은 간단하다. (중략) 공짜 밥과 공짜 술 먹지 말고, 애매하고 의심스러우면 더치페이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밥값이 얼마가 나오든 각자 자기 몫을 부담하면 문제될 게 없다는 얘기다.

성 위원장은 이 자리에서 “요즘 젊은 세대는 어디를 가나 더치페이를 한다. 관련 애플리케이션이 많이 나와 있어 100원 단위까지 나눠 낼 수 있다”고도 했다(24쪽 상자기사 참조). ‘김영란법’ 제정에 큰 구실을 한 김영란 전 권익위원장 역시 지난해 3월 기자회견에서 “김영란법은 쉽게 표현하자면 ‘더치페이법’”이라고 밝힌 바 있다. 국가가 나서서 이처럼 ‘자기 밥값은 스스로 내자’고 드라이브를 건 만큼, 한국식 계산 문화의 변화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으리라는 게 많은 이의 전망이다.

그러나 이에 대해 일부 외식업계 관계자는 난색을 표한다. 한 찌개전문점 사장은 “요즘은 현금결제를 하는 손님이 거의 없다 보니 승인요청 한 건에 수십 초씩, 한 팀 계산에만 몇 분이 걸린다. 점심시간마다 카운터 앞에 줄이 길게 늘어설 정도다. 그 틈으로 다른 손님이 들어오고, 상을 치우느라 종업원까지 왔다 갔다 하면 가게가 혼잡해지는데, 그럴 때 슬쩍 계산을 안 하고 도망가는 손님까지 있다”고 토로했다. “계산을 개별적으로 안 하면 분쟁이 생기니 다 해주기는 하지만, 이런 현상이 더욱 심화하면 어떡하나 걱정되는 게 사실”이라고도 덧붙였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손님이 더치페이를 할 경우 식당이 추가로 부담해야 하는 비용은 거의 없다. 영수증 인쇄용지 가격 정도가 전부다. 식당이 신용카드사에 납부하는 수수료는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기 때문에 손님이 식대를 한꺼번에 내든, 나눠 내든 달라지지 않는다. 식당 업주가 신용카드 승인 단말기를 전화선에 연결해 사용할 경우 카드승인 건당 통신료가 발생하지만, 최근에는 아주 작은 규모가 아니라면 대부분 식당에 인터넷이 연결돼 있어 이런 문제도 애초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식당업 종사자의 노동 강도가 급증하는 게 문제라고 한다. 한정식집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현재는 테이블 단위로 주문을 받고 영수증을 발급한다. 이 상태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전체 식대를 참석자 수로 나눠 6명은 6번, 7명은 7번 카드결제를 해주는 정도”라면서 “만약 손님이 정말 제대로 더치페이를 하겠다며 각자 다른 메뉴를 고르고 음식 값을 제각각 지불하려고 하면 현재 업소 시스템으로는 서비스가 불가능하다”고 털어놓았다. “외국처럼 개인이 먹은 메뉴를 따로 기록하고, 음료 값까지 마신 종류에 따라 나눠 낼 수 있게 하려면 종업원이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밥상 문화 변화의 시작은 직장에서

우리나라 식당에서 주문 관리와 식대 정산 등에 사용하는 POS(Point Of Sale) 단말기를 판매하는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현재 국내에서 널리 쓰는 기계와 프로그램으로도 얼마든지 개인별 메뉴 관리와 비용 정산을 할 수 있다. 다만 조작이 번거롭고, 시간이 오래 걸릴 뿐이다. 이에 대해 외식업계 관계자는 “더치페이 문화가 일상화된 선진국에서는 외식비용이 우리나라보다 훨씬 비싸다. 해당 국가에서 상대적으로 외식비용이 저렴한 가게는 식대를 선불로 받거나 셀프서비스 방식으로 매장을 운영한다”며 “우리나라에도 머잖아 손님이 식당에 들어가면서 주문과 계산을 마치는 형태의 식당이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더치페이 풍조 확산이 일선 식당의 운영 시스템뿐 아니라 우리나라 문화 전반을 바꿀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대기업 계열사 유럽지사에서 근무했던 박모 씨는 “한국은 업무관계자들이 퇴근 후 저녁을 같이 먹으며 일 얘기를 하는 경우가 흔하지만, 유럽에서는 친교와 비즈니스를 엄격히 구분한다. 중요한 계약을 마무리한 뒤 공식적으로 식사를 하기는 해도, 사적인 식사 자리에서 계약 사항을 조율하는 일은 없다. 외국의 저녁 약속이 주로 부부 동반으로 이뤄지는 것도 이 때문”이라며 “우리나라에 더치페이 문화가 자리 잡으면 일 얘기는 회사에서 나누고 저녁시간은 좀 더 자유롭게 쓰는 분위기가 생길 것”이라고 내다봤다.

업무적으로 연관된 사람들이 함께 식사한 뒤 한쪽이 전적으로 비용을 부담하는 풍토도 사라질 전망이다. 사학자인 이덕일 한가람역사문화연구소장에 따르면 이것이야말로 우리 전통을 되살리는 길이기도 하다. 이 소장은 “조선 선비는 자신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식사 대접하는 걸 미덕으로 삼은 반면, 청탁 등의 목적이 있는 이로부터 어떤 형태로든 대접받는 것은 비루하다고 여겼다. 조선 국법 또한 뇌물죄를 ‘장물 장(贓)’ ‘더러울 오(汚)’ 자를 써 장오죄(贓汚罪) 또는 장죄(贓罪)로 엄히 다스렸다. 부패 관리 명단은 ‘장안(贓案)’ 또는 ‘장오인녹안(贓汚人錄案)’에 올려 평생 관직을 맡지 못하게 했고, 아들과 사위의 벼슬길까지 막았다”고 소개했다. 그는 “조선에서 역모죄를 제외하고 어떤 죄도 이처럼 중하게 처벌되지 않았다”며 “이 때문에 조선 사대부는 다른 사람과 밥 한 끼를 먹을 때도 조심하고 삼가는 것이 몸에 배어 있었다”고 설명했다.

“한 사람이 밥값을 전부 내는 게 우리 전통은 아니다. 좀 더 여유 있는 사람이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고 식사 등을 베풀던 문화는 유지하되, 현대 사회에서 왜곡된 부분은 고쳐나가야 한다”는 게 이 소장의 의견이다. 다만 한국 사회에서 더치페이가 확산되는 속도가 매우 빠른 만큼 당분간은 곳곳에서 파열음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이에 대해 한국외식업중앙회 관계자는 “한국 사회는 쏠림현상이 심해 ‘더치페이가 유행’이라는 이야기가 퍼지면 꼭 더치페이를 할 필요가 없는 사람까지 각자 내기에 나선다. 그럼 식당 계산 시스템이 마비되고, 많은 사람이 불편해진다. 새로운 문화가 큰 무리 없이 정착될 수 있도록 당분간은 반드시 각자 계산해야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기존 방식을 유지했으면 좋겠다. 한 사람이 대표해 카드결제를 하고, 나머지 사람이 자기 몫의 비용을 현금으로 주거나 추후 송금해주는 방식으로 각자 내기를 시작하면 외식업계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더치페이 도와주는 ‘똑똑한’ 애플리케이션

2016 가을 더치페이 세상 왔네

‘더치페이’를 위한 애플리케 이션 ‘더치페이 종결자’. 누 가 자기 몫을 안 냈는지 한 눈에 확인할 수 있다.

젊은 층을 중심으로 더치페이 문화가 확산하고 있지만, 식당 등에서 개인 신용카드로 번번이 식대를 계산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이에 따라 한 사람이 대표로 비용을 지불한 뒤 인원수에 맞게 추후 정산하는 방식이 널리 사용된다. 문제는 참석 인원과 모임 회차가 많을 경우 공평한 계산이 쉽지 않다는 점. 현금을 사용하는 사람이 점점 줄어드는 현실에서 참석 인원에게 모두 정확한 비용을 돌려받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최근 시중은행들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를 모바일 전용 플랫폼에 속속 도입하고 있다. KB국민은행 모바일 플랫폼 ‘리브(Liiv)’에는 ‘리브 더치페이’ 기능이 포함돼 있다. 해당 서비스 창에 총비용과 참석 인원수를 입력하면 인당 부담해야 할 금액이 자동으로 계산된다. 이 목록을 해당자의 모바일 메신저로 보내 입금을 요청할 수도 있다. 해당 은행의 간편송금 서비스를 이용할 경우 공인인증서나 보안카드 없이도 송금이 가능하다. 우리은행 모바일 플랫폼 ‘위비뱅크’, NH농협은행 ‘올원뱅크’, IBK기업은행 ‘아이원뱅크’ 등에도 비슷한 기능이 있다.

더치페이를 할 때 도움을 주는 다양한 스마트폰용 애플리케이션도 출시되고 있다. 애플리케이션 ‘N빵’을 이용하면 회식 차수와 참석 인원별로 비용을 정산할 수 있다. ‘더치페이 종결자’는 회식 참가자 가운데 누가 자기 몫을 안 냈는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기능을 탑재했다.





주간동아 2016.09.28 1056호 (p22~24)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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