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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흔들리는 한국 게임산업

여기는 21세기 ‘모던타임스’

심야·장시간 노동 일상화…개발은 뒷전, 퍼블리싱과 채널링에만 매달리는 게임업체들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여기는 21세기 ‘모던타임스’

여기는 21세기 ‘모던타임스’

[shutterstock]

“정확한 사인은 아직 몰라요. 그런데 처음 그 소식이 알려지고 회사 이름이 업계에 돌았을 때 거의 모든 사람이 그랬죠. ‘쯧쯧, 과로사구나.’ 그렇게 쉴 틈 없이 사람을 굴리면 결국 누구 하나 죽어 나갈 거라고,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했거든요.”

7월 중순의 일이다. 이름이 꽤 알려진 한 게임회사에서 30대 직원이 숨을 거뒀다. 이에 대한 한 게임업계 종사자의 촌평이다. 이 회사는 야근 많이 시키기로 업계에서 유명했다고 한다. 한밤중에도 사무실 불이 꺼지지 않아 동네에서 ‘등대’라는 별명이 붙었을 정도다. 게임업체가 밀집해 있는 그 지역은 원래부터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한밤중에도 술 취하지 않은 손님이 많은 곳’으로 통했다. 그렇게 다들 심야 근무를 하는 문화에서도 유독 그 회사는 눈에 띄었다는 얘기다. 자정이 넘어 퇴근하는 다른 게임회사 직원들은 ‘저 사무실 불빛 덕에 헤매지 않고 집을 찾아간다’는 농담도 주고받았다고 한다.



그 회사가 ‘등대’라 불리는 이유

현재 우리나라의 법정 근로시간은 주당 40시간이다. 이 외에 주중 12시간, 주말 16시간을 추가로 일할 수 있다. 그러나 상당수 게임회사에서 ‘68시간 근로’는 꿈같은 얘기다. 게임개발자들은 “주당 100시간씩 몇 개월간 연달아 일해도 ‘그러려니’ 하는 게 이 동네”라고 입을 모은다.

“많은 게임회사가 직원들과 ‘포괄임금제’ 형태로 계약을 맺거든요. 입사할 때 매달 일정액씩 초과근무 수당을 주기로 정하는 거예요.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을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다는 게 표면적 이유인데, 그게 말이 되나요. 게임업계에서도 큰 회사들은 사무실 드나들 때 출입문에 사원증을 찍고 다녀요.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수당을 계산할 수 있죠. 그냥 ‘무제한 야근’을 속 편하게 시키려고 저러나 보다, 해요.”



한 게임개발자의 얘기다. 그에 따르면 경력 2년을 인정받고 최근 한 유명 게임업체에 입사한 개발자는 ‘수당 포함 연봉 2300만 원’을 받기로 했다. 게임업계 종사자 사이에서 ‘야근은 공짜’라는 자조가 나오는 이유다.

게임업계에 이런 노동관행이 정착된 건 당초 게임개발에 뛰어든 이들이 ‘자기가 좋아서’ 일하는 문화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 게임개발자는 “이쪽 업계 종사자 중에는 어릴 때부터 밤낮 없이 컴퓨터만 붙들고 살던, 이른바 ‘너드(nerd·괴짜)’가 적잖다. 그러다 보니 노동조건을 꼼꼼히 따져가며 계약하거나, 추가 수당을 요구하는 분위기 자체가 없었던 것”이라고 밝혔다.

게임개발자들의 야근이 일상화된 또 다른 원인으로는 업계 특유의 ‘크런치’ 문화가 꼽힌다.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크런치는 ‘세상없어도 야근할 수밖에 없는 기간’을 가리키는 용어다. 보통 게임 출시 전, 하청업체의 경우는 본사 검수 전 일정 기간이 이에 해당한다. 그는 “이때는 게임개발에 참여한 직원이 다 같이 야근을 한다. 이는 한국뿐 아니라 세계 게임업계의 공통된 문화”라고 했다. 문제는 일부 회사가 이런 관행을 악용해 사실상 매일 야근할 수밖에 없는 환경을 만든다는 점이다. 게임개발 일정을 애초 무리하게 잡거나, 곧 출시할 것 같은 분위기를 조성하면서 계속 수정사항을 지시하면 게임개발자들은 컴퓨터 앞을 떠날 수 없다. 최근 직원이 사망한 회사의 경우 이런 문제로 업계에서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김환민 게임개발자연대 사무국장은 “일부 회사에서는 ‘직원을 갈아서 게임을 만든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개발자를 혹사시킨다”고 지적했다.   

게임개발자연대는 바로 이런 환경을 개선하려고 게임업계 종사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다. 게임개발자가 정당한 대우를 받아야 더 좋은 게임이 나오고 결과적으로 업계 전체가 발전한다는 생각에서다. 김 사무국장은 “원래 게임업계 사람들은 개인주의 성향이 강하다. 전국 게임회사 가운데 노동조합이 있는 곳이 단 한 곳도 없을 정도”라며 “그런데 최근 ‘더는 이렇게는 못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분위기다. 특히 게임산업이 어려워지면서 노동조건이 날로 악화되는 데 위기감을 느끼는 이가 늘고 있다”고 밝혔다.



퍼블리싱, 채널링을 어이할꼬

여기는 21세기 ‘모던타임스’

최근 국내 게이머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산 온라인게임 ‘오버워치’. [뉴시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간한 ‘2015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0년 2만 개 넘던 국내 게임업체 수는 2014년 현재 1만4500여 개로 줄어들었다. 게임개발 분야 종사자 수도 3년 연속 감소해 한때 5만 명이 넘던 수준에서 2014년 현재 3만9000명 정도가 됐다. 전문가들은 팽창을 거듭하던 국내 게임산업이 축소의 길로 접어든 시점을 2012년으로 본다. 자정 이후 미성년자의 온라인게임 이용을 차단하는 이른바 ‘셧다운제도’가 전면 시행된 해다. 이로 인해 ‘대규모 다중사용자 온라인 롤 플레잉 게임(MMORPG)’ 등의 수익이 악화되자 자본력이 충분치 않은 중소 게임업체들은 온라인게임 부문 사업을 접었다. 이들이 줄줄이 모바일게임 개발에 뛰어들면서 순식간에 경쟁이 치열해졌다.

이때부터 게임업계는 ‘사느냐 죽느냐’의 전장이 됐고, 업체들은 창의적인 게임개발에 투자하기보다 유행하는 게임을 흉내 내 만들고 마케팅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게 됐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 얘기다. 이 무렵부터 모바일게임 광고에 국내외 유명 연예인이 등장했고 자연히 게임개발 비용은 더욱 줄어들었다.  

모바일게임의 경우 대부분 개발업체가 직접 마케팅을 담당하지 않는 것도 관련 비용 증가의 원인으로 꼽힌다. 자본력이 약한 중소 게임업체는 자체적으로 대중에게 게임을 알릴 만한 역량이 없다. 이에 따라 관련 노하우를 가진 대형 게임업체 측에 출시를 맡긴다. 업계에서는 이를 ‘퍼블리싱’이라고 하는데 넥슨, 넷마블 등 대중에게 ‘게임회사’로 알려진 업체들이 주로 이 업무를 맡는다. 중소업체의 유망한 게임을 발굴한 뒤 자신들 이름으로 유통하는 것이다. 퍼블리싱 업체가 게임을 소비자 눈에 띄게 만드는 창구는 구글플레이 등 애플리케이션 장터다. 이들 채널에 게임을 등록하는 것을 ‘채널링’이라고 한다. 즉 최근 들어 모바일게임은 일반적으로 퍼블리싱과 채널링을 통해 소비자와 만난다. 이 과정에서 게임개발업체는 관련 업체에 수익의 상당액을 배분한다.

한 게임업계 종사자는 “요즘 우리나라에서 개발되는 모바일게임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한 게임이 인기를 끌면 유사한 게임이 무더기로 쏟아진다. 이런 상황에서 돈을 벌려면 마케팅을 잘해야 하고, 그만큼 퍼블리싱과 채널링의 중요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수익률 배분 계약이 개발업체에 불리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라고 밝혔다.

“게임개발자는 점점 제조업 노동자가 돼가고 있어요. 요새는 위에서 아예 ‘이런 게임을 하나 만들라’고 구체적인 지시를 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팔리는 ‘제품’이 정해져 있으니, 개발자는 그걸 기한 내 완성하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마치 제조업체에서 컨베이어벨트가 돌아가듯 끝없는 야근을 통해 각자에게 주어진 작업을 때맞춰 끝내면, 회사는 납품하듯 그 게임을 퍼블리싱 업체와 채널링 사업자에게 넘깁니다. 그리고 게임 이용자들이 해당 게임에 지루함을 느끼기 전 내용물은 똑같은데 포장만 좀 바꾼 게임을 또 내놓고, 또 내놓고….”

한 게임개발자의 말이다. 김 사무국장도 “요즘 우리 게임산업을 상징하는 단어는 ‘박리다매’와 ‘속도전”이라며 “게임산업이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창조성과 젊은 이미지에 끌려 업계에 들어온 청년들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는 이유가 여기 있다”고 지적했다.



막대한 자본력과 거대 배후시장 갖춘 중국

“회원들을 대상으로 조사해보면 일부 업체는 평균 근속기간이 6개월이 채 안 돼요. 문제는 전국 각지에서 게임을 전공한 청년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 점이죠. 한동안 게임산업이 커지면서 대학뿐 아니라 각종 사설 교육기관에도 관련 교육과정이 많이 생겼거든요. 거기서 게임개발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고 몇 년씩 공부한 청년들은 어느 회사든 찾아 들어갈 수밖에 없어요. 그렇게 인력이 풍부하게 공급되니 노동조건은 날로 나빠지고, 베테랑 자리를 신입이 채우면서 게임개발력도 저하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겁니다.”

김 사무국장의 얘기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흘러가는 게임산업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잘라 말했다. 최근 넥슨이 출시한 ‘서든어택2’가 미국산 온라인게임 ‘오버워치’와 경쟁에서 밀려 23일 만에 서비스 종료를 선언한 것을 한 사례로 꼽았다.        5월 시장에 나온 ‘오버워치’는 7월 말 기준으로 국내 PC방 점유율 32.73%를 기록하며 리그오브레전드(23.59%), 메이플스토리(7.12%), 피파온라인3(6.06%), 서든어택(5.91%) 등 과거 ‘강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있다.

막대한 자본력과 저렴한 인건비, 거대 배후시장 등을 무기로 한 중국 게임업계의 부상도 한국에게는 위협 요소다. 중국 인터넷기업 텐센트는 6월 핀란드 게임업체 슈퍼셀을 86억 달러(약 10조 원)에 인수하면서 명실상부한 세계 1위 게임업체가 됐다. 텐센트는 과거에도 ‘리그오브레전드’ 개발사인 미국 라이엇게임즈를 인수하는 등 빠르게 몸집을 불려왔다. 현재 ‘스타크래프트’ ‘디아블로’ ‘오버워치’로 유명한 액티비전 블리자드사의 주요 주주이면서, 국내   1위 모바일게임업체 넷마블의 지분을 25% 확보하고 있기도 하다.

이 같은 과감한 투자와 경영 참여 등을 통해 중국 게임업체들은 국제적 게임회사의 개발 노하우를 흡수하며 자체 기술력을 발전시키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현재 한국이 기술력 면에서 앞서간다 해도 더는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주 NXC 회장이 연루된 ‘넥슨 스캔들’과 게임업계 종사자 사망사고 등이 겹치면서 국내 게임업계에 위기감이 퍼지고 있다. 이에 대해 김 사무국장은 “한국 게임산업의 돌파구는 결국 이 분야 종사자들이 만들어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셧다운제도 같은 잘못된 정책으로 산업 발전을 저해하지 않고, 게임업계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자신의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 그러면 게임산업의 또 다른 전기가 마련될 것”이라고 밝혔다.  





주간동아 2016.08.10 1051호 (p39~74)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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