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9

2016.08.03

국제

IS, 필리핀 거점 삼아 동남아 공략

무장단체 ‘아부 사야프’ 중심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 규합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16-07-29 17:2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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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리핀 수도 마닐라에서 남쪽으로 700km 떨어진 민다나오 섬. 넓이 9만4630km2, 인구 2200만여 명인 이 섬은 도서(島嶼)국가인 필리핀에서 루손 섬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본래 이 섬은 이슬람교를 믿는 무슬림이 14세기부터 살던 곳이다. 필리핀 국민의 85%는 가톨릭교를 믿지만 이 섬에서는 주민의 25%인 550만여 명이 무슬림이다. 무슬림이 많은 이유는 이슬람 국가인 말레이시아와 지리적으로 가깝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필리핀이 독립하면서 이 섬에 가톨릭 신자가 대거 이주해와 비옥한 농지를 차지했다. 이후 무슬림 주민 가운데 일부는 1970년대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 등 이슬람 반군단체를 결성하고 독립을 요구하며 필리핀 정부군과 40여 년간 무장투쟁을 벌였다. 이 때문에 15만 명이 사망했고 난민 300만 명이 발생했다. 필리핀 정부와 MILF는 2014년 3월 평화협정을 체결하고, 상당 수준의 자치가 허용되는 이슬람 자치지역을 신설하기로 합의했다. 그럼에도 일부 이슬람 반군단체는 MILF의 평화노선을 거부한 채 무장투쟁을 계속하고 있다.



    칼리프가 통치하는 지역

    이들 중 대표적인 무장단체가 ‘아부 사야프’다. 아랍어로 ‘아부’는 아버지를, ‘사야프’는 도공(刀工)을 뜻한다. 아부 사야프는 그동안 각종 테러 공격과 외국인 관광객 납치를 자행하며 반정부 활동을 해왔다. 미국과 필리핀 정부로부터 테러단체로 규정된 이 단체는 1991년 옛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에 맞서 지원병으로 참전한 무자헤딘이 조직했다. 이 단체는 민다나오 섬 삼보앙가와 술루 군도, 바실란 섬, 타위타위 제도 등에서 주로 활동하고 있으며 그동안 국제 테러조직인 알카에다와 연계해 테러 공격을 벌여왔다. 2001년 미국 9·11 테러 이후 조직원이 1000명을 넘는 등 세력을 상당히 확대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국과 필리핀 정부군의 소탕작전으로 이 단체의 세력이 갈수록 약해졌다. 마약밀매, 아동 인신매매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며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다 2014년 7월 이슬람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가담한 이후 다시 세력을 넓히기 시작했다. 올해 1월에는 이 단체 지도자인 이슬니론 토토니 하필론(50)이 IS 최고지도자인 아부바크르 알바그다디에게 직접 충성을 맹세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웹사이트 ‘슈무크 알이슬람’을 통해 배포된 당시 동영상에는 필리핀과 말레이시아의 이슬람 극단주의 4개 단체 조직원 400여 명이 바실란에 모여 IS 문양을 새긴 깃발을 흔들며 행진하는 모습도 담겨 있다. 이들 4개 단체는 정글에 훈련 캠프도 마련해 사격, 장애물 넘기, 외줄 타기 등 게릴라 훈련까지 실시하고 있다.

    아부 사야프는 4월 인질로 잡은 캐나다인 관광객 존 리즈델을 참수하는 등 세를 과시하고 있다. 리즈델은 지난해 9월 21일 민다나오 섬 남동부에 있는 사말 섬 오션뷰리조트에 정박해 있던 요트에서 캐나다인 관광객 로버트 홀, 홀의 필리핀인 여자친구, 노르웨이 국적의 리조트 매니저와 함께 납치됐다. 아부 사야프는 리즈델을 비롯해 인질 1명에 3억 페소(약 75억9600만 원)씩 몸값을 지불하라고 캐나다 정부를 협박하다 6월 캐나다 정부가 몸값 지불을 거부하자 홀마저 참수했다. 또 3월에도 인도네시아인 14명과 말레이시아인 4명을 납치했다가 몸값을 받고 풀어주는 등 지금까지 납치한 외국인만 400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IS는 6월 21일 필리핀 남부를 ‘칼리프가 통치하는 지역(Caliphate)’으로 선언하는 내용의 21분짜리 동영상을 소셜미디어를 통해 배포했다. 이 동영상에는 시리아에서 활동하는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출신 IS 조직원들이 잇따라 등장해 아부 사야프의 지도자 하필론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말레이시아 출신으로 2014년 시리아의 IS 동남아 출신자 부대에 합류한 모드 라피 우딘은 “시리아에 갈 수 없다면 필리핀에 가서 합류하라”면서 동남아 무슬림이 하필론을 중심으로 뭉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IS는 올해 4월 하필론을 동남아 지역 아미르(사령관)로 임명한 바 있다. 하필론은 현재 ‘아부 압둘라 알필리피니’로 불린다. 미국이 현상금 500만 달러(약 56억7000만 원)를 내건 하필론은 그동안 각종 테러 활동을 배후 조종한 혐의를 받고 있다. 미국과 영국 정부 등은 최근 자국 국민에게 불가피한 일이 아니면 필리핀 남부지역 여행을 자제하라고 경고한 바 있다.

    하필론을 동남아 지부 아미르로 내세운 것으로 봐서 IS의 의도는 중동에서 멀리 떨어진 동남아를 중심으로 또 다른 ‘칼리프 국가’를 세우려는 것이라고 분석할 수 있다. 이른바 ‘원거리 칼리프 국가(Distant Caliphate)’ 전략이다. 필리핀 남부에는 공권력이 미치지 않는 섬 수백 개가 있고, 해상 교통의 요지이기도 하다.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을 공략할 수 있는 거점을 만드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볼 수 있다.



    “필리핀에 가서 합류하라”

    IS 동남아 지부는 이미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등에서 활동을 벌이고 있다. 6월 28일 말레이시아 수도 쿠알라룸푸르 인근 푸총 시에서 말레이시아 대원 2명이 나이트클럽에 수류탄을 투척해 8명이 다쳤다. IS가 말레이시아에서 벌인 첫 번째 테러였다. 수사 결과 IS가 대원들에게 총리 등 말레이시아 주요 정치인과 경찰 수뇌부, 판사 등을 대상으로 테러를 지시한 것으로 드러났다. 인도네시아 중부 자바 주 수라카르타 시에서도 7월 5일 IS 대원이 오토바이를 타고 경찰서로 진입해 자폭 테러를 감행했다. 다행히 폭탄 위력이 약해 테러범만 숨지고 1명이 부상했다. 인구 2억5000만 명인 인도네시아는 국민 대부분이 무슬림인 세계 최대 이슬람 국가다. IS에 동조하는 극단주의 단체로는 안샤루트 다울라 이슬라미야와 동인도네시아 무자헤딘 등이 있다.

    IS는 또 신규 대원 모집과 추종자 선동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대표적 사례가 6월 20일 IS가 말레이어와 인도네시아어로 된 신문 ‘알타피힌’(정복자)을 발행한 것이다. 20쪽 분량의 이 신문은 추종자들을 통해 IS의 동남아 거점인 필리핀 남부는 물론,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브루나이, 싱가포르, 태국 남부 등에 배포됐다. 이 신문은 추종자들에게 지하드와 순교를 계속할 것을 촉구하면서 극단주의 성향의 무슬림을 포섭하기 위한 내용들을 다룬다. 필리핀 남부에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출신 추종자들로 구성된 별동 조직인 ‘카티바 알 무하지르’(이민자부대)가 창설되기도 했다. 심지어 IS는 동남아 어린이들을 겨냥한 선전전에 공을 들이고 있다. 5월 16일 배포된 ‘그너라시 퍼텀푸르’(전사의 세대)란 제목의 동영상은 IS에 가담한 부모를 따라 시리아와 이라크에 간 8〜12세 동남아 어린이들이 자기 키보다 큰 AK-47 소총을 조립하고 격투기 훈련을 받는 모습을 담고 있다. 싱가포르 난양기술대 정치폭력·테러연구 국제센터 소장인 로한 구나라트나 교수는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에서 IS의 공세가 더욱 거세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게다가 IS에 가담했던 동남아 출신 대원들도 속속 귀국하고 있다. 이런 점들을 감안할 때 IS가 동남아 관광지 등에서 외국인을 상대로 대규모 테러 공격을 감행할 개연성이 높다. 중동에서 세력이 약화되고 있는 IS로선 동남아가 ‘지하드의 성지’로 가장 적합한 곳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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