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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송수권의 풍류 맛기행 | 창녕 우포늪의 붕어찜

인생의 외로움 달래는 ‘영혼食’

인생의 외로움 달래는 ‘영혼食’

인생의 외로움 달래는 ‘영혼食’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고문서(古文書)는 어디에 있을까. 우포늪이야말로 그 고문서, 그것도 살아 있는 고문서라고 말한 강병국(姜秉國·국제신문 사회 2부장) 형의 표현이야말로 우포늪을 가장 우포늪답게 표현한 글이다.

우포늪은 경남 창녕에 있다. 1억4000만년 전 해수면이 부풀어올라 낙동강을 범람하면서 토사가 토평천의 입구를 막아 배후 습지를 만들었다. 창녕군 이방면, 대합면, 유어면 일대에 둘레 7.5km로 여의도 넓이 70여만평과 맞먹는 습지가 우포늪이다. 우포(牛浦)는 우포(소벌), 목포(나무벌), 사지포, 쪽지벌로 이루어져 있다.

인생의 외로움 달래는 ‘영혼食’
살아 있는 자연사박물관으로, ‘푸른 우포 사람들’의 문현식 박사(사무국장)가 “신안 해저 유물보다 값진 생태유적지로 우리나라 자연환경 변천사를 고스란히 보존하고 있는 타임캡슐이며 유전자 창고”라고 말한 설명이 폐부를 찌른다.

겨울 우포는 철새들의 천국, 내륙습지로는 최대의 철새 도래지다. 창원 주남저수지 인근에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우포늪으로 둥지를 옮긴 때문이란다. 북녘 손님인 철새들이 석양을 등지고 노을을 비껴 내리는 모습은 가슴 속을 시원하게 훑는다. 부들과 창포, 올방개, 붕어마름, 생이가래자라풀 등이 삭아 내린 겨울 우포에서는 갈대 숲과 왕버들, 땅버들 군락지를 찬바람이 불어간다. 그러나 수심 2∼3m 안팎의 물속은 가물치, 미꾸라지, 우렁쉥이, 붕어들로 꽉 차 있다. 우포민박집의 노기열씨는 “물 반 고기 반이라 할 정도로 붕어가 많았다”면서 그물을 많이 쳐 놓는 것이 흠이라고 한다.

인생의 외로움 달래는 ‘영혼食’
우황산(牛黃山) 솔숲에는 텃새가 된 왜가리가 둥지를 틀고 있는데, 그 우황산 자락에 오직 한 집 우포민박집(055-532-6202)이 있다. ‘붕어찜’을 주로 하지만 때로는 붕어회도 가물치회도 메기탕도 손님의 입맛에 따라 척척이다. 이 집 말고도 사지포쪽의 주매마을에는 붕어집이 두세 집 더 있다. 붕어회가 껄끄럽다면 땅붕애(떡붕어)로 찜을 시키면 된다. 희나리(참붕어)는 몸 채가 날씬하고 훌쭉하여 아무래도 음식 맛으로는 떡붕어만 못하기 때문이다. 붕어찜은 4인분 2만원인데, 2인분 1만원쯤이면 족하다.



덤으로 나오는 우렁이무침과 물천어 튀김도 입맛을 돋운다. ‘입맛과 눈요기’라는 말도 있지만, 붕어찜을 시켜 놓고 오후의 노을 속을 비낀 철새를 찾아 우포늪을 빙 둘러 스산한 강 언덕의 갈대 숲 바람을 헤쳐 보는 것도 좋다. 왕버들, 갯버들의 군락지인 나무벌(목포)을 따라 쪽지벌의 붕어마름 흑요석(黑曜石) 융단을 밟고 말조개나 우렁이를 파보는 것도 겨울 우포늪의 재미다. 우포늪지기 시인 배한봉의 시는 그래서 ‘겨울 낙조’를 이렇게 읊고 있다.

‘청둥오리떼 날아오르자/ 물억새들이 일제히 소리질렀다/ 겨우내 바람과 어둠과 눈보라 속에서/ 쓰러져 마른 그 소리들이/ 하늘을 점령하자 저녁이 당도했다/ 나는 늘 늦은 것이다/ 늦어서 生의 일부분이 조금씩 뜯겨서 나가고/ 가슴에는 구멍이 뻥 뚫리는 것이다/ 그 구멍으로 자주 물이 빠져나갔다// 물 빠진 내 영혼/ 물 빠진 늪 뻘밭에 발을 내딛네/ 물고랑에는 아직도 버석거리는 얼음들/ 뻘밭에 찍힌 발자국마다/ 붉은 핏덩이 고이네… 낙조에 끌리는 서쪽 길…(하략)’

뻘밭에 찍힌 발자국에서 붉은 핏자국같은 노을을 보고 서쪽 길을 의식하는 시인의 영혼이 얼마나 외롭고 쓸쓸한가를 만나보는 것도 겨울 우포늪의 시심(詩心)이다. 그리고 밤별을 줍고 돌아와 쫀득쫀득한 붕어찜을 들거나 메기탕을 든다. 이는 곧 영양식이 아니라 영혼식(靈魂食)으로서의 입맛이다. 여행이란 늘 그렇지 않던가. 버들붕어처럼 떨림이 없는 영혼이란 얼마나 삭막한가!

그런데 참고할 것은 우포늪의 붕어는 청호지(계화 간척지)의 자치가 넘는 떡붕어와는 달리 모두가 잔챙이들이라는 사실이다. 노기열씨의 학설에 따르면 수심이 얕아서 붕어가 크지 않는다는 것이다. 우포늪의 붕어가 황달병에 좋듯이, 이곳에서 발견되어 우포늪 사무국에 보존된 빗방울화석 무늬들처럼 아침 산책길엔 또 물안개가 피어 얼마나 아련하겠는가를 상상만 해도 좋을 듯하다.



주간동아 2001.01.11 267호 (p94~94)

  • 시인 송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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