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7

2001.01.11

예산 나눠먹기… 이렇게 심할 수가

민주·한나라당 요구사업 대부분 호남·영남 편중… 각 당 관련 문서 통해 명백히 드러나

  • 입력2005-03-07 14:3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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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산 나눠먹기… 이렇게 심할 수가
    특정지역에 편중된 예산은 반드시 바로잡겠다.”(한나라당 목요상 정책위의장, 지난해 12월21일 당 3역 회의) “예산을 삭감하자는 얘기는 야당이기 때문에 그냥 한번 해보는 것이 아니다. 이대로 가면 2, 3년 후에는 나라가 파산한다.”(한나라당 이회창 총재, 지난해 12월22일 의원총회) “민원성 및 지역구용 사업은 최대한 억제한다.”(지난해 12월24일 2001년 예산안 관련 여야총무 합의사항).”

    여야가 밝혀온 이같은 미사여구는 그야말로 ‘눈속임’에 지나지 않았음이 밝혀졌다. 이는 지난해 12월24일 한나라당 예결특위가 작성해 민주당측에 제시한 협상안인 ‘한나라당 예산증액 조정명세’(이하 조정명세)와 민주당 예산안조정소위원회에서 12월25일 만든 ‘2001년도 예산안 수정안’(이하 수정안) 문서에서 드러났다.

    특히 ‘조정명세’에는 민주당의 새해 예산안을 ‘철저한 지역편중 예산’이라며 비난해온 한나라당의 이중적인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편중지역이 영남이라는 점만 민주당안과 다를 뿐 주요 지지기반인 영남 민심을 붙잡기 위해 지역 선심성 사업을 대폭 포함시키려 한 흔적이 뚜렷하다. 한나라당 비영남 지역 의원들이 “우리 당이 영남당이냐”며 반발했던 것이 납득이 갈 정도다. 특히 ‘조정명세’에는 명세가 공표되지 않는 특별교부금과 총액계상 사업 명목으로 10여개 사업 항목을 제시해 여야가 국민들 눈을 피해 이들 예산까지 ‘흥정 대상’으로 삼았음을 보여준다.

    예산 나눠먹기… 이렇게 심할 수가
    한나라당의 증액 요구 명세를 정부 소관 부처별로 들여다보면 건교부와 철도청, 해양수산부 등 각종 지역 민원사업을 다루는 부처에서 특히 이같은 점이 두드러진다.

    먼저 건교부 소관 예산. 한나라당이 요구한 21개 사업 중 영남지역 사업은 전체의 70%가 넘는 15개. 금액으로는 전체 2785억원 중 2285억원이 영남지역 사업이다. △경주 감포댐 착공비(50억원) △부산∼거제 국지도(150억원) △창원 안민터널 및 연결도로 개설(100억원) △마산만 횡단도로 건설(100억원) △대구지하철 2호선 건설 국비지원(303억원) △대구지하철 1호선 연장구간 50%지원 등이 대표적 항목이다.



    철도청 소관 사업도 사정은 마찬가지. △경부고속철도 대구 이남 구간 용지매입비(200억원) △부산∼울산 복선전철(400억원) △동해북부선 철도건설(60억원) △조치원∼대구 전철화사업(97억원) 등 전체 9개 사업 중 7개 사업(1149억원 중 858억원)이 모두 영남지역 사업으로 채워져 있다. △광안대로 건설(204억원) △부산신항 배후도로 건설(300억원) △가덕대교 건설(100억원) 등 해양수산부 예산 9건 중 7건도 모두 영남지역 사업.

    문화관광부 과학기술부 산업자원부 중소기업청 노동부 등 다른 부처 소관 예산도 양상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예를 들어 문화관광부의 경우 △부산 실내빙상경기장 건립사업 국비지원(56억원) △창원 F-3 국제자동차경주대회 개최(10억원) △2003년 하계 유니버시아드대회 국비지원(43억원) △양산 문예회관 건립지원(10억원) △반구대 암각화 관광개발사업(3억5000만원) 등 소관 사업 12개 중 9개가 모두 영남지역 사업이다.

    이중 대구지하철 2호선 건설, 부산지하철 3호선 설계비, 김해공항 진입 IC, 부산 실내빙상경기장, 부산 아시아경기대회 지원 등 수십여개 사업이 최종안에 반영됐다.

    막판 ‘거래’에서 노골적인 지역 민원 챙기기에 나선 것은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금강2지구 농업개발비(61억원)와 전주-순창 산림박물관 건설비(30억원), 광양항 동측 연결도로 건설(30억원) 등을 막판에 끼워넣었다. 특히 민주당의 경우 정부 예산안 수립 때 당정협의를 통해 민원사업을 상당 부분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내 고향 챙기기’는 결코 한나라당에 뒤지지 않는다.

    예산안 증액분이 지역 선심성 사업 위주로 짜이다 보니 사업성이 낮거나 급하게 필요하지도 않은 사업들이 대거 포함됐다. 대표적 예산낭비사업으로 언론의 질타를 받은 창원 F-3 국제자동차경주대회를 비롯, 진주 순창 산림박물관, 음성 부산 대구 근로복지회관, 부산 실내빙상경기장 등이 그런 예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예산안조정소위위원들 대부분의 지역구가 이들 지역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다. 한나라당은 소위위원 6명 중 4명이 영남에 지역구를 뒀고, 민주당은 소위위원 6명 중 3명이 호남에 지역구를 둔 의원이다.

    실제로 기획예산처가 소위 위원들의 ‘민원사항’을 받아 정리한 지난해 12월23일자 ‘예결위소위 증감요구액 사업’ 문서를 보면 이같은 점은 확실히 입증된다. 교육부 소관 사업의 경우 △전북대 자동차부품금형센터 신축(민주당 정세균 의원) △대구교대 기숙사 증축(한나라당 박종근 의원) △방송대 경기지역 학습관 신축(한나라당 이재창 의원) 등이 모두 사업을 요구한 소위위원들의 지역구와 관련있다.

    그러나 소위위원들의 계수조정작업은 낱낱이 여야 지도부에 보고됐다는 점에서 이같은 협상안을 추인한 각 당 지도부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 특히 한나라당은 편중 예산 시정과 경기 침체로 인한 국민부담 완화 등을 예산심사 원칙으로 천명했기에 ‘지역민원 챙기기’는 두 원칙을 한꺼번에 무너뜨린 이중 행태라는 비난이 일고 있다. 초반에 한나라당의 진지한 예산심사 작업에 박수를 보낸 한 시민단체 모니터 요원도 “한나라당이 선심사업이나 챙기려고 8000억원이나 순삭감했느냐”고 비난했다.

    이같은 갈라먹기식 예산조정은 여야 의원들의 강한 반발을 불렀다. 지난해 12월27일 새벽 국회 본회의의 새해 예산안 표결과정에서 투표자 238명 중 38명이 반대하고 14명이 기권하는 ‘반란’이 일어난 것은 이같은 반발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같은 와중에 한나라당 예결위 간사인 이한구 의원이 “예산심사의 기본적인 원칙마저 지켜지지 않았다”며 모든 당직을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올해 예산안 심사를 모니터한 ‘함께하는 시민행동’ 백현석 예산감시팀장은 “갈라먹기식 예산 편성으로 지역 주민들은 이익을 보겠지만 국가 전체로는 효율적인 예산 배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며 “예산을 국민의 돈이 아닌 남의 돈이라고 생각하는 의원들이 빚어낸 작태”라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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