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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리고기 천년배필, 삼복더위 물렀거라

미국 오리건의 피노 누아르

  • 김상미 와인칼럼니스트 sangmi1013@gmail.com

    입력2016-07-25 16:4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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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여름에는 가볍고 섬세한 피노 누아르(Pinot Noir) 와인이 유난히 맛있다. 무더운 날씨에는 카베르네 소비뇽(Cabernet Sauvignon)이나 시라즈(Shiraz) 와인이 너무 무겁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피노 누아르가 자라는 곳은 축복받은 와인 산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노 누아르는 기후와 토양 등 모든 조건이 갖춰져야 기를 수 있는 까다로운 품종이다. 유럽에서 피노 누아르가 맛있게 자라는 곳은 프랑스 부르고뉴 지방이 거의 유일하다. 생산량은 적은데찾는 사람이 많아 부르고뉴 피노 누아르 와인은 비싼 편이다.

    그런데 최근 신대륙 피노 누아르 와인이 부르고뉴에 당당히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그중 주목할 만한 산지가 미국 오리건 주 윌래밋 밸리(Willamette Valley)다. 이곳은 태평양의 영향으로 기후가 서늘하고 해양 퇴적물, 화산토, 토사 등 토양이 다양해 피노 누아르 생산에 최적지다. 피노 누아르를 재배한 지 겨우 50년 남짓이지만 윌래밋 밸리는 벌써 고급 피노 누아르 산지로 꼽힌다. 개성 넘치는 윌래밋 밸리 피노 누아르 와인을 즐기며 더위를 상큼하게 물리쳐보는 것은 어떨까.

    피노 누아르 와인이 처음이라면 덕 폰드(Duck Pond)를 추천한다. 덕 폰드 피노 누아르는 딸기와 라즈베리향이 은은하고 질감이 매끄러운 것이 특징이다. 덕 폰드 와이너리는 1990년대부터 피노 누아르를 생산했는데 첫해에 만든 1만2000병이 날개 돋친 듯 팔리면서 단숨에 오리건 피노 누아르의 명문으로 떠올랐다. 덕 폰드는 와이너리 소유주의 집 근처 연못 이름이다. 오리건에서 피노 누아르를 가장 많이 생산하는 와이너리지만 수수한 이름처럼 소박한 철학을 바탕으로 부드럽고 순수한 와인을 만드는 데 주력하고 있다.

    균형 잡힌 맛을 선호한다면 리브라(Libra)가 좋은 선택이다. 리브라는 서양 점성술에서 천칭자리를 뜻한다. 이 와인에는 와이너리 주인인 빌(Bill)과 린다 핸슨(Linda Hanson) 부부의 신념이 담겨 있다. 이들은 단맛과 신맛이 최상의 균형을 이뤘을 때 포도를 수확한다. 맛, 향, 산도의 밸런스가 극대화된 와인을 생산하기 위해서다. 리브라 와인은 잘 익은 크랜베리향과 오크 숙성으로 만들어진 매콤함이 매력적이다. 적당한 무게감과 함께 타닌이 살짝 느껴지고 목으로 넘긴 뒤에는 상큼한 체리향이 긴 여운으로 남는다.

    몬티노어(Montinore) 피노 누아르 와인은 복합미의 진수다. 한 모금 머금으면 검게 익은 자두와 마른 대추의 달콤한 향이 꽃, 가죽, 담배, 연기향과 함께 입안을 가득 채운다. 이런 복합미는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으로 재배한 포도에서 나온다. 바이오다이내믹이란 해, 달, 지구의 움직임에 따라 포도를 경작하는 농법으로 가축 분뇨를 암소의 뿔에 담아 삭힌 뒤 비료로 활용하는 등 친환경 포도 재배의 최고봉이라 할 수 있다.



    ‘오리고기에는 피노 누아르’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로 서양에서는 피노 누아르 와인을 오리 요리에 자주 곁들인다. 우리도 삼복더위 보양식으로 오리고기를 즐기니 여름이야말로 피노 누아르를 만끽하기에 딱 좋은 계절이다. 윌래밋 밸리 피노 누아르와 함께 오리고기를 더욱 맛있게 즐겨보자. 피노 누아르의 은은한 향이 육질을 부드럽게 감싸고 와인의 상큼한 산도가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정리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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