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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브렉시트 후폭풍 난장판 된 영국 정치

반복되는 ‘배신의 정치’…‘제2의 대처’ 꿈꾸며 구원투수로 나선 여성 후보들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브렉시트 후폭풍 난장판 된 영국 정치

영국 정치권이 브렉시트 후폭풍에 따른 여야 지도부 공백 사태를 맞아 혼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브렉시트 반대 진영을 이끈 집권여당 보수당의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국민투표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제1야당인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도 의원총회(의총)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돼 사퇴 위기에 직면해 있다.

보수당의 경우 총리직 쟁탈전이 점입가경이다. 권력을 잡으려고 30년 지기인 친구에게서 등을 돌리는 ‘배신의 정치’가 난무하고 있다. 노동당은 당대표와 의원들 간 갈등이 비등점을 넘었다. 게다가 브렉시트를 가장 강력하게 주장해온 영국 극우정당독립당의 나이절 패라지 대표도 사퇴했다.

보수당에선 캐머런 총리의 후임으로 브렉시트 찬성 진영 대표였던 보리스 존슨(52) 전 런던시장이 가장 유력한 후보였다. 유럽연합(EU)과 탈퇴 협상을 벌이려면 브렉시트를 주도한 그가 차기 총리를 맡는 게 당연한 순서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그러나 존슨 전 시장은 최측근이던 마이클 고브(49) 법무장관이 차기 총리 후보로 나서자 돌연 불출마를 선언했다. 고브 장관은 브렉시트에 반대하는 존슨 전 시장을 설득해 브렉시트 지지 진영의 선봉장으로 내세운 장본인이다. 그는 그동안 총리직에 관심이 없고 능력도 없다고 말해왔지만, 총리 후보 경선 등록 마감날 존슨 전 시장보다 한발 앞서 출마를 선언했다.



브루투스의 브루투스

고브 장관의 배신으로 ‘브루투스의 칼에 찔린 시저’ 처지가 된 존슨 전 시장은 “역사의 파도에 맞서 싸울 때가 아니라 밀려오는 파도를 타고 운명을 항해할 때”라며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비극 ‘줄리어스 시저’에 나오는 브루투스의 대사를 인용해 출마 포기의 변을 밝혔다. 두 사람은 옥스퍼드대 선후배로 대학 때 학생회장을 지냈고, 기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으며, 정치에 입문한 것도 비슷한 시기였을 만큼 30년간 절친한 사이였다.



고브 장관의 배신은 결국 권력욕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일각에선 고브 장관이 총리직을 차지하고자 사전에 치밀한 계획을 세우고 존슨 전 시장을 끌어들였다는 음모론도 제기된다. 실제로 초기만 해도 존슨 전 시장은 캐머런 총리와 마찬가지로 브렉시트에 반대했다. 두 사람 역시 명문사립학교인 이튼스쿨과 옥스퍼드대 선후배 사이다. 존슨 전 시장이 캐머런 총리보다 두 살 많지만 같은 시기 학교를 다녔고 가족끼리도 교유할 정도로 친밀한 사이였다. 그랬던 존슨 전 시장이 캐머런 총리를 배신한 것은 브렉시트 국민투표에서 승리하면 총리가 될 수 있다는 고브 장관의 설득 때문. 존슨은 캐머런에게 브루투스였지만, 또 다른 브루투스인 고브에 의해 시저가 된 셈이다. 브렉시트 후속대책을 세우지 않은 채 찬성 운동을 벌였던 게 드러나 여론의 질타를 받았던 존슨 전 시장은 불출마 선언 때문에 더욱 무책임한 정치인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배신의 아이콘’이 된 고브 장관은 총리에 등극할 수 있을까. 차기 총리는 경선에 출마한 후보들을 7월 12일까지 보수당 전체 330명 의원의 투표를 거쳐 2명으로 압축한 뒤, 전체 당원 15만 명의 투표로 9월 9일 최종 선출한다. 경선에는 고브 장관을 비롯해 테리사 메이(59) 내무장관, 안드레아 리드섬(53) 에너지부 차관 등 5명이 출마했다. 현재로선 고브 장관이 총리가 될 가능성은 낮다. “리더십이 없는 존슨 전 시장이 총리가 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는 고브 장관의 ‘변명’에 동조하는 의원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그 대신 브렉시트를 반대했던 메이 내무장관이 유력 후보로 떠오르고 있다. 원래 유럽회의론자였던 메이 장관은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EU 잔류 견해를 밝혔지만 잔류 운동과는 거리를 뒀다. 영국 남부 이스본에서 성공회 성직자의 딸로 태어난 그는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과 민간기업에서 금융 컨설턴트로 일했다. 1997년 하원의원에 처음 당선한 이후 지금까지 승승장구해왔다. 교육, 교통, 문화·미디어, 고용·연금담당 예비장관 등을 두루 거쳤다. 이민·치안·사이버안보 등에서 강경한 태도를 고수해, ‘철의 여인’이라는 말을 들었던 마거릿 대처 전 총리와 이미지가 닮았다. 메이 장관은 “브렉시트는 브렉시트다. 제2의 국민투표는 없다”면서 “국익을 위해 EU와 협상을 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총리가 된다면 대처 이후 26년 만의 여성 총리다.  



노동당 신규 당원 일주일 새 6만 명 증가

메이 장관에 대적할 후보로는 리드섬 차관이 거론된다. 존슨 전 시장도 고브 장관의 배신에 대한 보복 차원에서 리드섬 차관을 지지하고 있다. 브렉시트 찬성파인 리드섬 차관은 워릭대를 나와 바클레이스은행에서 오랜 기간 일해온 금융인 출신 여성 재선의원이다. 2010년 하원의원이 된 그는 “위기의 영국을 구해낼 제2의 대처는 바로 나”라며 “브렉시트를 지지하지 않은 메이 장관은 브렉시트를 이행할 차기 총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배신의 정치라는 ‘막장 드라마’를 연출한 남성 후보들 대신 여성 후보들이 잔류파와 탈퇴파를 대표해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형국이다.

노동당은 코빈 대표의 사퇴 거부로 갈수록 분열이 증폭되고 있다. 노동당 의원들은 6월 28일 의총에서 브렉시트 반대 운동을 적극적으로 벌이지 않았던 코빈 대표에 대한 불신임안을 찬성 172표, 반대 40표로 통과시켰다. 하지만 코빈 대표는 불신임 투표에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들어 당수직을 유지하겠다고 선언했다. 노동당 당규에 따르면 대표가 스스로 사퇴하거나 소속 의원이 동료 의원 중 20%의 지지서명을 확보해 경선을 요청하는 경우에만 대표를 교체할 수 있다.

노동당 예비내각 장관 31명 중 21명은 코빈 대표의 퇴진 거부에 반발해 사퇴했으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한 노동당 평당원들은 그를 적극 지지하고 나섰다. 최근 일주일간 코빈 대표를 지지하는 노조원 등   6만여 명이 노동당에 새로 가입했다. 영국 역사상 어떤 정당도 이렇듯 짧은 시간 안에 이 정도 규모의 신입 당원을 확보한 적은 없다. 이로 인해 노동당 총 당원 수는 45만 명을 기록하며 토니 블레어 전 총리 때의 44만 명을 넘어섰다.

그럼에도 현재로서는 노동당 당대표 경선은 예정대로 실시될 공산이 크다. 당권 도전을 선언한 앤절라 이글 의원과 예비내각 고용·연금장관이던 오언 스미스 의원이 유력한 대표 후보로 떠오른다. 인쇄공의 딸인 이글 의원은 옥스퍼드대를 졸업한 뒤 노조단체에서 활동하다 1992년 하원에 당선해 정계에 입문했다. 고든 브라운 총리 시절 재무부 차관을 지내는 등 정부에서도 요직을 맡았다. 97년 커밍아웃한 동성애자인 이글 의원이 경선에서 승리할 경우 노동당 최초 여성 대표가 된다.

브렉시트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맞아 여성 정치인들이 영국을 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주간동아 2016.07.13 1046호 (p60~61)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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