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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대화하듯 교감하는 바둑 두겠다”

제2 알파고 ‘젠’과 맞붙는 조혜연 9단

  • 조영재 자유기고가 idcyj81@naver.com

“대화하듯 교감하는 바둑 두겠다”

“대화하듯 교감하는 바둑 두겠다”

[김성남 기자]

3월 전대미문의 인공지능 알파고(AlphaGo)의 등장으로 세상이 떠들썩했다. 구글 딥마인드가 개발한 알파고가 인간계 최고의 바둑 실력자 이세돌 9단을 4-1로 이기자 전 세계인은 충격에 휩싸였다. 사회 각계각층에서는 알파고 이후 다가올 시대에 대한 전망과 예측을 끊임없이 논의 중이다.

이런 와중에 또 다른 인공지능이 인간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번에는 일본 기업 드왕고에서 개발한 ‘젠(Zen)’이다. 젠은 올해 초 세계컴퓨터바둑대회에서 페이스북이 만든 바둑 프로그램 ‘다크 포레스트(Dark Forest)’를 상대로 승리했고, 현재 알파고를 잡겠다는 목표로 일본이 국가적 차원에서 주력하고 있는 인공지능 프로그램이다.

제2 알파고를 노리는 젠이 스파링 파트너로 선택한 선수는 바로 한국 조혜연 9단(사진).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여자 바둑계를 대표하는 실력자다. 올해로 프로 입단 20년째인 조 9단은 지금까지 치른 대국 수만 900회 넘는 베테랑이며, 2010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리스트다.

젠과 조 9단의 바둑 대결은 7월 말부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제60회 유럽바둑콩그레스(European Go Congress) 기간에 펼쳐진다. 공개 해설과 함께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될 예정이다. 이로써 조 9단은 이세돌 9단에 이어 인공지능과 대국하는 두 번째 한국 기사가 된다.





‘알파고’ 기보 찾아보며 대국 준비

이번 대국 방식과 관련해 조 9단과 주최 측이 최종 조율 중이지만, 지금까지 논의된 내용에 따르면 바둑판이 아닌 컴퓨터로 바둑을 둘 예정이라고 한다. 제한 시간이 짧은 속기전으로 치를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지난번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과는 다소 차이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젠 쪽에서 제한 시간 20분을 제안해 받아들인 상황이에요. 그럼 굉장히 빠른 바둑 대결이 되겠죠. 어떻게 보면 속기전은 많은 훈련을 해온 인간에게 유리한 방식인데, 그럼에도 젠이 속기전을 원한다는 건 그만큼 자신 있다는 뜻일 거예요. 한편으론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이 장고전을 치른 것과 비교해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의미일 수도 있고요. 알파고가 하지 않은 것을 보여주겠다는 생각이 아닐까요. 알파고의 기보가 이미 나와 있는 상황에서 이번에 젠의 기보까지 공개되면 자연스럽게 알파고와 젠을 비교할 텐데, 그 또한 받아들이겠다는 의미겠죠. 여러모로 자신감이 엿보이는 상황이에요.”

조 9단은 바둑계에서 활동적이고 모험을 즐기는 여자 기사로 유명하다. 다방면에 호기심이 많아 인공지능과 바둑의 만남에 대해서도 큰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해 10월 알파고가 중국 판후이 2단과 대국을 치른 후 독자적으로 알파고를 연구해온 것은 물론이고, 올해 3월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사람 가운데 한 명이기도 하다.

“평소 바둑이 과학적 요소를 많이 품고 있다고 생각했어요. 알파고는 바둑의 통계학적이고 수학적인 면모를 가시적으로 보여줬죠.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공식, 비공식적으로 공개된 알파고 기보를 찾아 모두 분석했어요. 바둑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긴 데다 새로운 상대에 대한 예습 차원이기도 했죠. 알파고와 이세돌 9단의 대국 때는 바둑 콘서트를 열고 영어 해설을 했어요. 당시 대국을 지켜보며 인공지능에 인간이 속박당하는 것 같아 괴로운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인공지능 덕에 바둑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는 점에서는 반가웠어요.”

조 9단은 알파고 이후 바둑 종류를 3가지로 봤다. 원래 남자의 바둑과 여자의 바둑만 존재했다면 이제는 인공지능의 바둑까지 등장해 세 갈래로 나눌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모든 기사가 고유의 바둑 스타일을 지니듯 인공지능 또한 자신만의 기풍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이세돌 9단의 바둑 스타일은 힘이 세고 변화무쌍해 마법사라 불리고, 이창호 9단의 바둑은 돌부처 또는 기다림의 미학이라고 하죠. 인공지능에게도 그런 스타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제가 본 알파고는 바꿔치기에 능했고, 망설임 없이 수를 두는 모습이 특징적이었어요. 젠은 또 어떨지 무척 궁금해요.”

젠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많지 않다. 현재로서는 알파고에 가장 근접한 인공지능이라는 점 정도. 조 9단은 대국까지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젠에 대한 정보를 구하는 일에 쏟아야 하는 상황이다.   

“알파고가 그랬던 것처럼 젠 또한 비공식 대국을 많이 치렀을 텐데, 그중에서도 최신 버전을 알아내는 게 중요해요.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게 패한 이유도 알파고의 예전 기보를 공부한 탓일 수도 있거든요. 인공지능은 실력이 금세 업그레이드되기 때문에 젠의 최신 버전 정보를 구하는 게 가장 시급해요. 그러려면 젠으로 추정되는 아이디부터 찾아야 하는데, 갈 길이 멀어요(웃음). 동료들의 도움이 필요해요.”



“인공지능은 바둑의 본질 정복 못 해”

“대화하듯 교감하는 바둑 두겠다”

3월 프로 기사 이세돌 9단이 인류 최초로 인공지능 ‘알파고’와 대국을 펼쳐 화제를 모았다. [동아일보]

조 9단은 세계 소프트웨어 기업이 바둑에 주목하는 이유를 “인공지능이 커버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치를 실험하기에 바둑만 한 게임이 없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바둑에서 나올 수 있는 경우의 수가 우주의 원자 수보다 많은 10의 170승 정도로 알려져 있다. 결국 인공지능이 게임을 주도하는 상황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하는 시대적 흐름이라는 게 조 9단의 생각이다. 또한 그는 앞으로 자신에게 주어진 숙제는 인공지능과 상호교감하며 그 과정에서 인공지능에게 자극을 주는 구실을 수행하는 것이라고 내다봤다.

“예를 들어 구글이 범용 인공지능인 알파고를 활용하려는 분야 가운데 무인자동차시스템이 있어요. 작은 오류라도 사람 목숨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죠. 그렇다면 ‘이거 괜찮은 거야?’라고 의심하고 따져봐야 하잖아요. 만에 하나 문제가 있다면 바로잡아야 하고요. 이런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 지금 인간 바둑기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해요.”

조 9단은 이번 대국전에서 젠에게 질문할 리스트를 준비할 예정이다. 젠의 수법과 기풍을 밝혀냄과 동시에 동료 기사들과 과학자들로부터 궁금한 점을 접수해 대국에서 물어보겠다는 것이다.

“제가 젠에게 알파고와 다른 어떤 것을 기대하듯이, 저 또한 이세돌 9단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보여드리고 싶어요. 저는 여자 기사이니까 아무래도 감성이 풍부하고 세밀한 바둑을 보여드리지 않을까요. ‘인공지능과 과연 소통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젠과 대화하듯 바둑을 둘 생각입니다.”  

이야기는 흘러 바둑 본질에까지 가 닿았다. 바둑은 일종의 거울과 같아서 바둑을 두는 사람이 그대로 비친다고 한다. 모든 수가 선택이므로 어떤 선택을 하는지는 곧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말해주는 것과 같다. 무엇보다 성찰이 필요한 종목인데 그런 면에서 인공지능의 바둑은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조 9단의 생각이다.  

“바둑에 단 하나의 수가 존재하는 경우는 없어요. 수없이 많은 수가 존재하고 바둑을 두는 사람은 그중 하나를 선택해야 하죠. 그리고 일수불패, 즉 한 수를 두면 다시 무르지 못해요. 필연적으로 가지 않은 길이 존재하는 이유예요. 간 길과 가지 않은 길, 이 두 가지 길 모두를 포함해 바둑이라고 하는데, 가지 않은 길에 대한 가치도 규명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인간의 바둑과 인공지능의 바둑은 큰 차이가 있어요. 인공지능은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성찰을 하지 못하죠. 인공지능이 바둑에 나오는 경우의 수를 다 정복하더라도 따라잡지 못할 한 가지가 바로 그 점이에요.”



영어로 바둑 강의 도전

조 9단은 1997년 만 11세에 프로에 입단해 20여 년간 여류국수 우승 4회, 준우승 14회, 2010 광저우아시아경기대회 금메달 획득 등 수많은 기록을 세우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바둑 기사로 자리매김했다. 지난해 국내 여자 기사로는 두 번째로 500승 달성에 성공하기도 했다. 이러한 재능은 외조부로부터 물려받았다고 한다.

“외할아버지가 바둑을 좋아하셨어요. 올해 94세신데 기력은 70세 못지않으세요. 옛날에 할아버지는 아들에게만 바둑을 가르치고 딸에게는 바둑을 일절 가르치지 않으셨대요. 당신이 바둑을 배우지 못한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컸던 엄마는 제가 7세가 되자 바둑을 배우게 해주셨죠.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시작했는데 하다 보니 재미있어 그 후로는 혼자 공부했어요. 함께 둘 사람이 없어 컴퓨터에 접속해 바둑을 두곤 했는데 그게 다 실전 경험이 된 모양이에요. 제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모르고 나간 전국대회에서 우승해 모두가 깜짝 놀랐죠.”

바둑 기사들은 보통 입단하면 학업을 중단하고 프로 생활에 전념하는데, 조 9단은 여느 수험생과 다를 바 없이 똑같이 공부해 대학에 진학했고 최근 석사과정까지 마쳤다. 바둑의 세계화와 보급을 목표로 설립한 기업 ㈜더바둑의 대표이사이기도 한 그는 현재 삼성전자와 함께 8월 출시를 목표로 바둑 전용 태블릿 PC를 개발하고 있다. 조 9단이 펼쳐 보인 다이어리를 보니 일정이 하루에 서너 개씩 들어차 있었다.



“대화하듯 교감하는 바둑 두겠다”

[김성남 기자]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바둑계에서 다른 일에도 관심을 보이니 제가 유별나다고 생각하는 분도 많죠(웃음). 하지만 저는 바둑이 어떤 식으로든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싶어요. 영어로 바둑을 강의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바둑을 널리 알리려면 체계적인 전략이 필요할 것 같아 언론홍보를 배웠어요. 벌여놓은 일이 많아 조금 벅찰 때도 있지만 이런 일 모두가 바둑 공부라고 생각해요.”

젠과의 대국까지 한 달도 채 남지 않았다. 조 9단은 “바쁜 일정 속에서도 준비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젠과 대국 현장에는 알파고를 대신해 수를 뒀던 구글 딥마인드 엔지니어 아자 황 박사도 참관인으로 참석한다. 알파고 대리인으로서 젠과 조 9단을 지켜보겠다는 생각인 것으로 읽힌다. 과연 이번 대국에서 두 선수가 어떤 대결을 펼쳐 보일지, 또 이번 대국이 알파고와의 다음 대결로 이어질 수 있을지 여러 면에서 기대가 모아진다. 








주간동아 2016.07.13 1046호 (p34~36)

조영재 자유기고가 idcyj8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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