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43

2016.06.22

정치

개헌론, 野는 깃발 꽂고 與는 청와대 눈치만

대통령 임기 말 정치판 뒤엎을 잠재력도 충분

  •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 taegonyoun@gmail.com

    입력2016-06-17 15:3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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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헌론은 정세균 국회의장이 먼저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정 의장은 6월 13일 20대 국회 개원사를 통해 “내년이면 소위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이 제정된 지 30년이 된다”면서 개헌 필요성을 역설했다. 정 의장은 “개헌은 결코 가볍게 꺼낼 사안은 아니다. 그러나 언제까지 외면하고 있을 문제도 아니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정 의장은 바로 다음 날 우윤근 전 의원을 국회 사무총장으로 내정하며 “우 내정자는 ‘개헌 추진 국회의원 모임’ 간사를 지낸, 소통과 화합의 리더십을 갖춘 의회주의자”라고 인선 배경을 밝혔다. 장관급 지위인 데다 입법부를 실제로 운영하는 ‘쏠쏠한 자리’인 국회 사무총장직을 두고 ‘정세균계’로 분류되는 몇몇 전직 의원 이름이 오르내렸지만 결국 우 전 의원이 낙점된 것은 개헌을 떼놓고선 설명하기 어렵다.



    ‘강한 국회의장’이 쏘아 올린 신호탄

    사실 개헌은 국회의장의 단골 의제나 마찬가지다. 19대 국회 후반기 정의화 전 의장은 물론이거니와, 전반기 강창희 전 의장도 개헌을 공론화했다 청와대와 갈등을 빚었다. 심지어 이명박 정부 시절 18대 국회 김형오, 박희태 전 의장조차 개헌 공론화를 주장했다. 하지만 청와대의 의중, 여야 유력 대권주자들의 부상, 정권 재창출 혹은 교체에 대한 열망 등으로 개헌론은 큰 힘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분위기가 좀 다르다. 일단 정 의장이 ‘강한 국회의장’이 될 수 있는 내외부적 조건을 갖췄다. 정 의장 본인을 놓고 보면 정치1번지라 부르는 서울 종로에서 두 번 당선하는 등 6선의 경륜을 가진 데다 여당 당의장을 지낸 ‘준(準)대선후보’ 인물로, 정세균계도 거느리고 있다. 외부 여건도 좋은 것이 여소야대, 어느 한 당이 독주하기 힘든 3당 체제, 대통령 임기 말이라는 삼박자가 갖춰졌다. 전임자인 정의화 전 의장이 상당한 존재감을 피력했지만 정 의장은 그 이상이 될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또한 정 의장이 의장 임기 후 정치생활을 마감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없다.

    게다가 우 사무총장은 내정되자마자 ‘개헌특위 즉각 구성→연말 공개 논의→2017년 4월 보궐선거 시 동시 국민투표’ 같은 로드맵을 내놓으며 정 의장을 뒷받침했다. ‘정의화 의장-박형준 사무총장’보다 더 정무적으로 강한 라인업이 만들어진 것이다.



    ‘87년 체제’의 산물인 현행 헌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은 오래된 것이고, 근거도 상당히 많이 축적돼 있다. 진보적이냐 보수적이냐는 관점 차이는 있지만 영토 조항과 경제민주화 조항 개정, 국민 기본권 확충, 행정부와 의회의 관계 정립, 검찰권과 헌법재판소의 지위 등 여러 사안을 전반적으로 손봐야 한다는 연구가 많다. 전면적 개헌이 어렵다면 권력구조 부분이라도 바꾸자는 주장의 강도는 더 세다. 전통 내각제가 있고, 노무현 전 대통령이 원포인트 개헌으로 제시한 4년 연임제,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대통령선거(대선) 결선투표 도입 주장 등이 권력구조 개편에 포함된다. ‘이렇게 하자’는 데 대한 정치권의 공감대는 부족한 편이지만 ‘이대로는 안 된다’는 공감대는 광범위한 편이다.  

    정 의장이 운을 뗀 다음 날 더불어민주당(더민주)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개인적으로 개헌은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각제도 논의해야 한다”고 적극 화답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원내대표 역시 “이르면 이를수록 좋다. 그래야 내년 대선에 (개정 헌법을) 적용할 수 있다”고 맞장구를 쳤다.

    여권도 비슷한 상황이다. 새누리당 김무성 전 대표가 일찌감치 오스트리아식 이원집정부제 개헌을 주장한 것은 물론이고 홍문종, 최경환 등 친박(친박근혜) 핵심 의원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공개적으로 언급하지 않더라도 상당수 의원에게 물어보면 “개인적으로 나는 개헌론자”라는 답이 돌아오곤 한다. 정계개편론과 연결해보면 개헌론은 더 힘을 받는다. 민주당(현 더민주) 손학규 전 대표의 ‘새판짜기’론이나 “미래지향적 중도세력의 ‘빅텐트’를 펼치겠다”는 정의화 전 의장의 구상이 이런 맥락이다.

    그렇다면 이번에는 개헌이 ‘론(論·논)’을 뛰어넘을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쉽지 않다. 개헌은 국회의원 재적 과반수나 대통령의 발의→국회의원 재적 3분의 2 이상 동의→유권자의 과반 투표, 투표자의 과반 찬성으로 확정된다. 투표율이 50%를 넘지 않아도, 과반 득표를 못 해도 대통령에 당선할 수 있다는 점과 비교하면 대통령 만들기보다 더 어려운 것이 개헌이다. 말하자면 1987년 개헌처럼 정치권의 거의 모든 세력이 합의하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될 때만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차이

    일단 현재로선 청와대가 부정적이다. 참여정부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내세운 개헌론을 당시 야당 리더였던 박근혜 대통령은 “참 나쁜 대통령”이라는 단문으로 일축한 바 있다. 박 대통령은 집권 이후에도 줄곧 부정적 태도를 견지했다. 총선 패배 직후 청와대에서 열린 언론사 편집국장·보도국장 오찬에서도 “지금 이 상태에서 개헌하게 되면 경제는 어떻게 살리겠나”라며 반대 의사를 분명히 했다.

    그뿐 아니라 차기 대권후보군으로 꼽히는 인사들의 태도도 미온적이다. 더민주 문재인 전 대표는 2012년 대선 당시 중앙정부의 권한을 지방으로 분산시키고, 국무위원 인사권을 국무총리에게 이양하는 책임총리제를 공약으로 제시했다. 뒤집어 말하면 개헌에 소극적이라는 이야기다. 최근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문 전 대표 쪽 인사는 “당시 생각에서 변화가 없다고 보면 된다. 여권 일각의 이원집정부제 개헌론에는 (집권을 연장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게 문 전 대표의 생각”이라고 말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상임 공동대표는 개헌론 자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그런데 문재인, 안철수 두 사람은 개헌이든, 법개정이든 대통령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는 데는 의견이 일치한다. 정의당도 같은 노선이다. 박원순 서울시장, 오세훈 전 서울시장, 유승민 의원 등은 ‘굳이 개헌한다면    4년 중임제 쪽’이다. 개헌에 뜨뜻미지근하거나, 오히려 대통령 리더십을 강화하는 쪽의 개헌을 선호하고 있다. 박 대통령과 이명박, 김대중, 김영삼 등 역대 대통령이 모두 그랬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 다수 인사는 ‘권력을 나누는 쪽’을 선호하지만 대선후보군은 생각이 다르다는 것. 어찌 보면 ‘1부 리그’와 ‘2부 리그’의 속셈이 제각각인 것은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2부 리그 구성원 수가 아무리 많아도 1부 리그 소수의 영향력을 따라갈 수 없다는 점이다. 대선후보로 꼽히는 인물의 한 측근은 “우리도 개헌에 공감하지만 개헌 쪽에 줄을 서면 ‘대통령 될 자신이 없어서 방향 전환했다’는 이야기를 들을 것이 뻔하다는 점이 고민”이라고 토로할 정도다. 이 인사의 발언은 ‘개헌론의 정치적 약점’을 드러낸 것이다. ‘권력 분산’을 부정적 언어로 뒤집으면 ‘야합’이 된다. “국회의원끼리 다 해먹으려고, 대통령 될 자신 없는 인사들이 돌아가면서 총리라도 한 번씩 하려고 개헌한다”는 반격이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87년 체제’가 성립, 유지돼온 과정도 이를 뒷받침한다. 내각제를 포기하고 직선제를 수용하거나(노태우), 직선제를 쟁취하고 내각제 추진 약속을 파기해(김영삼, 김대중) 차례로 대권을 거머쥐었다. 하지만 초지일관 내각제를 주장하고 추진한 김종필 전 총리는 대권을 잡지도, 내각제를 성사시키지도 못했다. 국민 사이에서도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견은 많지만 그 의견은 “그러니까 대통령을 바꿔서 확 다 바꾸자”와 “개헌을 하자”로 갈리는 것이 현실이다. 후자에 힘이 실린다고 볼 증거는 아직 없다.



    박근혜 대통령의 호헌론

    렇다면 결국 이번에도 개헌은 ‘론’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할까. 필자는 ‘그렇다’는 쪽에 가깝다. 하지만 ‘개헌론’ 자체의 파괴력은 더 커질 것으로 본다. 그 파괴력이 임계치를 넘으면 어찌될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일단 청와대가 계속 ‘호헌’을 주장할지 미지수다. 참여정부나 이명박 정부 모두 청와대가 집권 후반기에 개헌을 들고 나왔다.

    참여정부 청와대 핵심에서 일했던 한 인사는 “정말 순수한 마음이었다. 당시만 해도 정권이 교체될 가능성이 높은 상황 아니었나. 중임제 원포인트 개헌이 ‘우리 쪽’에 유리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국정운영을 해보니 이대로는 안 된다는 생각이 점점 강해졌기 때문에 카드를 꺼낸 것이다. 당시 여당도 황망해했지만 야당 주자들(박근혜, 이명박)이 일축해버린 것이다. 정무적으로 좀 더 노련하지 못했다는 비판은 감수하겠지만 딴마음이 있었다는 비난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집권 후반기 청와대가 정국 주도권을 쥐는 데 개헌론만 한 것도 없지 않느냐는 지적에 이 인사는 부인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도 4년 차에 접어들면서 비슷한 명분으로 당시 이재오 특임장관을 내세워 개헌 드라이브를 걸었지만 친박계의 벽을 넘지 못했다. 두 차례 모두 박 대통령이 제일 큰 걸림돌이었단 이야기다. 그때나 지금이나 박 대통령의 호헌론은 “지금은 경제가 중요한데”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5년 중임제가 제일 좋은 제도다.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는 단점이 많다”는 식의 이야기도 없다. 호헌론이 논리나 소신의 영역이 아니라면 상황에 따라 바뀔 수도 있다. 레임덕을 방지하고 여야 차기 후보군의 경합을 오래 끌고 가기 위해서라면 개헌론은 효과적 카드다. 내각제, 이원집정부제식 개헌이 성사된다면 대통령직 퇴임 후에도 TK(대구·경북)지역이나 강경 보수층의 지지를 바탕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 게다가 야당에도 계파를 막론하고 상당한 우군이 있다는 점은 더더욱 매력적이다.

    대권의 ‘1부 리그’ 인사 가운데 일부가 개헌 쪽으로 돌아선다면 금상첨화다. 무엇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축이 될 수 있다. 유엔 사무총장 퇴임 후 지지율이 유지되는 상황에서 반 총장이 개헌론 쪽에 선다면? 메신저가 강하면 메시지의 힘도 강한 법이다. 물론 친박+반기문, TK+충청은 뻔한 카드다. 이 그림이 가시화할 경우 진보층, 야권 다수, 여권 일부는 즉각 호헌론자로 돌아설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개헌은 물 건너간다. 역대 대통령이 그랬듯, 현직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면 개헌이 안 되는 역설적 구도에 빠지게 된다. 하지만 성사가 안 된다고 해서 박 대통령이 특별히 더 손해 볼 일도 없다.

    또한 반 총장으로선 개헌이 다른 두 가지 의미로도 매력적인 카드다. 첫째, 친박에 국한하지 않고 정치적 파트너를 선택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이 넓어진다. 둘째, ‘기득권 포기’ ‘국론 통합을 위한 충정’으로 ‘개헌론’이 포장된다면 그 개헌론은 현행 헌법하의 대선에서도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결국 이번 대선 정국에서 개헌은 성사가 되면 되는 대로, ‘론’의 딱지를 못 떼면 못 떼는 대로 강한 힘을 발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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