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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청년을 위한 취업은 없다

쓰면 감점 ‘잉여스펙’ 백태

노래자랑 입상, 소맥자격증, 오바마 봉사상…과장·허위 지원서, 서류전형 탈락

  •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쓰면 감점 ‘잉여스펙’ 백태

쓰면 감점 ‘잉여스펙’ 백태

2014년 5월 대통령직속 청년위원회가 건국대에서 주최한 스펙 초월 채용설명회 참가자들이 ‘스펙보다 사람을 봐주세요’라는 내용의 현수막을 들어 보이고 있다.동아일보

전국노래자랑 주장원 수상, 가수 지망생이라면 도움이 될 만한 ‘스펙’이다. 그러나 취업준비생(취준생)이 입사지원 서류에 적었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내세울 만한 스펙이 없음을 자인하는 꼴이 돼 탈락의 빌미가 될 수 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20대 중반 남성 김모 씨. 그는 대기업 회계 분야 사원모집에 지원서를 내며 전국노래자랑 입상 경력을 기재했다. 빈칸을 한 줄이라도 채워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결과는 서류전형 탈락. 다른 대기업 재무팀에 지원한 20대 중반 여성 윤모 씨도 ‘꼼꼼하고 세심한 성격을 강조하려고’ 정리수납자격증까지 적어냈으나 서류전형의 벽을 넘지 못했다.



‘소맥자격증’ 취득을 왜 쓰나

통계청에 따르면 2월 청년(15~29세)실업률은 12.5%로 1999년 이후 가장 높다. 취업한파가 갈수록 심각해지면서 스펙 쌓기에 매달리는 취준생이 늘고 있다. 그 결과 입사지원서에 웃지 못할 황당 스펙이 등장하고 있다.

20대 후반 남성 이모 씨는 중견기업 전략기획부에 지원하면서 소맥자격증을 기재했다. 친화력을 강조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취재 중 만난 기업 인사담당자는 “소맥자격증은 몇 년 전 한 주류회사에서 펀(fun) 마케팅 차원에서 만든 것”이라며 “정식 자격증도 아닌 데다 지원 분야와 관련도 없는데 왜 쓰느냐”며 실소를 터뜨렸다. 헤드헌팅업체 ㈜엔터웨이파트너스의 이인혁 차장은 “입사지원용 자기소개서에 ‘미얀마 오지 방문 계획 중’이라고 쓴 20대 지원자도 있었다. 가지도 않은 봉사활동에 좋은 점수를 줄 리 없다. 서류전형에서 눈에 띄고자 또는 이력서 빈칸을 채우고자 말도 안 되는 스펙을 급조하기보다 차라리 기본에 충실한 서류를 내는 게 낫다”고 조언했다.



기업 인사담당자들도 불필요한 스펙을 나열하는 것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입을 모은다. 지난해 12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기업 인사담당자 211명을 대상으로 조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응답자의 25.6%가 ‘잉여스펙’을 갖춘 지원자에게 감점 등 불이익을 줬다고 밝혔다. 불이익을 주는 이유로는 ‘높은 연봉, 조건을 요구할 거 같아서’ ‘직무와의 연관성을 찾기 어려워서’라고 답한 사람이 각각 70.6%, 55.9%(복수응답)였다. ‘이력서 채우기에 급급한 것 같아서’라는 응답도 32.4%에 달했다.

업계에 따르면 대기업 통계 분야에 지원한 한 20대 후반 남성이 웹툰공모전 수상 경력을, 중견기업 인사부서에 지원한 20대 중반 남성이 안경브랜드 네임공모전 수상 경력을 내세웠으나 선발되지 못했다. 안원형 ㈜LS 인사홍보부문장(CHO)은 “지원자 중에는 수상구조요원, 스킨스쿠버강사, 스키강사, 수영강사, 행글라이더조종사 같은 자격증을 스펙으로 기재하는 이도 많다. 스포츠레저업체에 취업할 게 아니면 취미를 보여주는 자료에 불과할 뿐 스펙이 되지 못한다. 너무 다양한 취미활동을 적으면 오히려 회사 일보다 취미생활을 중시한다는 생각에 인사담당자들이 부정적으로 평가할 수도 있다. 전공과 직무, 지원 분야에 적합한 내용이 아니면 입사지원서에 차라리 쓰지 않는 편이 낫다”고 밝혔다.

취준생 외에도 스펙에 사활을 거는 이가 또 있다. 대학 입시를 앞둔 학생들이다. 모 대학 1학년 김지우 씨는 “수능(대학수학능력시험)과 내신 준비를 하느라 스펙에 신경 쓰기 힘들면 헌혈로 ‘땜빵’ 하는 경우도 있다. 한 친구는 고교 1학년 때부터 한 달에 한 번꼴로 계속 헌혈을 해 적십자에서 주는 상을 받았다”고 밝혔다. 또 “교회 주관 해외 전도회에 다녀온 뒤 마치 현지 문화·역사를 탐방한 것처럼 지어내는 경우도 있었다”고 전했다. 서울 시내 고교 3학년 박모 군은 “경쟁자의 스펙을 깎아내리려는 전략을 세우기도 한다. 예를 들어 자기보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를 모함해 벌점을 받게 하거나 일부러 싸움을 걸어 학교폭력 가해자로 만든다. 이런 사실들은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된다.”



“脫스펙이 답이다”

쓰면 감점 ‘잉여스펙’ 백태

대학 입시를 앞두고 학교생활기록부에 쓸 ‘스펙’을 만들고자 노력하는 학부모 및 수험생을 대상으로 각종 사기사건이 빈발하고 있다.동아일보

최근에는 입시를 앞둔 자녀의 스펙에 목마른 학부모를 대상으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명의의 가짜 봉사상 상장을 판매하는 사기행각을 벌인 일당이 대법원에서 벌금형을 확정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기꾼들은 “자녀가 ‘오바마 봉사상’을 받으면 국내 명문대에 특별전형으로 입학할 수 있다”고 학부모들을 유혹했고, 거기 넘어간 피해자 20여 명에게 총 1억2000만 원을 받아 챙겼다. 서울 한 유명 사립대 입학사정관 정미연(가명) 씨는 “최근 지원자의 서류를 검토하다 보면 교내외 수상 경력을 제시하는 학생이 매우 많다. 입학사정관들은 그 ‘스펙’의 진위 여부를 반드시 파악하며, 특히 사기업과 입시 학원 등이 관련된 대회라면 주관업체와 상의 성격 등을 더욱 꼼꼼히 심사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황당한 사례가 적발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정씨는 “자기소개서에 ‘국제적으로 권위 있는 세계◯◯◯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상을 받았다’고 쓴 지원자가 있었는데, 알아보니 해당 대회는 국내에서 열렸고, 참가자도 전원 한국인이었다. 이 사례처럼 날조하거나 부풀린 스펙을 적어낸 지원자는 불이익을 받는다”고 했다.

한편 최근 채용시장에서는 직무능력과 인성을 중시하는 ‘탈(脫)스펙’ 채용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정부도 내년까지 공공기관 전체에 ‘국가직무능력표준(NCS)’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NCS는 지원자에게 어학 성적 등 직무와 관련 없는 스펙을 요구하지 않고 해당 직무에 필요한 경험 및 경력을 중심으로 인재를 선발하는 제도다. 안원형 인사홍보부문장은 “최근 몇몇 대기업이 수시채용을 늘리고 스펙보다 인·적성 검사 등 직무역량을 보는 쪽으로 방향을 바꾸고 있다”며 “좋은 회사에 취직하려고 스펙 쌓기에 몰두하는 취준생이나 자식의 스펙 때문에 노후생활까지 포기한 채 뒷바라지하는 부모들을 보면 안타깝다”고 했다.  







주간동아 2016.03.30 1031호 (p30~31)

박은경 객원기자 siren52@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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