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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연재〉황경성의 일본 엿보기

치매와 ‘케어살인’

노인 표류사회, 고독사, 케어실업 등 신조어에 드리운 장수사회의 그늘

  • 홋카이도 나요로시립대 보건복지학부 교수 vianne84@nayoro.ac.jp

치매와 ‘케어살인’

치매와 ‘케어살인’

동아일보

일본은 세계사에서 전례 없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에서 고령사회로, 다시 초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이에 따라 일본은 2000년 4월부터 한국의 ‘노인장기요양보험제도’에 해당하는 ‘개호보험제도’를 시행했다. 과거 가족, 특히 여성의 의무처럼 여기던 ‘노인 케어(돌봄)’를 사회가 맡아야 한다는 데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문제는 비용이다. 2000년 도입 당시 40조 원 정도이던 것이 2014년에는 100조 원을 넘어섰고, 이 상태가 계속될 경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가 전원 75세 이상 후기고령자에 속하는 2025년 무렵이면 2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된다. 이처럼 예상을 훨씬 웃도는 수령자 수와 그에 따른 재정적 부담은 국가 존립을 위협하는 요소로 대두되고 있다. 결국 일본 정부는 증세를 통해 재정적 안정을 꾀하는 한편, 경증 대상자의 혜택을 줄이고 제도 이용 시 자기부담률을 상향하는 등 서비스를 축소하면서 수령자 재정 부담을 늘리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편하고 있다.  
초고령사회 일본에서는 수많은 신조어가 탄생하고 있다. 독거노인, 노인 표류사회, 무연고 노인, 고독사, 고립사, 노파 유기사회, 노노케어, 케어실업, 케어살인 등 어느 것 하나 긍정적인 의미로 사용하는 말이 없다. 그중에서도 일본 현실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말이 ‘케어살인’이다.



일본을 울린 ‘온정판결’  

몇 년 전부터 일본에서 치매나 와상(臥床) 노인 등을 돌보다 한계에 부딪혀 살인에 이르는, 이른바 케어살인에 관한 기사를 종종 접할 수 있다. 올해 초에는 사망한 지 1년 반이 지나서야 알려진 한 남성의 쓸쓸한 죽음이 화제가 됐다. 이 남성이 지니고 있던 가방 안에는 자신과 모친의 탯줄, 그리고 이것을 같이 화장해달라는 유서와 100엔짜리 동전 몇 개뿐이었다.
이 남성의 이야기는 1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 2월 교토에서 치매에 걸린 80대 중반 어머니를 돌보며 생활하던 50대 중반 아들이 어머니의 목을 졸라 살해하고 자신도 자살을 꾀했지만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는 한밤중에도 한 시간이 멀다 하고 화장실을 찾았고, 그런 어머니를 간병하면서 아들은 만성 수면 부족 상태로 5년간 직장생활을 계속했다. 하지만 치매가 점점 심해진 어머니가 주변을 배회하다 경찰의 보호를 받는 일이 잦아지자 아들은 주변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자 직접 간병을 하기로 하고 직장을 그만뒀다. 어머니를 24시간 돌볼 수 있게 됐지만 수입이 끊겨 케어 비용뿐 아니라, 집세도 낼 수 없는 상황에 내몰려 지방자치단체에 생활보호 요청을 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평소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명심하고 있던 이 남성은 마지막 선택으로 자살을 결심했다. 어머니를 휠체어에 앉혀 마지막으로 교토 시내 관광을 한 뒤 사건 당일 이른 아침 강둑길로 가서 어머니에게 삶의 대한 자신감을 잃었다고 고백했다. 이를 들은 어머니는 담담히 수긍하면서 “사랑하는 아들과 같이 있어 기뻤다”는 말과 함께 “미안하다”고 되뇌었다고 한다. 이어 “네가 나를 죽이지 못하면 스스로 죽겠다”는 말에 아들은 어머니의 목을 졸라 살해했다.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판사는 가해자에 대한 심판보다 제도와 행정의 모순을 환기하는 판결문 내용으로 일본 사회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판사는 “헌신적인 케어를 받다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감사했을 뿐 결코 원망을 품지 않았을 것이고, 엄벌도 바라지 않을 것”이라며 가해자 어머니의 심정을 헤아린 뒤 “지금 심판받고 있는 것은 일본 케어제도와 행정”이라고 지적했다. 이 사건은 ‘온정판결’이라는 제목으로 대서특필돼 일본 사회에 인지증(치매) 고령자와 가족의 문제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  



2025년 고령자 5명 중 1명 인지증

기억력 및 판단력의 현격한 저하와 함께 환각, 망상, 야간 배회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 것을 흔히 치매라 하는데, 정식 명칭은 ‘인지증’이다. 고령화와 함께 인지증 환자도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일본이 인지증 고령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2002년 당시 파악된 환자는 150만 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일본 정부는 2020년까지 300만 명을 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으나 2013년 이미 450만 명을 넘어섰고, 2025년에는 700만 명을 넘어 고령자 5명 가운데 1명이 인지증 증세를 보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오렌지플랜’이라 부르는 인지증 시책 추진 5개년 계획을 2013년부터 추진하고 있다. 2017년 마무리되는 이 프로젝트의 주 내용은 인지증 고령자 조기 발견과 치료를 위한 전문의 500명 양성, 인지증 조기 진단 등을 담당할 의료기관 500개 배치, 간호사나 보건사가 인지증 환자 및 가족에게 상담과 조언을 해주는 ‘인지증 초기 집중지원팀’ 시범 운영 등이다. 그 성과를 토대로 제도화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또 인지증에 걸려도 가능한 한 지역에서 생활하도록 시설과 전문인력을 확충하기로 했다.  
한국 통계청 자료를 보면 고령층(65세 이상) 10명 가운데 6명이 연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2014년 국민연금,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공적연금을 받는 고령자는 전체 고령인구의 39.6%에 불과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15년 12월 배포한 연금개혁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가계소득이 중간층 소득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노인 가구의 비율은 거의 50%로 34개 회원국 가운데 가장 높았으며, 두 번째로 높은 호주(36%)와도 격차가 컸다. 노인 자살률은 어떤가. OECD 회원국 가운데 2004년부터 내리 11년간 부동의 1위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는 것도 한국이다. 한국과 마찬가지로 노인 자살률이 높았던 일본은 10년 전부터 체계적인 대책으로 감소 추세를 보이는 반면, 한국은 여전히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고령자를 둘러싼 여러 상황을 포괄적으로 나타내는 지표가 있다. 영국에 본부를 둔 ‘헬프 에이지 인터내셔널(Help Age International)’이 공표한 ‘세계노인복지지표(Global Age Watch Index) 2015’가 그것이다.



치매와 ‘케어살인’

일본 교토시 한 사회복지시설에서 개호복지사 이노우에 주리 씨(오른쪽)가 한 할머니를 돌보고 있다. 동아일보

이 지표는 연금지급률과 고령자 빈곤율 등 소득 보장, 평균수명과 건강수명 등 건강 상태, 고용·교육 수준이나 공공교통기관의 접근성 등 환경요소를 평가해 순위를 매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이 8위로 유일하게 20위 안에 들었고, 한국은 60위로 베트남(41위), 스리랑카(46위)보다도 낮다.
무엇보다 이런 상황 아래서 밀려드는 또 하나의 큰 파도가 고령자 부양과 케어 문제다. 장수는 인류의 진보를 나타내는 축복의 지표임이 분명하나, 인체의 생리적 특성상 신체 기능의 쇠퇴는 피할 수 없는 숙명이고 부수적으로 장애 및 질병이 뒤따른다. 즉 고령자 생활보장과 함께 보건의료 및 케어 보장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가 국가와 사회에 던져진 큰 과제다. 2년 전 한 국내 연구기관에서 케어살인에 대한 강연을 했는데, 관련 용어의 생소함만큼이나 인지증 고령자 관련 시책 및 제도가 한국에 마련돼 있지 않다는 사실에 놀랐다. 관련 제도 및 정책을 효율적으로 시행하려면 인지증 고령자의 실태부터 파악해야 한다. 앞서 이 문제를 경험한 일본의 실상과 시책은 한국에 많은 시사점을 주리라 생각한다. 인지증 고령자와 그 가족은 이미 절박한 상황에 내몰려 있다.






주간동아 2016.03.23 1030호 (p64~65)

홋카이도 나요로시립대 보건복지학부 교수 vianne84@nayoro.ac.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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