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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수치 여사의 ‘수렴청정’ 실험

인도의 실패 전례, 여전한 군부 세력…성공 관건은 과감한 개혁·개방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수치 여사의 ‘수렴청정’ 실험

미얀마에서 ‘21세기판 수렴청정(垂簾聽政)’이 실시된다. 수렴청정이란 과거 왕정시대 어린 왕이 성인이 될 때까지 왕의 모친이나 조모가 국정을 대리로 맡아보던 관행을 말한다. 당연히 민주주의시대에는 걸맞지 않은 이 제도가 54년 만에 문민정부가 출범하는 미얀마에서 부활한 것이다.
미얀마 문민정부는 4월 1일 군부독재에서 벗어나 새로운 민주 통치를 시작한다. 첫 수장인 틴 초 대통령은 집권여당인 아웅 산 수치 민주주의민족동맹(NLD) 총재의 최측근. 수치 여사가 이끌어온 NLD는 지난해 11월 8일 실시된 총선에서 대통령을 단독 선출할 수 있는 과반 의석 329석을 넘어 상·하원 전체(657석)의 59%(390석)를 확보한 바 있다. 그러나 압도적인 승리에도 수치 여사는 대통령이 될 수 없었다. 군부가 2008년 헌법 제59조에 외국인 배우자나 자녀를 둔 사람은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내용을 넣었기 때문. 물론 수치 여사를 의식한 조치였다. 수치 여사의 남편은 고인이 됐지만 영국인이고 아들 2명도 모두 영국 국적이다.
수치 여사가 대통령이 되려면 개헌으로 헌법 제59조를 수정하는 길뿐이다. 하지만 현행 헌법 규정상 군부는 전체 의석의 25%에 해당하는 상원 56석, 하원 110석을 할당받았다. 여기에 군부의 지지를 받는 통합단결발전당(USDP)의 의석수(상원 11석, 하원 30석)를 합치면 군부가 통제할 수 있는 의석 비율은 전체의 31%이다. 개헌을 하려면 전체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필요하다. 이 때문에 총선 직후 수치 여사는 군부와 협상을 벌였고, 과거 민주화운동 탄압에 대한 보복 조치를 취하지 않겠다는 화해의 제스처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군부와 민 아웅 흘라잉 군 최고사령관은 개헌 불가 방침을 분명히 했다.



소냐 간디 - 만모한 싱의 경우

그 대신 수치 여사가 택한 방식은 자신이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인물인 틴 초를 차기 대통령으로 지명하는 것. 미얀마의 대통령은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선출된다. 상원과 하원 및 군부 의원단이 각각 1명씩 대통령 후보를 낸다. 투표인단은 상·하원 의원 657명이다. 3명의 후보 중 다수표를 받은 1명이 대통령, 나머지 2명은 부통령이 된다.
틴 초는 하원에서 대통령 후보로 뽑혔다. 상원에서는 NLD의 추천을 받은 소수민족 친족 출신 헨리 밴 티유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군부는 민트 슈웨 양곤 지사를 후보로 내세웠다. 슈웨 지사는 1992년부터 2011년까지 미얀마를 통치했던 군부 독재자 탄 슈웨 장군의 측근으로, 양곤 지역 군사령관으로 재임 중이던 2007년 승려들이 주도한 반(反)정부 민주화 시위 ‘사프란 혁명’을 무력 진압했던 강경파다. 이러한 성향의 인사를 대통령 후보로 지명한 군부의 의도는 물론 수치 여사를 적절히 통제하려는 것이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틴 초는 3월 15일 상·하원 합동회의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올해 70세인 틴 초 대통령은 수치 여사보다 한 살 아래로, 1946년 미얀마 최대도시 양곤에서 태어났다. 수치 여사의 고교   1년 후배이기도 한 그는 양곤대에서 경제학을 전공했으며, 수치 여사가 수학한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으로 학위를 받았다.
집안 역시 NLD와 끈끈한 관계를 맺어왔다. 미얀마의 ‘국민 시인’으로 통하는 부친은 1990년 총선에서 NLD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지만, 군부가 총선을 무효화하면서 의정활동은 하지 못했다. 장인은 수치 여사와 함께 NLD를 결성한 창당 멤버로 사무총장과 회계책임자 등 주요 직책을 역임했다. 부인은 2012년 보궐선거에서 NLD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고, 지난해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해 현재 하원 외교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수치 여사의 수행비서 겸 운전기사로 일하기도 한 그는 종종 수치 여사의 ‘오른팔’이라는 말을 들어왔다. NLD 고위간부들은 이구동성으로 “틴 초 대통령은 수치 여사의 뜻에 따라 국정을 충실하게 운영할 믿을 만한 대리인”이라고 밝혔다. 미얀마 정치 분석가들도 “수치 여사에게 그는 두말할 여지없이 진실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국가방위안보위원회 과반이 군부

그럼에도 수치 여사의 수렴청정이 성공할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당장 인도의 과거 사례만 봐도 그렇다. 인도 최고 정치가문인 네루-간디가의 며느리인 소냐 간디 국민회의당 총재는 만모한 싱 총리를 앞세워 2004년부터 10년간 나라를 다스렸다. 인도의 첫 여성 총리를 지낸 인디라 간디의 며느리였던 소냐 총재는 남편 라지브 간디 전 총리가 1991년 암살당하자 정치에 입문해 국민회의당을 이끌어 총선에서 승리한 바 있다.
당시 그가 총리가 되지 못한 것은 이탈리아 출신이었기 때문. 소냐 총재는 1983년 인도 국적을 취득했지만 ‘외국인’이라는 논란이 벌어지는 것을 우려한 결과였다. 그러나 국민회의당은 2014년 총선에서 민족주의 정당인 인도국민당에 참패해 정권을 넘겨주게 된다. 결과적으로 대리통치에 실패한 셈. 싱 총리가 상당한 권한을 행사하면서 실세인 소냐 총재와 사사건건 마찰을 빚었기 때문이다.
수치 여사의 수렴청정 역시 자칫 소냐 총재의 전철을 밟을 수 있다. 막후 실력자와 허수아비 대통령 사이에서 갈등이 불거지면 국정 공백과 분열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틴 초 대통령은 일단 수치 여사의 생각과 비전에 따라 국정을 운영할 것으로 보이지만, 수치 여사와 마찰을 빚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다. 결정권을 남에게 맡기지 않는 수치 여사의 통치 스타일은 대통령으로 하여금 아무런 권력도 행사하지 못하게 만들 수도 있다. 특히 실권 없는 대통령을 놓고 수치 여사와 군부가 부딪힐 경우 문민정부는 걷잡을 수 없는 회오리 속으로 끌려들어갈지도 모른다.
아직 권한이 막강한 군부는 새 대통령이 실권을 행사하지 못하고 꼭두각시 노릇을 할 경우 다시 권력을 장악할 가능성도 있다. 군부는 국방부, 내무부, 국경경비대 등 3개 부처에 대한 통제권을 헌법으로 보장받고 있다.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국가방위안보위원회(NDSC)에도 부통령과 내무·국방·국경경비 장관, 군 최고사령관 등 위원 6명을 둘 수 있다. 반면 수치 여사 측은 이 회의에서 대통령과 부통령 1명, 외무 장관, 상원의장과 하원의장 등 5명을 위원으로 두고 있다. 군부를 적절히 통제하려면 틴 초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수치 여사와 NLD를 지원해야 한다는 뜻이다.
수치 여사는 ‘장미는 다른 이름으로 불려도 여전히 향기로울 것’이란 희곡 ‘로미오와 줄리엣’의 대사를 인용하면서 강력한 권력 의지를 보여왔다. 수치 여사의 수렴청정이 성공하려면 군부가 다시 권력을 잡을 수 없도록 개혁·개방 정책을 적극 추진하는 게 최선의 방책일 듯하다. 








주간동아 2016.03.23 1030호 (p62~63)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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