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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 커버스토리 “사드 수도권 방어 불능”

강대국 체스판에 올려진 한국

美·中이 북핵 해결 노력? 국익 앞세운 영역 싸움…美 ‘사드’ 카드 언제든 다시 꺼내 들 것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강대국 체스판에 올려진 한국

2007년 한 해 동안 미사일방어(MD) 문제는 서방 전역에서 외교적 핫이슈였다. 2006년 초 미국은 폴란드에 미사일 요격 기지를, 체코에는 레이더 기지를 설치하는 방안을 공식 제의했고, 양국은 수용 의사를 밝힌다. 그러자 그레고리 이바노프 당시 러시아 국방장관은 “미국이 동유럽에 MD를 배치한다면 러시아는 동유럽으로 미사일을 발사할 것”이라고 대응하고 나섰고, 폴란드와 체코의 관련 움직임에는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여기에 더해 러시아는 2007년 연말 다탄두탄도미사일 등을 줄이어 발사함으로써 MD체제에 대한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이들 미사일은 그간 개발된 미국의 MD 방어망을 뚫을 수 있는 최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었다. 미국은 동유럽에 MD 기지를 배치하려는 이유를 이란 등 이른바 ‘악의 축’ 국가를 견제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지만 실제로는 러시아의 ICBM을 염두에 둔 것임을 부인하기 어려웠고, 러시아 역시 이를 모르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유럽을 달구던 MD 논란은 2009년 백악관 주인이 바뀌면서 일단락된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조지 부시 행정부가 추진하던 동유럽 MD 계획을 철회하기로 결정, 공식 발표한다. 쏟아지는 공화당 의회의 반대는 ‘이란 핵 문제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라는 기치를 내건 신임 대통령의 패기에 묻혔다. 문제는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는 사실. 동유럽으로 확장되는 미국의 군사력 배치를 ‘지정학적 공격’으로 해석한 러시아는 2014년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는 무리수를 던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극단의 긴장 속에서, 2014년 10월 미국은 루마니아에 미사일 방어 기지를 완공하고 지상발사용 SM-3 요격미사일과 AN/SPY-1 위상배열 레이더 및 지휘통제시설을 배치했다. 2015년 4월에는 폴란드가 패트리엇 요격미사일 체계를 도입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렇게 MD를 둘러싼 미국과 러시아의 갈등 수위는 다시 한 번 비등점을 찍고 있다.



외교사상 최악의 참사

강대국 체스판에 올려진 한국

2007년 당시 미국과 러시아의 미사일 경쟁.

눈 밝은 독자라면 쉽게 읽을 수 있을 사실 하나. 주한미군기지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둘러싸고 지난 한 달간 벌어진 일들은 2007~2009년 동유럽에서 벌어진 MD 논쟁의 완벽한 복사판이다. 유라시아 대륙의 동쪽 끝과 서쪽 끝이라는 배경, 중국과 러시아라는 등장인물만 다를 뿐이다. 상대에 인접한 우방국가에 MD체계를 배치하겠다고 선언한 뒤, 상대가 격렬하게 반대하자 이를 틀어 문제가 되는 ‘불량국가’의 핵 개발 시도를 저지하는 작업에서 협조를 얻어내는 워싱턴의 외교 행보가 그것이다. 이 게임에 폴란드든, 체코든, 한국이든 정작 MD체계가 배치될 나라의 목소리는 애초부터 반영될 여지가 적었다는 점 역시 마찬가지다.
날아오는 미사일을 막아내는 미사일. 전혀 위험해 보이지 않는 이 무기체계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강대국 국제정치의 핵심 키워드다. 일반적인 논리로 따지자면 공격용이 아니므로 상대가 왈가왈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전력의 상대적 규모를 중시하는 군사전략의 방정식을 대입해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상대가 미사일을 막을 수 있다면 내 미사일은 그만큼 줄어든 셈이고, 따라서 상대는 그만큼 더 많은 미사일을 갖게 된 것과 다름없으므로 나에 대한 위협 크기는 증가한다.’ 이 간단한 명제로, 냉전시기 미국과 소련은 상대보다 1기라도 더 많은 ICBM을 배치하고자 총력을 기울였다.
그 무의미한 군비 경쟁을 끝내기 위한 시도가 바로 미국과 소련이 1972년 체결한 탄도탄요격미사일(ABM) 제한 협정. 요즘 말로 하자면 ‘MD체계 금지’였다. 그러나 81년 레이건 행정부는 이를 폐기한 뒤 당시에는 전략방위구상(SDI)이라 부르던 MD를 본격 추진하기 시작한다. 냉전은 끝났지만 ABM 비준을 거부하고 동아시아 MD 구축에 매진하던 클린턴 행정부의 명분이 바로 북한 핵 문제였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북한은 핑계일 뿐, 미국의 타깃은 바로 자신들이라는 판단이었다.
한국 외교사(外交史) 최악의 참사로 기록된 2001년 ‘ABM 조약 파문’은 이 문제를 둘러싼 강대국 정치를 한국 정부가 제대로 꿰뚫어보지 못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해 2월 열린 한러 정상회담 공동성명에는 ‘ABM 조약이 전략적 안정의 초석이며 이를 보존·강화’한다는 문장이 담겨 있었다. 이 문구에 미국의 조약 비준을 압박하려는 러시아의 속내가 알알이 담겼음을 당시 한국 외교당국은 알지 못했다.
동맹국 한국이 자신들에게 노골적으로 반기를 들었다고 판단한 부시 행정부는 곧바로 이어진 한미 정상회담에서 당시 김대중 대통령을 ‘this man’이라고 지칭하며 감정을 드러낸다. 수차례 사과와 관련자 문책, 줄줄이 이어진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미국의 비준 거부로 힘을 잃은 ABM 조약이 2002년 공식 폐기된 이후, 일본과 함께 동아시아 MD를 본격화한 백악관은 끊임없이 한국의 동참을 촉구해왔고, 이는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정부를 거치며 한국 외교의 가장 은밀한 현안으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른다.



한국의 안보? 미국의 지렛대

사드 문제에 깔려 있는 강대국 갈등의 역사적 맥락을 여기까지 정리해놓고 보면, 이와 관련해 국내에서 그간 벌어진 논쟁이 실제로는 거의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사드 레이더가 중국 미사일 전력의 움직임을 얼마나 면밀하게 잡아낼 수 있는지, 북한의 미사일을 막아내는 데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 서울을 방어하기 위해서는 어디에 배치해야 하는지 등은 문제의 본질이 아니라는 의미다. ‘사드는 방어용이므로 중국이 왈가왈부할 수 없는 주권의 영역’이라는 말이나, ‘베이징에 우리 처지를 터놓고 이야기하면 양해할 것’이라는 기대는 모두 큰 틀을 읽지 못한 희망사항에 불과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A2/AD(anti-access, area denial). 우리말로는 흔히 ‘반접근-지역거부’로 번역되는 이 용어는 21세기 중국의 군사전략 개념을 요약한 키워드다. 상대 전력이 연안으로 접근하는 것을 막아내고 해안으로부터 일정 범위 이내에 진입하는 해상 전력은 철저히 무력화한다는 게 그 골자다. 일정 범위 안으로는 상대가 들어오는 일 자체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선 긋기’다. 베이징이 코앞인 서해가 그 영역에 포함된다는 사실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중국이 다양한 무기체계 개발로 A2/AD를 본격화하자, 미 국방부는 유사시 항공모함을 괌 바깥으로 빼내고 스텔스 전투기와 탄도미사일 등 원거리 공격무기를 초기 전쟁수행 핵심 수단으로 삼는 공해전(Air-Sea Battle) 개념을 정립해 서태평양 전력 재배치를 진행해왔다.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재균형 정책(Rebalancing to Asia)을 공식화한 이후 일본과 대만은 물론, 호주에 이르기까지 배치 전력을 강화한 배경이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다. 바로 주한미군이었다. 일본과는 공동 MD 개발을 추진한 반면, 공식 참여를 유보해온 한국에는 관련 전략 자산을 따로 배치하지 않았기 때문. 사드는 이러한 그간의 기조를 깨고 워싱턴이 한반도에 ‘새로운 촉수’를 뻗은 첫 사건이다. 최소한 강대국 사이의 게임 룰로 보자면 그렇다. 진짜 의미는 미국의 MD체계 하부구조가 한반도에 진출한다는 것이고, 맞닿아 있는 중국과 미국의 지정학적 영역 다툼이 본격화한다는 신호탄에 가깝다. 이름하여 ‘개념(concept)의 전쟁’이다.
동유럽에서의 MD 논쟁이 하층 방어체계인 패트리엇 요격미사일을 둘러싸고 벌어졌음을 감안하면, 이미 주한미군기지에 패트리엇이 배치된 한반도는 중국의 눈으로 보자면 ‘많이 참아준’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한 수 위인 고고도요격체계 사드의 배치는 더는 좌시할 수 없는 선택이었던 셈. 이를 꿰뚫어본 미국은 베이징을 움직일 지렛대로 사드를 활용했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 대북제재에 합의하며 목적을 이룬 지금은 한 발짝 물러서는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MD를 매개로 대(對)러시아 외교전에서 기세를 올렸던 2009년의 경험을 고스란히 활용한 결과물이다.





희토류 금지에 단서조항이 없는 이유

문제는 앞으로다. 위에서 봤듯 유럽에서의 MD 갈등은 우크라이나 사태라는 파국의 도화선 노릇을 했다. 사드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지금 미·중 간 갈등이 그 수준까지 확장될 공산은 극히 낮아졌지만, 중국이 자신의 뜻과 어긋나는 선택을 할 때마다 워싱턴은 언제든 이 카드를 다시 꺼내 들 수 있다. 한마디로 미국이 쥔 꽃놀이패다. 남중국해 갈등처럼 우리와 관계가 적은 이슈를 위해 지렛대로 활용할 개연성도 충분하다. 사드가 있으면 북핵으로부터 안전해지고, 없으면 고스란히 위험에 노출된다고 믿어온 우리만 ‘강대국들의 체스판’을 읽지 못했을 따름이다.
그게 전부일까. 3월 3일 유엔 안보리를 통과한 대북제재 결의 2270호에는 전례 없이 강도 높은 제재조치가 포함됐으나, 북한을 드나드는 화물 검색이나 광물자원 수출 금지 같은 대부분의 항목마다 ‘민생경제 관련 부분은 제외한다’는 단서가 달렸다. 무엇이 핵 개발용이고 무엇이 민생경제용인지 판단하는 건 개별 국가, 특히 북한 무역의 90%를 차지하는 중국의 몫으로 남아 있다. 사드를 포함해 한국과 미국이 자신의 이익에 반해 움직인다고 판단하는 순간, 언제든 제재를 무력화할 수 있는 카드를 베이징은 쥐게 된 셈이다. 상대를 움직일 지렛대의 맞교환, 이것이야말로 이번 미·중 합의의 본질이다.
단서조항이 없는 제재조치가 딱 하나 있다. 망간 등 북한산(産) 희토류 수입 금지다. 최근 북한은 관영언론을 통해 희토류 수출을 외화 획득 돌파구로 독려하고 있지만, 이제 전 세계 어느 나라든 이를 수입하는 건 예외 없이 불법이다. 공교로운 것은 현재 세계 희토류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생산 국가가 바로 중국이라는 것. 안드레아 버거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 선임연구원은 “이 조치에만 예외 조항이 달리지 않은 건 잠재적 경쟁자를 제거하려는 중국의 속내가 반영된 결과”라고 풀이한다. 강대국들이 북핵 해결을 위해 노력한다고 믿는가. 손톱만한 행보에도 자신의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그들의 계산 앞에서, 한국만이 무지한 채 홀로 서 있다.






주간동아 2016.03.09 1028호 (p21~23)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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