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28

2016.03.09

집중 분석

성큼 다가온 ‘핵무장 북한’ 상상할 수 없는 일을 상상하라

평양의 핵 실전배치 가능성 한국은 방관, 미국은 평가절하…北 핵 운용전략 분석부터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6-03-04 15:43:17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소련의 핵 능력이 비약적으로 강화되던 1957년, 존 덜레스 미국 국무부 장관이 서독을 방문했다.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핵우산에 대해 서독 국민이 갖고 있을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 ‘미국이 정말 함부르크와 뮌헨을 지키기 위해 뉴욕과 시카고를 포기할까’라는 질문에 대해, 소련과 핵전쟁을 벌이는 한이 있어도 동맹을 지키기 위해 핵폭탄을 사용하겠다고 확약한다는 게 애초 방문 목적이었다.
    그러나 정작 덜레스 장관이 콘라드 아데나워 서독 총리를 만났을 때 맞닥뜨린 우려는 정반대였다. 아데나워는 덜레스에게 제발 핵폭탄으로 서독의 도시를 방어하지 말아달라고, 그 경우 수백 발의 원자폭탄이 떨어질 테고 독일이라는 나라뿐 아니라 독일 민족의 소멸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당시 소련 탱크부대가 서독을 침공할 경우 핵으로 대응한다는 미군의 작전계획 시뮬레이션을 감안하면 이는 충분히 근거 있는 우려였다. 냉전이 시작된 지 한참이 지났고 수천 기의 핵폭탄을 만들어냈지만, 이때의 미국은 아직 핵무기를 이해하지 못했다.  - 폴 브래큰, ‘제2차 핵시대’(2012) 제1장에서 발췌 인용

    4차까지 진행된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실험, 그리고 KN-08로 대표되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과시. 공식적으로는 어느 나라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제 북한의 핵 능력이 상당 부분 궤도에 올랐음을 부인하는 전문가는 없다. 헌법에 ‘핵무력’을 박아 넣은 평양의 도발적인 행보와 선언 앞에서 이를 되돌리려는 국제사회의 노력은 빛이 바랜 지 오래다. 북한 핵 문제를 바라보는 그간의 관점이 외교 혹은 국제관계 차원이었다면 이제 사안은 군사, 정확히 말해 군사기술의 문제로 접어들었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우리는 과연 준비가 돼 있을까. 단거리·장거리 핵 투발 능력을 구축한 뒤 평양이 이를 어떻게 활용하려 할지, 실제로 어떤 형태의 핵 전력 구조를 구축하려 하는지, 긴장이 고조되는 순간 꺼내 들 전략과 교리는 무엇인지 과연 우리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정부와 학계를 막론하고 북핵 문제에 대한 논의는 평양의 핵 보유 행보를 저지할 수 있을까에만 집중된 상황. ‘북한이 실제로 핵을 실전에 배치한다면 이를 어떤 작전개념에 따라 운용, 활용할 것인가’라는 질문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돌아보는 이가 없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과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설명이다.
    앞서 서독 사례를 한반도 상황에 맞춰 재구성해보자. 북한이 핵을 사용한다면 그 타깃은 어디일까. 제일 먼저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은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에 대한 대규모 핵 타격이다. 그러나 이 경우 미국의 강력한 전략핵 보복으로 평양 역시 쑥대밭을 피하기 어렵다. 그 대신 북한이 미군 전시 증원의 통로가 될 부산항 등 후방에 소규모 전술핵 공격을 가한다면? 이에 대해서도 미국이 평양에 대한 핵 공격으로 응징할 경우 북한 역시 서울에 대한 대규모 핵 보복에 나설 공산이 크다. 한국은 혹은 미국은 이를 감수할 수 있을까, 아니면 부산에 상응하는 원산 등에 전술핵 보복을 가하는 것으로 마무리하게 될까.
    상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이러한 시나리오는, 그러나 더는 쓸모없는 공상이나 과장이 아니다. 한반도에서 벌어질 수 있는 전쟁의 수준은 북한 핵 개발과 함께 이미 그 같은 수위에 이르렀고, 작전계획을 비롯한 워게임(War Game) 시뮬레이션은 물론, 한미연합군의 전력 구조를 어떻게 만들어가야 하는지 여부와도 곧장 이어지는 질문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북한 핵 보유가 현실화할수록 ‘상상하기 어려운 일을 상상하는(imagine the unimaginable)’ 일 역시 당면과제로 떠오른 셈이다.


    확 달라진 한반도 워게임 시뮬레이션

    북한의 첫 번째 핵 사용 타깃이 서울이냐 부산이냐 같은 앞서의 질문은, 사실 고전적인 핵 억제 개념에 의거해 만들어진 것이다. 냉전시기 막대한 핵무기를 비축한 미국과 소련은 어떤 경우 어떤 방식으로 핵을 사용할지 수많은 고민과 논쟁을 통해 정교화해나갔다. 관건은 상대가 과연 게임의 룰을 어떻게 사고하고 있는지 가늠하는 작업. 특히 1960~70년대 논쟁에 뛰어든 백악관과 미 국방부, 싱크탱크 전략가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과연 소련이 우리 예상대로 움직여줄까’라는 부분이었다.
    이렇게 정립된 개념 가운데 가장 큰 줄기를 서구 전문가들은 흔히 ‘응징억제(Deterrence by Punishment)’와 ‘거부억제(Deterrence by Denial)’로 나눈다. 공격받으면 훨씬 큰 보복을 가하겠다고 위협해 상대의 결심을 어렵게 만드는 게 응징억제의 논리 구조라면, 상대의 공격을 무력화함으로써 쓸모없게 만드는 게 거부억제의 얼개다. 이 때문에 응징억제는 주로 인구나 산업시설이 밀집된 지역을 타깃으로 설정하고, 보복억제는 상대의 주력 부대나 군사전력을 목표물로 설정한다(26쪽 상자기사 참조).
    한반도로 돌아와 보자. 유사시 한미 양국과 북한의 수뇌부가 핵 사용 여부를 고민할 때, 북한이 어떤 방식으로 핵을 사용하려 할지는 지금의 우리에게 완전한 미지수나 다름없다. 크게는 ‘상호확증파괴’와 ‘제한핵전쟁’ 가운데 어떤 게임의 법칙을 주로 따르려 할지, 첫 번째 타깃은 수도권이 될지 아니면 후방 주력 부대가 될지 깊이 고민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사안을 오랜 기간 담당해온 한 군당국 전문가는 “당연한 말이지만 한국군에는 핵 문제에 주도적으로 대응한다는 개념이 없고, 따라서 핵 억제이론이나 북한의 핵 교리에 대해서도 심층적인 고민이 부족하다”고 말한다. 냉전을 거치면서 정립된 핵 억제이론의 주요 개념에 대해 초보적 차원의 이해라도 갖춘 군당국자가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는 토로다.
    미국은 다르지 않을까. 지구상 어느 나라보다 이 문제에 엄청난 자산을 쌓아 올린 미군이지만, 이들의 눈에 북한 핵 전력은 아직 초보적 수준이다. 평양이 제아무리 KN-08을 선보이며 ‘워싱턴 불바다’를 을러대도, 미사일 탄두의 대기권 재진입 기술을 확보하지 못해 시험발사 한 번 해본 적 없는 무기체계는 이들에게 ‘당면한 위협’이 아니다. 한국 국방부는 북한이 1300km인 노동미사일의 사거리를 줄일 경우 한반도 내에서 사용 가능한 수준의 핵탄두 소형화는 그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태평양 너머로 날아오기까지는 아직 많은 나날이 남았다는 게 미국 측 전문가들의 속내다. 한마디로 위협 인식과 절박성이 다르다.



    곳곳에서 드러나는 평양의 ‘노력’

    냉전시기 워싱턴 전략가들이 고민했던 수많은 핵 전략은, 소련 붕괴 이후 도서관의 먼지 낀 서가 사이에 파묻힌 지 오래다.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를 비롯한 주요 싱크탱크 역시 핵 확산을 막는 작업에 골몰할 뿐, 북한 같은 나라가 실제로 어떤 핵 군사전략을 준비할지를 파고드는 논문은 찾아보기 어렵다. 1990년대 이후 미국에서 간헐적으로 나온 보고서가 모두 북한의 독재체제와 이념적 특성을 개괄적으로 다룰 뿐 평양의 핵 사용이라는 위기 상황을 체계적으로 예상하는 접근은 발견할 수 없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아직은 미래의 일 혹은 남의 일이라는 상황 판단이 강하게 묻어나는 것이다.
    거꾸로 지구상에는 이 문제에 천착해온 유일한 나라가 있다. 바로 북한 자신이다. 2009년 2차 핵실험을 전후해 등장하기 시작한 ‘핵무력의 다종화·소형화·경량화’라는 언급은 고스란히 앞서 본 미·소 냉전 당시 핵 전력 구조를 차용한 것에 가깝다. 핵폭탄에서 수소폭탄으로, 여기에 인공위성 발사 로켓 기술을 적절히 섞어 동시에 과시하는 핵 개발 로드맵은 흔히 양탄일성(兩彈一星)이라 부르는 1960년대 중국의 핵 개발 과정을 그대로 흉내 냈다. 남한에 대한 핵 공격 능력이 상당 부분 진행된 지금까지도 노동미사일에 핵탄두를 탑재해 공개하는 식으로 이를 과시한 적이 없다는 사실 역시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 대신 미 본토에 대한 타격 능력에 집착하는 행태는 이른바 최소억제(Minimal Deterrence)의 흔적이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최근 가시화된 SLBM 개발 역시 자기들 나름으로 핵 삼원체제를 변용해 구성해보려는 속내가 엿보이는 단초다.
    요컨대 핵 개발을 결심한 이래 북한의 주요 당국자와 지휘관, 무기체계 연구자들이 냉전시기 강대국들의 핵 억제 개념을 ‘조국의 명운을 걸고’ 연구해왔다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중국의 핵 개발 사례와 운용전략, 인도나 파키스탄 같은 다른 소규모 핵 보유 국가의 경험도 꼼꼼히 천착해 오늘의 결정에 임하고 있다는 뜻이다. 북한 관영언론에 등장하는, 얼핏 단순해 보이는 문장 하나에도 깊은 계산이 숨어 있다. 그 지난한 준비의 결과가, 모두가 무시하는 사이 어느새 궤도에 오른 ‘핵무장 북한’의 자신감이다.
    평양은 모든 준비를 끝마쳤으나 우리는 아직 고민조차 시작하지 못한 상황. 정확히 말하자면 고민의 필요조차 느끼지 못하는 상태라는 표현이 더 적합해 보인다. 이러한 불균형은 단순히 한국에 핵무기가 없다는 핑계로 면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만에 하나 실제로 전쟁이 벌어져 핵 사용을 고민하게 될 경우 전략핵이든 전술핵이든 북한에 핵을 사용할지 말지는 한미 양국 대통령의 통수권 결정에 따라 이뤄진다. 한국 대통령과 안보 분야 정책참모그룹, 군당국이 핵 억제 개념에 무지한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무엇이 우리 국익에 가장 부합하는지 판단할 길이 없다.





    핵우산, 발언권을 가지려면

    이는 지금처럼 미국 핵우산에 전적으로 기대는 상황이든, 일각의 요구대로 미군 전술핵을 재반입하든, 냉전시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처럼 핵 사용 권한을 나눠 갖는(Nuclear Sharing) 대안을 마련하든 모두 마찬가지다. 고민이 없는 한국은 오로지 미국의 결정에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결론을 피할 수 없다. 서두에서 본 아데나워 서독 총리에게조차 미치기 어렵다는 뜻이다.
    서구의 다양한 관련 연구는 대립하는 두 세력이 핵 억제에 대해 완전히 다른 논리로 사고할 때 우발적 핵전쟁이 발생할 확률이 비약적으로 커진다고 지적해왔다. 예컨대 한쪽이 긴장 완화 조치로 택했던 핵 전력 배치 변화를 상대가 긴장 고조 조치로 해석해 위기로 이어진다는 것. 핵전쟁 역시 숫자와 이론으로 접근하는 미국식 사고방식과, 정서나 위신을 중요시하는 북한의 군사전략 사고방식은 완전히 다르다. 북한을 훨씬 잘 아는 한국이 그 나름의 개념을 마련해 결정 과정에 참여해야 우발적 핵 참화(Nuclear Holocaust)의 가능성을 낮출 수 있다는 뜻이다.
    그전에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면 무의미한 일 아닐까. 앞뒤를 꼼꼼히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이내 확인할 수 있다. 북한이 어떤 핵 군사전략을 염두에 두고 있느냐는 질문은 고스란히 핵 전력의 구축 방향이나 앞으로의 행동 방식을 예상하는 작업과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평양이 중·단거리 핵미사일로 한국과 일본을 인질 삼아 미국의 개입을 차단하는 이른바 ‘삼각억제(Triangular Deterrence)’ 개념을 사용하려 할지, 그간 공언해온 대로 미 본토를 주 타깃으로 삼으려 할지에 따라 북핵 문제의 향후 전개 방향도 완전히 달라진다. 앞으로 얼마나 더 많은 핵실험을 단행하려 하는지, 추가로 확보하려는 핵물질은 어느 정도가 될지 역시 앞서의 질문과 직결된다.
    협상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최근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평화협정과 비핵화의 연계는 가능한 대안인지, 이 경우 북한이 이미 완성했거나 조만간 완성할 핵 전력 가운데 어느 부분을 양보하고 어느 부분은 지키려 할지 역시 평양 정책결정자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핵 운용 교리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북한이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방안이 우리에게 미치는 위협의 수준을 낮추는 실질적인 조치냐, 아니면 한국과 미국의 이해관계 차이를 역이용하려는 기만책이냐를 판단하는 데도 이러한 개념을 사전에 꿰뚫어보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북한 핵 문제와 관련해 한국의 유약한 태도를 비판하며 흔히 이스라엘의 사례를 거론한다. 그러나 가장 강경하고도 단호한 태도로 주변국과의 기싸움에 임하고 있는 이 나라에게도 잠재 적국의 핵 억제 개념은 까다롭기 짝이 없는 과제였다. 2006년 레바논전쟁과 2009년 가자전쟁 당시 이스라엘은 확전에 거리낌 없는 태도를 보였으나 이후 이란의 핵무장 가능성이 고조되자 고민의 양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참가자들의 회고에 따르면, 이 시기 진행된 미국과 이스라엘의 연합 워게임에서 두 나라는 거의 관계 붕괴에 준하는 의사소통 위기를 겪어야 했고, 이란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어떤 결정도 내릴 수 없다는 사실만이 명확해졌을 뿐이었다. 2016년의 한국은 어떨까. 과연 최소한의 준비라도 돼 있을까. 평양이 밟아온 모든 고민의 경로를 따라 밟으며 ‘핵무장 북한’의 핵 운용전략을 추적하는 작업이 지금 우리에게 필수적인 이유다. 

    냉전시기 핵 억제이론 주요 개념◎ 상대 생각 미리 가늠해 ‘게임의 법칙’ 맞춰 가기



    본문에서 설명한 핵 억제 개념의 큰 줄기는 고스란히 실제 전쟁 시나리오나 전력 구조의 차이로 이어진다. 예컨대 응징억제의 가장 극단적인 시나리오가 바로 ‘한 발이라도 발사되면 모두가 함께 죽는다’는 ‘상호확증파괴(Mutual Assured Destruction·MAD)’이고, 거부억제를 현실에 적용해 만들어낸 전쟁 수행 방식이 ‘소규모 전술핵으로 서로의 주요 전력을 격파해나간다’는 ‘제한핵전쟁(Limited Nuclear War·LNW)’이었다.
    초기에는 당연히 상호확증파괴만이 핵전쟁의 유일한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서두의 서독 사례에서 본 것처럼 오히려 우리 측에서 핵 사용을 주저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지난한 토론을 거쳐 비로소 ‘핵을 이해하게 된’ 미국 측 전략가들이 만들어낸 고도로 정교한 개념이 제한핵전쟁이었다.
    우리에게도 귀 익은 미국 랜드연구소(RAND Corporation)는 냉전 초기 핵 운용을 담당했던 미 전략공군사령부(SAC)로부터 관련 주제를 의뢰받아 집요하게 발전시켜온 대표적인 싱크탱크다. 수많은 국제정치·게임이론·경영공학 전문가가 모여 수백만 명이 살상되는 무수한 시나리오를 검토해가며 고유의 핵 전략을 발전시켜온 것. 그 결과에 따라 여러 행정부를 거치면서 다양한 방식의 핵 사용 계획이 만들어졌고, 이에 근거해 미국의 핵 전력 구조도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ICBM과 SLBM, 전략폭격기라는 세 가지 주요 투발 수단을 주축으로 한 ‘핵 삼원체제(Nuclear Triad)’가 그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이렇듯 미국은 초기 상호확증파괴와 훗날 만들어진 제한핵전쟁 개념을 오가며 핵전쟁 교리를 정교화했지만, 실제로 핵전쟁이 벌어질 경우 과연 소련이 이에 어떻게 대응하고 나설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백악관이 제한핵전쟁 개념에 따라 극동이나 시베리아의 군사 기지에 전술핵 공격을 가한다 해도, 크렘린이 상호확증파괴 시나리오에 따라 워싱턴에 대한 전략핵 공격으로 맞받는다면 그야말로 전면적 핵전쟁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소련의 핵 군사전략 특성을 파고들어 과연 모스크바가 자신들의 ‘게임의 법칙’을 따라줄 것인지 끈질기게 매달렸다. 놀랍게도 그중에는 소련군 주요 지휘관들과 대화해가며 자신들의 핵 억제 개념을 알려줌으로써 ‘오해’를 피하는 작업도 포함돼 있었다. 쉽게 말해 ‘우리는 이렇게 핵을 쏠 테니 너희도 너무 당황하지 말고 그 정도 수위로 움직여달라’는 토론이었다. 전략핵무기제한협정(SALT)을 비롯해 냉전시기 두 나라 사이에 진행된 핵 군축 협상에는 이러한 논리적 배경이 숨어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