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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화의 밥꽃, 목숨꽃 사랑

몸뚱이 동강 나도 피고야 말리니

까탈 美人 무꽃

  •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몸뚱이 동강 나도 피고야 말리니

몸뚱이 동강 나도 피고야 말리니

앞은 무꽃, 뒤는 배추꽃. 사진 제공·김광화

김선우 시인이 쓴 시 가운데 ‘무꽃’이 있다. 여러 날 집을 비운 뒤 돌아와 문을 연 시인은 누군가 놀다 간 흔적을 읽어낸다. 그게 누굴까. 숨 고르고 찬찬히 살펴본 시인은 버리기 아까워 사발에 담아놓은 무 토막에서 꽃대궁(꽃대)이 돋아난 걸 알게 된다. 무꽃 보기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 생각지도 않게 꽃을 보여주는 게 무다. 동강 난 상태인지라 가지를 무성하게 뻗지 못하고, 그 자태도 옹색하지만 무는 기어코 꽃을 피우고야 만다.   
우리나라에서 무는 배추, 고추와 함께 3대 채소에 속한다. 그만큼 즐겨 먹는다. 하지만 꽃을 보자면 먹는 걸 참아야 한다. 그뿐 아니다. 심어 가꾼다고 눈에 확 띌 만큼 잘 자라는 것도 아니다. 무꽃을 제대로 보려면 식물학에 대한 공부도 조금 필요하다.  



뜻하지 않게 피는 꽃

봄에 씨를 뿌리는 작물이라면 꽃을 쉽게 보고 즐길 수 있다. 하지만 가을에 씨를 뿌리는 작물은 꽃 보기가 쉽지만은 않다. 겨울을 나고 봄에 꽃대가 올라오기 때문이다. 그런 작물 가운데 하나가 무다. 무는 배추처럼 십자 모양 꽃을 피우는 십자화과 채소인데 꽃잎은 하얀색이거나 연한 보랏빛이다. 꽃이 자그마하고 소박하기 그지없다. 겨울을 난 무는 봄에 장다리를 곧게 올리다 4월이나 5월에 꽃이 피기 시작해 줄기 따라 한 달가량 계속 핀다.
그런데 무는 겨울을 나기가 쉽지 않다. 날씨가 영하로 계속 떨어지면 뿌리가 냉해를 입는다. 그러니 꽃을 피우고 씨앗을 받으려면 따로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가을무를 밭에서 뽑아 저장할 때 이듬해 꽃을 피웠으면 하는 무는 생장점까지 바짝 자르지 않고 잎만 떼어내 보관해야 한다. 이렇게 겨울을 나면 이듬해 봄, 생장점에서 노랗게 새싹이 돋는다. 영하의 날씨가 풀리면 이 무를 밭에다 다시 심어야 한다. 물론 가을무를 아파트 싱크대나 베란다처럼 따뜻한 곳에 두면 이듬해 봄, 훨씬 빨리 꽃을 피울 수 있다. 심지어 흙에 심지 않아도 제 뿌리를 영양 삼아 김선우 시인의 무처럼 꽃을 피운다.
그런데 무에 대해 제대로 공부하려면 지금부터다. 겨울을 난 무가 다 꽃을 피우고 씨앗을 맺을까. 아니올시다. 꽃은 피우지만 씨앗을 다 맺는 건 아니다. 한동안 이를 제대로 모르고 무씨를 받겠다고 내 나름대로 노력한 적이 있었다. 꽃은 볼 수 있었지만 씨앗 받기가 어려웠다. 왜 그럴까. 씨앗을 받을 무렵이 장마철이라 그런가라고만 생각했다. 장마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식물만이 갖는 고유 성질에 있음을 뒤늦게 알게 됐다.



여러 포기를 가까이에

무는 자가불화합성(自家不和合性)을 띠는 작물이다. 글자 그대로 풀자면 자기꽃가루로는 수분이 되지 않는 걸 말한다. 수술과 암술은 각각 생식 능력을 제대로 가졌는데도 제꽃가루로는 씨앗을 만들지 않는다. 이는 되도록 근친교배를 피하려는 생물 진화의 한 모습이라 하겠다.
우리 식구는 김장용으로 쓸 무는 시장에서 사다 심는다. 하지만 토종무도 조금 기른다. 토종무는 씨앗을 받고자 하는 게 첫째 목표였다. 씨앗을 돈 주고 사면 솔직히 넉넉히 뿌리기가 어렵다. 또 시장서 사는 무씨는 약품 처리가 돼 있어 좀 찜찜하다. 무싹이 얼마나 맛있는가! 물만 주어 기른 무순도 맛있는데, 땅 힘을 받고 자란 무싹은 더 맛있다. 손수 씨를 받으면 필요할 땐 언제든 씨를 뿌리고 안심하고 솎아 먹을 수도 있다. 필요한 나눔도 양껏 할 수 있다.
사실 두어 포기만 심어도 씨앗은 넉넉하다고 생각했다. 한 포기만 잘 영글어도 꼬투리가 많고 그 속마다 씨앗이 들었을 테니까. 근데 막상 해보니 꽃은 잘 피는데 씨는 받을 수 없었다. 무가 ‘자가불화합성’이라 수정이 제대로 되지 못한 게 첫째 이유였던 셈이다. 그러니 씨앗을 잘 받으려면 한두 포기 심어서는 어렵다는 결론이 나온다. 딴꽃가루받이를 할 수 있게 여러 포기를 가까이 심어야 한다.
‘식물의 정신세계’라는 책을 보니 생리학적 심리연구자 얀 메르타의 이야기가 나온다.
“식물들은 동료 식물들과 멀리 떨어지게 되면 고독감을 느껴 점차 시들어가다가 마침내는 죽어버리기까지 하지만, 시들어가던 것을 다시 (여러 그루가 모여 있는) 온실에 갖다놓으면 곧 활력을 되찾아 싱싱해진다.”
만일 이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같은 식물이라도 자연교잡을 잘하는 식물일수록 고독을 더 많이 느끼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면 무는 외로움을 더 많이 탔으리라. 앞으로는 씨 받을 무를 외롭게 하지 않아야겠다.



몸뚱이 동강 나도 피고야 말리니

토막 난 무에서 꽃이 피다. 무꽃은 암술 하나에 수술 6개인데 2개는 작다. 무꽃은 꼬투리를 맺으면서 줄기 따라 오래도록 피고 진다(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사진 제공·김광화

※무꽃 : 양귀비목 십자화과 한해살이 또는 두해살이. 원산지는 이집트. 서늘한 기후를 좋아한다. 네 갈래로 갈라진 흰 꽃잎 끝이 보랏빛으로 곱게 물들어 곤충을 부른다. 그 가운데 눈에 보일 듯 말 듯 암술이 하나, 암술을 감싸고 있는 수술이 4개, 그 곁에 예비용 짧은 수술 2개가 더 있다. 또 꽃받침이 튼실해 그 속에 깊은 씨방을 가졌다. 무꽃에는 나비가 온다. 꽃말은 ‘계절이 주는 풍요’.

몸뚱이 동강 나도 피고야 말리니

무꽃에 날아든 나비. 사진 제공·김광화





주간동아 2016.02.24 1026호 (p72~73)

농부작가 flowingsk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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