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95

2021.06.25

우리에겐 이종욱이 있다

[책 읽기 만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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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1-07-02 10: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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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영원한 WHO 사무총장 이종욱 평전
    엄상현 지음/ 동아일보사/ 496쪽/ 2만8000원

    “저는 성과를 내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오늘 제가 여러분에게 드리고 싶은 말씀입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2003년 1월 27일 이종욱 당시 세계보건기구(WHO) 결핵국장이 사무총장 후보 출마 연설을 마쳤다. 당시 그가 차기 WHO 사무총장이 되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선거 운동에 뛰어든 후보만 9명이었다. 면면도 화려했다. 각국 보건장관과 총리로 이뤄진 후보군 사이에서 WHO 결핵국장의 직책은 초라해 보였다. 한국 외교부 역시 당선 가능성에 회의적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기적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추후 세계은행 총재로 취임한 그의 친구 김용이 적극적으로 도우며 상황이 반전됐다. 미국 하원의원 54명이 서명한 ‘이종욱 지지 서한’이 결정적이었다. 7차 투표까지 거치면서 이 전 사무총장은 32개 이사국 중 17개국의 지지를 받는다. 한국인 WHO 사무총장이 첫 탄생한 순간이다.



    선거 후에도 삶이 평탄치는 않았다. 당선 직후 추진한 ‘3 by 5’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였다. 2005년까지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 보균자 및 에이즈(AIDS) 환자 300만 명에게 치료제를 제공하자는 캠페인이었다. 막대한 자금을 필요로 해 많은 사람이 회의적 시선을 보냈다. “현실은 예상보다 어렵다. 매우 정치적인 일이고 구걸을 해야 하는 일”이라는 비꼬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이 전 총장은 굴하지 않았고, “어떤 의미에서는 구걸이지만 ‘기부 모금’이라는 더 멋진 단어도 있다”고 응수했다.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지만 성과를 무시할 수 없다. 이 캠페인 덕분에 2008년 무렵 300만 명이 에이즈 치료를 받은 것으로 추산된다. 김용 전 총재는 “에이즈 치료 확대에 가장 크게 공헌한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받는다면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코피 아난 전 유엔 사무총장, 그리고 이종욱 전 WHO 사무총장을 꼽는다”고 평가했다.

    이 전 사무총장은 2006년 5월 22일 급작스러운 뇌졸중으로 만 61세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혹자는 그가 세상에 남긴 것은 12년 된 볼보 승용차 한 대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에는 그가 세상에 남긴 것들이 줄줄이 쓰여 있다. 한센병 유병률을 1만 명당 1건 이하로 낮춘 것도, 소아마비를 종식 전 단계까지 이끈 것도, 담배규제기본협약을 채택한 것도 모두 이 전 사무총장이 있어 가능했다. ‘성과를 내는 사람’ 이 전 사무총장이 지금까지 살아 있었다면 코로나19 국면도 조금은 달라졌을까. 국제기구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청년에게 일독을 권한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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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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