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작으로 빅히트를 기록한 이미예 작가. [팩토리나인]
이미예라는 낯선 이름에 책장을 들추면 ‘부산에서 태어났다. 부산대에서 재료공학을 공부하고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했다…잠을 자면 기억에 남는 꿈을 자주 꾸는 편이다. 좋아하는 것은 8시간 푹 자고 일하기. 싫어하는 것은 잠도 못 자고 밤새워 일하기’라는 설명이 적혀 있다.
작가는 직장에 다니던 시절 도보로 왕복 30분 남짓한 출퇴근길 머릿속으로 온갖 상상을 하고, 쉬는 날이면 짤막한 이야기들을 이어붙이는 작업을 하며 작가의 꿈을 키웠다. 한 권의 책을 만드는 과정이 너무 힘들어 포기를 했다가 ‘어떻게든 완성해 우리 집 책장에라도 꽂아두자’라는 생각으로 소설을 완성했다. 이후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난해 9월 크라우드 펀딩에 나서 목표를 1812% 초과 달성했다. 이 작가는 전자책을 출판하고 종이책을 만들어 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으로 올 7월 정식으로 종이책을 내기에 이르렀다.
이공계 출신의 판타지 소설 작가, 데뷔작으로 11만 부 판매를 기록한 작가를 오랜 기다림 끝에 만났다.
전자책을 종이책으로 출간, 베스트셀러에 올라
-크라우드 펀딩, 전자책 출간, 종이책 출간, 11만 부 판매까지 일 년 동안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 지금의 성과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판매 부수는 내게 너무 큰 숫자라 실감이 나지 않는다. 그래도 ‘다음 작품을 쓸 수 있는 여력이 생겼구나, 다행이다’ 싶은 생각이 든다. 무엇보다 귀한 시간을 내서 내 작품을 읽고 정성껏 한 자 한 자 감상을 적어주시는 분들 덕분에 행복하다. 이미 내 손을 떠나 세상에 나온 작품을 향한 애정과 성과에 대한 감동이 크며, 나아가 앞으로 만들어갈 이야기들을 생각할 수 있어 설레고 기쁘다.”
-반도체 엔지니어가 전업 작가가 되기까지 과정이 궁금하다.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출퇴근길 떠올린 상상을 쉬는 날 이야기로 연결하며 시간을 보내는 것이 취미였지만 마감 기한이 없고 다른 일들에 비해 후순위가 되다 보니 작업이 지지부진했다.구상만 하고 완성을 못했다는 사실이 늘 마음의 짐으로 쌓여 있다가 더 늦기 전에 몰입을 해야겠다는 결심이 서고, 원래 하던 일에도 지치는 시간이 찾아오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 서게 됐다. 하지만 막상 전업 작가가 되고 보니 글을 쓰는 것과 별개로 한 권의 책으로 만드는 일은 지구력이 필요했다. 나의 성급함을 인정한 후 3D 프린터 관련 사업을 창업해 다시 생업에 종사했지만 쓰던 글을 어떻게든 매듭짓고 싶었던 마음이 나를 여기까지 오게 했다.”
-이과를 선택한 이유, 나이 및 성장 과정 등에 관해 들려 달라.
“이미예라는 이름은 본명이고 올해 서른 한 살이다. 돌이켜보면 학창 시절 만화든 소설이든 읽을거리는 다 좋아하고 국어 시간에 가장 마음이 편했다. 그럼에도 이과를 선택한 것은 문제 푸는 즐거움을 알려주신 중학교 때 다니던 학원 선생님의 영향이 크다. 덕분에 수학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대학에 진학해 공학 수학을 접하고 보니 아니었다. 대학 졸업 후 부산을 떠났고 현재는 결혼해 남편과 살고 있다.”
-이 소설은 새롭고 정교하게 창조된 판타지의 세계다. 꿈을 파는 백화점을 무대로 꿈을 파는 사람, 사는 사람, 만드는 사람 등 다양한 인물과 에피소드가 등장한다. 구상 단계를 거쳐 결과물을 얻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을 듯하다.
“학창 시절부터 취업을 준비하던 시절에는 영화든 드라마든 재밌는 이야기를 만나면 ‘왜 재미있을까’ 분석하는 일을 주로 했다. 아이디어를 다듬는 작업은 직장생활을 하며 시작했는데 지금은 다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시행착오가 많았다. 이야기의 뼈대도 여러 번 바뀌었고 주인공, 이야기의 배경, 전개방식까지 초기의 모습이 전혀 없을 정도로 많이 고치느라 오래 걸렸다.”
따뜻하고 판타지한 표지로 시선을 사로잡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 [팩토리나인]
쉽게 읽히는 책 꾸준히 만드는 게 목표
-출판서 서평에는 ‘이 책은 인물 간의 갈등도, 주인공 간의 로맨스도 없다. 하지만 읽고 나면 눈물이 나기도 하고 마음이 차분해지기도 한다. 지치고 힘든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을 때 읽으면 힐링이 되기도 한다’고 나왔는데 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나.“요약하자면 ‘꿈꾸는 시간이 기다려졌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매일 자니까, 자기 전이 기다려진다면 즐겁고 매일 기분 좋은 일을 한 개씩은 갖게 되는 게 아닐까. 즐거운 일이 많지 않은 요즘 우리가 당연히 가지고 있는 것들을 되새김하는 과정에서 행복의 평균치를 조금이라도 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책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신참 사원 페니의 시선으로 전개되는데, 중반부 페니를 향한 막심(악몽을 만드는 자)의 마음이 느껴지는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끝내 러브라인이 등장하지는 않는다.
“너무 급전개되는 러브라인보다는 그 전에 막심이라는 인물에 대해 더 보여주고 싶었다. 현재 집필 중인 ‘달러구트 꿈 백화점’ 속편에서도 러브라인이 주요 내용이 되지는 않겠으나 1편에서 의아했던 부분들이 조금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1편에서 덜 조명됐던 인물들의 이야기도 펼쳐진다.”
-데뷔작의 성공으로 부담감도 클 듯하다. 어떤 작가로 성장해나가고 싶은가.
“작가로서의 목표는 쉽게 읽히고 장점이 또렷한 책을 꾸준히 만드는 거다. 심적 혹은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 책과 잠시 멀어진 분들이, 부담 없이 독서 재입문용으로 볼 수 있는 책을 만들고 싶다. 내 책으로 가볍게 시작해서 세상의 좋은 책들을 접할 기회를 다시 갖게 된다면 뿌듯할 것 같다.”
-11만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있을 듯하다.
“아마추어 작가의 글을 열린 마음으로 봐주셔서 감사하다. 독자님들 덕분에 ‘살아온 이력과 관계없이 하고 싶은 일을 시도해도 좋다’는 말을 뒷받침할 일례가 또 생겼다. 독자님들 또한 생업과 해야만 하는 일 외에, 또 다른 마음에 간직한 꿈이 있다면 내게 온 행운처럼 좋은 기운이 깃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작가로 살게 해주셔서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