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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카비타 람다스 오픈소사이어티재단 여성권리 디렉터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해법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페미니스트…“양성평등 실현에 필요한 건 측은지심”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카비타 람다스 오픈소사이어티재단 여성권리 디렉터 “‘82년생 김지영’에 대한 해법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김성남 기자]

[김성남 기자]

고모가 과부가 됐다. 사람들은 “여자 때문에 남자가 죽었다”고 손가락질했다. 친척들이 고모에게 몰려가 그녀의 형형색색 사리를 벗기고 흰색 사리를 입게 했다. 긴 머리는 잘려나갔고, 결혼한 여성이 이마에 붙이는 빈디(Bindi)도 빼앗겼다. 해군 제독인 아버지는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볼 뿐이었다. “수차례 전쟁을 이끈 아버지도 자기 누이를 구하지 못하는구나….” 열한 살 인도 소녀가 여성인권 문제에 눈뜬 것은 그 무렵부터다.


서울대 포용사회센터와 협업

카비타 람다스(57·사진)는 세계적인 여성운동가다. 인도에서 태어난 그는 해군 제독 아버지를 따라 인도, 영국, 독일, 미얀마에서 자랐다. 인도 델리대와 미국 매사추세츠주 마운트 홀리요크 칼리지를 거쳐 프린스턴대에서 국제개발 연구로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줄곧 여성 관련 기관에서 일하며 세계 각지의 여성운동 현장에 참여해왔다. 1995년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세계여성회의에 참석한 당시 힐러리 클린턴 미국 영부인이 “여성의 권리는 인간의 권리”라는 역사적인 연설을 할 때 그도 세계여성기금(Global Fund for Women) 대표로 그곳에 있었다. 2009년 여성운동에 관한 그의 테드(TED) 강연은 57만 회 이상 조회되고 23개 언어로 번역됐을 정도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10월 28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람다스를 만났다. 서울대 국제대학원 내 국제학연구소 산하에 국제이주와포용사회연구센터(센터장 은기수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이하 포용사회센터)가 새로 설립됐는데, 여기에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한 곳이 오픈소사이어티재단(Open Society Foundation·OSF)이다. 지난해 8월 여성권리(Women’s Rights) 프로그램 디렉터로 OSF에 합류한 람다스가 이번 지원을 주도했다. 서울대 포용사회센터는 젠더, 인종, 연령, 장애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는 포용 사회(Inclusive Society)를 위한 학문적·실천적 노력을 기울이겠다는 계획이다. 

기자가 책 ‘82년생 김지영’을 선물하자 그는 “이 소설을 잘 안다. 동명 영화를 보고 많은 한국 여성이 울었다는데, 그 이유 또한 잘 안다. 세계 여성들도 같은 이유로 울고 있다. 이번에 서울대와 협력하는 것도 세계의 김지영을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빌&멀린다게이츠재단(게이츠재단)의 자문단 일원으로도 활동한 바 있는데, 두 재단의 차이는 뭔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다. IT(정보통신) 업계에서 대성한 빌 게이츠는 엔지니어 시각으로 문제에 접근한다. 사람들의 영양이 부족하다면 ‘건조한 기후를 잘 견디는 씨앗을 개발하자’는 식이다. 사람들이 왜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 묻지 않는다. OSF를 세운 ‘투자이 대가’ 조지 소로스는 헝가리 태생의 홀로코스트 생존자다. 동유럽 공산주의를 보고 겪은 그는 사회가 번영하려면 토론이 활발하게 벌어지고 다양한 아이디어가 제시되는 열린사회가 돼야 한다고 믿는다. 따라서 민주주의 확산이 최선의 접근법이라고 생각한다. 기술은 마법이 아니다. 불평등과 불의까지 바꾸진 못한다.” 



소로스가 사재 20조 원을 털어 세운 OSF는 게이츠재단에 이어 미국에서 두 번째로 큰 민간 자선단체다. OSF는 1980년대부터 동유럽국가의 민주화운동을 지원하기 시작해 현재는 남아프리카, 중앙아시아, 남미 등 120여 개국에서 정의와 인권, 민주주의 확산을 목표로 다양한 지원 사업을 벌이고 있다. 한국에도 2년 전 사무소를 마련했다. 이 단체의 연간 사업비는 지난해 기준으로 10억8370만 달러(약 1조2700억 원)다. 

여성권리 프로그램을 소개해달라. 

“과거 ‘여성 네트워크 프로그램(Network of Women’s Program)’이라는 이름으로 학문적 연구와 여성운동 현장을 함께 지원해왔다. 주로 수단, 아프가니스탄 등에서 전쟁으로 삶이 망가진 여성에 집중했다. 그러다 최근 ‘여성권리’로 이름을 바꿨고, 내가 디렉터를 맡은 이후 3개 분야에서 사업을 펼치고 있다. 

첫째, 여성의 몸에 대한 권리를 되찾는 활동이다. 성적 권리, 출산할 권리, 낙태 및 폭력 문제 등 국가와 사회가 여성의 몸을 통제하는 방식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둘째, 돌봄(care) 이슈다. 국내총생산(GDP)에 돌봄 비용이 반영되지 않을 정도로 돌봄 노동은 보이지도, 측정되지도 않는다. 이를 바꾸고자 한다. 셋째, 다양한 여성운동을 지원한다. 보통 여성을 피해자, 고통받는 자, 힘없는 자라고 말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성이 본래 굉장한 힘을 가졌다고 생각한다. 단지 빼앗겼을 뿐이지.”


발전 국가의 젠더 불평등에 ‘주목’

10월 28일 카비타 람다스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여성운동에 관해 강연했다. [김성남 기자]

10월 28일 카비타 람다스는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여성운동에 관해 강연했다. [김성남 기자]

제3세계와 비교해 한국 여성은 차별 없이 교육받고 사회 참여율도 높은 편이다. 그러한 한국에서 지원 활동을 벌이는 이유는. 

“한국 경제는 매우 발전했고 여성의 교육 수준 또한 매우 높다. 그런데 그렇다고 젠더 불평등이 해소됐나. ‘여자는 예뻐야 한다’는 강요는 여전하고, ‘미투(Me Too)운동’은 활발하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도 심각한 수준이다. 2014년 유엔 보고서에 따르면 살인 희생자 중 여성 비율이 높은 국가 순위에서 한국은 3위다. 2017년 한국형사정책연구원은 80% 가까운 한국 남성이 육체적·정신적으로 여자친구를 학대한 적 있다는 연구 결과를 내놨다. 남미와 남아프리카 저개발국가들이 한국을 지켜보고 있다. 앞으로 경제발전을 해나가면서 자신들도 맞닥뜨릴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가 이를 어떻게 해결하는지가 이들에게 좋은 참고가 될 것이다.” 

서울대 포용사회센터에 어떤 기대를 하나. 

“한국이 돌봄 이슈를 리드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82년생 김지영’에서 보듯 돌봄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양성평등 및 고령화-저출산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 한국 여성들을 만날 때마다 각자 자녀와 노쇠한 부모의 돌봄 문제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본다. 이는 위기고, 위기는 기회다. 한국이 찾아낸 해결책이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다. 여성권리 프로그램의 연간 예산은 530만 달러(약 61억 원)로 적은 편이어서, 적은 돈으로 큰 효과를 거둬야 한다. 그래서 한국을 찾아왔다. 한국을 돕겠다는 게 아니라, 한국의 사회학자, 경제학자들과 함께 일하며 배우고자 한다. 우리로서는 한국에 거액의 판돈(big bet)을 건 셈이다.(웃음)” 

인도 사회는 한국보다 더 보수적이다. 람다스는 “여성이 24세가 넘었는데도 결혼하지 않으면 ‘대체 뭐가 문제야?’라는 얘길 듣는다”며 “고등교육을 받은 인도 여성들도 ‘김지영’과 같은 문제제기를 하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비록 미국에서 자리 잡았지만 여전히 인도 문화권에 속하는 그는 인도 사람이 보기에 ‘도전적인’ 삶을 살아왔다. 우선 파키스탄 남자와 결혼했고(그의 아버지는 인도-파키스탄 간 전쟁에 세 차례 참전한 바 있다), 딸을 출산한 후 남편이 일을 그만두고 살림과 육아를 도맡았다. 그는 “출산하고 2개월이 지나자 집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어 미치겠더라. 반면 남편은 아이를 돌보고 싶어 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셸 위 스위치(Shall we switch)?’ 하며 과감하게 전통적인 성(性) 역할을 바꿔버렸다”고 했다. 1995년 그가 20명의 여성대표를 이끌고 2주간 베이징 세계여성회의에 참석했을 때도 남편은 집에서 한 살 반짜리 어린 딸을 돌봤다. 

아내가 밥벌이를 하고 남편이 전업주부 역할을 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도 아직 낯선 일이다. 

“심지어 페미니스트인 내 친구들도 ‘뭐라고? 남편이 ‘전혀’ 돈을 벌지 않는다고?’라며 놀라더라. 이 역시 부당하다. 남자아이는 ‘돈을 벌어라’, 여자아이는 ‘사람보다 못한 존재(less than human being)’라는 도장을 이마에 찍고 태어나는가. 남성도 가부장제 아래서 억압을 받는다. 전 세계적으로 남성이 여성보다 평균 콜레스테롤 수치와 심장마비 사망률이 높은 것도 과도한 스트레스에서 기인한다. 남성을 가부장제의 용병으로 만들지 말고, 남성 역시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것을 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게 해줘야 한다.” 

대학생이던 18세의 람다스는 거리로 뛰쳐나가 인도 여성들과 함께 “우리는 꽃이 아니다. 변화의 불꽃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당시 17세 소녀가 부모가 보는 앞에서 경찰에 집단강간을 당하는 사건이 벌어지자, 권력을 가진 남성에 의한 강간을 죄로 보지 않는 법률 개정을 요구하는 시위가 거세게 일어났던 것이다. 당시 그보다 더 적극적으로 여성운동에 나선 사람은 어머니였다. 경찰이 “경찰서로 잡혀온 웬 미친 여자가 해군 제독의 아내라고 주장한다”고 전화를 걸어오면 그의 아버지가 “내 아내가 맞다”고 답하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다고 한다.


페미니즘이란 ‘귀 사이의 무엇’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사진 제공 ·(주)봄바람영화사]

영화 ‘82년생 김지영’의 한 장면. [사진 제공 ·(주)봄바람영화사]

용감한 어머니가 롤모델이었겠다. 

“어머니는 가부장제에 익숙한 아버지를 ‘다른 사람이 됐다’고 표현할 정도로 크게 변화시켰다. 물론 어머니가 아버지 귀에 대고 소리를 많이 질러야 했지만.(웃음) 비록 아버지는 과부가 된 자신의 누이를 부당한 억압으로부터 구해내진 못했지만, 딸들이 자유롭게 살 수 있도록 많이 노력했다. 파키스탄인 사위를 받아들였고, 그 사위가 돈을 버는 대신 집에서 살림하는 것 역시 시간이 오래 걸리긴 했어도 결국 이해하게 됐다. 내 아버지처럼 남성의 변화와 지지가 페미니즘 운동에 큰 역할을 한다고 생각한다.” 

최근 한국 페미니즘 운동은 남성 혐오 등 극단적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모든 사회운동이 처음에는 극단으로 흐른다. ‘음, 죄송한데요, 우리 여성들을 그렇게 대하지 말아주시겠어요?’라고 상냥하게 말하면 누가 듣기나 할까. 글로리아 스타이넘이 ‘남성이 없는 여성은 자전거 없는 물고기와 같다’고 말한 것과 같이 초기 페미니즘 운동이 극단적인 방식으로 전개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다음 단계로 나아가려면 협상이 필요하다. 인도도 영국을 상대로 독립운동을 펼치며 200년간 무력투쟁을 벌였다. 할 수 있는 것을 다한 뒤에야 비로소 간디의 비폭력저항이 등장했다.” 

람다스는 ‘미러링’(mirroring·되받아치기)에 대해 “여성이 그간 겪어온 고통과 상처를 표출하는 하나의 방식”이라고 말했다. 누구든 화장실에서 볼일을 볼 때 노출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 공포를 직접 겪는다면 어떤 기분이 들지 조금이라도 느껴보라는 게 미러링이라는 얘기다. 그러나 그는 “분명한 점은 이 방식으로는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는 것”이라며 “주인의 집을 주인의 장비로 해체할 순 없다. 새로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여성운동의 간디’는 어느 시점에 등장할 수 있을까. 

“모든 사회운동은 직선으로 흐르지 않는다. 세 걸음 앞서 나가다 두 걸음 물러나기를 반복하며 전진한다. 온화한 방법을 쓰다 효과가 없으면 ‘됐다, 무기 꺼내(Forget it, Bring me a weapon)’ 하는 것이다. 17세 소녀가 강간을 당한다면, 당장 문을 부수고 달려들어야 한다. 그러나 계속 급진적으로 나가며 세상의 절반을 배제해서는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 없다.” 

람다스는 “내게 페미니즘이란 양다리 사이에 무엇이 있느냐가 아니라, 귀 사이에 무엇이 있는가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젠더 갈등은 결국 상대를 이해하려는 마음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 있다는 의미다. 그는 “이것을 받아들인다면 남성은 곧 여성이 미워하거나 적대시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라 우리가 낳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청년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훗날 부모가 되면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으로 자녀를 키우길 바란다. 어린 아들이 장성해 집에서 아내와 자녀 돌보기를 원한다면 그러한 아들의 결정에 행복해하는 부모가 됐으면 좋겠다. 사회운동은 진화할수록 성숙해진다. 남녀가 함께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데 가장 필요한 도구가 측은지심(tools with compassion)이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주간동아 2019.11.01 1212호 (p50~53)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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