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72

2019.01.11

사회

폐지 줍는 노인 위한 일자리는 없나

서울시,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생계 대책 마련해준다지만… 고물상서 만난 노인들 “그런 게 있나?”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입력2019-01-14 11: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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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에서 만난 폐지 줍는 어르신들.[박성엽 인턴기자]

    서울 관악구 신림동과 봉천동 일대에서 만난 폐지 줍는 어르신들.[박성엽 인턴기자]

    “카트 한가득 담아 가면 3000원 정도 받지. 지난해 봄 들어 이거(폐지) 가격이 확 떨어졌어. 그나마 요즘은 kg당 50원 하던 게 60원으로 오른 거야.” 

    서울 관악구 신림동의 한 고물상을 매일같이 드나드는 최모(83) 할머니. 최 할머니는 오후 내내 폐지를 주워 이튿날 새벽에 고물상을 찾는다. 20년 전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고 퇴직한 막내아들과 50만 원짜리 월세방에서 지내는데, 월세를 내려면 폐지를 주워 팔아야 한다. 최 할머니가 정부로부터 받는 기초연금 25만 원에 아들이 보태는 얼마간의 돈으로는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다. 최 할머니는 “폐지를 팔아 한 달에 버는 돈은 10만 원 남짓”이라며 “몸이 아파도 병원에 잘 가지 않는다”고 했다. 병원비와 약값을 아껴야 하니까.

    기초생활수급자는 ‘제외’

    서울시는 지난해 4월 ‘폐지 수집 어르신 지원 종합대책’을 내놨다. 2017년 9월 서울 시내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한 실태조사에서 폐지 줍는 노인들의 경제상황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조사 대상인 폐지 줍는 노인 2425명 중 35%가 기초생활수급자이며, 51%가 월소득 10만 원 미만인 것으로 파악됐다. 

    서울시는 △생계 △일자리 △돌봄 △안전 4개 부문에서 각각 대책을 마련했는데, 이 중 핵심은 일자리 지원 정책이다. 긴급 생계비나 의료비, 임차료 등을 지원하는 현물 지급 정책은 한시적이라 생계비 마련을 위해 폐지를 줍는 노인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따라서 서울시는 현재 시행 중인 ‘노인일자리 및 사회활동 지원 사업’을 활용해 폐지 줍는 노인들을 공공일자리로 끌어들이겠다고 발표했다(표 참조). 

    2004년 고령화 사회 진입을 맞아 도입된 노인일자리 사업은 1200개 이상 기관과 전체 노인 인구의 6%에 해당하는 42만 명이 참여하고 있다(2016년 기준). 공공시설 봉사 등 ‘공익 활동’과 민간 부문의 ‘시장형 사업’이 두 축을 이룬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발표한 국정운영 5개년 계획에서 당시 4만여 개 수준이던 노인일자리를 2022년까지 80만 개로 대폭 확대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폐지 줍는 노인들에 대한 지원을 노인일자리 사업과 연계하겠다는 서울시 구상은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노인일자리 사업은 기초생활수급자가 참여할 수 없다. 서울시 복지정책과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는 이미 생계비를 지원받고 있기 때문에 형평성 차원에서 이들에게 일자리까지 제공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서울시 실태조사에 따르면 폐지 줍는 노인의 35%가 기초생활수급자다. 폐지 줍는 노인 10명 중 3~4명은 이 사업에 지원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실태조사 결과 폐지 줍는 노인이 가장 많은 서울시 자치구는 관악구. 하지만 관악구의 폐지 줍는 노인 218명 중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이는 22명에 불과했다. 폐지 줍는 노인이 210명인 동대문구 역시 17명만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한 것으로 파악됐다. 폐지 줍는 노인이 노인일자리 사업으로 연계되는 비율이 10% 안팎에 불과한 것이다.

    “늙은이를 좋아할 일자리 있을지…”

    노인일자리 채용 박람회에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는 노인들. 문재인 정부는 노인일자리를 2022년까지 80만 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뉴시스]

    노인일자리 채용 박람회에서 자신에게 맞는 일자리를 찾아보고 있는 노인들. 문재인 정부는 노인일자리를 2022년까지 80만 개로 확대할 계획이다. [뉴시스]

    최 할머니는 노인일자리 사업에 대해 “들어본 적 없다”고 했다. 같은 신림동 고물상에서 만난 김모(80) 할머니는 “구청을 찾아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물어봤다. ‘자리가 나면 전화 주겠다’는 말을 듣고 왔는데 깜깜 무소식”이라고 전했다. 관악구 노인청소년과 관계자는 “매년 초 동주민센터 등 각 기관 전광판이나 인터넷 게시판에 노인일자리 사업 채용공고를 올리는 등 홍보를 하고 있지만, 모든 어르신을 연계해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폐지 줍는 노인들은 최 할머니처럼 해당 사업을 잘 모르거나, 편견을 갖고 있었다. 서울 관악구 봉천동에서 만난 폐지 줍는 김모(67) 할아버지는 “나같이 건강하지 않은 늙은이를 노인일자리 사업 관련 기관에서 좋아할지 의문”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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