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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의 법칙

악의적 행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

악성 민원인·블랙컨슈머…

악의적 행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

악의적 행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

미국 육군 교육 참고 3-0 ‘통합지상작전(UNIFIED LAND OPERATIONS)’.

기관별로 유명한 악성 민원인이 한둘쯤 있을 것이다. 귀한 뜻인 ‘민원(民願)’ 앞에 ‘악성’이 붙는다니 어불성설이지만, 일주일이 멀다 하고 같은 내용의 자료를 반복해서 요청하는 사람, 특정 실무자를 골라 지속적으로 보복성 민원을 내는 사람을 통칭해 그렇게 부른다.
소비자나 고객을 대상으로 하는 부서도 마찬가지이리라 본다. 소비자의 상품평이나 후기가 제품 생산과 판매율에 즉각 영향을 미치는 점을 악용하는 이른바 ‘악덕 소비자(블랙컨슈머)’ 때문에 골머리를 썩고 있을 것이다.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는 이들 악성 행위자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유연성(Flexibility)의 원칙’을 통해 알아보자.

공격할 수 없다면 과감히 피할 것

군사적 관점에서 유연성의 중요성은 방어 작전에서 특히 강조된다. 전쟁에서 방어작전이란 ‘공격으로 전환하기 위한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는 작전’이다. 전쟁의 승리는 결국 공격하는 쪽에 있기 때문에 방어는 공세로 전환하기 위한 일시적 작전으로 인식된다. 그렇다고 단순하게 ‘공격>방어’ 같은 이미지를 머릿속에 그리는 건 금물이다. 실제 전장에서는 공격, 방어의 명확한 구분이 없다. 영화 ‘고지전’ 혹은 ‘어벤져스’에서 나오는 전투 장면을 떠올려도 좋을 듯하다. 어느 한편에서는 공격을 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방어를 한다. 따라서 공격과 방어는 양자택일 문제가 아니라 양방향으로 전환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가 하는 유연성 문제인 것이다.
2011년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 육군이 얻은 교훈을 집대성한 연구 성과가 공개됐다. 바로 ‘통합지상작전(UNIFIED LAND OPERATIONS)’이다. 다소 시대를 앞서가는 실험적 내용도 포함됐기에 정식 야전교범으로 편성되기 앞서 교육 참고 형태로 발간됐다. ‘통합지상작전’이 출발한 근본적 문제의식은 공격-방어, 평화-전쟁, 민간-군대의 구분이 극도로 모호해진 오늘날의 작전환경과 위협이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를 이해하고 해법을 도출하기 위해 다른 문헌들보다 ‘유연성’을 강조하고 있다.
‘통합지상작전’이 제시한 작전 시 참고해야 할 유연성의 원칙을 방어 관점에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역공을 가할 수 없다면 과감히 피하라. 적의 공격에 막서는 가장 효과적이고 결정적인 대응책은 역시 역공이다. 그러나 그런 기회는 흔하지 않으니 선택지 내에 있는 상책(上策)은 ‘피하기’라는 것이다. 조금 다른 얘기일 수도 있으나 ‘과감한 돌진’이나 ‘분노에 찬 일격’ 같은 전투 사례가 미 육군 교범에서 사라진 것도 같은 선상이다. ‘이겨놓고 싸우는 법(先勝求戰)’을 추구하는 ‘손자병법’이 미 육군과 해병대 장교 필독교재가 된 것도 마찬가지다.
둘째, 종심이 깊게 대비하고 예비대를 준비하라. 지금은 평범한 것처럼 들리지만, 방어진지를 여러 겹으로 구축해 적의 공격 속도와 템포를 흡수한다는 ‘종심 방어(Defense in Depth)’ 개념은 전쟁 특성을 단번에 바꿔놓았다. 특히 제1차 세계대전에서는 종심 방어진지, 철조망, 지뢰, 기관총의 결합으로 지루하고 처절한 진지전이 반복됐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 유럽 각국은 종심 방어 개념에 따라 자국 국경선에서부터 안쪽까지 겹겹이 요새를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그러나 종심 방어는 곧 독일의 기동전, 소련의 종심전 개념을 운용한 공격에 의해 약점을 드러냈다. 간단히 말하자면, 종심으로 겹겹이 배치된 방어진지를 무시하고 빠른 속도를 이용해 측후방으로 기동, 공격하자 방어 태세가 급격히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대비책으로 나온 것이 강력한 예비대의 보유다. 전선에는 부대를 배치해 준비된 방어를 하고 그 뒤에는 일정 규모 이상의 부대를 언제라도 출동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아 측후방 공격 등 우발사태에 대비하게 한 것이다.  
셋째, 항상 기동할 준비를 하라. 방어라고 해서 땅에 파놓은 참호 안에서 총만 쏘는 정적인 장면을 상상해서는 안 된다. ‘통합지상작전’은 방어작전 시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수단이 기동이며 그다음이 화력, 배치된 진지라고 했다. 세계 모든 야전교범은 방어하더라도 공격하는 적의 후방을 타격해 혼란을 일으키고, 방어 도중 예상치 못한 곳에서 매복과 기습을 실행하는 공세적 방어를 하도록 주문하고 있다.
이제 악성 행위자에 대응하는 것에 유연성의 원칙을 적용해보자. 첫째, ‘통합지상작전’이 제시하는 것과 똑같이 대처할 수 있다. ‘피하라’는 것이다. 모 기관에 7년 동안 매주 각종 자료 복사를 요청한 전설적인 악성 행위자가 있다. 그 시작은 단순했다. 7년 전 어느 날 한 민원인이 해당 기관과 전혀 관계없는 자료를 문의했을 때 신입 직원이 이를 직접 구해 우편으로 보내준 것이 화근이었다. 이후에도 이 같은 과도한 친절이 반복되자 민원인은 이를 자신의 권리로 인식한 듯하다. 해당 직원은 수년 넘게 큰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책임과 보람이 없는 친절을 베풀었다고 한다.

상황별 매뉴얼 만들어 똑 부러지게

이런 경우 대처하는 법은 간단하다. 피하고 차단하는 것이다. 실제 모 홈쇼핑의 경우 사은품과 보상을 노리고 주문과 취소를 반복하는 악성 행위자에게는 아예 주문을 받지 않는다.
둘째는 악성 행위자와의 전화, 대화 시 어떻게 대할지 여러 버전의 매뉴얼을 만들어놓고 사태에 대응하는 것이다. 필자가 있는 사무실에도 가끔 업무와 무관한 민원 전화가 온다. 업무 계선 밖에 있더라도 상식적인 수준의 대화가 오가면 들어주고 도움을 주겠지만 “내가 참전한 전쟁은 월남전인데 누가 베트남전이라고 했는지 연락처를 알려달라”든가 “고구려의 원래 명칭은 고구리였으니 발간한 책을 전부 수거해 고쳐놓으라”고 말하면 어떻게 할 방법이 없다.
이럴 때 자의적인 대응은 금물이다. 월남전/ 베트남전, 고구려/ 고구리 등과 같이 단순해 보이는 용어의 선택 문제야말로 악성 민원인이 꼬투리를 잡을 수 있는 최적의 소재다. 아무 생각 없이 불필요한 말을 늘어놓는 순간 상대에게 말꼬리를 잡히고 만다. 얼마 전 이런 종류의 전화를 받은 남자 직원 한 명이 “이건 저희 일이 아닌데 왜 자꾸 여기로 전화하세요”라고 대답했다 상대가 “국민이 알고 싶다는데 책임을 회피한다”거나 “나는 두 번밖에 안 했는데 왜 자꾸 전화하느냐고 하냐” “왜 나를 나쁜 사람 만드는지 해명하라” 식의 말꼬리 잡기에 혼줄 나는 걸 봤다.
악성 행위자와 접촉했을 경우를 가정해 상황에 맞는 대답들을 프린트해놓거나 파일로 만들어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는 것이 가장 안정적이다. 민원과 관련한 규정과 방침이 적힌 매뉴얼을 정확히 읽어주고 똑 부러지게 “따라서 지금 제기하신 민원은 제가 답해드릴 차원이 아닙니다. 감사합니다”라고 마무리하는 것도 정석이다.
셋째는 윗사람에게 즉각 달려가라는 것이다. 문제를 알리고 해결을 부탁한다. 책임자나 상급자가 개입하면 쉽사리 끝날 일을 자신이 붙잡고 있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경우가 많다. 우리 주변을 보면 의외로 자신이 해야 할 일도,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어떻게든 해보려고 하다 문제를 더 키우는 사람이 많다. 특히 악성 행위자가 잘 하는 말이 “책임자 바꿔” 혹은 “여기 사장 나와”다. 이럴 때는 빨리 책임자를 바꿔주고 사장을 오게 하는 편이 낫다.
이 글을 막 마칠 즈음 모 신발브랜드 점주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고객을 욕해 결국 본사에서 사과문까지 발표한 사건이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고인을 희화화한 광고로 비난받고 매출이 급감한 치킨프랜차이즈 사건도 있었다. 악성 행위자에게는 이에 대응할 원칙이나 기준이 있지만 내부의 적이나 ‘악성 자아’에게는 답이 없다.
악의적 행위에 유연하게 대처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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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 2015.12.09 1016호 (p56~57)

  • 남보람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연구원 elyzcamp@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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