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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IS 파리 테러, 몰아치는 후폭풍

처참한 현장, 패닉 빠진 시민들

폭죽에도 놀라 과민반응 이어져…‘일상 복귀’가 저항의 구호로

처참한 현장, 패닉 빠진 시민들

11월 14일 오전 테러 사건이 발생한 프랑스 파리 레퓌블리크 광장과 생마르탱 운하 근처의 10, 11구 식당들을 찾은 기자는 아직도 남아 있는 테러 흔적에 몸서리를 쳐야 했다. 10구에 있는 식당 ‘르 프티 캉보주’와 술집 ‘카리용 카페’의 유리창엔 총탄 자국이 선명했고, 도로까지 흥건하게 고인 피를 가리기 위해 경찰이 톱밥을 뿌려놓았다. 횡단보도에 어지러이 찍힌 붉은 발자국들은 당시 끔찍했던 상황을 증언하고 있었다.

‘카리용 카페’ 정문 앞에 장미꽃을 놓고 촛불을 켜며 희생자들을 추모하던 앙토니 마차스(27) 씨는 아직도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기자에게 어젯밤 함께 술을 마셨던 친구들의 모습이 담긴 휴대전화 사진을 보여주면서 울먹였다. 사진에는 카페 앞 테라스에 널브러져 있는 젊은이 시신 10여 구가 담겨 있었다.

피바다로 변한 테라스석

‘11·13 동시다발 테러’가 휩쓴 뒤 파리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미국 뉴욕 맨해튼 풍경이 9·11테러 이전과 이후에 같을 수 없었던 것과 마찬가지다. 11월 18일 파리 북부 생드니에서는 테러범 검거 작전으로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졌다. 이날 저녁 예정돼 있던 샹젤리제 조명 점등식도 전격 취소됐다. 연말 시즌 화려하게 수놓던 조명과 함께 따뜻한 와인 ‘뱅쇼(Vin Chaud)’를 즐길 수 있는 샹젤리제의 크리스마스 노점상 마켓은 13일 개장했지만 테러 이후 폐쇄돼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가장 피부에 와 닿는 변화는 카페 앞 테라스 자리다. 파리지앵의 ‘테라스석’ 사랑은 못 말릴 정도다. 아무리 날씨가 추워도, 자동차가 매연을 뿜고 지나가도, 실내보다 야외 테라스석에서 수다 떨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요즘 샹젤리제 거리의 카페와 레스토랑들은 테라스석을 모두 치웠다. 11·13 동시다발 테러 당시 테라스석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주요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당시 테러범들이 카페와 식당 앞에 앉아 있던 사람들에게 자동소총을 난사하면서 테라스석은 온통 피바다로 변했다.



1월 전 세계를 경악에 빠뜨린 프랑스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당시만 해도 테러범들의 공격 대상과 메시지는 명확했다. 테러범들은 주간지 편집실에 난입해 이슬람교와 마호메트를 풍자한 만화가들을 한 명 한 명 조준 사격했고, 또 다른 테러범은 유대인 슈퍼마켓에서 인질극을 벌였다. 그러나 이번에는 카페, 술집, 콘서트장 등 불특정 다수가 이용하는 공공장소에서 무차별 난사를 했다는 점에서 파리 시민과 관광객들에게 더욱 큰 충격을 안겼다.

연쇄테러가 집중적으로 발생한 10, 11구 생마르탱 운하 인근의 카페와 바는 관광객보다 현지 ‘힙스터족’(대중적인 유행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고유한 취향을 찾는 부류) 젊은이들이 즐겨 찾는 곳이다. 프랑스인 여학생 아가트 모로(24) 씨는 사건 당시 ‘르 프티 캉보주’ 식당 테라스석에 친구와 함께 앉아 있었다고 했다. 테러범들이 식당 안으로 총을 쏘기 시작했을 때 모로 씨와 친구는 마시던 음료수를 집어던지고 무조건 뛰기 시작했다. 그는 “레퓌블리크 광장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무조건 뛰었다. 등 뒤에서 총소리가 끊임없이 들렸다. 고개를 들었을 때는 곁에서 모든 사람이 울부짖으며 우리처럼 뛰고 있었다”고 말했다.

파리 시민들은 요즘 폭죽이나 경보음 소리만 나도 집단공황 상태에 빠진다. 11월 15일 오후 5시 반 레퓌블리크 광장에서는 갑자기 ‘펑, 펑’ 하는 소리가 들려 희생자들을 추모하고자 광장의 공화국 탑 앞에 모여 있던 시민 수백 명이 비명을 지르며 일제히 뛰는 소동이 벌어졌다. 꽃과 촛불 위로 넘어지는 사람도 있었고, 많은 사람이 수백m를 달려 주변 레스토랑과 카페로 숨어들었다. 인근 운하의 차가운 강물 속으로 뛰어드는 사람도 있었다. 경찰 조사 결과 폭죽소리에 시민들이 과민반응한 것으로 확인됐다. 영국 ‘채널4’ 기자가 레퓌블리크 광장에서 리포트 도중 시민들이 뛰어가는 모습에 놀라는 모습이 생중계되기도 했다.

소동은 인근 마레 지구에서도 일어났다. 영국 BBC 마크 마르델 기자는 “한 여성이 ‘레퓌블리크 광장에 총을 든 남자가 나타났다’고 소리치자 인근 카페 점원들이 모든 손님을 레스토랑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일제히 철제 셔터를 내렸다”고 말했다. 손님들은 30분간 카페 바닥에 엎드려 쥐죽은 듯 있다 서둘러 귀가했다고 한다.

“‘파리인의 삶’으로 돌아가자”

이 같은 패닉 현상에 대해 마뉘엘 발스 프랑스 총리는 다음 날 RTL 라디오와 인터뷰에서 “지금은 전시(戰時) 상황”이라며 “평소와 다른 고도의 경계 속에서 침착하고 냉정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국민에게 주문했다. 11월 13일 밤 동시다발 테러 당시 독일-프랑스 국가대표 친선축구장에서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만 조용히 홀로 빠져나간 것에 대해 프랑스 언론들이 ‘합리적 대응’이었다는 평가를 주로 내놓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8만 명이 운집한 축구장에서 관중이 동요했을 경우 집단공황 상태에 빠진 시민들이 달려 나가다 수천 명이 압사당하는 사고가 TV로 생중계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 상황에서는 테러범들이 접근하지 못한 축구장 내부가 오히려 안전했고, 관중이 외부로 우르르 몰려나올 경우 더 위험했을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파리 시민들은 점차 일상을 되찾으려 노력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학교도 문을 열고, 주요 박물관과 공연장도 다시 개방했다. 그러나 에펠탑은 문을 열었다 직원들이 안전상의 이유로 업무를 거부해 다시 폐쇄하기도 했다. 학생들도 교내에서 수업을 하지만 현장학습은 모두 취소됐다. 시민들은 테러를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의연하게 ‘파리 시민의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고 있다.

미국 ‘뉴욕타임스’는 파리지앵의 삶과 떼어놓을 수 없는 ‘카페에서의 일상’이 새로운 방식의 ‘레지스탕스(저항)’ 운동이 되고 있다고 11월 17일 보도했다. 그 어떤 테러도 자유롭고 여유 있는 ‘프랑스인의 삶’을 해칠 수 없음을 보여주고자 시민들이 파리 문화를 상징하는 카페로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누리꾼들은 1월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 이후 나온 ‘나는 샤를리다’ 구호를 본떠 ‘나는 (카페)테라스에 있다(Je suis en terrasse)’나 ‘우리 모두 카페에(Tous au bistrot)’라는 문구에 해시태그를 붙이며 ‘파리인의 삶’으로 돌아가자고 독려하고 있다.

라데팡스에 사는 건축가 바네사 루코 씨는 “이번 테러는 우리 삶의 방식에 대한 공격이다. 카페에 가는 단순한 행위로 우리는 테러리스트에게 결코 프랑스의 심장을 빼앗을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간동아 2015.11.23 1014호 (p58~59)

  • 전승훈 동아일보 파리 특파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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