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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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최룡해·오일정 포퓰리즘 독재의 서막

‘빨치산 4대 가문 연합’과 전시체제 해체…내년 당대회로 공식화할 듯

  • 황일도 기자·국제정치학 박사 shamora@donga.com

    입력2015-11-20 17: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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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라진 최룡해·오일정 포퓰리즘 독재의 서막

    10월 초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준공식에 참석한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제1비서(가운데). 그 오른쪽이 최룡해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다.

    김일성-김정일 시대를 관통해온 북한 권력체계에 대해 가장 도발적인 분석 가운데 하나는, 겉으로는 사회주의국가를 표방하는 평양의 수뇌부가 실은 항일 빨치산 시절부터 운명을 함께해온 4대 가문의 세력연합에 불과하다는 시각이다. 주로 유럽의 북한 전문가들이 자주 거론해온 이러한 관점은 북한 체제가 중세 유럽의 봉건왕조와 다름없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이들 4대 가문이 암묵적 합의에 따라 대를 이어가며 권력을 나눠 누리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북한 체제의 가장 은밀한 비밀 가운데 하나라는 이야기다.

    1945년 조선노동당 설립 직후만 해도 남로당파, 소련파, 연안파, 갑산파 등으로 출신 성분이 다양했던 북한은 1950~60년대 권력투쟁을 거치며 다른 파벌을 모두 숙청하고 이들 빨치산 출신들을 중심으로 단일 대오를 만들어간다. 그 상징적인 결과물이 이른바 ‘김일성 유일영도체계’임은 잘 알려진 사실. 김일성, 최현, 오진우, 김책 가문은 이 과정에서 똘똘 뭉쳐 새로운 질서를 만든 주역이었다. 수상과 부수상, 민족보위상(훗날 인민무력부장) 등 이들이 적절히 나눠 가진 핵심 직위만 봐도 주요 가문의 세력연합이 얼마나 공고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세대가 바뀐 후에도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1992년부터 출간된 김일성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는 한 장을 할애해 빨치산 영웅들의 활약과 그 후손들의 품성 및 자질을 극찬한다. 김정일로의 후계체제 완성을 위해 준비된 ‘대를 이은 충성’의 강조는 이들 가문 2세들의 성공적인 직위 승계로 이어졌다. ‘혁명 유공자’ 자녀를 위해 47년 설립된 중등교육기관 만경대혁명학원은 그들만의 인맥을 강화할 수 있던 본거지였다. 비록 겉으로 드러난 직위에서는 수많은 인물이 떠올랐다 사라졌지만, 최현 전 민족보위상의 아들 최룡해와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 오일정은 탄탄한 실력과 정통성으로 ‘4대 가문 연합체’라는 북한 권력의 속성을 이어나가는 상징적 존재였다.

    점차 좁아지는 권력지도의 끝

    사라진 최룡해·오일정 포퓰리즘 독재의 서막

    이을설 전 호위사령관의 장례식 모습을 전하는 북한 ‘노동신문’ 11월 12일자 2면.

    11월 7일 생존해 있던 ‘빨치산 영웅’ 가운데 한 명이던 이을설 전 호위사령관의 사망, 그리고 뒤이은 171명 장의위원회 명단 발표. 최룡해와 오일정의 이름이 이 명단에 없다는 간단한 사실이 실제로 전혀 간단치 않은 이유는 바로 이러한 배경 때문이다. 이을설 사망 이후 두 주, 최룡해의 마지막 행적이던 10월 31일자 ‘노동신문’ 기고문부터 따지면 20일 가까이가 지났지만 두 사람의 행적은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빨치산 국가’라는 정통성의 구심점이던 두 사람이 그 빨치산 세력의 유일한 ‘원년멤버’의 장례식에 참여하지 않았고, 이후 행방이 묘연하다는 것. 두 사람이 완전히 권력에서 축출된 것이라고 단언하긴 아직 어렵지만, 이는 이전까지 다른 인사들이 숙청과 처형으로 사라진 것과는 이야기가 전혀 다르다. 쉽게 말해 ‘4대 가문 연합체’의 붕괴인 셈이다.



    좀 더 크게 그림을 그려보자. 앞서 설명한 대로 북한 권력사(史)는 그대로 권력을 나눠 가진 이들의 수가 점점 줄어드는 과정이었다. 1950년대에는 소련파와 남로당파 등 아예 활동무대가 달랐던 이들을 제거했고, 60년대에는 만주 무장투쟁의 동조세력이던 갑산파의 박금철, 이효순마저 제거했다. 이후 권력을 나눠 가진 빨치산 세력의 묵계는 반세기 동안 유효했지만, 김정은 조선노동당 제1비서로의 3대 승계가 공고해진 지금 그마저도 무너지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김정은-김여정 남매뿐. 다른 이들은 모두 ‘독자적 지분’을 내세우기 어려운 테크노크라트 그룹일 따름이다. 모든 권력의 정통성이 단 두 사람에게만 집중되는, 북한 체제 70년 역사상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일원화다.

    10월 4일 인천 아시아경기대회 폐막식 참석으로 낯이 익은 최룡해의 프로필은 익히 알려진 바와 같다. 최현의 아들로 당료 출신에 짧은 군 경력이 전부인 그는, 김정은 체제가 완성 단계에 진입한 2012년 4월 인민군의 정치적·사상적 통제를 담당하는 총정치국장에 올랐지만 2년 뒤 물러나 최근까지 노동당 비서(근로단체 담당) 자리를 지켰다. 이전에도 몇 차례 부침이 있었던 경력을 감안하면 최근의 묘연한 행적이 전혀 뜻밖은 아닐 수도 있다. 조지프 디트라니 전 미국 국가정보국(DNI) 국가비확산센터 소장, 존 메릴 전 미국 국무부 정보조사국(INR) 동북아담당 국장 등 미국 측 전문가들이 “아직 실각이라 단정하긴 어렵다”며 유보적인 태도를 견지하는 이유다.

    사라진 최룡해·오일정 포퓰리즘 독재의 서막

    2010년 9월 11일 붉은청년근위대 창건 40돌 중앙보고대회에서 오일정 조선노동당 군사부장이 보고하고 있다.

    정작 국내 전문가들이 훨씬 더 의미심장하다고 보는 부분은 오일정 조선노동당 군사부장이다. 1954년생으로 오진우 전 인민무력부장의 아들인 그는 92년 인민군 소장에 임명된 이후 한 차례 실각도 없이 당에서 북한군을 좌지우지하는 직위만을 이어온 숨은 핵심이었다. 북한 군사 분야를 오랜 기간 관찰해온 전·현직 당국자들은 이전부터 그가 최근 수년간 이어진 북한군의 변화를 막후에서 기획, 조정해온 사실상의 책임자라고 지목해왔다. 인민무력부장이나 총참모장 같은 명목상의 최고위 직위들이 쉴 새 없이 바뀌는 모든 과정을 집행해온 당사자일 것이라는 관측이었다. 물론 이 또한 그가 오진우의 아들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가능했던 일. 앞서 본 ‘4대 가문 연합체’론의 연장선상인 셈이다. 전직 정보당국자의 말이다.

    “최근 수년 사이 국내 일각에서는 ‘김정은 꼭두각시설(說)’이 회자된 바 있다. 북한의 실제권력은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조연준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을 중심으로 하는 조직지도부 인맥이 장악했고, 김정은 제1비서는 이들이 앞세운 ‘장식품’에 불과하다는 일종의 가설이다. 오일정이 실제로 숙청됐다면 이는 조직지도부 세력이 빨치산 가문의 후계자마저 제거하는 데 성공했음을 뜻한다. 2012년 7월 이영호 총참모장, 2013년 12월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처형에 이어, 그간 인민군 통제를 위해 권력을 공유해왔던 마지막 남은 ‘숨은 실세’마저 몰아냈다는 뜻이다. 이제 남은 이들은 옛 조직지도부 구성원뿐임을 감안하면 앞으로 ‘김정은 꼭두각시설’에 더욱 무게가 실릴 수밖에 없다. 다른 모든 ‘혁명세력’을 제거함으로써 오로지 김정은만을 정통성의 원천으로 남겨두려는 조직지도부 세력의 계산이 깔려 있을 수 있다는 의미다.”

    이렇게 놓고 보면 두 사람의 묘연한 행방은 또 다른 의미를 갖는다. 빨치산 4대 가문 연합으로 상징되는 북한 지배층이 조직지도부 출신들이라는 테크노크라트 그룹에 의해 완전히 교체된 첫 번째 사건이기 때문. 이미 2000년대 중반부터 ‘김정은 후계’를 위해 처절한 권력투쟁을 벌여온 이들이 김일성-김정일 시대 50여 년을 이어온 질서를 붕괴시켰다는 뜻이 된다. 선대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핏줄기’보다 김정은 후계 과정에서의 공헌이 훨씬 더 강력한 힘의 원천이 되는 새로운 권력지도의 완성이다. 이 역시 북한 역사상 일찍이 찾아볼 수 없던 사실상의 정권교체다.

    사라진 최룡해·오일정 포퓰리즘 독재의 서막

    10월 10일 북한 조선노동당 창건 70주년 경축 열병식 및 평양 군중시위 모습을 담은 이튿날 ‘노동신문’ 사진.

    새로운 체제의 원년?

    스테판 해거드 미국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UCSD) 석좌교수는 10월 10일 노동당 창건 70주년 기념 열병식에서 김정은 제1비서가 남긴 연설을 분석하며 ‘포퓰리즘적 독재의 서막’이라는 분석을 내놓은 바 있다. 90여 차례나 ‘인민의 생활’을 강조하고 청년 세대를 호명해가며 자신 역시 그중의 일원으로 ‘우리가 곧 미래’라 말하는 연설 내용은, 평양의 젊은이라면 열광할 만한 대목이 적잖았다는 것. 중국이 그랬듯 북한 체제 역시 인민들 삶의 질을 개선해나가는 방식으로 지지를 확보해 긴 시간 권력을 누리는 독재권력으로 안착할 수도 있다는 도발적인 평가였다. 독재권력은 취약하다는 전제는 서구의 것일 뿐, 이 같은 방식으로 오랜 기간 존속한 권위주의체제는 무수히 많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김정일 시대 최고 권력기구로 군림했던 국방위원회가 사문화된 최근의 흐름 역시 주목할 만한 시그널 중 하나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연구본부장은 “북한 국방위원회가 본떴던 소련 국방위원회는 제2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만들어졌다 전후 해체됐는데, 이후 국방위에서 ‘자신들의 영역’을 구축했던 군부의 전쟁 영웅들은 스탈린에 의해 제거된다”고 전한다. 북한 역시 1990년대 초 소련의 핵우산이 사라지면서 국방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전시체제에 돌입했다, 자체 핵 능력을 완성한 최근 들어 당 중앙위원회를 중심으로 하는 평시체제로 돌아가고 있다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그 과정에서 ‘어제의 영웅들’을 제거하는 작업이 함께 진행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라는 의미다.

    10월 말 북한 관영 ‘조선중앙방송’은 노동당 7차 당대회를 내년 5월 개최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1980년 10월 6차 대회 이후 소문만 무성하던 ‘노동당 최고 지도기구’가 비로소 문을 여는 셈. 70년 5차 대회에서는 주체사상이 전면에 등장했고, 80년 6차 대회에서는 김정일 후계구도를 공식화했다. 김정은 후계 과정에서도 열리지 않았던 당대회를 개최하겠다는 건, 말 그대로 그간의 비상시국을 정리하고 ‘새로운 체제의 완성’을 선언하기 위해서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건국 이후 한 번도 흔들리지 않던 권력연합을 해체하고 포퓰리즘 독재의 길로 접어드는 거대한 변곡점인 셈이다. 어느 모로 보나 ‘새 시대의 원년’으로 기록될 북한의 2016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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