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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 이옥남,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자식이란 무엇인지 늘 궁금하니까 늘 기다려진다”

백년 세월을 이겨낸 산골 할매의 詩心

  •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자식이란 무엇인지 늘 궁금하니까 늘 기다려진다”

[이미지 제공 · 양철북]

[이미지 제공 · 양철북]

“취향이 연상(年上)인데, 이젠 없어.” 

2015년 일본 한 백일장에서 장원을 차지한 단시 센류(川柳) 작품이다. 센류는 하이쿠(俳句)처럼 5·7·5로 구성된 17음의 정형시지만 반드시 계절언어(季語)가 포함돼야 하는 하이쿠와 달리, 세속을 풍자하고 인생의 해학을 노래하는 장르다. 저 시구만 떼놓고 보면 웃음이 터지지 않는다. 핵심은 이 센류를 쓴 야마다 요우(山田橫)가 92세라는 데 있다. 망백세 나이가 되다 보니 연상의 여인을 만나 연애할 꿈을 꾸기 어렵다는 귀여운 탄식에 절로 웃음 짓게 된다. 

‘90세. 뭐가 경사냐’. 

지난해 일본에서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기사단장 죽이기’를 제치고 베스트셀러 1위에 올라 화제가 된 에세이집이다. 마흔 넘어 등단한 당시 93세의 노작가 사토 아이코(佐藤愛子)가 두 번의 결혼과 이혼을 한 자신의 삶을 돌아보면서 “무난한 인생은 욕탕에서 마시는 김빠진 사이다”라는 식의 거침없는 입담을 펼친 책이다. 스마트폰이 일상이 된 현실을 역설적으로 “총바보의 시대”라며 “문명은 더 진보할 필요가 없다. 진보가 필요한 건 인간의 정신력”이라고 일갈한다. 지난해 11월 판매량이 100만 부를 넘어섰다는 소식에 “도대체 왜?”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는 기사도 화제가 됐다.


일본의 아라한 열풍을 아시나요?

100세 전후의 작가를 일본식 영어표현으로 ‘아라한(around hundred)’이라 부른다. 2012년 와타나베 가즈코(당시 85세) 수녀의 에세이집 ‘당신이 선 자리에서 꽃을 피우세요’가 230만 부 넘게 팔린 이후 아라한의 진격이 거듭되고 있기 때문이다. 2016년 출간된 다카하시 사치에의 ‘100세 정신과 의사가 발견한 마음의 안배’, 2015년 출간된 현역화가 시노다 도코의 ‘103세가 돼 알게 된 것’, 같은 해 출간된 일본 최초 여성 보도사진가인 사사모토 쓰네코의 ‘호기심 걸(girl), 지금 101세’ 같은 책들이다. 때로는 감동적이다 싶을 정도로 삶의 연륜이 묻어나는 글 속에서 젊은이들이 지혜와 용기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본 대형서점에선 ‘아라한 코너’를 따로 만들 정도다. 



한국에서도 서서히 이런 붐이 일고 있다. 2016년 8월 출간된 철학자 김형석(98) 교수의 ‘백년을 살아보니’가 그 시발점이 됐다. 첫 해 10만 부 이상 팔리면서 1970~80년대 인기 수필가였던 그의 예전 책들이 재발간되기 시작했고 ‘남아 있는 시간을 위하여’와 ‘행복 예습’ 같은 신작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아라한 열풍’을 이끈 할머니 작가군은 아직 등장하고 있지 않다. 

그런 가운데 눈길을 끄는 책이 최근 출간됐다. ‘아흔일곱 번의 봄 여름 가을 겨울’(양철북)이다. 한국 나이로 올해 97세인 저자 이옥남은 일본 아라한과 전혀 다르다. 전문직 종사자가 아니었던 것은 물론, 글쓰기를 훈련받은 필자도 아니다. 우리 주위의 정 많은 할머니, 그런데 박복해 배운 것 없고, 가진 것 없어 일복만 많은 할머니다.

강원 양양의 깊은 산골에서 태어나 일곱 살에 길쌈을 배우고 아홉 살에 김매는 법을 배웠지만, 여자가 글 배우면 시집가 편지질로 부모 마음에 못만 박는다는 이유로 학교 문턱에도 못 가봤다. 오라버니가 한글을 배울 때 어깨 너머로 보고 부엌 아궁이 재 위에 ‘가’와 ‘나’자를 써가며 남몰래 배운 게 다였다. 그렇게 열일곱에 양양 송천 마을로 시집와 시부모 모시고 남의 집 김매주고 품팔이해 술 좋아하는 남편의 외상값을 갚으며 살았다. 할머니 표현에 따르면 “남편이 죽고 나니 동네 술 파는 가게가 없어지더라”란다. 

스물일곱 살 때 아들 둘을 먼저 보내고 하나 남은 딸마저 시름시름 앓자 깊은 계곡에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남 공주 상운골로 들어가 10년을 살며 딸을 살려냈다. 거기서 아들 하나, 딸 하나 더 낳고 양양으로 돌아와 마흔 넘어 늦둥이 막내아들을 낳았다. 남편이 여자가 글 아는 것을 싫어해 군대 간 아들에게 몰래 편지글만 써 보내다 남편과 시어머니를 먼저 떠나보내고 쉰다섯 살부터 도라지 판 돈으로 노트를 사다 혼자 글쓰기를 시작했다. 딱히 일기를 쓴다기보다 ‘삐뚤빼뚤한 글씨체 좀 늘려보려고’ 연습 삼아 쓴 글이었다.


산골 할매 일기의 재발견

이옥남 할머니의 육필 일기. [사진 제공 · 양철북]

이옥남 할머니의 육필 일기. [사진 제공 · 양철북]

그렇게 30년 넘게 쓴 일기를 초등학교 교사가 된 손자(탁동철)가 보고 글쓰기 모임에 하나 둘 내놨다. 전문적 글쟁이들이 너나없이 감탄했다. 시골 촌부가 그냥 마음 가는 대로 쓴 글이 시가 되고 수필이 되는 것을 목격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동호회 차원에서 2009년 ‘깨모도 못 붓고 뻐꾹새 울 뻔했네’라는 제목의 문집을 냈다. 

손자는 이 문집을 들고 글쓰기 강좌에 나가 사람들에게 읽어줬다. 그 글을 접한 사람마다 감탄과 감동을 금치 못한 것을 지켜본 사람이 있었다. 조재은 양철북 출판사 대표였다. 그래서 불쑥 단행본으로 펴내자고 했다. 하지만 누구도 이 책이 팔릴까 자신할 수 없었다. 


8월 초 출간된 단행본(왼쪽)과 2009년 글쓰기 동인지 ‘글과 그림’이 펴낸 문집. [사진 제공 · 양철북]

8월 초 출간된 단행본(왼쪽)과 2009년 글쓰기 동인지 ‘글과 그림’이 펴낸 문집. [사진 제공 · 양철북]

그 고민을 들은 인터넷 서점 알라딘의 마케터들이 북펀딩을 제안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책의 출간을 응원해줄까 반신반의했다. 17일 펀딩 기간 568명이 응원에 나섰고 성금 750만 원이 모였다. 용기백배한 조 대표는 8월에 책을 냈다. 31년간의 일기 900여 편에서 151편을 엄선한 뒤 사계절에 맞춰 묶어냈다. 

맞춤법이 살짝 틀리고 사투리도 섞였지만 그 글을 읽고 무장 해제되지 않을 독자가 얼마나 될까. 할머니의 일기에는 늘 자연이 함께한다. 새가 울고 꽃이 피고 노을이 지고 달이 휘영청 밝은 이야기가 빠짐없이 등장하는데, 결코 진부하지 않다. 어린이의 눈과 귀로 보듯 해맑고 곱다 


[이미지 제공 · 양철북]

[이미지 제공 · 양철북]

“오늘은 집 옆 밭에 강낭콩을 심었다. 그리고 이른콩도 심었다. 어떻게 될지 두고 봐야 알지. 그저 심어서 매 가꾸고 바라볼 뿐이지. 날씨가 잘해야 될 터인데 하눌님이 잘 해야 될 터인데.”(‘하눌님이 잘 해야 될 터인데’) 

“소나무 가지에 뻐꾹새가 앉아서 운다. 쳐다봤더니 가만히 앉아서 우는 줄 알았더니 몸을 이리저리 돌리면서 힘들게 운다. 일하는 것만 힘든 줄 알았더니 우는 것도 쉬운 게 아니구나.”(‘뭣을 먹고 사는지’) 

“건너밭에 김을 매다가 너무 덥기에 닥나무 그늘 밑에서 좀 쉬는데 매미가 빨리 짐 메라고 맴맴맴맴 어찌나 허리를 빨리 꼬불꼬불 잘도 놀리는지 그것을 바라보면서 대체 너는 재주도 좋다 하는 생각이 든다. 나는 입으로도 그렇게 재빨리 못 하겠는데 허리로 재빠르게 꼬불낭꼬불낭하며 소리를 내는지. 매미야 나도 너처럼 예쁜 소리를 낼 수 있으면 좋겠다.”(‘매미가 빨리 짐 매라고’) 

그 마음은 인간에 대한 지극한 그리움으로 이어진다. 특히 장성해 떨어져 사는 자식들에 대한 애틋한 정을 토로한 글을 읽다 보면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큰딸이 온다기에 줄려고 개울 건너가서 원추리를 되렸다. 칼로 되리는데 비둘기가 어찌나 슬피 우는지 괜히 내 마음이 처량해져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네. (중략) 두엄을 퍼면서 집을 바라보니 누가 집으로 들어가기에 큰딸이 온 것 같에서 얼른 일어나서 집으로 오는데 진짜 딸이 왔네. 정말 반가웠지. 그런데 금방 가니 꿈에 본 것 같구나.”(‘꿈에 본 것 같구나’) 

“9시50분에 전화가 온다. 막내 전화다. 그래서 오랜만이다 하니까 왜 전화할 때마다 오랜만이라 한다고 도로 나를 원망한다. 자식이란 무엇인지 늘 궁금하니까 늘 기다려진다.”(‘막내 전화’) 

“오늘은 마을 회관에 안 가고 그냥 집에 있었다. 막내아들 내외가 온다고 해서 오는 것을 기다리며 있다가 오는 것을 반겨주고 오는 것을 맞아들이려고 집에 있었다.”(‘반겨주려고’)


어찌나 사람이 그리운지

강원 양양 산골에서 평생 농사지으며 살아온 이옥남 할머니. 오른쪽 흑백사진은 40대 초반 난생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다. 시집살이가 너무 고돼 영정사진이라도 남기자는 마음으로 속초 시내까지 나가 찍었다고 한다. [사진 제공 · 양철북]

강원 양양 산골에서 평생 농사지으며 살아온 이옥남 할머니. 오른쪽 흑백사진은 40대 초반 난생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다. 시집살이가 너무 고돼 영정사진이라도 남기자는 마음으로 속초 시내까지 나가 찍었다고 한다. [사진 제공 · 양철북]

이런 애틋한 자식 사랑은 이웃과 동물에 대한 물아일체의 사랑으로 확산된다. 돈 3000원도 아끼는 할머니가 군청까지 차 타고 나가 대구지하철 화재 사건에 성금을, 그것도 10만 원이나 내며 이렇게 말한다. “없이 사느라 남의 신세만 지고 좋은 일 한 번 못 해 보고 그게 한이 돼서 내가 조금이나마 보냈다. 자식 잃고 얼마나 애통할까. 정신이 아찔하고 미칠 지경이지. 아침 아홉 시에 그랬으니 한창 열기가 펄펄 끓는 젊은이들 죽는 게 너무나 애석하고 사진을 들여다보고 아무개야 아무개야 하는 게 내가 눈물이 난다.”(‘사는 게 사는 거 같겠나’) 

눈이 많이 온 날 동네에 내려온 고라니와 노루를 잡겠다고 설치는 사람들을 보면서 말한다. “그것들이 먹을 게 없으니까 내려왔지만 내려와도 먹을 게 없지. (중략) 어떻게 이해성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지 제 욕심만 꽉 찼지.”(‘어떻게 이해성이라고는 없는지’)  

 순박한 그 마음 때문에 폭소를 터뜨리게 되는 글도 있다. 첫머리에 소개한 일본 할아버지의 단시처럼 마지막 문장에서 반전이 펼쳐지는 글이다. 

“밭에서 김을 매는데 젊은 여자가 보건소에서 나왔다면서 치매 조사를 하고 갔다. 나 사는 동네 아냐고 해서 강원도 양양군 서면 송천리라 했더니 올해는 무슨 년이냐고 물어서 2014년이라고 대답했다. 오래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다.”(‘오래 살다 보니’) 

“날마다 도토리 까는 게 일이다. 망치로 꺠서 깐다. 안 깨면 못 깐다. 반들반들해서. 돌멩이 위에 놓고 망치로 때리는데 자꾸 뛰나가서 에유 씨팔 뛰나가긴 왜 자꾸 뛰나가너 하고 욕을 하고는 내가 웃었다.”(‘왜 자꾸 뛰나가너’) 

일본 아라한과 달리 이옥남 할머니의 글에선 “내가 100년 가까이 살아보니까 말야” 하며 인생에 달통한 사람의 혜안을 기대할 수 없다. 하지만 그 긴 세월 힘겹게 살아오면서도 마음속 깊은 곳에 곱게 간직한 순수함으로 우리를 감복게 한다. 

동아시아 한자경전의 하나로 꼽히는 ‘시경’에 실린 300여 편의 시는 고대 중국 민중의 민요를 채집한 것이다. 그래서 자연과 혼연일체가 돼 꾸밈이 없고 진솔하다. 이에 공자는 그 핵심을 ‘사무사(思無邪)’라고 표현했다. 삿됨이 없는 순수한 마음을 노래했다는 뜻이다. 그저 글씨 연습을 위해 무심히 쓴 글들을 읽으며 외롭고 힘겨운 삶 속에서 그 사무사의 등불을 꺼뜨리지 않고 지켜준 할머니에게 “고맙다”고 속삭이지 않을 시인이 있을까.






주간동아 2018.09.05 1154호 (p68~70)

| 권재현 기자 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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