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144

2018.06.27

국제

협상 카드 및 외화벌이 수단

북한의 미군 유해 발굴과 송환

  • 입력2018-06-26 11:0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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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8년 11월 6일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가 들어 있는 관을 전달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웹사이트]

    1998년 11월 6일 북한군이 판문점에서 미군 유해가 들어 있는 관을 전달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웹사이트]

    북한 주민은 6·25전쟁 때 전사한 미군의 유해에서 찾은 ‘군표’(인식표의 북한식 표현)를 노다지라 부른다고 한다. 수십 년간 땅속에 묻혀 부식되고 녹슬어 형체조차 알아보기 힘든 미군 인식표를 중국 브로커를 통해 미국 측에 팔면 상당한 돈을 받을 수 있다는 소문 때문이다. 실제 돈을 받았다는 얘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북한 주민 가운데 일부는 중국에 있는 지인을 통해 미군 인식표를 팔려고 시도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군이 많이 전사한 함경북도 지역에는 훗날 큰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미군 인식표를 보관 중인 북한 주민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은밀하게 미군 인식표 거래도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북한 인권단체 자유북한국제네트워크의 김동남 대표는 “미군 인식표를 팔겠다고 문의하는 북한 사람이 있다”며 “진위가 검증되지 않은 미군 인식표를 개당 1000달러(약 110만 원)까지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미군 장병들은 자기 이름과 군번을 확인할 수 있는 인식표 2개를 목에 걸고 다닌다. 만약 어떤 병사가 전장에서 숨지면 전우가 시체를 옮겨갈 수 없으니 인식표 하나는 떼어 가고, 나머지 하나는 시신에 남겨둔다.

    미군 유해 5300여 구 추정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유족이 유해에서 수습한 인식표를 보여주고 있다(왼쪽). 미군 의무병이 유족에게 전사자 유해의 DNA 검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웹사이트, DPAA]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병사의 유족이 유해에서 수습한 인식표를 보여주고 있다(왼쪽). 미군 의무병이 유족에게 전사자 유해의 DNA 검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 웹사이트, DPAA]

    북·미 정상회담 합의에 따라 미국 정부는 6·25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하거나 실종된 장병들의 유해 중 200여 구를 미국 정부에 송환했다. 2007년 이후 11년 만이다. 북·미 정상회담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에는 ‘미국과 북한은 신원이 이미 확인된 전쟁포로, 6·25전쟁 실종자의 유해를 즉각 송환하는 것을 포함해 유해 수습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아직 찾지 못한 6·25전쟁 때 미군 전사자나 실종자의 유해와 신원 확인을 못 한 장병의 유해는 지금까지 7702구다. 이 중 5300여 구가 북한에 묻혔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6·25전쟁 정전 이후 북한에 전사자 유해 송환을 요청했다. 북한은 정전협정에 따라 1954년 8월 미군을 비롯해 유엔군 전사자 유해 4019구(미군 2944구로 추정)를 넘겨준 것을 마지막으로 송환을 중단했다. 미국의 끈질긴 요청으로 북한과 유해 송환 협상이 88년 12월에야 재개됐고, 93년 ‘미군 유해에 관한 합의서’가 만들어졌다. 북한은 91부터 94년까지 미군 전사자의 유해가 담긴 208개 상자를 미국 측에 건넸다. 미국은 1996년부터 2005년까지 33차례에 걸쳐 북한으로 들어가 220여 구의 미군 전사자 유해를 찾았다. 당시 미국은 유해 발굴 비용으로 북한에 현금 2800만 달러를 전달했다. 이후 미국은 북한에서 활동 중인 유해발굴팀의 신변 안전을 우려해 작업을 중단시켰다. 미국은 2011년 북한과 합의로 유해 발굴 작업을 재개했지만, 2012년 4월 북한이 장거리로켓 발사를 강행하자 발굴 작업을 중단했다. 이처럼 미국의 유해 발굴과 송환 작업은 북한의 비협조로 별다른 진전이 없었다. 게다가 1992년부터 2011년까지 20년간 신원이 확인된 유해는 61구밖에 되지 않았다. 

    미국은 비용과 시간에 관계없이 제2차 세계대전을 비롯해 6·25전쟁, 베트남전쟁, 이라크전쟁 등에 참전했다 실종되거나 전사했지만 신원을 알 수 없는 장병들의 유해를 가져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이 세계 최강 군대를 보유하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미국 국민은 국가의 부름에 따라 자신을 희생한 장병들에게 경의를 표했고 포로나 유해 송환에 최대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미군 전사자와 실종자의 유해를 찾아내 신원을 알아내는 일을 담당하는 곳은 국방부 산하 ‘전쟁포로 및 실종자 확인국(DPAA)’이다. DPAA는 2011년 전쟁 전사자와 실종자 유해의 신원 확인을 신속하게 진행하기 위해 한국계인 제니 진 박사가 이끄는 ‘K208’팀을 출범했다. K208팀은 2012 회계연도에 유해 28구의 신원을 밝혀낸 데 이어 2013년 26구, 2014년 23구, 2015년 29구, 2016년 69구, 2017년 56구를 식별했다. 

    신원 확인이 크게 늘어난 것은 유전자 감식 및 분석과 대조 기술이 획기적으로 발전했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너무 오래된 뼈에서는 DNA 추출이 안 됐지만 지금은 과학의 발전으로 DNA 추출 확률이 높아졌다. 또 다른 이유는 가족으로부터 채취한 유전자 시료가 축적된 덕분이다. 이에 따라 유해의 DNA와 가족의 DNA를 대조해 신원 확인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DPAA는 현재 6·25전쟁 참전 미군 가족 89%의 DNA 샘플을 보유하고 있다.

    보관하던 유해로 생색내기?

    가장 아이러니한 이유는 북한의 본의 아닌 협조에 있었다. 당시 북한은 미군 유해 208구를 208개 상자에 넣어 보냈다. 그런데 DPAA가 확인해보니 한 상자에 여러 유해가 섞여 있었고, DNA 검사 결과 한 상자에 평균 4명의 유해가 들어 있었다. 이에 북한이 보낸 유해를 다시 정리한 결과 400명 이상으로 파악됐다. 북한이 400여 명의 유해를 미국에 제공한 셈이 됐다. 게다가 유해 상태를 볼 때 북한은 6·25전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이미 유해를 발굴해 보관해뒀고, 덕분에 유해 대부분이 훼손되지 않았다. 북한은 이런 사실을 감추고자 최근 발굴된 유해를 돌려주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했다고 한다. 

    북한은 그동안 상당수의 미군 유해를 발굴해 보관해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민간단체 ‘위트컴 희망재단’의 한묘숙 전 이사장은 “북한이 미군 유해를 미국과 협상 카드로 생각하기 때문에 누군지도 모르는 유해를 창고에 잔뜩 쌓아놓고 있다”고 말했다. 6·25전쟁에 참전한 전 유엔군 부산군수사령관 리처드 위트컴 미군 준장의 부인인 한 전 이사장은 숨진 남편의 뜻을 받들어 1990년대부터 북한에 들어가 미군 유해 발굴 작업을 해왔다. 지난해 타개한 한 전 이사장은 “발굴하려면 미군이 많이 숨진 장진호로 가야 하지만 북한이 접근조차 못 하게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북한이 유해를 송환한 것은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불신을 완화하고 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라고 볼 수 있다. 게다가 미국 유해 발굴단이 북한의 협조로 유해를 찾는 작업을 계속 벌인다면 북·미 간 신뢰가 구축될 수 있다. 북한의 또 다른 노림수는 미국이 유해 발굴 비용으로 달러를 북한에 현금으로 지불할 경우 돈을 챙기는 것은 물론, 대북제재를 완화하는 명분으로 삼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유해 발굴과 송환을 약속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회 위원장에 대해 “정말 관대했다”면서 ‘선의’(善意)를 높게 평가한 바 있다. 이런 발언으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선의가 아니라 미국과 협상 카드용으로, 또는 외화벌이를 위해 미군 유해를 보관해왔다는 사실을 모르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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