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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롯데 ‘작은 거인’에서 아이들 희망 전도사로

박정태 레인보우희망재단 이사장

롯데 ‘작은 거인’에서 아이들 희망 전도사로

롯데 ‘작은 거인’에서 아이들 희망 전도사로

재단 운영과 야구단 지도로 바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박정태 레인보우희망재단 이사장. 인터뷰 당일 일반부 야구팀 아이들을 가르치던 중 포즈를 취했다.[홍태식 기자]

롯데 ‘작은 거인’에서 아이들 희망 전도사로
부산에서 ‘박정태’는 고유명사로 통한다. 야구 사랑이 별난 부산에서 1990년대 롯데 자이언츠를 이끈 간판타자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기 때문. 부산 사람들은 지금도 박정태(48 ) 레인보우희망재단 이사장을 ‘작은 거인’ ‘악바리’ ‘탱크’ ‘돌격대’ ‘오뚝이’ 등 다양한 별명으로 기억하고 있다.

박 이사장의 인기 비결은 강인한 정신력과 근성, 실력으로 팀 승리에 기여한 데 있다. 동래고와 경성대를 거쳐 1991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그는 2루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역대 최다인 5차례나 수상했고, 99년 31경기 연속 안타 신기록도 세웠다. 올스타는 6번 뽑혔는데 98년과 99년 연이어 올스타전 최우수선수(MVP)로 등극했다.

전설적 야구선수였던 그가 9월 29일 문화체육관광부가 아닌, 법무부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 2015년 레인보우희망재단을 창설하고 ‘레인보우 카운트 야구단’을 만들어 비행청소년, 다문화가정과 저소득층 청소년이 꿈을 키울 수 있도록 노력한 공로를 인정받은 것이다. 10월 10일 만난 그는 “어릴 때 환경이 열악했지만 좋은 분들을 만나 오늘의 박정태가 됐다. 마음 한구석에 그 빚을 갚아야겠다는 생각이 있었고 꾸준히 일하다 보니 감사패도 받게 됐다”고 말했다.



야구로 아이들 선도 앞장서

최근 박 이사장이 열심히 추진하는 프로젝트는 소년원 야구대회다.



“전국 10개 소년원에 2000여 명 아이가 있어요. 그 아이들이 즐겁게 야구를 할 수 있도록 전국대회를 만들려 합니다. 소년원 아이들을 여러 팀으로 나눈 뒤 예선전을 치러 한 팀을 선발하고, 그렇게 모은 10개 팀이 전국대회를 치르는 거죠. 현재 부산 등 각 소년원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고 있어요. 아이들을 자발적으로 움직이게 할 동력이 필요한데, 전국대회는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당근이죠.”

그가 하루아침에 소년원 야구대회라는 대형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된 것은 아니다. 2004년 은퇴해 코치로 활동하면서 사단법인을 만들어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도왔다. 그 과정에서 규모가 점점 커져 2015년 레인보우희망재단을 창설하게 됐다. 

레인보우희망재단의 주력 사업은 무지개 색깔별로 나눈 레인보우 카운트 야구단의 운영이다. 빨간색은 저소득층 아동, 주황색은 장애아동, 노란색은 아동시설, 초록색은 학교 밖 아이들, 파란색은 다문화가정 아동, 남색은 학교폭력 피해 아동, 보라색은 탈북청소년 등이다. 또 야구선수를 꿈꾸는 일반부 아이들이 모인 검은색 팀까지 총 8개 팀을 운영 중이다. 박 이사장은 특히 초록색 팀 아이들에게 마음이 간다고 했다.

“학교 밖 아이들은 보호감호소에 있는 학생들로, 대부분 기로에 서 있어요. 조금만 잘 이끌어주면 사회에 빨리 적응하지만, 방치하면 소년원에 갈 공산이 크죠. 사실 보호감호소에서 생활하더라도 일주일에 한 번씩 밖으로 나올 수 있다 보니 사회와 격리되지 않아 오히려 변화되기 어려워요. 뭔가 집중할 게 필요한데 야구가 그런 구실을 합니다. 실제 야구를 하면서 바뀐 아이가 많아요.”박 이사장이 학교 밖 아이들에게 신경을 더 쓰는 것은 그의 과거와 연관 있다. 그 역시 어린 시절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홀로 가계를 꾸리는 어머니 밑에서 엇나간 적이 있었던 것이다.

“아무도 제가 잘못하고 있다는 얘기를 해주지 않았어요. 제 행동을 판단할 잣대가 없었던 거죠. 운 좋게도 저는 야구 재능을 알아본 스승이 계셨지만, 그런 기회조차 갖지 못한 채 나쁜 길로 빠지는 아이가 너무 많아요. 그 아이들을 잡아주는 게 제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습니다.”



“나 역시 한때 비행청소년”

롯데 ‘작은 거인’에서 아이들 희망 전도사로

9월 29일 박정태 레인보우희망재단 이사장(오른쪽)은 소년원 원생들에게 야구를 가르치는 봉사활동을 한 공로를 인정받아 법무부로부터 감사패를 받았다.[사진 제공 · 법무부]

아이러니하게도 박 이사장이 야구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인 계기는 패싸움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는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동네에서 야구 시합을 했다. 집안 사정이 좋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기죽지 말라며 글러브와 방망이 등 장비를 사줬다. 그 덕인지 동네 야구 시합에서 승승장구했고, 야구 명문으로 알려진 부산 대연초 야구부 아이들과 시합을 하게 됐다.

“항상 용돈을 걸고 시합을 하니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고, 백전백승이었어요. 대연초 야구부 아이들과 시합에서도 이기고 있었는데 얘들이 학교 선배를 데려와 마지막 회를 못 하게 막더라고요. 화가 나서 그 선배들하고 패싸움을 하게 됐죠. 그 광경을 대연초 야구부 감독이 보고는 어머니를 모셔오라고 했어요. 혼날 줄 알았는데 ‘정태가 깡다구가 있어서 야구선수를 하면 대성할 것 같다’고 하더군요. 어머니는 형편이 어려워 힘들다고 했는데, 감독이 ‘나만 믿고 맡겨달라’고 해서 바로 전학을 갔어요.”

꿈에 부풀어 시작한 야구부 생활은 녹록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훈련이 이어졌고, 동계훈련 때는 권투까지 익혀야 하는 강훈련이 계속됐다. 그만두고 싶은 고비가 몇 차례 있었다. 

“실수라도 하면 감독이 우리에게 포수 장비를 입히고 힘껏 쳤어요. 그냥 맞는 거죠. 그러다 보니 나중에는 악만 남더라고요. 대부분 힘들어했는데, 저는 어릴 때부터 산전수전 다 겪어서인지 그런 훈련을 비교적 수월하게 받아들였어요. 야구부 들어가기 전에는 새벽부터 신문배달을 하고 방과 후에는 어머니 일을 도와야 해 밥도 제대로 먹지 못했죠. 그래서 오히려 야구부 생활이 천국처럼 느껴졌어요.”

악바리처럼 연습했지만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는 야구보다 다른 데 더 정신이 팔렸다. 불량아이들과 친해지면서 싸움에 일가견이 생긴 것. 박 이사장은 중학교 2학년 때까지 고등학교 불량서클 선배들의 지시에 따라 몰려다니며 패싸움을 했고, 타고난 근성 때문(?)인지 싸움 잘한다고 소문이 났다. 그가 다시 야구로 돌아온 것은 순전히 어머니 때문이었다.

“중학교 2학년 겨울 어느 날 훈련이 끝난 뒤 학부모들과 단체회식을 했어요. 그날 회식이 끝나고 늦은 밤까지 어머니가 맨손으로 그 많은 설거지를 혼자 다하는 모습을 봤어요. 가난해 야구부 회비를 못 내니까 설거지로 대신한 거죠. 잠시 스치듯 본 건데 지금도 어머니의 뒷모습이 생각나요. 너무 큰 충격을 받아서 굉장히 많이 울었어요. 그날 이후 인생이 달라졌죠. 제 가슴속에 ‘어머니를 호강시켜 드리겠다’는 목표 하나가 깊이 박혔거든요.”

연습하다 보면 날이 밝아오는 날의 연속이었다. 쉬는 날도 없이 연습했다. 고등학교 입학 무렵이 되자 야구가 세상에서 제일 쉽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야구 명문인 동래고에 입학해서도 밤늦게까지 연습하는 사람은 그가 유일했다. 그는 1991년 경성대 졸업 후 꿈에 그리던 프로야구 선수가 됐다.

“기뻤어요. 그때까지 집에 빚이 많았는데 어느 정도 갚았고, 살림이 피기 시작하자 어머니도 좋아하셨죠. 중고교 시절 맺힌 한이 풀리는 느낌이었어요. 그러나 입단이 전부는 아니었어요. 그때부터 팀을 우승으로 이끌어야겠다는 목표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죠.”



악바리에서 전설로

롯데 ‘작은 거인’에서 아이들 희망 전도사로

배트를 한 손으로 잡고 몸을 흔들흔들 움직이면서 공을 치는 흔들 타법으로 유명했던 박정태 레인보우희망재단 이사장의 선수 시절 모습.[동아DB]

박 이사장은 프로 생활 내내 실력도 뛰어났지만 근성, 깡다구, 집념 같은 단어가 먼저 떠오르는 선수였다. 그 덕에 팬뿐 아니라 선수들도 그를 따랐다. 1999년 31경기 연속 안타 기록도 혼자만의 노력으로 나온 게 아니었다.

“당시 선수들이 저를 많이 밀어줬어요. ‘박정태에게 한 타석이라도 더 기회를 주자’는 분위기였죠. 당시 6월 한화 이글스와 경기는 지금도 기억이 생생해요. 1, 4, 6, 7회 네 번의 안타 기회를 놓치고 6-6 동점으로 팽팽한 상황이었어요. 선수들이 열심히 뛴 덕에 가까스로 9회 타석에 들어설 수 있었죠. 더그아웃에서 선수들이 ‘우리가 만들어준 타석이니 꼭 안타 쳐’라고 하더라고요. 가슴이 벅찼어요. ‘내가 뭐라고 선수들이 이렇게까지 밀어주나’ 싶었어요. 온 신경을 집중해 결국 안타를 쳤고 연속 안타 기록이 이어졌어요.”

박 이사장은 전매특허인 흔들 타법으로 지금까지 회자되고 있다. 배트를 한 손으로 잡고 몸을 흔들흔들 움직이면서 공을 치는 타법이다. 그와 비슷한 타법을 과거에도, 지금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살아남으려니 저절로 만들어진 폼”이라고 설명했다.

“프로선수로 입단하고 3년 정도 걸쳐서 흔들 타법을 완성했어요. 제가 키가 좀 작아서 덩치가 큰 타자들에 비해 힘이 부족한 편이었죠. 일단 어깨에 힘을 빼야 오래 버틸 수 있겠더라고요. 연습을 계속하다 보니까 우산을 한 손으로 들 때 무리가 덜 가는 것처럼 배트를 한 손으로 직각이 되게 세워 들면 어깨 부담이 덜하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이후 한 손으로 배트를 쥐고 무게중심에 따라 몸을 움직이면서 타격 포인트를 잡다 보니 흔들 타법이라는 게 만들어졌죠.”

타자가 몸을 계속 흔들어대니 투수로서는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또 선구안도 좋고 원하지 않는 공을 ‘커트’하는 능력도 뛰어나, 그가 타석에 서면 투수의 투구 수가 많아졌다.

“연습을 많이 하니 공을 골라서 칠 수 있게 되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 히팅 포인트를 최대한 뒤쪽까지 가져가 더욱 그랬죠. 마음에 안 드는 공은 커트하거나 그냥 보낼 수 있었는데, 나중에는 투수를 가지고 놀게 되더군요.(웃음) 사실 안타를 쳤을 때보다 상대 투수를 제 의도대로 움직였을 때가 더 기뻤어요.”

2000년대 초반까지 전성기를 누리던 박 이사장은 2004년 35세에 은퇴했다. 그의 근성이나 성적을 보면 현역생활을 더 할 수 있었으나 후배들에게 길을 터주고 싶었다. 그는 롯데뿐 아니라 프로야구 전체 구단으로부터 사랑받았다. 2004년 10월 롯데전에서 은퇴식을 가진 LG 트윈스 유지현은 자신이 받은 꽃다발을 박 이사장에게 건네며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정신적 지주는 박정태 선수”라고 말했을 정도다. 

“정말 의외였어요. 물론 저 역시 은퇴를 앞두고 있었지만 다른 구단 선수에게 자기 꽃다발을 주는 일은 없으니까요. 그날 저도 울고, 보는 팬들도 울었죠. 경쟁자였지만 함께 야구를 하며 정들었던 시간이 생각나 그랬던 것 같아요. 늘 지현이가 잘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 LG 수석코치가 됐다는 소식을 듣고 무척 기뻤어요.”

14년간 이어온 프로야구 선수 시절을 회상하면 그는 “과분한 사랑을 받은 기억뿐”이라고 말했다. 보잘것없던 청년에게 기회를 준 구단에 고맙고, 믿고 이끌어준 감독 및 코치진에게도 감사하다고. 무엇보다 그는 “열렬히 지지해준 팬들에게 보은해야 한다는 마음이 여전히 크다”고 말했다.

은퇴 후 박 이사장은 2012년까지 8년 동안 롯데에서 코치로 일했다. 2군 코치와 감독으로 일하면서 시야도 넓어졌다. 야구를 시작하고 한 번도 실패를 맛본 적이 없는 그는 처음에는 2군 선수들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차츰 그들을 진심으로 아끼게 됐다.



롯데 ‘작은 거인’에서 아이들 희망 전도사로

1999년 31경기 연속 안타를 기념한 사인볼.[홍태식 기자]

‘제2의 박정태’ 나오도록 헌신할 것

롯데 ‘작은 거인’에서 아이들 희망 전도사로

[홍태식 기자]

“가르치면서 이해와 용서를 배웠어요. 처음에는 실력이 부족한 선수를 이해하지 못했죠. ‘연습만 하면 잘할 수 있는데 왜 안 하지’라는 의문만 가득했어요. 시간이 가면서 각자의 문제점을 찾을 수 있었죠. 가르쳐서 잘된 선수도 있지만 그만두라고 한 경우도 많아요. 미래가 보이지 않으면 1년이라도 빨리 그만두는 게 답이에요. 그 친구들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기도 하지만 나중에는 저를 찾아와 그때 사실대로 말해줘 고맙다고 해요.”

코치로 일한 것이 레인보우희망재단을 꾸려가는 데도 큰 도움이 됐다. 인생의 갈림길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어떻게 지도해야 할지 감을 잡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금만 잡아주면 미래가 달라질 아이들’이라고 말했다.

“세상의 기준에서 모자란 아이, 엇나간 아이를 보고 미래가 없다고 하는데, 저는 동의하지 않아요. 아이들은 다른 게 있어요. 하나에 꽂히면 쏟아붓는 열정이 남달라요. 저는 아이들에게 무조건 야구를 하라고 하지는 않아요. 연예인을 하고 싶다는 아이도 많은데 열심히 하게끔 응원해주죠.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주느냐에 따라 대한민국을 이끄는 사람도 될 수 있다고 봐요.”

박 이사장은 앞으로 자신의 이름이 없어질 때까지 헌신하며 살고 싶다고 했다. 야구를 처음 시작했을 당시 초심을 잃지 않으면서 그때의 자신을 떠올리게 하는 아이들을 계속 도울 계획이다.

“도움을 주는 분도 많지만 혼자 힘으로는 어려워요. 아직까지 우리나라는 기부에 인색하잖아요. 다들 힘들다고 생각하지만 주변을 보면 더 어려운 사람이 많거든요. 따뜻한 말 한 마디, 식사 한 끼가 어떤 이에게는 삶을 회복하는 계기가 되기도 해요. 그런 기회를 더 많이 줄 수 있도록 재단에 도움의 손길이 계속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그리고 기회가 된다면 롯데 감독이 돼 팬들과 약속도 지키고 싶어요.”






주간동아 2017.10.18 1109호 (p36~39)

  • 부산  =  정혜연 기자 grape06@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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