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92

2017.06.14

안보

한미정상회담 내실 있게 치러질까

수장 없는 외교부. 혼란스런 국방부와 국정원, 美와 사전조율 미흡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입력2017-06-09 17: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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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 정부 초기 뉴스가 쏟아지다 보니 파묻히는 뉴스가 있다. 6월 1일 긴급 귀국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이 다음 날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70여 분 동안 대화한 것에 주목한 언론은 별로 많지 않다. 박수현 대통령비서실 대변인만 함께한 사실상 독대였다. 

    반 전 총장은 1월 “대통령이 되겠다는 분이 ‘대통령이 되면 미국보다 평양에 먼저 가겠다’는 말을 하느냐”며 문 대통령을 비판한 바 있다. 그런 그가 문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급거 귀국해 장시간 환담한 점은 그 의미를 곱씹어볼 만하다.

    일부 언론은 문 대통령이 반 전 총장을 북한에 특사로 보내려고 만났을 것으로 추측했다. 그러나 더불어민주당 표창원 의원은 자신의 트위터에 “대선으로 상처받지 마시고 바로 세계의 지도자 대한민국 정부 조언자 역할 맡아주셨다면 더 좋았을 분. 앞으로 그 역할 해주시길 바라고 믿습니다. 문 대통령 ‘외교문제 걱정. 지혜 빌려달라’ 반 ‘기꺼이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만남에 배석한 박 대변인은 “(문 대통령은) 국내 정치는 소통하며 풀어가면 되지만, 외교 문제는 걱정이고 또 당면 과제이니 총장님이 경험과 지혜를 빌려주셨으면 한다고 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는 6월 말로 다가온 한미정상회담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이 적잖은 상태에서 문 대통령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무엇을 어떻게 논의해야 할지 가닥을 잡느라 고민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의제 설정이다. 갈등의 핵심인 사드를 넣으면 벌집을 건드린 것 같은 회담이 될 수 있고, 빼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만남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문 정부가 사드 대지에 대한 환경영향평가를 제대로 하겠다고 한 것에 대해 미국은 양해한다고 할 개연성이 높다. 외견상으론 수습이지만 실제로는 갈등을 뒤로 미룬 셈이다. 일각에선 사드를 공식 의제에 포함하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반기문은 트럼프와 가까운가

    문 대통령은 홍석현, 문정인 두 명을 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로 임명했다. 홍 특보는 문 대통령 취임 직후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고 돌아왔고, 문 특보는 미국에 상당수 지인이 있다. 그런데 이들 외 지난 대선에서 반대편 장수가 되려 했던 반 전 총장에게 자문을 구했다. 반 전 총장이 어떤 조언을 하고 어떤 활동을 약속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트럼프 대통령과 회담을 잘하려는 목적으로 반 전 총장에게 자문을 구했다면 잘못된 선택이라고 지적하는 이가 적잖다.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 이유로 반 전 총장이 지난해 5월 19일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법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은 뒤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연설에서 “인종차별과 파리협정을 부정하는 정치인에게는 표를 주지 말라”고 당부한 것을 꼽는다. 반 전 총장은 이름만 거론하지 않았을 뿐 대놓고 트럼프를 비난한 것이다.

    두 번째 이유로는 반 전 총장이 트럼프가 대통령 당선인 시절인 지난해 12월 말 면담을 요청했으나 끝내 만나지 못한 것을 꼽는다. 그가 트럼프를 만나고 귀국했다면 트럼프와 화해한 것으로 볼 수 있고, 대권후보가 되는 것도 훨씬 수월했을 테다. 소식통들은 반 전 총장이 트럼프 진영에 접근하기 어려운데 문 대통령이 그를 불러 자문을 구한 것은 한국에 트럼프 대통령과 통하는 사람이 그만큼 없다는 증거라고 말한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공식라인으로 접근할 통로를 만들고자 강경화 유엔 정책특별보좌관을 외교부 장관 후보자로 제일 먼저 발표했다. 소식통들은 강 후보자가 가진 미국 인맥에 대한 기대로 문 대통령이 그를 지명했다고 본다. 

    외교부는 유임된 임성남 제1차관 지휘 아래 이정규 차관보와 조구래 북미국장, 청와대에서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이 직접 대미외교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런데 사드 문제로 불편한 상황에서 외교부만 뛰어서는 좋은 정상회담을 만들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와대는 이번 한미정상회담에 기업인으로 구성된 경제사절단과 동행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하지만 경제 분야에서도 의제 설정이 쉽지 않은 눈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 대선후보를 지지했다. 그런데 공화당 트럼프 후보가 당선되자 제일 먼저 방미해 4500억 달러(약 505조3500억 원)의 투자안을 내놓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한 후 첫 방문국인 사우디아라비아는 1000억 달러의 무기 구매를 포함해 약 3000억 달러의 선물 보따리를 안겼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미·중 정상회담을 갖고 대미(對美) 흑자를 줄이는 방안을 찾을 테니 100일이라는 시간을 달라고 요구했다. 그리고 핵·미사일 도발을 거듭하는 북한을 강력 억제하는 성의를 보여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환심을 샀다.

    우리도 일본이나 사우디아라비아처럼 뭔가를 주고 윈윈(win-win)도 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내야 한다. 한국이 전전긍긍하는 것에 비해 트럼프 정부는 단순 명쾌하게 행동하고 있다. 5월 매슈 포틴저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을 한국에 보내 사드 문제를 논의하고 한미정상회담과 관련해 한국 의견을 청취해갔다.

    미국은 안보 문제로 한국을 상대하는 모양새를 보였다. 5월 29일에는 맥 손베리 미 하원 군사위원장 일행 8명이 정의용 국가안보실장을 만났고, 6월 5일에는 MD(미사일방어)체계를 담당하는 제임스 실링 미 국방부 미사일방어국장이 빈센트 브룩스 한미연합사령관과 함께 정 실장을 만났다. 이는 안보 문제에 대한 양국 협력이 확정돼야 경제 문제를 협의할 수 있다는 행동으로 읽힌다.



    부담이 된 회담

    과거 한미정상회담은 외교부와 청와대 외교안보실(현 국가안보실)뿐 아니라, 국방부와 국가정보원(국정원)도 함께 준비했다. 국방부는 한미 국방장관회담과 한미 합참의장회담 등을 정례적으로 열고 있다. 한미연합사를 통해 함께 작전을 수행하고, 양국 무관부를 통해서는 상당한 군사정보를 교류하고 있다. 또 국정원 책임자와 미국 중앙정보국(CIA) 서울 거점장은 수시로 통화하며 긴밀한 협조관계를 맺고 있다.

    공식기구인 외교부와 달리 군사와 정보 세계에서는 협조 과정에서 구축된 라인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국방부와 통하는 미국 군부 인사, 국정원과 가까운 CIA 고위직은 백악관과 통하는 라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CIA는 미국 대통령 직속기구인 DNI(국가정보국), 미 군부는 NSC를 통해 미국 대통령과 그 측근들에게 수시로 북한 정보를 보고하는데, 이러한 정보의 상당수가 한국 국방부 정보본부나 국정원이 제공한 것이다. 미국 국방부나 CIA 고위직도 정보 제공자인 한국 파트너의 부탁을 수용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지금 국정원은 개혁 대상이 돼 있고, 국방부는 사드 보고 누락 사건으로 청와대의 조사를 받은지라 운신이 어렵다. 그런데 민간 라인까지 없으니 한미정상회담 사전 조율은 뻑뻑할 수밖에 없다.

    외교 담당인 김기정 제2차장이 낙마해 조직을 다 갖추지 못한 국가안보실과 수장이 없는 외교부가 분주하게 움직이지만 역부족일 공산이 크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은 적장이던 반 전 총장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보인다. 미국도 주한 미국대사가 공석이고,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와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안보 담당 차관보가 지명되지 않은 상태다. 한미 두 나라 모두 준비가 덜 된 상태에서 정상들이 만날 수도 있는 상황이라 과연 내실 있는 회담이 될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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