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잉글랜드프리미어리그 토트넘 홋스퍼의 손흥민(가운데)이 5월 21일(이하 현지 시간) 스페인 빌바오의 산 마메스 경기장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파리그 결승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뉴시스
토트넘, 17년 무관(無冠) 기록 깨
손흥민은 2015년 여름 이영표에 이어 두 번째 한국인 선수로 토트넘에 입단했다. 손흥민에게 부여된 등번호 7번이 말해주듯이 구단 기대는 처음부터 남달랐다.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 시간도 잠시, 손흥민은 유로파리그 카라바흐 FK전에서 데뷔골을 터뜨렸다. 연이어 EPL 6라운드 크리스털 팰리스전에서 리그 첫 골을 터뜨리며 존재감을 드러냈다.토트넘에서 손흥민의 성장은 멈출 줄 몰랐다. 매 시즌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팀 공격 핵심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이름에는 자연스레 ‘월드클래스’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 정점이 2020년 국제축구연맹(FIFA) 푸스카스상 수상이다. 번리전에서 약 70m를 질주하며 상대 수비수를 모두 따돌리고 터뜨린 원더골은 세계 축구 팬들의 경탄을 자아냈다. 손흥민 역시 “나도 아주 놀랐다”고 회상할 만큼 환상적인 장면이었다. 한국 선수 최초이자 아시아 선수로는 역대 두 번째 푸스카스상 수상이라는 역사적 의미도 더했다. 2021∼2022시즌 손흥민은 EPL에서 23골을 터뜨리며 모하메드 살라와 함께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아시아 선수 최초 EPL 골든 부츠였다. 페널티킥 골 없이 순수 필드골로만 이룬 업적이기에 그 가치가 더욱 빛났다.
손흥민은 축구선수로서 여러 영광스러운 기록을 갖고 있다. PFA(선수협회) 올해의 팀 선정, 여러 차례 받은 이달의 선수상, 발롱도르 후보 지명 등은 그의 꾸준함과 다재다능함을 입증하는 지표다. 2023년 8월 그는 마침내 토트넘 정식 주장으로 임명됐다. “이 거대한 클럽의 주장이 된 것은 영광스러운 일”이라던 당시 그의 소감처럼 단지 개인적 영예를 넘어 아시아 선수가 유럽 빅클럽 리더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상징적 사건이다. 뛰어난 기량에 리더십까지 겸비한 그의 존재는 팀을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 준비가 됐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손흥민의 화려한 성취 뒤편에는 짙은 아쉬움의 그림자도 드리웠다. 손흥민과 토트넘은 여러 차례 메이저대회 우승 문턱에서 좌절하며 눈물을 삼켜야 했다. 그중 가장 뼈아픈 기억은 2018∼2019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다. 맨체스터 시티(맨시티)와의 8강전에서 1·2차전 도합 3골을 터뜨리며 팀을 준결승으로 이끈 손흥민의 활약은 눈부셨다. 그러나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리버풀과의 결승전에서 토트넘은 0-2로 패하며 꿈을 접어야 했다. 경기 후 손흥민은 말을 아꼈지만 붉어진 눈시울과 아버지 손웅정 씨 품에 안겨 흘린 눈물에서 깊은 상실감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좌절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020∼2021시즌 잉글리스풋볼리그(EFL)컵 결승에서도 토트넘은 맨시티에 0-1로 패해 또다시 준우승에 머물렀다. 반복되는 ‘2인자’의 설움은 손흥민과 팬 모두에게 큰 상처였지만 동시에 우승에 대한 갈망을 더욱 키우는 자극제가 됐다. “트로피를 위해 토트넘에 왔다”는 손흥민의 말처럼, 매번 눈앞에서 놓친 우승컵은 그의 투지를 더욱 키웠다. 이는 훗날 찾아온 유로파리그 우승이라는 성공 서사를 더욱 극적으로 만들고 그 가치를 배가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손흥민(가운데)이 5월 23일 영국 런던에서 열린 유로파리그 우승 기념 퍼레이드에 참석해 팬들의 연호에 화답하고 있다. GETTYIMAGES
“늘 꿈꿔온 순간이 현실이 된 날”
그리고 마침내 캡틴 손흥민과 토트넘의 오랜 기다림이 끝났다. 주장 손흥민이 이끄는 토트넘은 2024∼2025시즌 유로파리그에서 파죽지세로 결승까지 진출했다. 결승 상대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였다. 팽팽한 긴장감 속에서 토트넘은 쉽지 않은 경기를 펼쳤다. 슈팅 3회와 점유율 27%만을 기록하며 잦은 위기에 봉착했다. 하지만 결국 승리 여신은 토트넘 편이었다. 파페 사르의 크로스가 상대 수비수 루크 쇼의 팔에 맞고 흐른 것을 브레넌 존슨이 놓치지 않고 밀어 넣으며 결승골을 터뜨렸다. 화려한 골은 아니지만 그 어떤 골보다 값진, 그야말로 ‘우당탕탕’ 들어간 집념의 골이었다.경기 종료 휘슬이 울리는 순간 손흥민은 두 팔을 번쩍 들고 포효했다. 10년의 기다림 동안 겪은 수많은 좌절과 눈물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을 것이다. 주장으로서 팀 동료들과 함께 들어 올린 유로파리그 트로피는 그 어떤 개인상보다 빛나 보였다. 그는 팬들 앞에서 “10년입니다! 10년. 이곳에 온 첫날부터 지금까지 여러분은 늘 함께해줬어요. 우리가 유로파리그에서 우승했고 여러분 모두 누릴 자격이 충분합니다”라며 벅찬 감정을 쏟아냈다. 목이 쉰 상태로 “오늘 드디어 해냈습니다. 늘 꿈꿔온 순간이 현실이 된 날입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유럽 클럽을 대표해 대륙 대회 우승을 이끈 최초 한국인 주장이라는 사실은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도 길이 남을 위대한 업적이다.
손흥민의 여정은 단순한 성공 스토리를 넘어선다. 좌절의 순간마다 흘렸던 그의 눈물은 팬들에게 깊은 공감을 줬고, 포기하지 않는 투혼은 많은 이에게 영감을 안겼다. 축구 역사에서 ‘손흥민 시대’는 단순히 한 선수의 뛰어난 활약을 넘어 최고 기량과 인간적 매력이 빛나는 리더십으로 기억될 것이다. 손흥민이 아시아 축구 아이콘으로서 앞으로도 수많은 이에게 꿈과 희망을 선사할 것이라고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