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황 전 교수의 줄기세포 스캔들이 줄기세포 연구가 가져올 의학적 신기원을 송두리째 부정하고, 또한 그것이 줄기세포 치료에 대한 희귀병 환자의 꿈과 희망까지 빼앗아가는 ‘전가의 보도(寶刀)’처럼 사용돼선 안 된다는 점이었다. 우리 과학계에는 오래전부터 황 전 교수의 스캔들을 반면교사 삼아 오히려 줄기세포 연구에 더욱더 박차를 가해야 하며, 정부는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육성·지원책의 폭을 더 넓혀야 한다는 주장이 이어져왔다.
일본, 역분화줄기세포로 노벨상
그 결과일까. 국민의 불안한 눈초리 속에서도 실제 많은 벤처업체와 연구기관이 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 큰 성과를 이뤄왔다. 세계 최초의 부작용 없는 만능줄기세포(STC-nEPS) 개발로 유명한 STC 생명과학연구원 줄기세포치료연구소(STC Stem cell Treatment & Research Institute·STRI) 이계호 회장은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불신의 장벽 너머에는 수많은 희귀병 환자와 그 가족의 꿈과 미래가 숨어 있다”며 “부작용 없고 윤리성에 대한 논쟁 없는 줄기세포 개발은 차세대 경제패권을 지배할 신성장동력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줄기세포 스캔들로 우리가 우울한 10년을 보내는 동안 세계 주요 줄기세포 연구 선진국은 줄기세포 치료에 열을 올려왔다. 전 세계 줄기세포 치료제 시장은 연평균 7.6%(2012년 4조5000억 원, 2014년 5조2000억 원, 2016년 전망 6조611억 원) 규모로 성장하고 있다. 2012년 4조5000억 원이던 시장 규모가 올해는 6조611억 원에 달할 전망이다. 심지어 미국과 유럽연합(EU)은 인간 난자 이용이란 윤리적 논란에도 정책적으로 관련 규제를 대대적으로 풀어주며 배아줄기세포를 이용한 치료제 연구개발을 적극 지원하는 실정이다.
미국 정부는 2004년 캘리포니아 재생의학연구지원재단을 세워 30억 달러(약 3조3000억 원) 규모 예산을 줄기세포 연구에 투자한 바 있으며, 오바마 정부가 들어선 2009년에는 배아줄기세포를 비롯한 줄기세포 연구에 대한 연방정부의 지원 규제를 폐지했다. EU는 제7차 프레임워크 프로그램(2007~2013)을 통해 8개국 11개 연구기관이 공동 참여하는 줄기세포 연구 프로젝트를 가동했다. EU 전체 과학예산 510억 유로(약 69조3500억 원)의 대략 10%인 약 5000만 유로가 줄기세포 분야에 투자됐다.
우리가 노벨생리의학상의 꿈을 잠시 잊고 있던 10여 년 사이 줄기세포 연구에 가장 큰 성과를 이룬 곳은 이웃나라 일본이었다. 2012년 야마나카 신야 교토대 교수가 ‘유도만능줄기세포(iPS세포·역분화줄기세포)’에 대한 연구로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것. 야마나카 교수의 연구는 아직 상용화가 멀고, 지극히 제한적 범위의 응용 연구에 그친 수준이지만 국가적 기대 속에서 일본 줄기세포 연구의 미래가 되고 있다. 이런 야마나카 교수의

일본 정부와 의회는 2014년 11월 의료업체가 배양한 줄기세포를 이용해 각 병원이 환자를 치료할(처방시술) 수 있도록 하는 재생의료 등 안전성 확보법(재생의료법)을 시행했다. 물론 줄기세포를 만드는 업체는 정부로부터 제조 허가를 받아야 하고, 병원은 치료 허가를 얻어야 한다는 전제가 붙는다. 재생의료법에 따르면 ‘iPS세포 치료제’를 포함한 재생의료 분야 신약은 안정성만 확인되면 조기에 시판 가능하고, 막대한 임상비용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이전까지 신약 개발에 엄두를 낼 수 없던 소규모 연구소나 벤처회사에게도 줄기세포를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일본 정부는 또한 상업용 줄기세포 치료제 개발을 독려하고자 ‘줄기세포 치료제에 건강보험을 적용한 후 안전성만 확인되면 조기에 판매 허가를 내준다’는 쪽으로 약사법을 개정했다. 이는 의약품의 안전성을 검증하는 임상1상 시험 단계를 통과하면 치료제로 허용하고 보험 혜택도 주겠다는 의미로, 임상3상(약효 유효성까지 입증)을 마쳐야 하는 한국과 비교하면 매우 파격적인 조치라 할 수 있다.
STRI, 부작용 없는 만능줄기세포 최초 개발
일본 문부과학성은 iPS세포 실용화 연구에 내년부터 매년 최대 30억 엔(약 426억 원)씩 10년간 총 200억∼300억 엔을 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정부가 단일 과학 연구에 매년 우리 돈으로 400억 원이 넘는 비용을 10년간 투자하는 것은 굉장히 이례적인 일로, 여기에는 다음 세대 세계경제를 먹여살릴 신성장동력인 재생의료 분야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일본 정부의 야심이 깔려 있다.줄기세포 연구개발에 대한 일본 대기업들의 관심 또한 폭발적이다. iPS세포 개발자인 야마나카 교수 자신이 “아직 상업화까지는 갈 길이 멀다”고 말했음에도 일본 대기업들은 오히려 거액의 연구비를 투자하며 앞다퉈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 일본 후지필름은 지난해 3월 3억700만 달러(약 3630억 원)를 투자해 iPS세포 생산업체인 미국 셀룰러 다이내믹스 인터내셔널을 인수한 데 이어 “신약개발 지원을 위한 iPS세포 사업을 전개하고자 iPS세포에서 유래한 분화세포의 개발·제조·판매 자회사를 설립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 밖에 일본 바이오기업 리프로셀(Reprocell)도 iPS세포 관련 연구로 생명과학의 본고장인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바이오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2003년 설립된 리프로셀은 배아 및 iPS세포 연구개발 외에도 iPS세포로부터 분화된 인체 장기세포를 활용한 세포의 공급과 독성 테스트 및 시약 공급 사업까지 하고 있다. 일본의 대표 화장품회사인 시세이도는 야마나카 교수의 iPS세포를 이용한 탈모치료제의 상업화를 위해 공동연구에 착수했으며, 또 다른 화장품회사인 고세 역시 iPS세포를 이용한 항노화 연구에서 성과를 이뤘다고 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줄기세포 연구는 어디쯤 와 있을까. 황 전 교수의 줄기세포 스캔들로 화들짝 놀란 우리나라는 배아줄기세포가 아닌 성체줄기세포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2014년 성체줄기세포 관련 연구에서 논문 391편이 나왔고, 배아줄기세포 관련 연구에선 논문 96편이 나왔다. 각각 세계 8위, 7위 실적이다.
뒤늦게 뛰어든 iPS세포 연구 역시 선두권을 추격 중이다. 지난해 우리나라는 iPS세포 관련 논문을 총 26편 발표해 세계 8위다. 1위 미국(310편), 2위 일본(105편)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신진 연구자를 중심으로 맹추격 중이다. 줄기세포 관련 특허에서는 한국의 선전이 두드러지는데 2010∼2011년 성체줄기세포와 배아줄기세포에서 각각 65건, 21건의 특허를 출원해 세계 3위, 4위를 차지했다. iPS세포 관련 연구에서도 9건의 특허를 출원, 미국과 일본에 이어 세계 3위에 올랐다. 정부는 2015년 줄기세포 연구개발 분야에 총 1004억 원을 투자하며 “줄기세포 강국으로 재도약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런 가운데 STC그룹 산하 국내 대표 줄기세포 연구기관인 STRI가 2013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부작용 없는 만능줄기세포 ‘STC-nEPS(newly Elicited Pluripotent Stem Cells without side effects by natural compound)’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간암 복강경수술로 유명한 분당서울대병원 한호성 교수팀이 ‘STC-nEPS’로 임상연구(전임상시험)를 준비 중이기 때문이다. STRI 측은 “STC-nEPS에 사용된 줄기세포는 사람의 탯줄, 지방, 골수, 제대혈 조직에서 분리한 중간엽줄기세포(MesenchymalStem Cells)를 천연물에서 추출한 저분자물질(STC ?f002)로 처리함으로써 만능성을 유도해냈다”며 “이는 STC만의 독보적 기술”이라고 주장했다(아래 인터뷰 ① 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