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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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절없이 낙마한 역대 국무총리 후보 잔혹사

김대중·박근혜 정부, 국정 쇄신 카드로 썼다가 두 번 연속 낙마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5-06-22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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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2년 김대중 정부 당시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돼 나란히 낙마한 장상(왼쪽),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 동아DB

     2002년 김대중 정부 당시 임명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서 부결돼 나란히 낙마한 장상(왼쪽), 장대환 국무총리 후보자. 동아DB

    ‘사적 채무’와 ‘아빠 찬스’ 논란에 휩싸인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를 두고 여야 간 공방이 가열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6월 16일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차 캐나다로 떠나는 전용기 안에서 “청문회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은 6월 24일 청문회를 앞두고 “인사청문 대상이 아니라 수사 대상”이라며 날을 세우고 있다. 

    파격이 부른 인사 실패

    행정부 2인자인 국무총리는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감사원장 등과 함께 임명 시 국회 동의가 필요한 자리다. 대통령 권한이 막강한 대통령제에서 ‘방탄 총리’라는 오명을 듣기도 하지만, 장관을 제청하고 정부 부처 간 정책을 조정하는 등 ‘정권 2인자’로서 핵심적 역할을 수행한다. 그만큼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총리 후보자는 여론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집중 검증 대상이 된다. 그런데 2000년 국회 인사청문회 도입 이후 적잖은 후보자가 의외로 쉽게 낙마했다.   

    총리 임명에는 국회 동의가 필요하지만 실제로 국회에서 임명동의안이 부결돼 낙마한 경우는 두 차례밖에 없다. 두 사례 모두 2002년 김대중 정부에서 벌어졌다. 당시는 김대중 대통령 임기 마지막 해인 데다, 아들 비리와 제2연평해전 대응 문제로 지지율이 하락하는 상황이었다. 김 전 대통령은 7·11 개각의 일환으로 헌정사상 첫 여성 총리를 탄생시키고자 장상 전 이화여대 총장을 총리서리로 임명하고 국무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총리서리는 국무총리 권한대행이 정립되기 전 관행으로 총리서리로 임명되면 인사청문회 전에도 총리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장상 후보자는 총리 지명 후 장남의 미국 국적 취득에 따른 병역 기피 의혹과 위장 전입을 통한 부동산 투기 의혹이 터졌다. 이에 장 후보자는 “아들은 척추에 문제가 있어 한국 국적을 선택했더라도 군대에 갈 수 없었고, 재산 관리는 시어머니가 했다”고 해명했으나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결국 7월 31일 국회에서 장 후보자에 대한 임명동의안이 거부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장 후보자에 이어 장대환 매일경제신문 사장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다. 하지만 장 후보자 역시 강남 8학군 위장 전입과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졌다. 당시 여론은 장 후보자 낙마 때보다 더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방송3사가 일제히 장 후보자의 국회 인사청문회를 생중계하기도 했다. 청문회에서 세금 탈루 의혹과 회사 예금을 담보로 개인 대출을 받은 업무상 배임 의혹까지 제기돼 결국 총리 인준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총리 후보자가 연거푸 낙마하자 당시 청와대 대변인은 “거듭 인준이 부결된 데 대해 유감스럽게 생각한다”며 “국민에게 죄송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김대중 정부는 파격 대신 안정을 택했다. 결국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역임한 김석수 전 총리가 국회 동의를 얻어 임명됐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박근혜 정부에서는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논란으로 사퇴했다(왼쪽부터). 동아DB

    이명박 정부에서는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박근혜 정부에서는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이 총리 후보자로 지명됐다가 논란으로 사퇴했다(왼쪽부터). 동아DB

    ‘거짓말’ ‘전관예우’ 도덕적 문제에 발목

    2010년 이명박 정부 시절 김태호 총리 후보자의 낙마는 인사청문회에서 거짓말이 결정타가 됐다. 당시 김 후보자는 48세로 차기 대선 주자 후보로 거론될 만큼 여권에서 떠오르는 별이었다. ‘박연차 게이트’ 연루 의혹이 있었지만 검찰 수사에서 무혐의를 받았고, 재선 경남도지사 경력으로 검증이 끝난 인사로 판단됐다. 재산도 3억7000만 원으로 공직후보자 중 적은 편이었다. 

    하지만 김 후보자의 인사청문 자료가 제출되며 논란이 시작됐다. 공직자 재산 신고 때 수차례 일부를 누락한 사실이 발견됐고, 가족 한 달 생활비로 155만 원을 쓴 반면, 재산은 3년 동안 3억 원이 늘어나 스폰서 의혹이 불거졌다. 또 도지사 재임 시절 김 후보자의 부인이 관용차를 사적으로 이용했다는 사실이 드러나 세대교체 이미지에 금이 갔다. 인사청문회에서는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과의 만남이 2007년 이후라고 얘기했는데 그 전에 골프를 친 사실이 드러나 비난을 샀다. 결국 김 후보자는 국회 임명동의안 회부 단계를 밟기 전 중도 사퇴했다.

    박근혜 정부 당시 총리 후보자로 지명된 안대희 전 대법관 역시 중도 사퇴했다. 대법관을 지낸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임명한 뒤 여야를 가리지 않는 수사를 통해 ‘국민 검사’로 불렸다. 원칙과 소신을 지키고, 청렴한 이미지도 갖고 있어 세월호 참사 이후 박근혜 정부의 구원 투수로 등장했다.

    하지만 ‘전관예우’ 의혹이 발목을 잡았다. 안 후보자는 대법관에서 물러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거친 뒤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이후 5개월간 11억 원 소득을 올렸다. 자녀 교육을 위한 위장 전입과 아들 군복무 특혜 의혹도 제기됐다. 당시 안 후보자는 “11억 원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밝혔지만 여론으로부터 “총리가 11억 원짜리냐”는 비난을 샀다. 안 후보자는 결국 지명 엿새 만에 자진 사퇴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이후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을 총리 후보자로 지명했으나 “위안부에 대해 사과받지 않아도 된다” 등 과거 발언이 문제가 돼 사퇴했다. 지명 삼세번 만에 총리 임기를 시작한 이완구 전 총리는 ‘성완종 게이트’ 사건이 터지면서 70일 만에 퇴진해야 했다. 박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정권 출범 직후부터 촘촘한 검증 시스템을 확립하지 못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무척 아쉽다”며 “후보자 본인이 제대로 답변하지 않더라도 우리 쪽에서 세세하게 파고들어 사실관계를 따질 수 있어야 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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