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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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 살인’ 죽산 조봉암, 농지개혁 이끈 독립운동가 출신 정치인

건국 후 초대 농림부 장관… 재심 기각 17시간 만에 사형 집행

  • 문영훈 기자 yhmoon93@donga.com

    입력2025-05-11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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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산 조봉암(1899~1959). 동아DB

    죽산 조봉암(1899~1959). 동아DB

    “가끔씩은 불의한 세력에 의한 불의한 기도가 성공하기도 한다. 조봉암은 ‘사법 살인’됐다. 농지개혁으로 대한민국 새로운 경제체제를 만든 훌륭한 정치인이 ‘사법 살인’된 것.”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5월 6일 충북 증평군 한 시장을 찾아 이렇게 말했다.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하자 조봉암을 빗대어 자신도 사법 피해자임을 주장한 것이다.

    죽산 조봉암(1899~1959)은 대한민국 정부 초대 농림부(현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으로 농지 개혁을 이끌었다. 해방 이전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로 활동했다. 3·1운동에 참여하며 민족해방운동에 관심을 갖게 된 조봉암은 1925년 제1차 조선공산당 창당 멤버로 참여했다. 해방 후 공개적으로 전향을 선언하고 제헌 국회의원에 당선했다.

    대법 52년 만에 ‘사법 살인’ 인정

    그가 죽음을 맞이한 ‘조봉암 사건’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대표적인 ‘사법 살인’으로 불린다. 1956년 11월 조봉암이 창당한 진보당은 이승만 전 대통령에게 큰 정치적 위협이었다. 조봉암은 6·25전쟁 중 실시된 1952년 2대 대선에서는 약 80만 표를 얻어 11% 지지율을 확보하는 데 그쳤지만, 1956년 3대 대선에서는 216만 표(30%)나 획득했기 때문이다. 1954년 ‘사사오입 개헌’으로 반(反)이승만 전선이 확산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서울시경찰국은 4대 총선을 앞둔 1958년 1월 조봉암과 진보당 간부들을 국가보안법 및 간첩법 위반 혐의로 체포한다. 북한 공작금을 대선 자금 및 진보당 창당 자금으로 사용했다는 이유에서다. 1심 재판부는 조봉암의 간첩 혐의는 무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는 유죄로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이승만 정부의 입김이 작용한 2심과 대법원에서는 원심을 파기하고 간첩죄를 적용해 사형을 선고했다. 변호인단이 재심을 청구했으나 대법원이 이를 기각했고, 17시간 뒤 조봉암에 대한 사형이 집행됐다. 



    그는 죽기 전까지 의연한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조봉암 평전’(2013)에 따르면 사형수로 형이 확정된 뒤 유일하게 접견이 허용된 김춘봉 변호사에게 그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정치란 다 그런 거지요. 이념이 다른 사람이 서로 대립할 때에는 한쪽이 없어져야 승리가 있는 거고, 그럼으로써 중간에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 편안하게 되는 거지요. 정치를 하자면 그런 각오를 해야 해요.” 

    1959년 7월 31일 조봉암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고 이듬해 이승만 정부는 4·19혁명으로 몰락한다. 조봉암에 대한 ‘사법 살인’이 국가로부터 인정받은 것은 2011년이다. 대법원은 재심 재판에서 “조봉암 선생은 독립운동가로서 건국에 참여했고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농림부 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경제체제의 기반을 다진 정치인임에도 잘못된 판결로 사형이 집행됐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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