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에서 현지 노동자들이 아이오닉5를 조립하고 있다. 현대차그룹 제공
발 빠르게 투자 발표한 현대차그룹
가장 먼저, 가장 크게 반응한 것은 현대자동차그룹이다. 3월 24일(현지 시간) 미국 백악관에서 210억 달러(약 29조4000억 원)에 이르는 투자 계획을 발표하며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경제 기조에 보조를 맞췄다.미국 앨라배마와 조지아에 위치한 현대차·기아 공장은 이미 연간 100만 대 규모의 생산 능력을 갖췄다. 3월 말 조지아에 준공된 신공장 ‘현대자동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는 연간 30만 대 규모로 생산을 시작해 단계적으로 50만 대까지 증설될 예정이다. 여기에 철강(전기로 제철소), 부품(현지화율 제고), 물류 인프라까지 포함한 ‘원스톱 미국 생산 생태계’를 구축한다는 게 현대차그룹의 계획이다.
루이지애나에 건설되는 270만t 규모의 전기로 제철소는 미국 내 저탄소 자동차 강판 수요를 겨냥한 선제적 대응이자, 관세 장벽을 넘는 철강판 전략이기도 하다. 나아가 현대차그룹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로보틱스, 미래항공모빌리티(AAM) 등 미래 산업 분야에도 63억 달러(약 8조8100억 원)를 투자한다. 자회사인 보스턴다이내믹스와 슈퍼널, 모셔널은 미국 현지법인을 통해 AI 기반의 레벨 4 자율주행 기술과 AAM 기체 상용화를 목표로 현지 테스트 및 인증을 서두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북미 지역 전기차 초고속 충전 서비스 연합체 ‘아이오나(IONNA)’에도 참여하며 미국 전역에 ‘모빌리티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야심을 드러내고 있다.
다른 기업들 움직임은 어떨까. 독일 폭스바겐그룹은 미국 전기차 스타트업 리비안과 함께 합작법인 ‘리비안 폭스바겐 테크놀로지(RVT)’를 세우고 총 58억 달러(약 8조 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기술 확보와 관세 대응을 동시에 노린 포석이다. 리비안의 소프트웨어와 아키텍처를 채택한 폭스바겐 전기차는 2027년부터 미국에서 생산된다.
‘Made in USA’ 전략
아우디는 미국 현지 생산을 공식화하며 테네시와 사우스캐롤라이나 생산망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앨라배마 투스칼루사 공장에서 GLE, GLS, EQE 등 고급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 라인업을 생산하고 있다. 2027년부터는 새로운 전기차종을 추가한다고도 선언했다. 전동화 플래그십 SUV 혹은 마이바흐 모델일 가능성이 크다.스텔란티스는 일리노이 벨비디어 공장을 재가동하며 ‘미국산(Made in USA)’ 전략에 동참했다. 중형 픽업과 전동화 SUV 생산이 주력으로 생산지 이전, 부품 현지화, 일자리 창출이라는 3박자를 모두 고려한 조치로 평가받는다.

미국 오하이오주 메리스빌에 있는 일본 자동차 기업 혼다 공장. 뉴시스
스웨덴 브랜드 볼보도 발 빠르게 움직였다. 사우스캐롤라이나 리지빌 공장에 하이브리드 SUV 생산 라인을 증설하고, XC90 같은 주력 모델을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 중심으로 미국 현지 생산화한다는 구상이다.
흥미로운 부분은 유럽 완성차 브랜드들이 미국 투자를 늘리면서 본국 공장에선 감산 계획을 발표하고 있다는 점이다. 프랑스 푸조는 유럽 전기차 판매 감소를 이유로 생산 일수를 줄이고 있고, 폭스바겐은 독일에서 ID.4 생산 라인 축소를 단행했다. 이들에게 미국은 ‘생산을 줄일 수 없는 곳’, 유럽은 ‘줄여야 하는 곳’이 돼가는 셈이다.
이제 미국에서 자동차를 판매하려면 미국 생산이 필수다. 이에 완성차 제조사들은 자율주행 기술도, 배터리 공급망도, 로보틱스 파트너도 모두 미국에 심고 있다. 이 흐름을 놓치면 미래를 놓칠 수 있다는 인식 때문으로 보인다. 트럼프의 ‘관세 외교’가 자동차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귀추가 주목되는 시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