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같은 부자라도 세대에따라 투자전략이점차 달라지고 있다. GETTYIMAGES
하나은행 하나금융연구소가 4월 발간한 ‘2025 대한민국 웰스 리포트’(하나은행 리포트)에 따르면 금융자산 10억 원 이상을 보유한 부자 중 다수는 올해 자산운용에서 수익보다 안정성을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세대 간 투자 성향 차이가 두드러졌다. 50대 이상 ‘올드리치’는 금·국채 같은 안전자산을 선호한 반면 30, 40대 ‘영리치’는 해외 주식과 가상자산 등 고위험 자산에 좀 더 적극적이었다.
현금이 최고, 방어형 자산에 몰리는 올드리치
하나은행 리포트에 따르면 부자들의 올해 자산운용 계획은 불황형 투자였다. 가장 높은 투자 의향을 보인 자산은 예금(40.4%)이었다. 금리인하 국면이 예고됐지만 안전하게 유동자산을 확보하려는 심리가 강했다. 예금 다음으로는 불황형 자산의 대표격인 금(32.2%)과 금리하락 시 가격이 오르는 채권(32.0%) 선호가 높았다. 개별 주식투자보다 위험을 줄이는 상장지수펀드(ETF·29.2%), 직접 종목을 고르는 주식(29.0%)도 고르게 선택했다.올드리치와 영리치는 포트폴리오 구성이 확연히 달랐다. 올드리치는 예금·채권 등 안전자산을 중심에 두고, 일부 수익을 ETF나 가상자산으로 보충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었다. 펀드·신탁(58.6%), 채권(45.7%), 골프장·호텔 회원권(23.3%) 투자 비중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박태형 우리은행 TCE시그니처센터 PB지점장은 “5060 고객은 은퇴를 앞둔 만큼 주식 등 공격적 자산의 비중을 줄이고 채권이나 예금, 금처럼 안정성이 높은 자산 비중을 점진적으로 늘려가는 경향이 있다”며 “기준금리 인하 기조에 따라 예금만으로는 노후 생활이 어렵다고 느끼는 고객도 많아서 예금보다 다소 높은 수익률을 기대할 수 있는 채권이나 신종자본증권(하이브리드 채권) 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부동산 투자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지고 있다. 지난해 하나은행 리포트에서는 부동산이 추가 투자 의향 1순위 자산이었지만, 올해는 주식 등 금융상품이 상위권을 차지했다. 부동산 매입 의향은 지난해 초 50%에서 올해 초 44.3%로 감소했고, 매도 의향은 31%에서 33.6%로 늘었다. 금리와 규제 부담, 정치적 불확실성이 겹치면서 자산가들도 부동산 대신 유동성과 회전성이 큰 금융자산으로 관심을 옮겨가고 있다.
젊은 부자의 ‘주식 네이티브’ 시대
하나은행 리포트에 따르면 영리치의 총자산은 평균 60억 원, 이 가운데 금융자산은 절반인 평균 30억 원을 차지했다. 금융자산 내 투자자산 비중도 2022년 34.9%, 2023년 37.7%, 2024년에는 41.7%로 꾸준히 상승했다. 반면 올드리치의 투자자산 비중은 2023년 40%에서 2024년 38%로 소폭 줄었다. 자산 규모는 아직 작지만, 영리치는 좀 더 공격적인 전략으로 자산을 불리고 있었다.이들에게 주식은 단순한 투자 수단이 아니라 자산운용의 기본값이다. 하나은행 리포트에 따르면 영리치의 주식투자 시점이 올드리치보다 훨씬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미성년 시절부터 주식을 시작한 비율은 영리치가 5%, 올드리치가 1%였고, 대학 입학 전후 주식을 시작한 비율 역시 영리치가 20%로 올드리치(4.4%)를 크게 웃돌았다. 특히 30대의 46%, 40대의 19%는 ‘취업 전 주식 경험’을 갖고 있다고 응답해 젊을수록 투자 입문 시기가 빨라지는 흐름이 뚜렷했다.
30대 전문직 B 씨 역시 대학 입학 직후 주식 및 코인 투자를 시작했다. 먼저 투자를 시작한 형제의 권유로 용돈 일부를 주식 계좌에 넣었고, 2017년 호기심에 산 비트코인으로 200% 수익을 낸 뒤 자산 일부를 꾸준히 가상자산에 투입해 억 단위 수익을 기록했다. 관세 협상 등 정치적 불확실성이 우려되지 않느냐는 질문에 “당분간은 어려워도 가상자산은 단기 수익을 가장 크게 낼 수 있는 투자처”고 답했다.
이처럼 영리치의 포트폴리오에서 주식이 중심축이라면, 가상자산은 새로 성장하는 섹터다. 하나은행 리포트에 따르면 40대 이하 부자의 28.7%가 가상자산을 보유하고 있으며, 이는 50대 이상(10.1%)의 약 3배에 달한다. 보유자 중 34%는 비트코인 외에도 4종 이상의 가상자산을 분산 보유하고 있었으며, 큰 금액을 한번에 넣는 것보다 수시로 매입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단순히 유행을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변동성을 감수한 전략적 접근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윤선영 하나금융연구소 연구위원은 “부자가 가상자산의 성장 가능성을 기대한다는 것은 해당 자산군이 주류로 편입되는 전환점일 수 있다”며 “다만 제도적 안전망이 미비하고, 기술 이해도 편차가 커서 호불호가 갈린다”고 설명했다. 박태형 지점장도 “PB(프라이빗뱅커) 입장에서는 코인을 적극 추천하긴 어렵지만, 일부 고객은 전체 자산 중 극소의 비중을 장기 보유 목적으로 편입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