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새 브로드컴은 40% 올랐고, 엔비디아는 오히려 하락했다. 주도주가 바뀌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은 저평가된 종목을 기다릴 때가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인정받고 올라가는 종목을 눈여겨봐야 할 때다. 인공지능(AI) 수요가 학습에서 추론 중심으로 바뀌고 있고, 시장은 그 흐름에 먼저 반응하고 있다.”
트럼프 리스크에 내성 생긴 시장
유튜브 채널 ‘주식왕 찐쌤’을 운영하는 김진 씨가 5월 26일 인터뷰에서 강조한 말이다. 최근 시장에선 AI 사이클이 학습 중심에서 추론 중심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씨는 이 변화의 대표 수혜 종목으로 브로드컴을 꼽았다. 학습 단계에서는 범용 그래픽처리장치(GPU)가 사이클의 중심이었지만, 추론 단계에선 이미 학습된 모델을 실제 서비스에 적용해 빠르고 효율적인 결과를 내야 하는 만큼 특정 과업에 특화된 주문형 반도체(ASIC)가 더 많이 사용된다. 따라서 ASIC 생산에 집중하는 브로드컴으로 주도권이 이동할 것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김 씨는 2001년부터 21년간 KB증권·하나증권·유안타증권 등에서 프랍트레이더(자기 자본과 회사 자본을 사용해 금융시장에서 거래를 수행하는 전문 투자자)로 재직했고, 2023년부터 ‘주식왕 찐쌤’ 유튜브를 운영하고 있는 투자 전문가다.현 미국 증시 흐름을 어떻게 평가하나.
“의외로 안정적인 흐름을 보인다고 생각한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본격화하면서 시장이 급락했지만 이후 빠르게 반등했다. 트럼프 1기 때는 주로 중국을 겨냥한 관세 조치였고,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의 통화정책이 변곡점이 되면서 시장 반응도 제한적이었다. 반면 트럼프 2기 들어서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관세를 부과해 자국 경제에 미치는 충격도 커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달러가 위험자산처럼 움직이고 있다. 이는 미국 재정 불안과도 맞물려 시장이 더 하락해도 이상하지 않은 국면이다. 그럼에도 시장은 생각보다 견조하다. 내부적으로 고점을 경신하는 종목도 하나 둘 보이고 있다. 일부 종목은 랠리 가능성까지 보인다.”
‘셀 미국(Sell US)’ 기조도 완화됐다고 보나.
“완화된 건 맞지만, 위협이 완벽하게 제거됐다고 보긴 어렵다. Sell US는 글로벌 경제 시스템 균열로도 해석할 수 있다. 기축통화인 달러는 신뢰·유동성·거래 네트워크상 우위라는 3가지 요건을 갖춰야 한다. 문제는 2년 전부터 미국과의 관계가 틀어진 신흥국들이 달러 대신 금을 사들였다는 점이다. 이는 곧 미국 채권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관세전쟁이 달러 신뢰도 하락과 맞물리면 미국이 더 취약해질 수도 있다. 당분간 관세정책이 급변하긴 어렵겠지만, AI 분야에서 미국이 압도적 우위를 점하고 있다. 이 경쟁력이 유지된다면 미국 경기침체 가능성은 낮아지고 Sell US 흐름도 점차 완화될 것이라고 본다.”
관세 국면에서 투자 철학을 유지하기 쉽지 않다.
“이제 관세는 변수가 아니라 상수라고 봐야 할 것 같다. 지금 관세는 금융시장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게 아니라, 트럼프의 정치적 판단에 따라 결정되고 있다. 이 흐름이 쉽게 꺾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 대신 관세정책에 대한 시장의 충격 반응은 점차 둔감해지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발표된 유럽연합(EU)에 대한 관세는 충격적인 뉴스였다. 영국과 10%, 중국과는 30% 수준으로 합의됐으니 EU·일본·대만 등은 보편관세 수준인 10% 정도일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막상 발표된 관세는 50%였다. 예전 같았으면 주가가 4~5% 급락했을 법한 뉴스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그만큼 하락이 있진 않았다. 시장이 관세 리스크에 점차 내성이 생기고 있다는 뜻이다.”
GPU 시대에서 ASIC 시대로
AI 주도주가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 기업으로 옮겨가고 있다. 다만, 현재 소프트웨어 기업 주가가 많이 올랐다는 얘기도 있는데.“AI 소비 시대에 초점을 맞춰 투자할 사람은 덜 오른 주식을 살 게 아니라 이미 많이 오른 종목에 주목해야 한다. 새로운 사이클이 도래하면 시장은 우리가 인지하기 전에 먼저 반응하기 때문이다. 흔히 ‘저평가 우량주를 싸게 사서 가치가 오를 때 판다’는 전략은 성장하는 사이클에서는 잘 통하지 않는다. 성장 가능성이 큰 주도주는 늘 비싸게 거래된다. 현재 AI 소프트웨어 기업 주가가 높은 이유도 시장이 AI 소비 시대에 수혜를 가장 먼저 입을 종목들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주식왕 찐쌤’ 김진. 조영철 기자
“6~7개월 전부터 AI 학습에서 추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학습이 기존에 있던 데이터를 이해하고 구조화하는 과정이라면, 추론은 이를 바탕으로 실제 문제해결에 적용해 답을 내는 과정이다. 2035년까지 학습 부문 투자 증가율은 연 7~9% 수준까지 낮아지고, 추론 부문은 연 15% 이상 성장한다는 전망이 있다.
이런 변화를 가장 체감할 수 있는 분야가 반도체다. 학습 단계에서는 GPU, 특히 엔비디아 칩이 핵심이었다. 반면, 추론 단계에서는 특정 과업에 최적화된 ASIC이 주목받고 있다. GPU보다 전력 소모가 적어 온디바이스(on-device) AI, 스마트폰 등에도 적합하다. 이 시장에선 ASIC을 다루는 기업이 주가 퍼포먼스도 더 좋다.”
추론 단계에서 입지가 가장 크게 달라질 기업은 어디인가.
“엔비디아와 브로드컴이라고 예상한다. 학습 단계에선 엔비디아의 지배력이 컸다. 마이크로소프트(MS), 아마존, 알파벳, 메타 모두 엔비디아 칩을 원했기에 가격도 그만큼 높았다. 클라우드 서비스를 제공하는 빅테크라면 엔비디아의 헤게모니에서 벗어나고 싶지 않겠나. 이젠 그들이 자사에 최적화된 ASIC을 본격적으로 개발하기 시작했다. 지난 6개월간 주가 퍼포먼스를 살펴보면 엔비디아는 4% 하락했지만, 브로드컴은 40% 상승했다. 밸류에이션도 브로드컴이 더 높다. 주가수익률(PER) 기준으로 엔비디아가 40배 정도라면, 브로드컴은 110배다. 엔비디아 우위 상황이 서서히 뒤집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오르는 주식이 가장 좋다
엔비디아 비중을 줄이고 브로드컴을 늘릴 계획이라면 포트폴리오를 바꾸는 시점을 언제로 잡아야 하나.“시장 주도주가 바뀌는 시점에 포트폴리오도 같이 바꿔야 한다. 특정 종목을 팔고 곧바로 다른 종목을 사는 방식은 아니다. 주도주가 교체될 때 시장은 대부분 큰 조정을 동반한다. 기존 주도주의 생명력이 다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 조정 구간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보유 주식을 일부 정리해 현금을 확보하는 것이다. 다음 주도주로 추정되는 종목을 미리 눈여겨보다가 그 타이밍에 진입하는 것이 더 낫다.”
포트폴리오를 바꿀 때 필요한 현금 비중은 어느 정도인가.
“투자 성향마다 다르겠지만 주도주 사이클에 따라 운용한다면 현금 비중을 70%까지 고려할 수 있다. 프랍트레이더로 일하던 시절 시장이 너무 안 좋아 1년간 주식 비중이 10%에 불과한 적도 있었다. 다시 말해 물이 들어올 때 노를 저어야 한다는 뜻이다. 물이 빠졌는데 무리해서 계속 저으면 노가 부러진다. 시장이 좋을 때도, 나쁠 때도 항상 수익을 내겠다는 건 현실적이지 않다. 감내할 수 있는 손실과 현실적인 기대수익을 설정하는 게 중요하다.”
주가가 하락하진 않지만 오르지도 않는 종목이 있을 때 보유할지, 정리할지 애매한 순간이 있다. 그럼 기다리는 편인가, 바로 덜어내는 편인가.
“시장을 예측하거나 전망하기보다 대응한다는 측면에서 본다면 기준은 명확하다. 지금 오르는 종목이 가장 좋은 종목이다. 투자자들은 시장이 나보다 똑똑하다는 데 대부분 동의한다. 그런데도 특정 종목이 저평가됐고 더 올라갈 것 같다는 생각으로 주식을 보유하곤 한다. 이는 자신이 시장보다 우위에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런 투자 방법은 정보가 비대칭적인 작은 기업에 투자할 때는 유효할지 모른다. 큰 기업에 투자할 때는 다르다. 주식을 사는 이유와 파는 이유는 같아야 한다. 주가가 오르지 않는다면 과감하게 정리하는 게 맞다고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