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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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금융시장 기본 전제 ‘美 국채=안전자산’ 흔들릴 우려 커져”

강현주 연구위원 “미국 국가부채 급증 시 투자자들 자산배분 새롭게 바꿀 것”

  • 임경진 기자 zzin@donga.com

    입력2025-05-28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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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은 보통 투자 포트폴리오를 구성할 때 가장 먼저 일정 수준의 안전자산을 갖춘다. 그 뒤 자신의 투자 목적과 위험 성향에 따라 나머지 투자금을 위험 자산에 배분한다. 미국 국채는 누구나 공인하는 안전자산이다. 그런데 미국 국가부채가 급증한다면 ‘미 국채는 안전자산’이라는 세계 금융시장의 기본 전제가 의심받게 된다. 이는 자산배분 형태를 새롭게 바꿀 테고, 세계 금융시장은 취약해진다.”

    거시경제 전문가인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5월 21일 인터뷰에서 미국 국가부채 전망이 실현될 경우 세계 금융시장에 나타날 악영향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강 선임연구위원은 “도널드 트럼프 관세정책의 목적이 ‘국가부채 상쇄’에서 ‘무역수지 균형’으로 한층 약화한 듯하다”면서도 “트럼프 감세안이 미 의회를 통과하면 다시 관세 장벽을 높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 선임연구위원에게 미국 경제 상황과 한미 관세 협상 전망을 물었다.

    미·중 관세 장벽 다시 높아질 가능성 적어

    트럼프발(發) 관세전쟁이 미국 경제에 미친 악영향이 얼마나 큰가.

    “트럼프 정부가 들어서기 전까지 미국 경제는 매우 좋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취임 전인 1월 발표된 미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는 2% 중반으로 높았고, 이에 미국으로 자본이 몰리면서 미국 주식시장도 활황세였다. 하지만 지금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가 크게 낮아지고 금융시장 변동성이 커진 것은 트럼프 때문이다.”

    중국·영국과의 관세 합의에서 트럼프가 관세를 유예 혹은 폐지한 것은 어떤 의미인가.



    “관세 합의 후 미국 주식시장이 빠르게 반등한 것을 보면 시장은 트럼프가 관세정책으로 얻고자 하는 바가 달라졌다고 판단한 듯하다. 트럼프가 관세전쟁을 시작했을 때는 그 동기가 두 가지였다. 미국 재정적자를 관세 수입으로 메꾸고, 전략 산업 공급망을 미국 영토 안으로 가져오는 것이다. 이 둘을 충족하려면 관세를 낮추기 어렵다. 하지만 관세정책 목표가 ‘미국 무역수지 적자 감소’와 ‘공정무역 관행 회복’으로 약화했다면 합의를 통해 관세율을 조정할 여지가 생긴다.”

    트럼프가 관세로 재정적자를 메꾸는 것을 포기하기에는 미국의 재정적자 문제가 아직 해소되지 않았는데.

    “그렇다. 게다가 트럼프가 최근 강하게 추진하는 감세안은 향후 10년 동안 3조~4조 달러(약 4140조~5520조 원)의 추가 재정 손실을 불러온다. 감세안이 통과되면 트럼프가 다시 관세에 대해 강경한 태세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현재 미국 국가부채가 얼마나 심각한가.

    “트럼프 감세안이 나오기 전 미국 의회 예산처 전망에 따르면 2040년까지 미국 GDP(국내총생산) 대비 국가부채는 150~160%까지 빠르게 늘어난다. 그러니 무디스 같은 신용평가사들이 미국 신용등급을 낮춘 것이다. 여기에 트럼프 감세안까지 통과된다면 미국 국가부채는 악화한다. 이에 대한 대응책이 나오지 않거나 국가부채를 심화하는 요인이 불거진다면 ‘미 국채는 안전자산’이라는 세계 금융 시장의 기본 전제는 향후 10년간 점차 흔들리게 될 것이다.”

    미·중이 합의한 관세 유예 기간인 90일이 지나면 두 나라의 관세 장벽은 다시 높아질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트럼프 1기인 2019년 12월에도 미국은 중국산 전자제품에 부과한 관세를 깎아주면서 중국으로부터 ‘미국의 농산물 등 상품을 더 많이 수입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이후 중국이 약속을 전혀 지키지 않았지만 미국 측에서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번에도 ‘중국시장 접근과 관련해 양보를 얻어냈다’거나 ‘중국이 미국산 상품을 더 사주기로 했다’는 식으로 미국이 얻게 될 실리는 없지만, 허세를 부릴 정도의 합의를 중국이 제공한다면 관세 유예 기간을 계속 연장하는 형태로 상황이 지속될 수도 있다.”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호영 기자

    강현주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지호영 기자

    자동차·반도체 모두 살려야 하는 한국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 영국이 이룬 성과만큼 한국도 얻어낼 수 있을까.

    “쉽지 않다. 영국은 미국과 역사적으로 근본이 같은 나라인 데다, 미국이 영국으로부터 무역흑자를 보고 있어 그 정도 성과를 거둔 것이다. 한국은 트럼프 1기 때보다도 협상 조건이 나빠졌다. 조 바이든 정부 때 한국이 중국과 멀어지고 미국과의 교역을 강화하면서 한국의 무역흑자가 커졌다. 반대로 한국과의 교역에서 큰 적자를 보고 있는 미국은 협상에서 한국 측 양보를 더 강하게 압박할 것이다.”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어렵게 하는 한국만의 또 다른 특성은.

    “일본은 자동차, 대만은 반도체 관세를 낮추는 데 주력하면 되지만 한국은 자동차와 반도체 산업을 모두 포기하기 어려워 협상이 까다롭다. 두 산업에서 원하는 바를 얻어내려면 한국이 미국산 상품 수입을 늘리는 카드를 내밀어야 하는데 이마저도 쉽지 않다. 한국이 미국에서 들여오는 주된 품목이 항공기, 농산물, 에너지다. 항공기는 이미 수입량의 3분의 2가 미국에서 온다. 농산물은 40%가 미국에서, 나머지 60%는 호주와 뉴질랜드, 유럽 다른 농업 국가들에서 들여오는데 미국 수입량을 40%에서 더 확대한다면 다른 수입국과 통상 마찰이 생길 수 있다. 결국 미국산 수입 비중이 10%밖에 안 되는 액화천연가스(LNG)를 사줘야 하지만, 다른 나라들도 똑같은 전략이라 LNG 가격이 오르고 있다.”

    미국 월마트가 관세 영향으로 빠르면 이달 말부터 가격을 올리겠다고 했다. 인플레이션에 대한 미국 시민들의 불만이 관세 협상에서 미국 입지를 좁힐 수 있을까.

    “미국 인플레이션을 주도하는 건 서비스 물가라 월마트에서 파는 상품들이 물가상승률을 크게 견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물가 지표와 시민들이 실제 체감하는 물가는 다르다. 가령 월마트에서 파는 휴지 가격이 오르면 미국 시민들의 분노가 커져 트럼프 정부의 관세정책 태도를 누그러뜨릴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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