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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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받는 월급은 ‘미래의 나’도 써야 할 돈

신입사원 때부터 연 5% 상품에 월 88만 원 저축하면 380만 원 받아

  • 김성일 업라이즈투자자문 연금·투자연구소장

    입력2025-05-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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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ETTY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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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입사원이 된 딸아이는 월급날만 기다린다. 한 달 동안 열심히 일한 자신에게 주어지는 보상인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면서 어디에 쓸지 계획을 세운다. 옷도 사고, 친구와 뮤지컬도 보러 간다. 돈을 버는 것이 기쁘다는 사실을 실감한다. 그러나 한 해 두 해 직장생활이 계속되면서 월급날의 설렘은 점차 사라진다. 

    직장생활 10년 차 과장이 됐을 때는 매달 받는 월급으로 카드 값, 휴대전화 요금, 공과금 등을 내고 나면 통장이 ‘텅장’(텅 빈 통장)이 된다. 월급은 분명 많이 올랐는데 돈은 늘 부족하다. 적금도 들어봤지만 몇 달 지나면 꼭 돈 쓸 일이 생겨 중도해지하게 된다. 과소비를 하는 것도 아니고, 친구나 동료도 다들 비슷하게 산다며 위안을 삼는다. 

    직장생활 20년을 넘겨 팀장이 됐을 때는 승진자 연수에서 ‘연금’ 준비의 필요성을 듣는다. 하지만 아직 은퇴가 멀었다고 생각한다. 매달 받는 월급에서 아파트 대출금과 생활비를 제하고 나면 저축할 여력이 없다. 그리고 30년 차 정년을 앞뒀을 때 남은 것은 아파트 한 채와 약간의 예금뿐이다. 그제야 앞으로 남은 노후를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함이 밀려온다.

    월급은 ‘지금 써도 되는 돈’이 아니다

    앞서 언급한 사례는 현재 고3인 딸이 성인이 된 이후 어떤 모습일지 상상해본 것이다. 많은 사람이 직장에 다니면서 받는 월급을 ‘지금 써도 되는 돈’이라고 착각한다. 하지만 그 돈은 온전히 ‘지금의 나’를 위한 것이 아니다. ‘미래의 나’도 함께 써야 할 돈이다. 30세에 받은 월급은 30세인 나도 쓰지만, 60세인 나도 써야 한다. 50세에 받은 월급은 50세인 나도, 80세인 나도 써야 한다. 이달 월급을 다 써버리면 안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행동경제학에서는 사람들의 이러한 소비 형태를 ‘현재 편향(present bias)’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미래 이득보다 당장의 만족감을 훨씬 크게 느낀다. 이 때문에 장기 계획이 필요한 저축이나 투자를 뒤로 미룬다. 뇌과학에서도 같은 현상이 발견되는데 즉각적인 소비는 쾌락을 담당하는 뇌 영역을 활성화해 도파민을 분출한다. 반면 미래를 위한 저축은 추상적이고 멀게 느껴지기 때문에 보상이 덜 자극적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장기적 이익보다 눈앞의 작은 보상에 더 많은 돈을 쓰는 것이다. 



    한국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1위로 매우 심각하다. 통계에 따르면 노인 인구의 40% 이상이 빈곤에 처해 있다. 돈 없는 노후는 생각보다 괴롭고 서글프다. 나중에 어떻게든 되겠지, 돈은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남들처럼 쓰다가는 남들처럼 빈곤한 노후를 맞게 된다.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행동경제학자 리처드 세일러는 ‘넛지(nudge)’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넛지란 사람의 선택을 강요하지 않으면서도 바람직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유도하는 장치를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급여가 입금되는 즉시 일정 금액을 자동으로 연금 계좌 등에 보내는 자동이체 설정이 바로 넛지의 일종이다. 소비하기 전에 저축과 투자를 우선적으로 처리함으로써 미래를 위한 돈을 강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다. 

    정부도 개인적으로 은퇴 준비를 하는 이들에게 넛지를 부여하고자 개인연금 계좌에 혜택을 주고 있다. 개인연금이란 연금저축과 개인형 퇴직연금(IRP)을 합쳐 말하는데, 이들 계좌에 연간 900만 원을 저축하면 연말정산 시 세액공제로 13.2~16.5%를 환급해준다. 최대 148만5000원을 돌려받는다는 얘기다. 또한 당장 내야 하는 이자소득세나 배당소득세 등을 연금 수령 시까지 미루는 ‘과세이연’ 혜택과 연금 수령 시 기존 세율(15.4%)보다 훨씬 낮은 연금소득세율(3.3~5.5%)을 적용하는 ‘저율과세’ 혜택도 제공한다. 

    월급 받으면 저축부터, 적극적 투자로 불려야

    그럼에도 이런 제도가 있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여전히 너무 많다. 금융교육이 부재하고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도 미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알면서도 활용하지 않는 경우도 꽤 있다. 이유를 들어보면 대부분 비슷하게 답한다. 당장 쓸 돈도 부족해 은퇴 준비까지 할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없는 사람은 없다. 미래의 자신을 위한 것이라는 경각심을 가지고 좀 더 신경 써서 준비해야 한다. 

    그렇다고 현재 삶을 포기하면서까지 준비하라는 것은 아니다. 수입의 절반 이상을 저축하라는 극단적인 처방도 아니다. 중요한 점은 지금 월급이 가지는 ‘시간가치’를 활용하는 것이다. 신입사원은 이 돈을 30년간 굴릴 수 있다. 적은 돈도 시간의 힘으로 크게 만드는 것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얼마나 저축해야 할까. 현재 월급이 300만 원이고, 현 소비 수준과 30년 후 소비 수준을 비슷하게 유지하고 싶다고 가정해보자. 은행 예금만으로 노후를 준비하려면 급여의 절반인 150만 원을 저축해야 한다. 예금의 실질금리는 물가상승률을 차감하면 거의 0%에 가깝기 때문이다. 하지만 연 5% 수익률이 가능한 투자상품에 저축한다면 매달 88만 원으로도 충분하다. 이 돈은 30년 후 약 380만 원(=88×1.0530)이 되며,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현 212만 원(=380÷1.0230) 가치와 비슷해진다. 수익률이 연 10%라면 더 적은 돈으로도 가능하다. 28만 원을 저축해 30년 후 489만 원을 만들 수 있다. 이 역시 물가상승률을 감안하면 현 272만 원과 같기에 나머지 272만 원은 생활비나 기타 저축 등에 사용할 수 있다. 

    개인연금 계좌에 주어지는 혜택을 활용하면서 저축을 하자. 저축한 돈은 적극적인 투자를 통해 적정 수준으로 수익률을 높이자. 이것으로 현 소비와 미래 소비 사이에서 균형을 찾자. 지금 받는 월급의 시간가치를 활용하는 지혜를 갖자. 은퇴 후에도 월급이 나오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지금 바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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