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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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 코인투자 하는 ‘시니어 개미’ 급증

노후자금 사기 피해 잇따라… 모르는 해외거래소 투자 피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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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ycw@donga.com

    입력2024-12-11 09: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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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학생 막내딸이 비트코인을 사보라기에 ‘어디서 사는지 알아볼게’라고 했습니다. 처음 시작하려면 거래소부터 정해야 한다는데 어느 곳에 가입해야 할까요.”

    “코인에 지금 들어가는 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자식 물려줄 요량으로 10년간 묵혀도 괜찮을까요.”

    50대 이상 은퇴자가 모인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이다. 이곳엔 하루 평균 10건 이상 코인투자 관련 게시 글이 올라온다. 가산자산시장은 젊은 층이 주도한다는 인식이 크지만 60대 이상 시니어층에서도 투자에 뛰어드는 사람이 늘고 있다. 전문가들은 시니어는 정보 부족으로 사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해외거래소에만 상장된 코인에 의심 없이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 [GettyImages]

    해외거래소에만 상장된 코인에 의심 없이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 [GettyImages]

    ‘돈방석’ 앉을 수 있다더니 2000만 원 사기

    60대 A 씨는 2022년 지인으로부터 코인투자를 권유받았다. 해외에 이미 상장된 코인인데 한국엔 아직 상장되지 않았고, 상장만 되면 ‘돈방석’에 앉을 거라며 A 씨를 설득했다. 의심하는 A 씨에게 지인은 투자 사이트와 영어로 된 투자 계획서를 보여줬다. 지인은 투자만 해도 커미션이 지급된다고 했다. 투자회사가 개발한 인공지능 시스템이 알아서 24시간 동안 거래하기 때문에 수익 내기가 쉽고, 자기 밑으로 등록하면 일정 금액이 자신에게도 들어오니 이득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심드렁하던 A 씨는 점점 “노후자금을 불려볼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한 달 뒤 A 씨는 카페에서 몇 시간에 걸쳐 지인과 함께 투자 사이트에 가입하고 계좌에 200만 원을 넣었다.

    이후 지인은 A 씨에게 또다른 코인투자자를 소개했다. 그는 비싼 소고기를 A 씨에게 대접했다. A 씨는 “비싼 밥을 사줄 만큼 투자에 성공한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에 내심 부러웠다. 이후 A 씨는 지인과 함께 투자회사 강의를 들었고, 반년 뒤에는 같은 투자자들끼리 제주로 워크숍을 떠나기도 했다. 투자회사가 설명하는 비전을 듣자 더 많이 투자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실제로 적금을 해지하거나 땅을 팔고 온 투자자도 부지기수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A 씨도 적금을 해지했다. 투자회사 세 군데에 추가로 가입하고 투자 계좌도 8개 더 만들었다. 어느새 투자금은 2000만 원으로 불어나 있었다.

    문제는 한 달이 지나도 새로 가입한 투자회사가 약속했던 커미션 금액을 입금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불안해하는 A 씨를 지인은 “몇 달만 더 기다려보자”고 다독였다. 며칠 뒤 A 씨는 자신이 투자한 코인이 사기라는 기사를 읽었다. 지인은 모르는 얘기라며 발을 뺐다. 2000만 원은 A 씨 ‌가 ‘짠순이’ 노릇을 해가며 모은 돈이었다. 이후 6개월간 A 씨는 돈을 회수할 방법을 궁리하느라 잠을 설쳤지만 아직도 사기당한 금액을 돌려받지 못했다.

    비트코인 투자 열풍이 거세지면서 5060 이상 시니어의 코인투자가 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안도걸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빗썸의 개설 계좌 세대별 증가율에서 60대 이상이 압도적으로 높았다. 9월 말 60대 이상 고객 계좌는 77만5718개로, 2021년 말 대비 30.4%(18만834개) 증가했다. 같은 기간 50대 고객 계좌도 22.5%(35만6169개) 늘었다. 한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라운지를 방문하는 고객 10명 중 3~4명이 5060 이상 시니어”라며 “대면으로 상담받고 계좌를 바로 개설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코인 사기 입증하기 어려워

    인당 평균 투자액도 60대 이상이 가장 많았다. 60대 이상 투자자의 인당 평균 가상자산 보유액은 약 872만 원이었다. 20대 이하(98만 원)와 30대(298만 원)의 각각 9배, 3배 수준이다. 업비트, 빗썸에서 가상자산 보유액이 10억 원을 초과하는 고액 계좌 수(9월 말 기준)는 50대(904개)가 가장 많았다. 40대와 60대가 각각 850개, 538개로 뒤를 이었다. 20대 이하와 30대의 10억 원 초과 고액 계좌 수는 각각 69개, 454개에 그쳤다. 50대와 60대 큰손(10억 원 초과 투자자)의 인당 평균 가상자산 보유액은 21억 원에 달했다.

    전문가들은 충분한 정보 없이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경고한다. 황석진 동국대 국제정보보호대학원 교수는 “은퇴 후 제2의 인생 설계를 위해 또는 노후 준비를 위해 투자에 관심을 갖지만 정보 비대칭 때문에 사기를 당하기 쉽고 못 돌려받는 금액도 더 많다”고 말했다. 실제로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실을 통해 받은 금융감독원의 ‘가상자산 불공정거래 및 투자사기 신고센터’ 자료에 따르면 50대 이상 고령층 피해자 비중은 1~5월 35%로, 2023년 6~12월(30%)보다 5%p 증가했다.

    황석진 교수는 “해외거래소에 상장된 코인이지만 국내에는 아직이라고 한다면 일단 의심부터 하는 게 좋다”며 “해외거래소는 소액의 마케팅 비용만 지불해도 상장되는 경우가 많고, 미등록 코인도 꽤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사기를 당했다고 해도 국내 코인투자 분야에서는 아직 기망 행위나 처분·교부 등 사기를 입증하기 쉽지 않은 실정이라 주의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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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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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윤채원 기자입니다. 눈 크게 뜨고 발로 뛰면서 취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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