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엄마를 부탁해’로 대한민국을 엄마 열풍에 빠뜨린 소설가 신경숙. 그가 6월 27일 서울 경희대에서 열린 ‘열정樂서’의 강연을 맡았다. 삼성그룹이 주최하는 ‘열정樂서’는 저명인사들이 멘토로 나와 젊은이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토크콘서트다. 서울 구로공단에서 일하며 영등포여고 야간부를 졸업한 그가 소설가가 된 연유는 뭘까. 자전적 소설 ‘외딴방’에서도 풀어내지 않은 작가의 솔직한 속내를 들어본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넓은 곳에서 하는 강연일 줄 몰랐네요(웃음). 음… 이렇게 만난 게 간단한 일은 아니에요. 아마 우리가 모르는 사이 엮이고 섞이고 스쳐서 만났을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서로 최선의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는군요. 사실은 시력이 작년부터 굉장히 나빠져 눈만 크게 뜨고 있을 뿐 잘 안 보인답니다.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거예요(웃음).
제가 태어난 곳은 남쪽의 전북 정읍이라는 곳인데 그곳에서도 더 들어가는 농촌에서 중학생 때까지 성장했어요. 어렸을 때 즐거움이 책을 읽는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책이 많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도서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형제가 아주 많았습니다. 특히 제 위로 남자형제가 많았는데 그들이 어디에선가 책을 빌려왔어요. 그들이 책을 감나무 밑에 두고 놀고 있으면 저는 그 책이 뭔가 싶어 읽기 시작했어요. 기억이 나는 게 어머니가 제가 책을 읽고 있으면 기뻐하고 많은 걸 막아줬어요. 어머니가 기뻐하니 책을 더 읽게 됐는데, 남자형제가 많아 방에서만 책을 읽을 수 없어 나무에서 읽기도 했습니다. 그중 헛간에서 읽었을 때가 기억에 남는데, 그때 그곳에서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책 쓴 사람이 궁금해지고 제 꿈도 궁금해졌습니다. 남들이 꿈을 물으면 학자, 선생님, 여군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어딘가에 산다는 걸 알았어요. 책 주인공은 잘난 사람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 배려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나도 글 쓰는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중학생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일 수도 있고 제 능력 바깥에 다른 힘이 작용해 발생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책에 나오는 인물의 편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 “뭐가 되고 싶니” 하고 질문하면 구체적으로 대답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고 보면 제가 중학생 때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축복이었다고 봅니다.
그러고 나서 1979년 서울로 오게 됐어요. 벌써 30년이 지난 일인데, 당시는 농촌사회에서 산업사회로 이동하는 시기였지요. 제가 다닌 고등학교는 일반적인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그때 낮에는 산업현장에서 일하고 밤에는 학교를 다닐 수 있는 과정이 생겼거든요. 저는 아침에 회사에 나가 일하다 오후 5시가 되면 학교에 가서 공부를 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학교에 가고 싶어 한 사람이 800명이라면 790명은 일을 해야 했고 10명만이 갈 수 있었기에, 학교에 가서 책상에 앉는 그 모든 순간이 소중했습니다. 그래선지 지금도 오후 5시는 무언가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고 서글픈 생각이 드는 시간이기도 해요.
서울로 오면서 환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창문과 문 밖을 나가면 자연이 펼쳐졌지만, 그 이후로는 주변에 공장과 지하철이 있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환경의 변화가 있고 나서 더욱 커졌습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제 마음속에서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자라나지 않았다면 현재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대학생이 되기 전 저를 지켜줬던 것은 무엇보다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학교생활에 마냥 충실했던 건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 노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때라서 노사 갈등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학교 가는 것이 무의미하고 싫어져 오랫동안 결석하게 됐어요. 그런데 선생님 한 분이 찾아와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책을 읽고 싶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러자 선생님이 “학교에 와서 책을 읽도록 해라. 하지만 결석을 오랫동안 했으니 반성문을 써와라”고 하셨어요.
하늘에서 떨어진 별 같은 말
돌이켜보면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소중한 듯해요. 결석하게 된 정황을 담은 반성문을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았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제가 쓴 반성문을 내밀며 “너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해주셨거든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조세희 선생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실천문학’이라는 두 권의 책을 주셨습니다.
그전에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소설을 쓰고 싶은지, 시를 쓰고 싶은지, 또 다른 장르의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던 중 선생님 말씀을 듣고 ‘소설가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지요. 저는 제가 정말 반성문을 잘 써서, 글 쓰는 재능이 넘쳐흘러서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소설가가 돼 선생님을 찾아가니 “너 정말 소설가가 됐니. 그때는 마음 둘 곳 없는 제자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아 단순하게 생각해 소설가가 돼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당시 선생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과 같았어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정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의 순간 속에서, 책에서, 음악에서,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의 한 마디에도 귀 기울이고 꿈을 향해 출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꿈이 없는 상태는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는 상태가 아닐까요. 만약 여러분이 꿈이 없는 상태에 있다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질문에 대해 자기 마음속으로 물어보고 또 물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불행하지 않을 거예요. 물론 자신에게 닥친 수많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이 ‘서른 살 이후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열정을 다 바쳐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어떤 때는 최고인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선을 선택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끝까지 못 찾을 수도 있고요. 살아가면서 이런 기준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국어 선생님으로 살아가면 행복할 것 같다면 그 일을 하는 겁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실패하더라도 그 일을 해서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실패는 배움, 깨달음, 격려와 더불어 텃밭 같은 구실을 해줄 겁니다. 끊임없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술잔을 들 때의 느낌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의 느낌도 남다르지 않을까요. 그러한 것이 자꾸 쌓이고 쌓여 얼굴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른 살이 지났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그 일을 잘하게 되기에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 공동체에 이로운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각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는 삶을 꾸려간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 조금 과장해 말하면(웃음) 67%는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소설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다음에는 자존심을 아무데나 걸지 않았습니다. 오직 ‘작가가 돼야겠다’ 거기에만 걸었습니다. 짧은 시간인 여름방학이나 휴식시간에 책을 꺼내 읽고, 그 책을 다시 읽고, 새 책이 없다면 읽었던 책을 다시 노트에 적었던 그 시절이 청춘의 징표처럼 남아 있습니다. 꿈을 이루려고 깊이 몰두하는 시간 덕에 자신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이로운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잠재의식, 무의식에서 깊이 잠자고 있는 꿈, 나 자신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꿈을 찾아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렇게 넓은 곳에서 하는 강연일 줄 몰랐네요(웃음). 음… 이렇게 만난 게 간단한 일은 아니에요. 아마 우리가 모르는 사이 엮이고 섞이고 스쳐서 만났을 거예요. 가장 중요한 것은 만나는 순간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서로 최선의 시간을 만들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걱정이 되는군요. 사실은 시력이 작년부터 굉장히 나빠져 눈만 크게 뜨고 있을 뿐 잘 안 보인답니다.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잘할 수 있을 거예요(웃음).
제가 태어난 곳은 남쪽의 전북 정읍이라는 곳인데 그곳에서도 더 들어가는 농촌에서 중학생 때까지 성장했어요. 어렸을 때 즐거움이 책을 읽는 것이었는데 생각해보면 책이 많지 않았습니다. 초등학교, 중학교에 도서관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형제가 아주 많았습니다. 특히 제 위로 남자형제가 많았는데 그들이 어디에선가 책을 빌려왔어요. 그들이 책을 감나무 밑에 두고 놀고 있으면 저는 그 책이 뭔가 싶어 읽기 시작했어요. 기억이 나는 게 어머니가 제가 책을 읽고 있으면 기뻐하고 많은 걸 막아줬어요. 어머니가 기뻐하니 책을 더 읽게 됐는데, 남자형제가 많아 방에서만 책을 읽을 수 없어 나무에서 읽기도 했습니다. 그중 헛간에서 읽었을 때가 기억에 남는데, 그때 그곳에서 많이 성숙해졌습니다.
책을 읽다 보면 책 쓴 사람이 궁금해지고 제 꿈도 궁금해졌습니다. 남들이 꿈을 물으면 학자, 선생님, 여군이 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내 눈에 보이는 것 말고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는 것,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이 어딘가에 산다는 걸 알았어요. 책 주인공은 잘난 사람보다 해결되지 않는 문제를 가진 사람들, 배려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라는 것도 보였습니다.
그렇기에 나도 글 쓰는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때가 중학생 때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연일 수도 있고 제 능력 바깥에 다른 힘이 작용해 발생한 일일 수도 있겠지만, 책에 나오는 인물의 편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돼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지금 돌이켜보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할까’에 대해 생각할 수 있어 좋았던 것 같습니다. 젊은 친구들을 만나 “뭐가 되고 싶니” 하고 질문하면 구체적으로 대답을 못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고 보면 제가 중학생 때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것은 축복이었다고 봅니다.
신경숙<br>● 1963 전북 정읍 출생<br> ● 1982 영등포여고 졸업<br>● 1984 서울예술대 문예창작과 졸업<br> ● 1985 ‘문예중앙’ 소설 ‘겨울우화’로 등단<br>● 대표작 ‘풍금이 있던 자리’ ‘깊은 슬픔’ ‘외딴방’ ‘엄마를 부탁해’ 등
서울로 오면서 환경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예전에는 넓은 마당이 있고 창문과 문 밖을 나가면 자연이 펼쳐졌지만, 그 이후로는 주변에 공장과 지하철이 있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은 환경의 변화가 있고 나서 더욱 커졌습니다. 할 일은 많고 시간은 없고…. 제 마음속에서 작가가 돼야겠다는 생각이 자라나지 않았다면 현재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어요. 제가 대학생이 되기 전 저를 지켜줬던 것은 무엇보다 책이라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학교생활에 마냥 충실했던 건 아닙니다. 한국 사회에 노조라는 것이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때라서 노사 갈등이 있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학교 가는 것이 무의미하고 싫어져 오랫동안 결석하게 됐어요. 그런데 선생님 한 분이 찾아와 “너는 무엇을 하고 싶으냐”고 물으셨어요. 저는 “책을 읽고 싶다”고 말씀드렸지요. 그러자 선생님이 “학교에 와서 책을 읽도록 해라. 하지만 결석을 오랫동안 했으니 반성문을 써와라”고 하셨어요.
하늘에서 떨어진 별 같은 말
돌이켜보면 사람의 인연이란 것이 소중한 듯해요. 결석하게 된 정황을 담은 반성문을 선생님 책상에 올려놓았는데, 어느 날 선생님이 부르시더니 제가 쓴 반성문을 내밀며 “너는 소설가가 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씀해주셨거든요. 그러면서 선생님은 조세희 선생님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과 ‘실천문학’이라는 두 권의 책을 주셨습니다.
그전에 작가가 돼야겠다고 생각은 했지만 소설을 쓰고 싶은지, 시를 쓰고 싶은지, 또 다른 장르의 글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은 없었어요. 그러던 중 선생님 말씀을 듣고 ‘소설가가 돼야겠다’는 마음을 가졌지요. 저는 제가 정말 반성문을 잘 써서, 글 쓰는 재능이 넘쳐흘러서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이후 소설가가 돼 선생님을 찾아가니 “너 정말 소설가가 됐니. 그때는 마음 둘 곳 없는 제자가 글 쓰는 걸 좋아하는 것 같고, 책 읽는 것도 좋아하는 것 같아 단순하게 생각해 소설가가 돼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말했다”고 하시더군요. 하지만 당시 선생님의 말씀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과 같았어요. 사람이 무엇을 하고 살아야겠다고 정하면 우리가 살아가는 나날의 순간 속에서, 책에서, 음악에서, 여행지에서 우연히 마주친 누군가의 한 마디에도 귀 기울이고 꿈을 향해 출발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꿈이 없는 상태는 무엇을 해도 재미가 없다는 상태가 아닐까요. 만약 여러분이 꿈이 없는 상태에 있다면 내가 무엇을 하는 사람이 돼야겠다는 질문에 대해 자기 마음속으로 물어보고 또 물어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실패를 경험하더라도 불행하지 않을 거예요. 물론 자신에게 닥친 수많은 일이 있을 겁니다. 그렇더라도 여러분이 ‘서른 살 이후 나는 어떤 일을 하며 살고 있을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열정을 다 바쳐서 하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꿈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어떤 때는 최고인 것을 발견하지 못하고 차선을 선택할 때도 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끝까지 못 찾을 수도 있고요. 살아가면서 이런 기준을 생각해보면 어떨까요. 예를 들어 국어 선생님으로 살아가면 행복할 것 같다면 그 일을 하는 겁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가슴이 뛰고, 실패하더라도 그 일을 해서 행복하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실패는 배움, 깨달음, 격려와 더불어 텃밭 같은 구실을 해줄 겁니다. 끊임없이 실패하더라도 다시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사람은 술잔을 들 때의 느낌과 아침에 잠에서 깨어날 때의 느낌도 남다르지 않을까요. 그러한 것이 자꾸 쌓이고 쌓여 얼굴에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서른 살이 지났을 때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사람’이 되길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그 일을 잘하게 되기에 일부러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이 하는 일에, 자신이 속한 사회에, 공동체에 이로운 영향을 끼치게 될 것입니다. 사실은 우리 각자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 수 있는 삶을 꾸려간다면,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문제… 조금 과장해 말하면(웃음) 67%는 해결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저는 소설가가 돼야겠다고 생각한 다음에는 자존심을 아무데나 걸지 않았습니다. 오직 ‘작가가 돼야겠다’ 거기에만 걸었습니다. 짧은 시간인 여름방학이나 휴식시간에 책을 꺼내 읽고, 그 책을 다시 읽고, 새 책이 없다면 읽었던 책을 다시 노트에 적었던 그 시절이 청춘의 징표처럼 남아 있습니다. 꿈을 이루려고 깊이 몰두하는 시간 덕에 자신뿐 아니라 모르는 사람에게까지 이로운 영향을 미칠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여러분에게 잠재의식, 무의식에서 깊이 잠자고 있는 꿈, 나 자신을 행복하게 살 수 있게 하는 꿈을 찾아 한 발짝 한 발짝 나아가보라고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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