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대 강명관 교수(한문학)는 역사라는 거대하고 엄숙한 담론에 가려진 잊혀진 사람들의 삶에 주목했다. ‘조선의 뒷골목 풍경’(푸른역사 펴냄)에서 주인공은 상놈 개똥이, 종놈 소똥이, 여성 말똥이다. 조선 최고의 대리시험 전문가 류광억, 판소리꾼 모흥갑, 유흥계를 누빈 거문고 명인 이원영, 백범 김구의 탈옥공작을 벌인 불한당의 괴수 김진사, 민중의 의사였던 조광일과 백광현, 조선시대 조직폭력배 ‘검계’와 이들을 소탕한 포도대장 장붕익….
이 비주류 인생들이 역사의 전면으로 걸어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18세기 문인 이규상이 장붕익의 전기 ‘장대장전’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은퇴한 ‘검계’ 표철주를 만났기 때문이다. 일흔이 넘은 표철주가 용감하고 날래며 사람을 잘 치고 날마다 기생을 끼고 몇 말의 술을 마시던 소싯적 활약상을 털어놓은 덕분에 이규상은 비밀스럽게 운영되던 검계 조직의 진면목을 생생하게 기록할 수 있었다.
구한말 한문학의 대가이자 정치가로 이름을 떨친 김윤식은 ‘금사 이원영전’을 남겼다. 이원영이 바로 조선시대 유행을 주도했던 ‘별감’이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별감이란 ‘왕명을 전달하는 직책’이지만 당시 별감들은 업무와 관계 없이 곱게 뜬 평양망건, 외점박이 대모관자 등을 갖추고 기생들과 어울리며 돈을 물 쓰듯 해서 복색의 사치와 유행을 주도하고 시정의 유흥공간을 장악했다. 그중에서도 이원영은 오묘한 거문고 음률로 권세가들의 귀를 사로잡고 기생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은 인물이다. 김윤식은 우연히 만난 앞 못 보는 노인이 젊은 시절 거문고의 명인으로 이름을 떨친 이원영임을 알고 이렇게 제안한다. “노인께서는 이제 늙으셨습니다. 세상에 다시 이름을 떨칠 수 없으니 내가 노인장을 위해 글을 써서 영원히 전해지도록 해보지요.”
강교수는 조선시대 역사는 사회적 승자인 양반계급을 중심으로 서술되었고, 후대에 민중사관이 민중을 역사 서술의 주 대상으로 삼긴 했지만 오히려 ‘별감’처럼 이도 저도 아닌 부류가 역사의 주인공이 되기 어려웠다고 말한다. 그나마 이규상, 김윤식처럼 당대의 문인들이 이들의 삶에 관심을 보인 것이 다행이랄밖에. 비주류 인생을 주인공으로 삼은 ‘조선의 뒷골목 풍경’은 그래서 신선하고 정겹다.